예수 그리스도는 거친 말투를 지닌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침례인 요한은 거친 말투를 지닌 온유하고 겸손한 분입니다.
침례인 요한은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보면서, "오 독사들의 세대야,... "(마 3:7)라고 외쳤습니다. 침례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받으러 오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침례인 요한이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침례를 받으로 나아오는 무리들(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말했습니다. "...오 독사들의 세대야..."(눅 3:7). 침례인 요한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설교학이나 목회학을 이수하지 않았음에 틀림없습니다. 어떤 신학교에서도 이런 식으로 주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것도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사역 장소에서 말입니다.
그럼 우리 주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주님의 입에서는 온유하고 부드럽고, 교양있고 학식있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을까요? 주님이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가장 자주 쓰신 표현 중에 하나는 "너(희) 위선자여"입니다. 이 말은 이곳 미국에서 상대방 면전에서나 뒤에서 했다가 드러나면 인격 살인에 준하는 심한 욕설로 취급하며, 서부 시대라면 상대방을 모욕했다고 해서 곧바로 결투 신청이 들어올 만한 말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상대를 향해 이런 말을 하면 학부모 호출은 기본이고 정학 정도의 징계를 받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새끼, 등신, 머저리, 쪼다, 똘아이, 미친 놈이란 말을 쓰는 것은 주님이 사용하신 말투에 비하면 상스러운 욕설에 들지도 못합니다.
주님은 상대 면전에서, 사람들이 있는 공공의 장소에서 "너희 위선자들아"(마15:7, 16:3,22:18, 23;13,14,15,23,27,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학식있는 사람들의 교양있고 세련된 신사의 화법, 어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이보다 더 원색적인 말도 있습니다. "오 독사들의 세대야"(마12:34),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마23:33)란 말은 듣는 사람을 분노하게 할 만한 말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날 바리새인 중의 하나가 헤롯에 대해 말하자, 주님은 그 자리에서 "... 너희는 가서 그 여우에게 이르기를..."(눅13:32)라고 응대하셨습니다. 주님은 헤롯을 그 여우라 부르셨습니다. 한국 사람은 주로 개**라고 부르지만 주님은 주로 *뱀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에 어떤 신학생 둘이 한 조를 이루어 방학 때 순회 전도를 다니다가 어느 산골 마을에서 "이 개자식들아,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욕설로 얼룩진 훈계를 하는 어떤 분을 보고 질겁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그 산골의 교회 목사였고 욕을 먹는 그 마을 사람들은 그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그 때 신학생들은 단 한 번도 욕설과 성령, 욕과 더불어 인용되는 성경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었던지라 충격을 받았습니다(*출처. Peter Ruckman 박사님이 쓴 20세기 순회 설교자의 회고록에 자신이 겪은 일을 쓴 내용임). 그러나 성경을 읽어 보면 그것이 말씀 선포자들의 정상적인 화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친 말을 하는 사람을 멀리하라."고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자칭 신사적이고 예의바른 크리스천임을 자처하는 교양있고 학식있는 설교자들은 성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거친 말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부드러운 말투,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를 가진 사람들을 주의하고 멀리하라고 경고합니다.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롬 16:18)
한국의 크리스천들, 특히 목사라는 사람들 중에 부드러운 말, 좋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떠하든 일단 전도사, 목사 등의 타이틀이 주어지면 그에 맞는 어투를 사용합니다. 종교인의 고유의 말투, 특유한 화법이 있습니다. 성경 신자들이라 불리는 목사들 중에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속이야 어떠하든 밖으로 드러내는 말투는 천편일률적입니다. 목사들은 목사란 타이틀 때문에 속으로는 분노와 욕설이 나와도 글이나 말로는 그런 욕을 하는 대신 최대한 부드럽게 글을 쓰고 말을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없는 목사들은 이런 것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 인격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인격자란 평가를 받기를 원하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성경에는 단 한 번도 "인격"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랄 것입니다. 워낙 신앙 인격, 크리스천의 인격을 강조하는 거짓 교사, 거짓 목사들에게 성경에는 '인격'이란 말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면 아예 얼이 빠지는 듯 합니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에 열변을 토하며 강조하고, 가장 중요한 것처럼 떠들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투는 거칠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온유하고 겸손한 사도였지만 그의 말투는 거칠었습니다.
대언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말투는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강단에 선 대부분의 목사들은 겉은 부드럽고 겸손하고 예의바르며, 손을 닦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을 정도로 경건하고 거룩하게 보일 정도이며, 얼굴에는 웃음을 머금으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고 높임을 받지만 무례하고 사악한 자들입니다. 사기꾼들의 말은 거칠지 않습니다. 속이는 자들의 말은 절대 거칠지 않습니다. 간교한 뱀의 말은 거칠지 않았습니다.
거짓 대언자들, 거짓 사도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장로들을 보십시오. 거짓 목사, 거짓 교사들의 말은 부드럽고 미끄럽습니다.
[그의 입의 말들은 버터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속에는 전쟁이 있으며 그의 말들은 기름보다 부드러우나 실상은 꺼낸 칼이었도다.](시55:21),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롬 16:18)
지금도 유명한 교회의 목사님들이나 사회 저명 인사들이란 사람들, 교수니 뭐니 하는 사람들을 한 번 보십시오. 그들은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칠지도 않고 무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기꾼들, 위선자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합니다. 한국의 제가 아는 어떤 목사는 "거친 말을 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그런 자들로부터 떠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사악함과 위선은 곁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증언하기를 "뱀같은 놈"이라고 고개를 흔듭니다. 저는 반대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말과 예의 바른 사람들을 주의하고 조심하라." 누가 옳을 것 같습니까? 성경을 보고 확증합시다.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롬 16:18)
성경에 기록된 우리 주님의 입에서는 "독사들의 세대, 회칠한 무덤, 뱀들아, 악하고 음란한 세대, 마귀의 자녀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와 같은 원색적이고 인격 모독적인 거친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언자들, 침례인 요한,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원색적이고 투박하며, 거친 말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화법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선하고 온유하며 경건하고 부드럽고 거룩합니다. 이와 달리 좋은 말, 교양있는 말, 유식한 말을 골라서 쓰는 위선자들은 더럽습니다.
말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의 진실성입니다. 거짓을 아름답게 전하는 것보다 진리를 거칠고 투박하게 전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다루며, 진실을 말하기에 꾸밈이 없습니다.
가끔 저의 설교나 성경 강해 중에 나오는 거친 말투, 화법에 놀라거나 실족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씁니다. 거친 말투를 쓰지만 결코 주의 말씀으로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간교함이나 속임수를 베풀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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