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사랑한다’는 의미는 사랑의 대상을 위해 자기 목숨(생명)을 내 놓는 것을 말합니다.
- 아담은 자기 아내를 사랑해서 죽음을 택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해서 죽으셨습니다.
-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3:16).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독생자를 죽음에 내 주셨다는 말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또는 무엇을 위해 죽는 것을 세상은 희생이라고 말하고 성경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해서 죽는 죽음을 희생(犧牲)이라고 합니다. - 모세는 민족의 멸망을 막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 놓았습니다(출32:32).
- 삼손은 민족의 구원을 위해 죽음을 택했습니다(삿16:29,30). 그는 사사로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원수들을 멸하고 민족을 구원했는데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습니다(삿16:30).
- 대언자 요나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주의 명령을 거역하고 스스로 바다에 내던져짐으로 죽음을 택했습니다(욘1:12). 요나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욘1:12)고 함으로써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는 니느웨로 가서 대언을 함으로써 그들이 회개하는 것보다 죄 가운데 멸망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음을 택했습니다.
- 모세, 삼손, 요나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 같은 영을 소유한 여인을 택하라면 단연 ‘에스더’입니다.
- 에스더는 멸망하게 된 민족의 구원을 위해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라고 하며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 신약에서 민족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원했던 인물은 바울입니다. “육체에 따른 내 형제들, 내 친족들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롬9:3). 바울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반어법이긴 하지만 농담이나 헛소리,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니라 진심(眞心)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영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생각,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사랑’입니다. 서구 유럽인들이나 이곳 헐리웃의 사랑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따른 육체적 욕망, 정욕을 일컫는 말이거나 부드럽고 달콤한 감정적 느낌을 일컫는 것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죽음을 동반하는 ‘자기희생’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5:13-14절, 요한일서 3:16절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가 나의 친구니라.”(요15:13,14).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 생명을 내 놓는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엡5:25). 자신을 주셨다는 말은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에 따라 우리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요13:34, 15:12,17).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셨으므로 이로써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내놓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형제 사랑이란 형제를 위해 우리의 생명을 내놓는 것입니다.
모세, 삼손, 요나, 에스더, 바울은 모두 형제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놓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에스더를 보면서 그녀가 형제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생명을 내놓기로 결단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는 이 점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출처. 에스더 2강 서론.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