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경건의 신비와 불법의 신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차이점을 성경을 통해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從)인줄로
오해하고, 적그리스도의 교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줄로 알고 맹신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교회를 통해, 신앙을 통해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타락한 사람들을 너무나 자주 봅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진리의
지식이라고 합니다. 진리의 지식은 이런 모든
속임수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반면 마귀는
우리를 속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복 주셔서 진리의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꾸준히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되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1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이 아들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의 처음 나신 분이시니](골1:15).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 죽기 때문입니다.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이는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을 것임이니라.](출33:20).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에 대하여 증거하셨기 때문이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분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으며](요5:37). [오직 그분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그분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께
존귀와 영존하는 권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전6:16).
[어느 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되느니라](요일4:12).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일 수 있는 형상으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어느 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1:18).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빌립이 주님께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하니](요14:8).
빌립의 이런 질문은 그리스도인이든 불신자이든 한 번은 해
보았을 질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싶은 욕망은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심리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짐승의
형상입니다.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데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뿔들 위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 권능과 자기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더라.](계13:1-4).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창1:26,27).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아담은 자기 형상에
따라 아들을 낳았습니다(창5:3).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됩니다.
14.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마28:19)-in the name
of :단수임. 요일5:7은 삼위일체를 입증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구절입니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오랫동안 가장
빈번하게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삼위일체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사물에 삼위일체의 증거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들어 물은 액체, 기체, 고체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태양은 하나이지만 그 빛은 적외선, 자외선,
가시광선으로 나누어집니다. 나는 하나이지만 나의 영, 나의
혼, 나의 몸 이렇게 셋으로 구성됩니다. 나의 몸과 나의 영은
같지 않지만 분리할 수 없는 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의
건전한 교리는 어려워 보여도 믿기에 쉬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삼위일체입니다(계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부정한 영 셋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대언자의 입에서 나오니] 성부 하나님에
대적하는 것이 용이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 성령을 모방하는 거짓 대언자입니다. 성령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듯이, 거짓
대언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 짐승을 믿고
경배하게 할 것입니다.
15.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동물은 양입니다.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9).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기로부터 어린 양으로 예표되었습니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잡종의 야수입니다.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 권능과 자기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계13:2). 오늘날 유전 공학을 활용해서
mutant(돌연변이체)를 만들려는 모든 시도는 이 짐승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신화, 전설에는 모두
이런 돌연변이 짐승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는 모두 짐승의
영을 받아서 유래하는 것들입니다.
16.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을 내게 주셨느니라.](마28:18).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권능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요5:19). 이는
예수님의 겸손을 드러낸 말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는 일을 할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말을 하든지, 감사를
하든지, 찬양을 하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15:5). 골로새서 3:17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 우리의 힘이요, 권능이신 주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적그리스도의 권세는
용으로부터 옵니다.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
권능과 자기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계13:2).
하나님께서 의의 일군들을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시듯이,
용은 자기 일군들을 세우고, 자기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1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드러나셨느니라.](롬1:4). 우리 또한 주님의 부활과
동일한 모양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땅에
속한 몸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새로운 몸을 입게 됩니다.
불신자들이 부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서까지 되고 싶어했던 신들은 모두 죽습니다. 성경은
신들이 사람들처럼 죽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계시해 줍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토록 신이 되고 싶은 열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죽지 않지만 신들이라고 표현된
자들은 멸망당하며, 죽임을 당합니다. 영원불멸은 인간이
신이 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를 통해,
돌연변이를 통해 영원불멸을 꿈꾸는 모든 시도는 허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새로운 몸을 주심으로 영원히 살도록
하십니다.
두 번째는 부활에 대해
잘못 알고 있습니다. 부활은 영적 각성이나 영혼이 저 멀리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그리이스 철학자들은 몸을 악의 근원으로 보았기에
부활에 대한 기독교 교리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부활은 내
몸이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럽게 일어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적그리스도의 부활은
용으로부터 옵니다. [내가 보매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더니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랍게 여기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계13:3,12).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흉내내면서 자신이
바로 메시아라고 속일 것입니다.
18.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경배를 받습니다.
[그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에 돌아가](눅24:52).
주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배척과 멸시를 받았지만
성도들에게 경배를 받으십니다. 주님은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주님께서 경배를 받으셨다는 사실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마귀와 싸우실 때, [사탄아, 여기서 물러가라,
이는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음이니라, 하시더라](마4:10)고
말씀하신 분께서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경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면서 경배를 받으셨다면 그는 성경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짓말쟁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매
순간 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으십니다.
적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의 경배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적그리스도가
일으키는 이적과 표적에 속아서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경배하지 않는 자들을 모두 죽이려 할
것입니다.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이
있어 그 짐승의 형상으로 하여금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고자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도
하더라.](계13:3,4,8). 마귀는 사람들에게 경배 받고
싶어합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을 경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시대에
자기를 높여 성도들에게 경배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면
그는 마귀의 종임에 틀림없습니다.
19. 어떻게 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권위있게 말했습니다. [관원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요7:46).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었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렸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며, 성경의 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이런 능력을 가지고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증거하는
능력이 크게 결여된 것은 말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삶이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죠지
뮬러의 명성을 듣고 그분의 설교를 들으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자기 교회 집사님도 할 수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설교였으나 그 능력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돌아 오면서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죠지 뮬러 목사님은 말과
삶과 기도가 모두 성경에 일치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말과 삶이 성경에 일치한다면 우리는 능력있는
설교자요, 말씀의 증거자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위대한
웅변가입니다(계13:5).
[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을 모독하는 입을 주고 또 마흔 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마귀는 사람들의 혼을 빼 놓을
수 있는 설교가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은 독재자들이
얼마나 유능한 웅변가들이었는지 압니다. 히틀러의 연설을
들은 독일 국민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솟구쳐 오르는 피를
참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틴 루터의 설교보다 히틀러의
설교에서 훨씬 더 강력한 감동과 흥분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을 보십시오.
20.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 3년 반동안 사역하셨습니다(요2:13, 요6:4, 요11:55).
세 번의 유월절/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근거
구절을 대라고 하면 막막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는
성경을 공부해서 안 지식이 아니라 주워 들은 지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한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주님이 이
땅에서 얼마나 사역했는지 금방알 수 있습니다. 3년
반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지상에서 3년
반동안 사역하실 것입니다(계13:5). [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을 모독하는 입을 주고 또 마흔 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이 기간을 대환란 기간이라고
합니다. 3년 반동안 지상의 유대인들은 전무후무한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21. 예수 그리스도의 수는 7입니다.
[내가 또 보니, 보라,
왕좌와 네 짐승의 한가운데와 장로들의 한가운데에
어린양께서 서 계시는데 전에 죽임을 당하신 것 같더라.
그분께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5:6,12).
하나님은 7진법으로 일하십니다. 인간은 십진법입니다. 틈을
내서 “성경의 수”에 나타난 주님의 계시를 공부할
것입니다.
적 그리스도의 수는 666입니다.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지각(知覺)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
까닭은 그것이 어떤 사람의 수이기 때문이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8). 6은 항상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수로서 7에 하나가 부족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금상을 세울 때, 높이가 육십 큐빗, 너비가 육 큐빗 짜리를
세웠습니다. 열왕기상 10:14에서 솔로몬이 해마다
각국으로부터 받았던 금이 육백육십육 달란트였습니다.
라틴어와 영어는 수에 값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I--1, V--5,
D--500, X--10, L--50, C--100입니다. 이 수 값을 가지고 이름을
찾아보면 값이 쉽게 나옵니다. 헬라어는 거의 모든 글자가
수 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α-1, β-2. γ- 3, ζ-4...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 글자들을 가지고 나온 수 값을 연구해
보면 적그리스도를 예표한 인물들의 이름은 666이었습니다.
22.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부를 사랑하십니다.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丹粧)한 것
같더라.](계21:1-2).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하는 신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고,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서 신랑되신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신부를 죽입니다.
[네가 본 열 뿔 곧 짐승
위에 있는 열 뿔이 음녀를 미워하여 황폐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며 그녀의 살을 먹고 그녀를 불로 태우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마음이 되게 하시고 그들의 왕국을 그 짐승에게 내어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들이 이루어지기까지 하셨음이라.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저 큰 도시니라,
하더라.](계17:16-18).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지상의
도시는 예루살렘입니다. 적그리스도와 관련된 지상의
도시는 로마입니다. 로마는 정치적으로 로마 제국을
이루었고, 종교적으로 로마 캐톨릭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23. 예수 그리스도는
흰말을 타십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타신 이는 신실하신 이,
참되신 이라 일컬음을 받나니 그분께서 의로 심판하며
전쟁을 하시더라.](계19:11).
적그리스도도 흰말을
탑니다(계6:2).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헷갈려
합니다. 흰말을 탔다는 사실로만 가지고 적그리스도를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고 왕관을 받으매 그가
나아가서 정복하고 또 정복하려 하더라](계6:2).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자세히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흰말을
탔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러나, 무기는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칼을 잡고 계십니다. 성경은 말씀의 칼, 성령의
칼, 하나님의 칼이란 말씀은 있어도 주님이 활을 잡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반면 마귀는 성도들을 공격할 때 “불화살”을
쏜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6:16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며
이것으로 능히 저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고]
곧바로 6:17에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같은
분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따르는 결과가
너무 다릅니다. 계시록 19:14에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고 말합니다. 반면 계시록 6:4-8에는 차례대로
붉은 말, 검은 말, 창백한 말이 뒤따릅니다. 이는 모두
재앙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특히 8절에는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지옥이 그와 함께 따라다니더라.]고
말합니다. 이 둘은 같아 보여도 결코 같지 않습니다. 계시록
19:12에 주님은 많은 왕관을 쓰고 계십니다. [그분의 눈은
불꽃같고 그분의 머리 위에는 많은 왕관이 있으며 또
그분께서 기록된 한 이름을 갖고 계시되 그분밖에는 그것을
아는 자가 없고] 반면 요한계시록 6:2에 나오는 흰 말
탄자는 왕관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마귀의
정체가 언뜻 보기에는 같아 보여도 자세히 성경의 조명을
받으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살펴 보겠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흰 말을 타고 계속 정복
전쟁을 벌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 오지
않습니다. [내가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고 왕관을 받으매 그가 나아가서 정복하고 또
정복하려 하더라.]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다스리기
위해서 오십니다. 예수님의 지상 재림의 목적은 왕으로서
통치하기 위해서입니다. 초림때는 섬기기 위해서 오셨지만
이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십니다.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칼이
나오니 그분께서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시고 친히 철장(鐵杖)으로
그들을 다스리시며 또 친히 전능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시리로다.](계19:15). 주님은 천년 동안 이
땅을 완전한 의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이상 저희는 예수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차이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지식을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 그분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인지, 아니면 적그리스도의 영에
이끌림을 받아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고 있지 않는지
잘 분별하고 힘써 의를 행하도록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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