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열왕기상 1-22장
요절: 열왕기상
열왕기 상,하도 사무엘기 상하와 마찬가지로 단권으로 되어 있었으나 후대에 나뉘어진 것입니다. 열왕기는 솔로몬의 등극으로 시작하여 왕국의 분열과 바빌론의 포로기로 끝납니다. 저자는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예레미야일 것이라고 합니다. 열왕기상은 솔로몬의 등장과 성전 건축, 그의 죽음과 왕국의 분열, 엘리야의 사역이 주 내용입니다. 1:1-2:11은 다윗의 죽음입니다. 2:12-11:43은 솔로몬의 통치입니다. 12:1-16:34은 왕국의 분열입니다. 17:1-22:53은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사역했던 엘리야의 활동을 다루고 있습니다1). 다윗이 고난받고, 배척받고, 외국으로 쫓겨다니는 등의 그리스도의 겸손과 지상 사역을 예표했다면 솔로몬은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는 평강의 왕이요, 영광의 왕으로서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추어 준 후에 죽었습니다.
열왕기는 역대기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 둘은 매우 같은 사건이라도 기술 방법이나 그 정밀도에서 차이가 많이 나며, 서로서로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두 왕국이 나누어진 이야기인지라 남왕국과 북왕국의 왕들이 서로 교차되는 시점, 대언자들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공부는 먼저 왕국의 역사적 개요를 먼저 살펴 본 후 본문 공부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열왕기상은 두 번에 나누어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페이지 참조>
1장입니다. 다윗 왕은 이제 나이가 늙어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1). 더 이상 국정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그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5). [이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자기 자신을 높이며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자기 앞에 달려갈 사람 오십 명을 예비하니라.](5). 압살롬에 이어 그의 동생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했을 때 군부의 실세인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지지하고 나섰습니다(7). 그러나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달의 아들 브나야와 나단과 다윗의 친위 부대들은 솔로몬을 지지했습니다(8). 다윗은 이미 솔로몬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것은 반역이었습니다. 다윗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압살롬과 그의 동생 아도니야는 차례대로 아버지 다윗을 반역했습니다. 징계없이 관대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재산과 지위를 차지하려는 탐심으로 길러준 부모들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다윗은 세 명의 충신이었던 제사장 사독과 브나야와 나단 대언자를 통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왕위를 계승하도록 명했습니다(38-39). 이 때 백성들은 솔로몬의 등극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40). 이 소식을 들은 반역자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49-50절, [아도니야와 함께 있던 손님들이 다 놀라서 일어나 각각 자기 길로 가니라. ¶ 아도니야도 솔로몬으로 인해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의 뿔을 잡으니] 악인들의 특징은 마음의 참된 회개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러 재빨리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에게 제단은 주님과의 친교 장소가 아니라 목숨을 구하기 위한 도피 장소가 되었습니다. “단의 뿔을 잡는 것이나, 경건한 외형이나, 신앙의 가식도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그분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의 복종이 위선적이라면 그들은 구제되지 못하고 멸망할 것입니다”(매튜헨리의 주석에서).
2장입니다. 1-11절은 솔로몬에게 준 다윗의 유훈입니다. 다윗은 정치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먼저 부탁했습니다(3-4). 3절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누구나 다 지켜야 할 첫 번째 책무입니다(신17:14-20). 동시에 신약의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우리는 다 왕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벧전2:9). 4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에게 주신 놀라운 약속입니다(삼하7:8-17). 다윗은 이외에도 몇 가지를 더 부탁했는데 요압을 제거할 것(5-6),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는 친절을 베풀 것(7), 시므이를 처단할 것(8-9)을 명령했습니다. 살아 생전 자신의 손으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아들 솔로몬의 손으로 이루게 했습니다. 목숨을 건졌던 아도니야는 다시 한번 반역을 꾀했습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부탁하여 다윗의 마지막 아내였던 수넴 여인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달라고 했습니다. 밧세바는 아무 것도 모르고 솔로몬에게 그것을 청했으나 솔로몬은 반역의 음모를 금방 알아채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자기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인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내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국도 구하옵소서. 심지어 그를 위하여 구할 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22). 아도니야와 제사장 아비아달, 요압이 모의해서 수넴 여인 아비삭을 구함으로 다시 한번 왕위 찬탈을 노렸지만 솔로몬은 차라리 왕국을 구하라는 말로 그들의 야심을 분쇄하고 그날 아도니아를 죽여 버렸습니다. 야심을 품은 격한 영혼들은 죽음을 자초합니다. 그리고, 제사장 아비아달은 직위해제하고, 요압을 처단했습니다.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면 악한 자들은 모두 그 악에 상응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시므이는 예루살렘에 연금을 한 후에 기드론 시내를 넘지 못하도록 했는데, 3년 후에 이를 어겼다가 죽었습니다.
3장입니다. 솔로몬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집트의 공주와 결혼했는데, 이는 지혜가 아니라 죄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는 후에 이방 여인들과 더 많은 결혼을 했습니다(11:1). 후에 이 일은 솔로몬 자신과 자신의 왕조를 급격히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할 정도의 영적 타락을 초래했습니다(왕상11:7,8). 배교는 작은 일에서 출발합니다. 세상과의 연합,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바로 신앙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후에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솔로몬을 범죄의 본으로 삼아 설교했습니다. 느헤미야 13:26, [또 이르기를, 전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많은 민족들 중에서 그와 비길 왕이 없었고 또 그는 자기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였느니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 풍습의 여인들이 그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였나니] 처음부터 배교를 결심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따르라는 아버지 다윗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여자와 결혼함으로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고 말았습니다. 신명기 7:3,4 [또 그들과 결혼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의 아들에게 주지 말며 네 아들을 위하여 그의 딸을 취하지 말지니라. 4 이는 그들이 네 아들을 돌이켜 그로 하여금 나를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주]의 분노가 너희를 향해 /불같이/ 타올라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출애굽기 34:16, [또 네가 네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취하므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따라 음행의 길로 가고 또 네 아들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들을 따라 음행의 길로 가게 할까 염려함이니라.] 그 외에 솔로몬의 출발은 매우 좋았습니다. 주를 사랑했고, 다윗의 법규 안에서 걸었습니다. 기브온의 산당에서 번제 헌물 천개를 드렸습니다(4). 주님은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할 지 너는 구하라](5)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주님은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민수기 12:6,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내 말들을 들으라. 너희 가운데 대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12:6). 주님은 솔로몬에게는 꿈으로 말씀하셨습니다(9:2). 솔로몬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깨닫는 마음을 구했습니다(9). 주님은 이를 매우 기뻐하시고 지혜와 깨닫는 마음을 주셨을 뿐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 않는 재물과 명예도 주셨습니다(12-13). 우리는 여기서 올바른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깊이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과 야고보의 요청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막10:36).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께서 영광 중에 계실 때에 우리를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막10:37-38). 그들은 지혜와 명철을 구하는 대신 영예를 구했습니다. 마가복음 10:5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 그 눈먼 사람이 이르되, {주}여, 시력을 받게 해 주옵소서, 하매] 소경은 시력을 구했습니다. 솔로몬은 막강한 권력을 구하는 대신 지혜와 명철을 구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솔로몬의 요구를 들어 주시면서 다시 한번 솔로몬이 성공 비결을 가르쳐 remind 시키셨습니다. 14절, [또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걸은 것같이 내 길로 걸으며 내 법규와 내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네 날들을 길게 하리라, 하시니라.] 15-28절은 유명한 재판입니다. 한 아이를 두고 누가 어머니인가를 가리는 이 일에 솔로몬은 유전자 감식이나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의 도움 없이 칼 한 자루로 간단히 해결했습니다. 이는 매우 간단한 재판이지만 그에게서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는 명 재판이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보다 더 크신 이를 모시고, 필요할 때마다 그분에게 나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마태복음 12:42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4장입니다. 1-6절은 솔로몬 왕조의 고위 관료들의 이름입니다. 솔로몬은 이전의 지파별로 나눠 먹기식 관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기용하여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금 제도를 개선하여 국가를 튼튼히 했고, 이웃 나라들을 굴복시켜 조공을 받았고 역사상 이스라엘의 가장 영화로운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유다와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였으며](20). 물질적 풍요가 영적 풍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의 율법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이들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성경 교육을 강화하지 않음으로 번영은 곧 타락과 몰락으로 이어질 징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번영의 때에 주님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영적 풍요가 있고 물질적 풍요가 뒤따른다면 좋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요셉, 욥같은 인물들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물질적 풍요만 있고 영적 풍요가 없다면 곤란합니다. 롯과 나발, 어리석은 부자처럼 됩니다. 29-34절은 솔로몬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지혜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 주는데, 삼천개의 잠언을 말하였고, 천 다섯편의 노래를 지었고, 동물, 식물, 조류, 곤충, 어류 등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온 사방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이는 장차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스릴 때 있게될 모습을 예표해 줍니다.
5장입니다. 드디어 솔로몬 성전의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죽기 전에 성전을 지을 설계도와 재원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주의 성전은 인간의 건축 기술이나 설계자의 구상에서 나온 성전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다윗에게 설계도를 주사 기록하셨던 것입니다(대상29:12,19). 두로의 히람 왕이 이 일을 적극 도왔는데 레바논의 백향목과 전나무, 능숙한 일꾼들을 보내 주고, 대신 양식을 받았습니다. 성전 건축은 엄청난 사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일꾼이 삼 만명이었고 이들이 번갈아 레바논으로 가서 벌목을 했고, 짐나르는 자는 15만명이 동원되었는데 가나안 족속들을 동원했습니다(9:22). 히람에서 온 일꾼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재원을 조달해야 했습니다. 이는 성전 건축이 유대인들의 단독 공사가 아니란 것입니다. 이는 신약의 지역 교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의 구성원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모든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6-7장입니다. 성전은 7년만에 완성되었지만(6:38) 기타 부대 시설까지 다 짓는데 20년이란 기간이 걸렸습니다(7:1). 물론 주님은 사람이 만든 성전에는 거하시지 않으시지만 솔로몬의 성전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었습니다. 성막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낮아지심을 보여 준다면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을 보여 줍니다. 성막이 성도의 순례자의 삶을 예표하는 것이라면 성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시작될 영광스런 다스림을 예표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성전을 너무나 과신하였던 나머지 주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더 믿었습니다. 지은지 500년이 지나지 않아 이 성전은 완전히 부숴지고, 성전의 기물들, 보물들도 다 빼앗겨 바빌론으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6:11-13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보다 해야할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건축하고 있는 이 집으로 말하건대 만일 네가 내 법규 안에서 걷고 내 법도를 집행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 그 안에서 걸으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행할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11-13).
8장입니다. 언약궤를 성전 안으로 들여 올 때 주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후에 에스겔은 주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겔8-11). [그때에 [주]의 영광이 그 집의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서니](겔10:18). 솔로몬은 백성들을 축복하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시란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22-30은 가족들을 대신해서, 31-40은 범죄한 자들을 대신해서, 41-43은 이방인들을 대신해서, 44-53절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를 대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는 이스라엘 역사의 미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성전은 주님의 이름을 두는 곳으로 이곳을 향해 기도할 때 주님께서 들어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30). 특히 범죄함으로 징계를 받거나, 적으로부터 패배를 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가거나, 비가 오지 않거나, 땅이 황폐해지거나, 남의 나라에 종살이를 하더라도 주님을 기억하고 이곳을 향해 기도하면 용서하시고,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후에 바빌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 다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솔로몬은 54절까지 긴 기도를 올린 후에 백성들에게 권면하였습니다. 61절 [그런즉 너희 마음을 [주] 우리 하나님과 합하여 완전하게 하고 이 날과 같이 그분의 법규 안에서 걸으며 그분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솔로몬의 기도에는 특별히 이방인들을 향한 기도가 있었습니다(41-43,60). 이는 주님이 온 세상의 구주요, 하나님이 되실 것이란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성막에서 거하셨습니다(출40:34).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에 거하셨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영광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셨습니다(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성전입니다(고전6:19-20,3:16).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환란 시대 때에 성전은 재건되어 적그리스도가 사람들의 경배를 요구할 것입니다(살후2:1-12). 천년 왕국 때 재건된 에스겔의 성전에서 주님이 천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겔40-48).
9장입니다. 주님은 두 번째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전을 다 건축하고 봉헌한 후에 주님은 솔로몬이 한 모든 기도를 들으셨음을 말씀하면서 다윗의 언약이 어떻게 유효할 수 있는지를 말슴해 주셨습니다. 4-5절은 솔로몬이 다윗이 한 대로 흠없이 올바르게 행하고, 주님 앞에서 걷고, 율법을 지키고 준행하면 왕좌는 영원할 것이지만 백성들이 다른 신들을 따르면 백성들을 끊어 버릴 뿐만 아니라 방금 건축한 성전도 던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9). 그리고,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문제는 성전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성전 건축후 솔로몬은 이방 왕들과 위험스런 동맹을 계속 맺었습니다. 히람 왕에게 차관을 제공받기 위해 20개의 도시를 담보로 잡혔고(10-14), 이집트의 공주와 결혼하여 그녀를 위해 여러 도시들과 집을 건축하느라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파라오의 딸과 결혼하는 것은 율법을 정면으로 거스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대언자는 말하기를, [화 있을진저, 도움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이여!...](사31:1)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그는 후대에 나쁜 본을 남겼습니다.
10장입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은 멀리 아라비아까지 해상 무역을 했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보고자 하여 멀리서 보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녀는 마음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을 질문했는데 솔로몬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과 집들, 부리는 종들을 보고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기사를 신약에 그대로 인용하시며 유대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마12:42).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하여 막대한 비용을 들고 먼 길을 찾아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자기들 가운데 있지만 오히려 배척하고 있으니 후에 스바의 여왕이 그들을 책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스바의 여왕이 기울인 절반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묻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성경을 찾아 읽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 후에 스바의 여왕이 정죄할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예물을 가지고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그를 보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구하는 것마저도 귀찮아서 팽개친 채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면 전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참고로 10:7과 23절을 유념해서 보십시오. 7절은 “솔로몬의 지혜와 번영”이 23절에서 “부와 지혜”로 순서가 바뀝니다. 솔로몬은 점차 영적인 것이 쇠퇴하고, 물질적인 것이 앞서기 시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타락의 전조를 알리는 말입니다.
11장은 솔로몬의 급격한 타락을 다룹니다. 그는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뿐만 아니라 주께서 특별히 금하신 족속들의 딸과 결혼했습니다(1). 2절에는 주님께서 이들에게 들어가지도 말고, 이들이 나오지도 말게 하라는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이제 영적에서 물질적으로 쇠퇴한 후에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왕비 칠백에 후궁이 삼백명이었는데, 결국 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려 놓았습니다(3). 이 사람이 과연 잠언 5:20을 기록한 사람이 맞을까 싶습니다. [내 아들아, 어찌하여 네가 낯선 여자로 인하여 기뻐하며 낯선 여자의 가슴을 껴안으려 하겠느냐?](잠5:20). 솔로몬의 마음은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호세아10:2 [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 이제 그들이 잘못한 자로 드러나리라. 그분께서 그들의 제단들을 파괴하시고 그들의 형상들을 못쓰게 하시리니](Their heart is divided; now shall they be found faulty:...). 한편으로는 주님을 따르지만 육신으로는 이방 여인들을 따라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주님은 솔로몬을 돌이키시기 위해 이 일에 대해 말씀하셨음에도 솔로몬은 듣지 않았습니다(10). 11-13절은 경고입니다. 솔로몬의 왕국을 찢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14-22절은 에돔의 대적입니다. 23-25절은 르손의 대적입니다. 26-43절은 여로보암의 대적입니다. 여로보암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10지파의 왕으로 삼으셔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됩니다. 솔로몬이 주님께 밀착했다면 그의 끝은 더욱 찬란한 영광을 누렸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40년간 통치하고 아들 르호보암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나 이미 국운이 쇠퇴한 상태였습니다. 잠언 14:34, [의는 한 민족을 높이거니와 죄는 어느 백성에게나 수치거리가 되느니라.]
12장입니다.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 백성들의 세금과 노역을 감해 주어야 했습니다. 북쪽 10개 지파는 그것을 조건으로 왕을 섬기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4). 그러나 그는 어리석게도 노인들의 조언을 듣지 않고(6-7), 자기 세대의 청년들의 조언을 들었습니다(10-11). 주님을 섬긴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옛길을 떠나지 말고 그 길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 길로 걷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며](렘6:16). [내 백성이 나를 잊어버렸으므로 헛된 것에게 분향하였으며 이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옛 길을 떠나 그들의 길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고 길들 곧 닦지 아니한 길로 다니게 하였느니라.](렘8:18). 르호보암은 왕으로서 백성을 섬기는 길을 선택하는대신 그들을 완전히 지배하려는데만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북왕국 10개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아 남 왕국과 아직까지 단절되어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스라엘은 하나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된 후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그는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단과 벧엘에 두고 그것을 숭배하고(29,30), 레위 지파가 아닌 가장 천한 자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31).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에 배교의 철로를 깔아 두었고, 그 이후의 왕들은 그 위를 질주했습니다.
13장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여로보암이 분향을 드릴 때,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을 보냈습니다.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은 요시야의 탄생과 그의 개혁에 대해 이미 예언하였습니다(왕하23:16-17).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제단이 갈라지고, 그 위에 재가 쏟아지는 표적을 보여 주었습니다(3). 여로보암은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라고 명령했으나 내민 손이 말라서 다시 거두어 드리지 못했습니다(4). 죄인들은 언제나 회개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는 표적을 본 후에야 “이제 주 곧 네 하나님의 얼굴에게 은혜를 간구하고...”그는 하나님께 분향을 드린다고 왔지만 막상 일이 터지자 자기의 하나님이 아니라 “네 하나님”이라고 밖에 말하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이 분향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일을 마친 후 거기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곧 바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권면을 단호히 물리치고 길을 떠났으나 상수리 나무 아래 앉아 있다가(14), 벧엘의 늙은 대언자의 속임수로 인해 다시 들어가 빵을 먹고 물을 마셨습니다(19). 이 일로 인해 그는 사자에게 뜯겨 죽었습니다(24). 그는 같은 하나님의 대언자에게 속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자도 틀리지 않게 줄줄 외우고 있었지만 자신이 받은 말씀과 정반대의 말씀을 듣고도 의심하지 않고 들어간 것은 그의 마음 속에 ‘먹고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가던 길을 급히 가지 않고 상수리 나무 아래 앉아 있었던 것 자체가 누군가 자기를 발견하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에 우상을 둔 채로 주님께 나아 올 때 언제든지 속을 수 있다는 성경적 진리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가 주는 교훈은 “다른 사람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말한 것을 믿으라.”입니다. 성경의 어떤 진리가 다른 진리를 파괴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14-16장입니다. 회개하지 않는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징계로 아들이 병들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아내를 변장시켜서 전에 자기에게 왕이 되리라고 예언했던 아히야에게 보내셨습니다. 아히야는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그에게 죄를 지적하고 엄중한 경고를 주었습니다(5-16).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은 평생동안 전쟁을 했지만 둘다 주님을 떠나 배교한 점은 똑 같았습니다. 르호보암은 산당들과 작은 숲들과 형상들을 두었고, 남색하는 자들을 둠으로 이방 족속들의 풍습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주님은 이집트의 시삭을 들어서 예루살렘을 치셨고,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들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26).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었으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3년을 통치하다가 죽었습니다(5:33). 아비얌의 뒤를 이어 아사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아버지와 달리 일련의 종교적 개혁 조치를 취했는데 조상들이 만든 우상들, 형상들,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할머니이자 왕비인 마아가가 만든 우상을 불태워 기드론 시냇가에 뿌리고, 그녀를 왕비에서 쫓아 내었습니다(13)2). 그러나 말년은 초기처럼 그렇게 믿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북왕국의 바아사와 싸우느라 성전의 보고와 왕궁의 보고에 있는 모든 금은을 모아다 시리아 왕 벤하닷에게 주어 북 왕국과 시리아가 맺은 동맹을 파기하도록 했습니다(18-19). 말년에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퇴보는 국가 운영 면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소한 병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연결되었습니다. 아사는 늙어 발에 병이 들었습니다(23). 결국 이 병으로 죽게 되는데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사가 자기의 통치 제삼십구년에 발이 병들어 그 병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주]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16:12). 때로 현실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믿음을 버렸다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합니다. 그는 영적인 믿음보다 현실적으로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고, 기도보다는 현실적으로 의사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주께 구하고 외교 채널을 가동하든지 주께 구하고 의사를 찾는 것이 성도들이 해야 할 자세입니다. 아사가 죽자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 역시 아버지를 따라 주님을 잘 섬기고, 훌륭한 정치를 폈습니다. 역대기하 22:9에 [그는 온 마음으로 [주]를 구하던 여호사밧]이라고 기록합니다. 이 때 북왕국은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여로보암이 죽은 후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으나 2년밖에 통치를 못하고 바아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15:28). 그는 24년간 통치를 하였고 아들 엘라에게 물려 주었으나 엘라는 2년밖에 통치를 못하고 병거 대장 시므리에게 타살되었습니다. 시므리는 왕이된지 7일만에 왕을 죽인 것이 발각되어(16:9) 백성들은 군대대장 오므리를 왕으로 삼아 버렸습니다(16:16). 이 때 북왕국은 다시 둘로 나뉘어져 오므리파와 디브니파가 있었습니다(16:21). 병권을 쥔 오므리파가 디브니파를 이겨 오므리가 12년을 다스렸고, 아들 아합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악을 행한 왕들이었는데 아합은 배교의 절정기를 구가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시돈 사람 옛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바알을 섬기고, 바알을 위해 제단을 만들었습니다(1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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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야의 사역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17:1-22:52까지 6개월에 걸쳐 강의한 강해 설교 tape을 참고할 것.
2) 마아가란 여인은 르호보암의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 가운데 가장 사랑을 받았습니다(대하 11:21). 덕분에 마아가의 아들 아비얌은 장자가 아니었지만 왕의 총애를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대하11:22). 그리고, 마아가는 왕의 어머니로서 왕비(queen)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왕비 마아가는 우상 숭배자요, 작은 숲을 섬기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아사의 할머니라고 기록하지 않고, 어머니라고 기록한 것은 성경에서 할아버지란 표현이 한번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할머니란 표현은 디모데후서 1:5에 디모데의 외할머니 로이스가 유일무이합니다. 이 경우도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란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에 할머니란 표현이 사용되었지 일반적으로 모두 어머니로 통일됩니다. 성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 증고조...구분없이 모두 아버지라 부르며, 모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에 질문한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왕상15:2)"와 "압살롬의 딸 마아가(대하11:20)", ==>여기서 아비살롬과 압살롬은 동일 인물임이 절로 나옵니다. "압살롬의 딸 마아가(대하11:20)",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 미가야(대하13:2)"는 성경을 유념해서 보시면 됩니다. 대하 13:2에 also(- 도)란 표현에 유의하십시오. 압살롬은 마아가의 아버지이고, 우리엘은 마아가의 어머니입니다. 성경을 그대로 비교하면 절로 답이 나옵니다. 아사의 친 어머니를 기록하는 대신 할머니인 마아가를 기록한 것은 그녀가 르호보암의 처요, 친 아버지인 아비야의 친모 즉 친할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숲을 숭배했을 때 여지없이 몰아냈고, 왕비직을 박탈한 그의 개혁적인 신앙 회복 운동을 기술하기 위한 것입니다. 왕상 15:12-13절을 연속해서 읽을 때,- <이것을 흔히 문맥적 이해라고 합니다.>- 12절에서는 his fathers(그의 조상들이라고 번역했으나 그의 아버지들이며, 실은 그의 아버지 아비야, 할아버지 르호보암, 증조 할아버지인 솔로몬까지를 포함한다), 13절에는 also Maachah his mother(또한 자기 어머니)라고 말함으로써 얼마든지 할머니가 될 수 있음을 분명한 대비를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his mothers(복수형)라고 했다면 우상 숭배에 동참한 왕비를 포함한 여러 여자들(후궁들)을 몰아냈겠지만 마아가란 여인이 queen이었고, 우상 숭배자였기에 그녀를 몰아 낸 것을 기술한 것입니다. 이것은 난해 구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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