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무엘하 1-24장
요절: 사무엘하 7:12,13
사무엘기하는 다윗의 자서전격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왕의 인생 역정, 신앙 문제, 가정 문제 등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은 정치적 중심지(삼하5:6-12)요, 종교적 중심지(삼하 5:7,6:1-17)로 등장합니다. 또한 주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세우심으로 이스라엘 위에 세워질 왕국에 관련된 모든 계시의 기초가 마련됩니다(삼7:8-17). 이스라엘은 메시아 왕국을 다윗의 왕국으로 인식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국에 대한 언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의 전체적인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1-4장은 유다의 왕 다윗입니다. 5-10장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입니다. 11-20장은 다윗의 죄의 징계입니다. 21-24장은 부록입니다.
1장입니다. 1장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한 아말렉 족속이 다윗에게 그의 죽음을 상세히 보고했는데 이는 사무엘상 31:1-6에 사울이 칼로 자살한 내용과 약간 달라 보입니다. 이는 오랫동안 성경의 모순처럼 여겨져 온 구절입니다. 사울은 처음에 적들이 손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는 자기 병기를 든 자에게 칼로 자기를 찔러 죽일 것을 명하였으나 그는 머뭇거리며 순종하지 않자 사울이 직접 칼에 쓰러져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이 때 그는 완전히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었는데, 그의 종은 옆에서 같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아말렉 족속의 한 청년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숨을 완전히 끊어 줄 것을 부탁하자 그는 지체없이 죽어 가는 사울의 숨을 끊었습니다. 그 내용이 10절입니다. [그가 쓰러진 뒤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확신하고 그 위에 서서 그를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팔찌를 벗겨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10). 사울이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할례받지 않는 자들이 자신을 찌르고 능욕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삼상31:4). 그러나, 결국 최후의 순간은 염려하던대로 아말렉 족속에게 죽음으로써 그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전에 아말렉 족속을 남김없이 진멸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칼로 베어야 할 적을 살려두면 자신이 그 적에게 칼로 베임을 당합니다(신25:17-19). 원수나 다름없는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금식하며 울었습니다(12,17). 이는 잠언 24: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기뻐하지 말며 그가 걸려넘어질 때에 마음으로 즐거워하지 말지니]란 말씀대로 입니다. 17-27절은 사울과 요난단을 위한 시입니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해 이교도들이 기뻐할까 염려했습니다(20). 그는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쓰러진 것에 대해 슬픔과 강력한 자가 쓰러진 것에 대해 애곡했습니다(19,25,27). 사울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이나 더 큰 사람이었으나 원수들보다 더 낮게 쓰러졌습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그런즉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고전10:12).
2장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이 갈 길을 물었습니다(1-2). 주님은 다윗을 헤브론으로 가도록 하셨고, 그는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4).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자연스럽게 피흘림없이 이스라엘 전 지파의 왕이 되고 싶었겠지만 그의 부하들, 참모들은 이미 다윗이 전권을 장악하도록 음모와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뒤를 이어 전 지파의 왕이 되는데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됩니다. 사울의 군대 대장이었던 아브넬은 즉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았습니다(8). 아브넬은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삼으신 것(3:12)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스보셋을 왕(3:17)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 인격적으로, 삶의 전영역에서 왕으로 인정하면서도 일부분은 자신이 세운 왕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의 신하들과 사울의 신하들은 오랫동안 전쟁을 했는데, 이는 내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첫 전쟁이 2:14-17입니다. 각기 12명씩 경기를 하자고 하면서 서로 찔러 죽였습니다. 이 날 싸움에서 다윗의 용사들은 열아홉 명이 죽었고 그 중에는 아사헬도 죽었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은 삼백 육십명이 죽었습니다(30-31). 18절에 스루야의 아들 셋은 막강한 권세를 지닌 형제들이었고, 다윗조차 함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이들로 인해 강력한 왕권을 취하지 못했습니다(3:29). 특히 요압은 다윗의 뜻을 거슬러 자기 마음대로 아브넬을 죽이고, 압살롬을 죽이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습니다.
3장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은 계속 전쟁을 벌였습니다(3:1). 전쟁의 때에는 군인들의 힘이 강하게 마련입니다. 특히 사울의 집에서는 이스보셋 왕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아브넬이 실권자였는데(6), 그는 평화롭게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넘겨 줌으로 모든 전쟁을 종식하고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동맹을 맺었습니다(12-13, 21). 그러나, 요압은 즉시 다윗에게 항의하며 사자들을 보내 아브넬을 돌아오게 하여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27). 이 일은 다윗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4장입니다. 아브넬이 죽자 이스보셋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근심하기 시작했습니다(1). 피를 흘리지 않고 다윗 왕국으로 흡수되는 것이 최상의 길이었는데, 협상의 대상자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무리의 대장으로 있던 바아나와 레갑이 이스보셋 왕의 머리를 베어 다윗에게로 달려갔습니다(6,7). 이들은 상을 받으려고 했겠지만 다윗은 사울의 집에 해를 입힌 사람들은 누구나 다 처단하였습니다(11). 다윗이 보좌를 차지하는 길은 계속해서 피흘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 보좌를 차지하는 것과 얼마나 대조되는지 보십시오. 다윗이 흘린 피는 결국 그가 성전을 짓지 못하는 원인이 됩니다. 역대기상 22:8,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큰 싸움을 많이 하였느니라. 네가 내 눈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22:8).
5장입니다. 7년반 동안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을 지내고 이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3). 다윗은 성급하게 통일 왕국의 왕이 되기 위해 반군을 진압하는 일이나, 땅을 정복하는 일없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여 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는 33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고 총 40년간 재위하였습니다. 이제 통일 왕국의 수도가 필요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습니다(6). 당시 예루살렘에는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다윗 군대가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네가 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를 없애지 아니하면 여기로 들어오지 못하리라.](6)고 말했습니다. 이는 상대를 깔보는 모욕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즉시 이들을 쳤고, 도시를 건축하여 다윗의 도시라 명명하였습니다. 두로 왕 시람은 석공과 목수를 보내어 다윗을 도왔는데 이들의 우호관계는 솔로몬 때까지 계속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즉시 다윗을 공격하러 왔으나 두 차례에 걸쳐 패했습니다. 다윗은 전쟁 때마다 주님께 물었습니다(19,23). 이는 주님의 인도를 받는 길만이 승리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는 다른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난번의 경험에만 의지하지 말고, 매 순간 주님께 물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다윗이 주님의 뜻대로 국가를 건설하려 할 때 즉시 공격을 가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들은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려 할 때,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려고 결단할 때 공격해 옵니다. 다윗은 왕좌에 앉는 그 순간까지 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었고, 세월을 소요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차례도 사울을 향해 음모를 꾸미거나 싸움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복을 맹세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뜻대로 높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주님은 그의 믿음을 세우셨습니다.
6장입니다. 이 장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역대기상 13,15,16장을 함께 읽으셔야 합니다. 거기에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는](대상15:1) 언약궤를 옮겨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무려 80년 동안 기럇야림에 있었습니다(삼상6:21-7:2). 다윗은 선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주의 언약궤를 옮기려 했으나 방법론에서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약궤를 수레에 실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언약궤는 레위 지파의 사람들이 어깨에 매어서 옮기도록 되어 있습니다(민3:27-31, 4:15, 7:9, 10:21). 블렛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수레에다 실어서 보냈다고 이스라엘 사람들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결코 같이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진리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세상과 일치하거나, 그들과 동화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 같아지고자 왕을 구한 것이 죄이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제도, 세상의 방법을 따르는 것은 죄입니다. 다윗은 전쟁에 앞서서는 그렇게도 주님께 잘 물었지만 정작 언약궤를 옮기는 문제에서는 주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주님을 섬기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상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런 잘못을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수레에 싣고 오던 언약궤는 소들이 움직이는 통에 떨어질 뻔했습니다. 웃사는 급히 언약궤를 손으로 잡았습니다. 물론 그는 레위 지파가 아니었습니다(민4:15). 하나님은 즉시 그를 치셨으므로 그는 즉사했습니다. 말씀에서 빗나간 한 가지 잘못은 계속해서 비극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과 핑계를 앞세워 하나님께 묻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결코 변명의 대상이나 합리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경고를 줍니다. 11-19절은 다윗의 찬양입니다. 3개월 동안 오벳에돔의 집에 두었던 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오벳에돔의 집은 크게 복을 받았습니다. 이 복을 온 이스라엘에게 임하게하고 싶은 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그는 지난 3개월 동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동안 게을리했던 주의 율법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묵상하는 일에 전념했음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주의 궤를 메었습니다. 다윗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췄는데(14), 미갈은 그것을 멸시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아내 미갈이 아니라 사울의 딸 미갈로 언급됩니다. 이는 미갈이 다윗과 부부로서 다윗의 품성과 신앙을 따른 것이 아니라 사울의 딸로서 아버지 사울의 품성과 신앙을 따르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성도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언급될지 아담의 아들로서 언급될지 주의해야 합니다. 다윗은 아내 미갈의 악평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해 미갈을 심판하셨는데, 그녀에게 평생 자식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7장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셨듯이, 다윗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3).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것을 허락하시지 않고,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었기 때문에,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예표합니다. 4-17절은 다윗의 언약입니다. 11절,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이것은 다윗 왕조에 관한 말씀입니다. 12절은 “영원한 왕국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는 메시야 왕국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들이 잘못하면 벌을 주되 왕좌를 빼앗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다윗의 아들들은 많은 징계를 받았지만 사울처럼 왕조가 빼앗기지는 않았습니다. 16절은 “영원히 세울 왕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왕국입니다. 바빌론 포로를 통해 다윗의 후손에게서 왕은 일시적으로 끊어졌지만 다윗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다윗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8장입니다. 언약을 받은 다윗은 주위의 족속들을 차례대로 쳐서 강력한 왕정 국가를 건설합니다. 1-2절은 블레셋과 모압을 3-8을 르홉의 아들 소바 왕을 12-13절은 에돔을 쳤으며, 더불어 하맛 왕을 전쟁없이 굴복시켰습니다(9-11). 다윗은 어떻게 통치를 했습니까? 15절입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며 자기의 온 백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더라.](15). 다윗의 아들들은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되었습니다(18b). 이는 앞으로 주님이 이 땅을 어떻게 통치하실지, 그의 아들된 성도들이 어떤 지위를 누리게 될지를 예표적으로 보여 줍니다.
9장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에서 남은 자를 찾았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6-8)을 찾아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유모가 안고 도망을 하다 떨어져 두 다리를 다 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원수 집안의 아들로서 완전히 패망한 집안의 자손입니다. 그는 아무 힘도 지위도, 명예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은 개로 여겼습니다(8). 이는 저희들이 처음에는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으나 범죄하여 버림받은 아담의 후손의 처지와 같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와 저주 아래 있는 것처럼 므비보셋은 사울의 집안에 태어나 그렇게 되었습니다. 므비보셋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것처럼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걸을 수 없습니다. 므비보셋은 로드발에 있었는데, 로드발은 목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죄인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굶주림과 갈증을 채워 줄 목장이 없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다윗의 도움으로 인해 므비보셋은 그의 가문은 완전히 회복되었고, 사울의 집에 속한 모든 것들을 그에게 다시 주었으며, 사울의 종 시바를 불러 그로 하여금 그 집을 봉양하도록 명령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는 왕자들 가운데 하나처럼 다윗의 상에서 식사를 했습니다(11,13).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먼저 므비보셋을 찾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이 먼저 죄인들을 찾습니다(눅19:10). 므비보셋은 요나단으로 인해 그를 높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우리를 높이십니다. 죄인들이 용서받고, 사랑받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친절을 베풀었습니다(3).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정의의 보좌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였습니다. 다윗은 그를 개인적으로 불렀고, 종을 보내서 데려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겸손히 다윗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죄인들을 부르시며, 설교자나 전도자를 보내십니다. 그 말을 듣고 오는 자들은 누구나 영접해 주십니다. 6절에서 다윗은 ‘므비보셋이여’라고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주님은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요10:3). 다윗은 므비보셋을 자기 아들처럼 대우했고, 자기 집에서 생활하도록 했습니다(11). 그는 종이 되기를 원했지만 다윗은 아들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이 되기에도 부족한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요일3:1, 요1:11-1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3:1a). 다윗은 그에게 화평을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7). 주님은 성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유업을 다 회복해 주었습니다(9-10).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며(빌4:6,19), 우리에게 유업을 주십니다(롬8:17). 이외에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교훈들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구원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풍요롭습니다.
10-11장은 다윗이 범한 큰 죄입니다. 다윗은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이 되자 그와 친선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자 조문객 사신을 보냈습니다. 이 일은 다윗이 주께 묻지 않고, 마음대로 한 결과입니다. 암몬은 즉시 다윗의 호의를 거절하고 사신들의 수염을 절반을 깎고, 의복 한 가운데를 잘라 볼기까지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11장입니다. 전쟁은 막바지로 치달아 암몬을 멸하고 랍바를 포위한 상태였는데, 다윗은 예루살렘 궁에서 낮잠을 즐기다 저녁때에 일어나 왕궁의 지붕 위를 거닐었습니다(1-2). 전장에 있어야 할 다윗이 궁에 머물었고, 전시에 낮잠을 잘 만큼 그는 아무런 근심과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 목욕하는 밧새바라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눈을 통해 다음은 마음, 다음은 의지로 죄는 빠르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는 깨어 기도하는 대신 완전히 자신을 죄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우연히 본 것은 죄가 아닙니다. 유혹을 받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그 순간에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또 그녀가 우리야의 아내란 보고를 통해 단호하게 죄를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야는 가장 용맹한 용사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23:39). 다윗의 낮잠과 우리야의 절제를 비교해 보십시오. 그는 집에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요압의 군사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죄는 계속 자라납니다. 다윗은 죄를 범한 후에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애를 썼는데, 결국 우리야를 전쟁터에 몰아 죽도록 살인 교사를 했습니다. 정욕에서 간음으로 다음은 살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우리야가 죽자 밧세바를 데려다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주의 종이 범한 죄는 심한 징계가 뒤따릅니다(고전5:1-5, 11:30-32, 히12:3-11).
12장입니다. 주님은 나단 대언자를 통해 다윗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7절, [왕이 바로 그 사람이라.](7). 다윗은 사람들로부터 자기 죄를 숨기는데 성공했지만 하나님은 대언자를 통해 그의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다윗은 즉시 회개했습니다. 13절, [내가 주께 범죄하였노라.](13). 다윗은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시편 32, 51편은 이 죄에 대한 회개의 시입니다. 주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지만 징계는 회수하지 않으셨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일주일만에 죽었고(14), 칼이 다윗의 집에서 떠나지 않습니다(10). 다윗의 은밀히 행한 죄는 공개적으로 되갚음을 받았습니다(11-12). 이후로 다윗은 평안을 몰랐습니다. 성도가 죄를 범하면 약해집니다. 신체적으로 질병을 앓을 수 있습니다. 증거의 능력을 잃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성령의 능력이 사라집니다. 아들을 잃은 후 하나님은 다윗에게 솔로몬이란 아들을 주셨습니다(24). 이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은 이제 직접 전쟁에 나가 왕들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26-31).
13장입니다. 다윗에게는 아내들이 너무 많았고, 거기에 딸린 자식들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 암몬이란 자식이 누이 다말을 강제로 욕보이고 그녀를 미워했습니다. 이는 레위기 18:9의 계명을 정면으로 어긴 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을 징계하거나 처리하지 않음으로 비극은 더 커졌습니다. 압살롬이 그를 죽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두 다윗의 범죄에 기인한 것입니다. 압살롬은 암논을 죽인 후에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14장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좋아했습니다. 이 점을 간파한 요압은 꾀를 내어 압살롬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압살롬은 완전히 용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그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을 통해 아버지 다윗 왕과 대면하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들은 무엇이든지 자기 뜻대로 행하는 무법자들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요압이 후에 압살롬을 잔인하게 죽이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15장입니다. 압살롬은 반역을 꾀했습니다. 6절,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온 이스라엘에게 압살롬이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니라.](6). 그는 먼저 백성들의 민심을 얻은 후에 헤브론으로 가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헤브론으로 간 이유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겼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을 이용하기가 가장 좋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즉시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떠나면서 후궁 열명을 궁에 남겨 두었습니다(16). 다윗은 이 모든 것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25-26). 다윗에게 위협적인 것은 자기의 참모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간 것입니다. 그는 천재적인 지략가였습니다. 그는 즉시 하나님께 아히도벨의 계략을 어리석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31). 머리는 누구를 위해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다윗이 피난을 가는 중에 그들과 함께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윗이 영화를 누릴 때 뿐 아니라 위급할 때도 함께 한 다윗의 진정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도망 다니는 다윗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충성함으로 그분의 참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6장입니다. 다윗의 명을 받아 므비보셋의 종으로 섬기던 시바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므비보셋을 밀어내고 자신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환심을 산후에 므비보셋에 대해 거짓말을 했습니다(3). 다윗은 성급하게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모든 것들을 시바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후에 므비보셋을 만난 다윗은 이것이 잘못된 줄로 알았습니다(19:24-30). 그래서, 땅을 반반씩 나누어 가지도록 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들려오는 시기와 음모, 거짓과 배신은 누구나 지혜롭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들려오는 적절치 못한 모든 말을 잘 구분해서 들을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5-14절은 시므이가 쫓아다니며 다윗을 저주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사울 왕조에서 다윗 왕조로 넘어간 것을 못마땅해하는 잠재적인 불만 세력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다윗에게 용서를 구합니다(19:16-23). 20-23절은 아히도벨에 악한 계략을 내어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에게 들어가도록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과 압살롬이 완전히 멀어졌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도록 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나단 대언자를 통해 말씀한 그의 범죄로 인한 보응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의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제갈공명을 능가했습니다(23).
17장입니다. 반란이 성공하기 위해서 아히도벨의 계략과 후세의 계략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압살롬은 후세의 계략을 선택함으로 그의 반란은 실패했습니다. 아히도벨은 오직 다윗 왕 하나만 죽이고, 백성들은 그대로 두자는 것이었고, 후세는 초토화 작전으로 나가자는 계략을 내었습니다. 분명히 아히도벨의 계략이 나았지만 압살롬은 자신의 위용을 뽐내고자 하는 허영심으로 백성들을 모두 죽이자는 후새의 계략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허영심은 언제나 바른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이 일에 주님은 친히 개입하셨습니다(14). 사람의 계획은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설 수 없습니다.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만이 서리라.] 아히도벨은 이 작전이 선택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살했습니다(23). 다윗은 요단강을 넘어 도망했습니다.
18장입니다. 다윗은 전열을 갖추어 요압, 아비새, 잇대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군대를 1/3씩 배분하여, 반란군을 진압하도록 했는데, 특별히 압살롬은 죽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에브라임에서 싸운 이 전쟁에서 압살롬의 군대는 대패했고, 압살롬은 그의 머리가 상수리에 걸려 나무에 메달렸습니다. 요압은 세 개의 작은 창을 가지고 상수리 나무에 메달린 압살롬을 찔렀습니다. 압살롬은 창 한 개 한 개가 가슴에 박힐 때마다 자신이 지은 모든 죄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동생 암논을 죽인 일, 아버지에게 반역한 죄, 아버지의 첩들에게 들어간 죄들은 고스란히 자기 몸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요압의 단죄 역시 항명이요, 다윗의 명을 거역한 반역이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죽어 마땅한 한 죄인된 아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아버지의 진한 사랑은 우리 죄인들을 향해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그대로 전해 주고도 남습니다.
19장입니다. 다윗이 다시 왕으로 돌아왔습니다. 반역에 참여했던 이스라엘 지파들은 매우 난감해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에게 용서를 베풀었고, 그들을 처단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까지도 죽이는 대신 용서했습니다(23). 24-30절은 므비보셋이 다윗 왕의 안녕을 얼마나 기원했는지 발을 치장하지 않고, 수염을 깍지 않고, 옷을 빨지 않았다고 합니다(24). 이전에 그의 종 시바가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여 그의 유업을 다 얻었지만 이제 일의 본말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시바를 처형하지 않고, 땅을 나누게 했는지는 의문입니다(29). 다윗은 왕으로서 자신이 경솔히 내린 명령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고, 그에 적당한 타개책으로 반을 나누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므비보셋을 통해서 은혜입은 자들이 주인에게 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전쟁의 때에 자신을 도와준 브리슬라에게 넘치도록 보상했습니다(17:27-29). 왕이 돌아오는 길에 유다와 이스라엘 간에 격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솔로몬이 죽자 바로 남왕국과 북왕국이 갈라지는 발단이 됩니다.
20장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세바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 반란은 쉽게 진압되었습니다. 요압은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잔혹성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이 재임하는 시절 내내 병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다윗도 함께 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후에 다윗은 솔로몬에게 요압을 제거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솔로몬이 재위에 오르자 가장 먼저 제거되었습니다.
21장입니다. 다윗 재위 기간에 있었던 3년간의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께 원인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과 그 집안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피로 인한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호수아 9:25-27에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주께 맹세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내어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들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과 그 집안과는 원수지간이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이 전에 한 하나님과의 맹세를 깨뜨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님께 묻거나 대언자들의 조언을 구하는대신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요구 사항을 물었습니다. 기브온 족속들은 사울의 집안 식구 7명을 넘겨 달라고 하여, 그들을 죽였습니다. 조상들의 죄로 자식들이 3-4대까지 짐을 짊어진 실제적인 예입니다(신24:16). 15-22절은 마지막 남은 거인 족속들을 죽이는 장면입니다. 거인에게서 태어난 그 자식들까지 다 죽음으로 더 이상 거인들은 이 땅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창세기 6장에서 시작하여 다윗의 시대에 종결되었습니다. (창세기 6:4의 also란 단어에 주목할 것)
22장입니다. 여기는 다윗의 위대한 찬양시입니다. 이곳에 나오는 구절들은 대부분 시편에 반복됩니다. 25-29절은 시편 18:23-28절에서 그대로 반복됩니다. 29-51절은 주님께서 원수들보다 자신을 높이신 것에 대한 찬양입니다. 깊이 묵상하며 찬양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3장입니다. 1-7절은 다윗의 마지막 말입니다. 특히 3,4절은 천년 왕국의 아침을 여는 예언입니다. 5절은 다윗의 언약을 다시 한번 보여 줍니다. 이 언약은 다윗에게 베푼 확실한 긍휼에 기초한 영원한 언약입니다(사55:3). 8-39장은 다윗과 함께한 그의 영웅들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용맹했던지 다윗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1등 공신들이었습니다. 아디노, 엘르아살, 삼마는 그중에 가장 용맹한 세 사람이었습니다. 17절은 이들의 충성심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이들은 다윗이 목말라할 때 블레셋 군대를 뚫고 들어가 물을 떠 왔습니다(17).
24장입니다. 주님은 사탄이 다윗을 격동하여 인구 조사를 하도록 허락했습니다(대상21:1). 이는 다윗이 자신의 왕국이 얼마나 큰가, 자신이 평생 이룬 업적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교만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윗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올무에 빠졌습니다(딤전3:6). 요압은 적극적으로 막았지만 다윗은 강행했는데 9개월 20일간에 걸친 인구 조사 결과가 9-10절입니다. 다윗은 일이 끝난 후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10). 주님이 이루시고, 주님께서 주신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영광을 가로 채려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이는 전에 간음을 한 죄보다 더 큰 죄입니다. 설령 인구 조사를 하더라도 원칙이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0:12-14에 인구 조사를 할 때는 계수된 자는 주께 대속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들은 성소의 원칙에 따라 반세겔을 드려야 하며, 이것은 주의 헌물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임합니다. 다윗은 다시 한번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임의대로 인구 조사를 하다가 철저하게 징계를 받는데, 3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13). 다윗은 주님의 긍휼을 믿고 역병을 선택했는데, 7만명의 백성이 죽었습니다. 다윗은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드림으로 재앙을 멈추었습니다. 이 타작마당은 바로 후에 솔로몬의 성전이 들어서는 자리입니다.
이 장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영적 교훈을 찾으면, 1. 사람은 아무리 영적이라 해도 유혹을 이길만큼 영적이지는 않다. 2. 하나님은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주셨다. 3. 영적인 죄는 육신의 죄보다 더 무섭다. 4. 우리의 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5. 회개에는 값비싼 대가가 지불된다. 이것은 고백이상이다. 다윗이 산 타작마당과 소, 타작 기구보다 비싼 주님의 피와 몸값이 지불되었다. 6.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복을 주신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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