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공부할 본문은 구약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라고 불리는 장면입니다. 52:7절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8절은 유대인들의 귀환, 회복입니다. 9절은 예루살렘의 회복입니다. 예루살렘이 에덴의 동산처럼 회복되는데 이 모든 일은 천년 왕국 때의 일입니다. 10절은 민족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본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은 주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창49:18). 그럼 하나님의 구원, 주의 구원을 본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자, 주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초림 때 유대인들은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시고,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입으신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하나님인 줄을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조차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요14:8)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백성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시고 표적과 권능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구원을 기뻐하고, 구원을 밝히 드러내고, 구원을 날마다 전해야 합니다. “{주}께 노래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며 그분의 구원을 날마다 전할지어다.”(시96:2). 하나님은 구원을 가져오십니다(사59:16, 63:15). 구원을 보내십니다. 구원을 선포하시고, 밝히 드러내십니다.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시온에 두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나의 의를 가까이 가져올 터인즉 그것이 멀리 있지 아니할 것이요,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나의 영광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두리라.”(사46:13).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온에 계신다는 말입니다. 천년 왕국 때 주님은 시온에 왕좌를 두시고 거기에 계십니다.
침례인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어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눅1:47)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아이를 “하나님 곧 내 구원자”라고 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요 구원자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날 하늘에서 천사들은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해 [구원자] 곧 그리스도 [주]께서 태어나셨느니라.”(눅2:11)고 했습니다. 이 구원자는 구약에서 주께서 보내신 여러 구원자들과 전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요셉이나 모세나 사사들,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원자를 보내시는 주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요셉은 기근으로 멸망하게 된 이스라엘의 구원자였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출한 이스라엘의 구원자였습니다. 사사들은 모두 주께서 이스라엘을 구출하도록 보내 주신 구원자였습니다. 왕정 시대에도 주님은 꾸준히 구원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열왕기하 13:5절, “({주}께서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리아 사람들의 손 밑에서 벗어나 이전과 같이 자기들의 장막에 거하였으나”(왕하13:5). 하나님은 고난에 처할 때마다 부르짖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자들을 주셨습니다. 느헤미야 9:27절, “그들이 고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부터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구원자들을 그들에게 주사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였으나”(느9:27). *구원자들(saviours)이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복수형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사용하시는 사람들이 구원자들입니다. 오바댜 1:21절, “구원자들이 시온 산 위로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그 왕국이 {주}의 것이 되리로다.”(옵1:21). 이 구절은 대환란 때 활약하는 주의 군대를 말하는데 주께서 “구원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구원의 진리,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지만 그 때는 문자 그대로 구원자들로서 이 땅에서 주를 따르며 전쟁을 벌일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용과 짐승의 학대를 받는 이스라엘이 주께 부르짖을 때 그들에게 “한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그것이 이집트 땅에서 만군의 {주}를 위한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그들이 학대하는 자들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을 것이요, 그분께서 한 구원자 곧 위대한 자를 그들에게 보내사 그가 그들을 건지게 하시리라.”(사19:20). “한 구원자 곧 위대한 자”가 바로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구원자를 통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들을 통해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요셉이나 모세나 사사들, 왕들은 기근이나 전쟁이나 원수들로부터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아무도 죄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부터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마1:21).
시므온은 요셉이 율법의 관례대로 예수님에게 할례를 행하려고 데려왔을 때(눅2:27) 예수님을 보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온데”(눅2:30)라고 했습니다. 주의 구원자를 보았다는 말인데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합니다. 침례인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하였느니라.”(눅3:6)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본다는 말은 모든 육체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는 말입니다. 갈릴리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분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인즉 이 날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눅19:9). 삭개오의 집에 오신 분은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이 날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라고 하십니다. 야곱은 죽기 전 침상에서 “오 {주}여, 내가 주의 구원을 기다렸나이다.”(창49:18)라고 했는데 이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드리는 자는 다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로다.”(시50:23).
하나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성경 곳곳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 대해 기록해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에 대하여 증언하셨느니라. ...”(요5:37)라고 하셨고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요5:39)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기록들을 통해 주 예수님을 증언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제자들임을 자처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율법사들과 같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으리니 그는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느니라.”(요5:46). 모세의 율법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사는 이들에게 주께서는 너희가 모세를 믿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님에 대해 증언했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시편과 대언자들의 글은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4:44). 주 하나님은 “나 곧 나는 {주}니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 “그러나 나는 이집트 땅에서부터 {주} 네 [하나님]이니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알지 말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호13:4)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란 말입니까? 하나님이신 구원자란 말입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집을 향한 자신의 긍휼과 진리를 기억하셨으므로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시98:3).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는 것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말인데 재림 때의 성취될 예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