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장 강해]
말씀: 고전 13:7
동영상 https://youtu.be/mg1gfWRKp0E
내용 요약
오늘 우리가 공부할 본문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란 말에서 참는다는 것은 “....beareth all things”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감당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담당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모든 불법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냄새의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셨습니다(계1:5). 주 예수님은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습니다(마8:17). 주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습니다. 여기서 “담당하다, 짊어지셨다”란 말이 본문에서 사용된 bear입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 불법, 죄, 슬픔, 고통, 질병, 죽음, 저주까지 모든 것을 친히 자신의 몸으로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확증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담당하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담당해야 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bear)란 말은 모든 것을 감당한다는 말입니다. 백부장은 주 예수님께서 자기 지붕 아래로 오심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마8:8). 침례인 요한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쓰인 단어가 bear(감당하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실 말씀이 많으셨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요16:12)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분량이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영적 성장이 더딘 육신적인 교회였던지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고전3:2).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자랑했지만 가장 작은 문제들을 판단하는 것도 감당하지 못해 책망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가장 작은 문제들을 판단하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느냐?”(고전 6:2). 이들이 감당하지 못했던 것은 지식이 없어서도 아니고 은사가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이 교회는 은사와 지식이 넘쳤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이 작은 문제 하나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 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있어도 아무 것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돈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운영되는 것은 기업입니다. 교회는 사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운영되는 것은 단체입니다. 돈이 있고, 사람이 있고, 조직이 있고, 권력이 있고 모든 것이 있는 교회가 로마 캐톨릭 교회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도 있고 지식도 있었지만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음행과 고소가 난무하고 파당을 짓고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돈을 추구하거나 사람의 수를 늘리거나 많은 일들을 벌여가며 확장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성령의 은사요 열매인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제가 큰 교회의 목사가 되고,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출판사와 학교를 세웠다고 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그냥 사람들에게 높임받는 목사일 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안에 형제 사랑, 이웃 사랑이 있다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쉬운 문제들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도 능히 감당할 수 없는 크고 어려운 문제가 됩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에 문제가 발생했다, 누구와 누구 사이에 큰 문제가 터졌다고 걱정합니다. 그런 문제가 터지면 교회의 지체들은 물론이요 목사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 하면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더 커집니다.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있는 것 이상을 시험 당하게 하지 않게 하십니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길을 내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입니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이 구절에서 핵심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피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도망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기는 자, 승리자,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입니다. 주께서 피할 길을 내시는 것은 그 길로 도망하라, 피하라, 숨어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으면서도 많은 이들이 이 진리를 놓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감당하고)”란 말씀은 주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문제를 피하지 마십시오. 문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사랑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시험, 문제, 골칫덩어리, 곤란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자기 한계를 극복하고 뛰어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지만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흔히 세상에서 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위대하다)는 말입니다. 여자와 어머니의 차이가 뭡니까? 사랑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자식을 향한 모성애가 있습니다. 그 사랑이 연약한 여자를 강하고 위대한 여자로 만듭니다. 그 사랑이 연약한 여자를 못하는 일이 없는 억척 주부로 만듭니다. 어머니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음이 이 사랑이 있을 때 연약한 성도가 강해집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못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15: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신 주 예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분 안에 있을 때 그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그리스도의 사랑, 그분의 은혜를 깨다고 믿을 때 우리는 강해지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 주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사랑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나니 이는 두려움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요,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기에 세상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본문에서 부분 발췌-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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