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장 강해]
모든 것을 바라며, 견디느니라(X)
말씀: 고전 13:7
말씀: 고전 13:7
동영상 https://youtu.be/GUjOTOTGTsE
내용 요약
고린도전서 13장 강해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7절은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Beareth)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 *Beareth all things, believeth all things, hopeth all things, endureth all things.(고전13:7). 이 시간은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은 모든 죄를 덮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벧전4:8).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합니다(아8:6).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입니다(골3:14). 사랑은 세워줍니다(고전8:1).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요일4:18). 사랑이 하는 일이 엄청나게 크고 많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고전13:4). 사랑은 모든 것을 감당합니다(bear).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요일4:7).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믿음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그분의 계획과 목적, 그분의 일을 다 믿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과 그분이 행한 일과 앞으로 하실 일을 다 믿습니다. 사랑과 믿음의 관계는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갈5:6), “믿음을 겸한 사랑”(엡6:23), “믿음과 사랑의 흉갑”(살전5:8)이란 말씀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둘 다 성령의 선물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둘 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분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3, 디모데전서 1:5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나니 그것이 마땅함은 너희의 믿음이 심히 많이 자라고 너희 모두가 각각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이 넘치기 때문이라.”(살후1:3). 믿음이 많이 자란 결과가 무엇인지 나옵니다. 믿음이 자란 사람은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이 넘칩니다. 믿음이 시작이고 마지막입니다. 믿음이 씨앗이고 사랑이 열매입니다. “이제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죄입니다. 사랑 역시 믿음에서 나야 합니다. 소망도 믿음에서 나야 합니다. 모든 선한 행위들도 믿음에서 나야 합니다.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모든 것은 다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베드로후서 1:5-7절, “이것과 더불어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의 친절을, 형제의 친절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7). 순서를 보십시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의 친절, 사랑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이것을 역순으로 행하도록 가르칩니다. 일단 사랑을 먼저 말하고, 다음에 형제의 친절(형제애), 그리고 경건 운동을 하자며 Q.T나 말씀 묵상을 가르칩니다. 다음에 인내, 절제, 지식을 말하고, 지식 위에 덕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하면 믿음이 생긴다는 식입니다. 이는 성경과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믿음의 기초입니다. 그 위에 덕을, 거기에 지식을 쌓는 것입니다. 사랑은 맨 마지막입니다. 사랑은 열매입니다. 믿음에서 나지 않는 사랑은 욕정입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이라 해도 그것은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관계는 이 정도로 다루고, 이 시간은 사랑과 소망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며”(7). 사랑은 모든 것을 ‘소망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망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같은 그런 소망이 아닙니다. 이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신과 같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은 소망이 아니라 욕망입니다. 웃시야는 왕이지만 제사장의 직무를 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것은 헛된 욕망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고 왕이 되려했습니다. 그것은 욕망이지 ‘소망’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욕구, 정욕, 욕망과 소망을 거의 구분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소원과 탐욕을 소망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소망하며”(Charity ...hopeth all things)란 말씀에서 소망은 육신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소망입니다(행24:15). 우리는 이미 사경회를 통해 ‘소망’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소망한다)고 할 때 모든 소망은 죽은 자들의 소망, 약속의 소망, 이스라엘의 소망, 영광의 소망, 의의 소망, 부르심의 소망, 복음의 소망, 구원의 소망, 생명의 소망, 복된 소망, 산 소망을 말합니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소망과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과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다르듯, 세상이 말하는 사랑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전혀 다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소망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소망은 부활입니다. 부활의 진리는 우리가 죽을 때 육신이 소망 중에 안식하게 해 줍니다(행2:26). 그럼 지금 살아있는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주의 오심과 휴거입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나의 소망은 내가 주와 같은 몸, 같은 모습,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나름 소망이 있겠지만 그것이 ‘보이는 것’이라면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사람이 보는 것을 여전히 바라리요?”(롬8:24).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며”(7)라고 할 때 바라는 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든 바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고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 소망입니다. 사랑은 주의 말씀은 모두 믿는 것이고, 주의 약속을 모두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본문에서 발췌-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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