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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Pastor. Yoon



[글 속에 미래가 있다]생각하는 리더의 독서론



윤송이 박사를 키운 것의 8할은 독서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본 영화는 대여섯 편도 안 되지만 집의 책을 다 읽으면 동네 서점, 그 서점의 책을 다 읽으면 시내 대형 서점으로 진출하며 책 탐험을 계속했다. 책 속에서 전 세계를 탐구하던 어린 소녀는 주변을 탄복케 한 천재 과학자가 되었다. 정경택 기자
SKT 윤송이 상무의 ‘책 생각’

《시대를 개척하고 앞서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이 늘 앞선다. 남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생각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은 뭐니 뭐니 해도 폭넓고 깊이 있는 독서라는 게 우리 시대 ‘생각의 리더’들의 한결같은 경험담이다. ‘생각의 리더’들이 들려주는 자신만의 독서론을 들어본다.》

어린 시절 나에게 책 읽기는 고통과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집 근처 구멍가게를 다녀오던 중 자동차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다행히 자동차가 주차하던 중이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크게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자동차의 잘못이었다기보다 심부름을 가면서도 읽던 책을 놓고 싶지 않아 책을 읽으며 걷던 나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책을 손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았던 당시의 그 고집은 크고 작은 상처로 이어져 잦은 꾸중을 듣게 했던 고통의 근원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만류와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그 무렵 나의 주요 관심사는 걸으면서 혹은 밥 먹는 순간에도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연습하는 데 있었다. 그 바람에 크고 작은 사고를 자주 일으켰지만 독서에 푹 빠진 시기에 책 읽는 데 방해되는 것을 하나하나 나름대로 해결해 나간다는 데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이 무렵 책 읽는 것이 점차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책 읽기에 푹 빠진 내게, 집에 있는 책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독서에 대한 열망은, 동네 서점에 비치된 어린이 책까지 모두 읽고 난 후, 결국 시내 대형 서점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을 사오는 일로 이어졌다. 시내 대형 서점 서가에 가득 쌓인 책들 사이로 걷고 또 마음에 드는 책을 찾는 일은 삼림욕장에 간 듯한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었다. 마치 비밀로 가득 찬 동굴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된 듯, 서점의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읽을 책을 발견하는 기쁨에 서점을 가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어린이 도서’ 코너에서 더는 새로운 책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서점의 다른 책장으로 한칸 한칸 옮겨 가며 읽을 만한 책을 찾아내는 것은 어린 시절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토록 손에서 놓기 싫었던 책의 외형은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한 아담한 크기와 무게를 가진 종이 뭉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몇백 g의 종이 뭉치는, 그 속에 담긴 저자들의 고민과 한숨, 수없이 반복되는 퇴고의 과정을 거친 고뇌의 산물로 단순히 물리적 크기와 무게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이런 책들은 내가 직접 만나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수년 간 계속해 온 고뇌의 정수를 전수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주는 가치에 비해 저렴하고 편리한 매체임에 틀림없다.

요즘은 영상 기술의 발전으로 화려한 그림과 입체 음향을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스토리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책 읽기가 조금 구세대의 유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견 따분해 보이는 활자로 가득 찬 책들이 이제 구시대의 것이라는 일부의 평과, 신기술이 도입된 하이퍼텍스트나 인터랙티브 영상매체가 대세라고 말하는 일부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구세대 매체라는 책에 빼곡히 들어찬 검은 활자에 의해 촉발되는 우리의 상상은 그 어떤 화려한 그래픽보다 더 매력적이고 또 감동적이다. 이 놀라운 현상은 인류의 본능에 활자를 통해 배우고 상상하는 것이 편입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우리 사고의 깊은 곳에 내재된 능력처럼 여겨진다.

독서로 인한 즐거움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게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가만히 앉아 주어지는 대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설계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매력적인 대상을 탐구해 가는 이 느낌은 서재에서 전 세계를 탐구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마음 깊이 깨닫게 해 준다. 꼭 지식을 얻고 암기하고 쌓아 간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수수께끼를 풀어 가듯 작가의 생각의 끈을 따라 탐험하는 그 행위 자체가 즐거운 것이 바로 독서가 아닐까 한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밤새 읽을 책 한 권 골라 봐야겠다. 어린 시절 퇴근길의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생애 첫 동화책을 받았을 때의 느낌과 주무시는 아버지 곁에서 동화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꼬박 밤을 새우고 나서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윤송이 씨 “날 키운 건 8할이 독서”▼

윤송이(31) 박사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석 졸업,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에서 3년 6개월 만에 박사학위 취득, 29세 때 대기업 상무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력과 경력이다. 이처럼 놀라운 학력과 경력의 배경에는 어릴 때부터 키운 ‘생각의 힘’이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생각의 힘의 비결은 한마디로 독서라고 한다.

윤 박사는 어릴 때부터 책을 옆에 끼고 살았다.

“제가 태어나서 대학 들어갈 때까지 본 영화는 ‘킹콩’을 포함해 다 합쳐도 5편 정도밖에 안됩니다. 책만 읽었습니다. 당시 출판된 동화책은 거의 모두 읽었어요.”

그가 과학자가 된 것도 독서의 영향이다.

윤 박사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위인전 전집을 사주었는데 위인전 전집의 마지막인 11, 12권이 과학자 편이었다. 에디슨,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 등 유명한 과학자는 모두 등장했는데 이들 과학자 편을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상상력과 탐구심이 뛰어났던 그는 수업시간에 이상한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선생님은 그에게 바로 정답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그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을 찾아서 읽곤 했다.

고등학교 때 특히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점차 뇌에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됐다. 과학 연구에서도 논리적인 사고력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그는 항상 말한다. 그리고 그 상상력의 힘은 독서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만 24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 논문 주제도 ‘감성을 가진 합성캐릭터(Affective synthetic character)’. 합성캐릭터는 인간과 기계의 대화를 중재하는 디지털 존재인데 곧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보다 만드는 걸 더 좋아하는 윤 박사는 스토리를 쓰고 캐릭터를 만드는 등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하기를 즐긴다.

과학 외에도 서예나 바이올린 등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문학 작품 중에서는 중학교 때 읽은 ‘제인 에어’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의 고전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안기석 기자 da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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