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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구약 개론 -전도서

말씀: 전도서 1:1-5:20
요절: 잠언 1:3


전도서란 의미는 전도자(preacher)란 뜻입니다. Ecclesiastes 란 말은 히브리어가 아니라 헬라어로써 교회, 집회란 의미로 번역된 ekklesia 란 헬라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는 전도자가 회중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1-2, 12:8-10). 전도서는 12장 222절, 5,579단어(KJV)로 되어 있습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솔로몬입니다(1:1-2,12,16).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모든 부와 영화를 누려 본 사람입니다. 그의 체험이 이 전도서에 남김없이 다 녹아 있습니다. 전도서는 하나님이 없는 인간 세상의 허무에 대해 노래한 것입니다. 전도서의 핵심 어휘는 ‘헛되도다’입니다. 전도서는 이 세상에서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 교회의 교리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전도서는 1:2과 12:8의 맨 앞과 맨 끝에 말뚝처럼 박아 놓은 말씀이 있습니다. 1:2 vs 12: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전도자가 말하노니,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8). 이것은 전도자의 일관된 주제입니다.

전도자가 말하는 헛된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한 것에 포함되는 구체적인 예로는 첫째, 쾌락입니다(2:1). 이는 바울 시대 때에 정신적 쾌락주의를 추구하는 에피쿠루스 학파(행17:18)와 물질적 쾌락주의를 추구했던 키레네 학파를 무색하게 합니다. 둘째, 어리석은 자와 지혜자의 구별없이 일어나는 세상 일에 대해 헛됨을 말합니다(전2:15). 지혜롭다고 해서 재앙이 피해가지 않습니다. 고통, 불행, 재앙, 사고, 죽음 앞에는 만민이 평등합니다. 셋째, 나의 것을 내가 다 누리지 못하고 뒤에 남겨 두는 일이 헛됩니다(2:19,23). 넷째, 재물의 헛됨(전5:10). 다섯째, 명예의 헛됨(전8:10). 여섯째, 악한 자에게 일어난 일이 의로운 자들에게도 일어나는 헛됨(전 8:14). 사람들은 여기서 의롭게 살아서 무엇하는가? 허무해 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살아계심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일곱째, 다가 올 날들이 헛되도다(11:8). 인생의 남은 날은 희망과 소망보다 점점 슬픔과 허무가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늙어가다 마침내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30년 후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부터 30년 후에 있을 자신의 인생의 찬란함을 논할 수있겠습니까? 50대면 누구나 외모의 균등, 60대면 지식과 지혜의 균등, 70대면 건강의 균등, 80대면 인생의 낙이 없습니다.

전도서의 주제는 1:3입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묻고 시작합니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에서 무슨 유익을 얻으리요?](1:3). 그의 결론은 12:13입니다. 솔로몬은 살아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참된 본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솔로몬이 가르친 것보다 더 깊은 영적 조명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니라.]

전도서의 핵심 어휘는 ‘사람’(47회), ‘수고’(36회), ‘해 아래서’(30회), ‘헛되도다’(37회), ‘지혜’(52회), ‘악’(22회)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보고, 듣고, 안 것을 차분히 논증한 책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철학과 사고의 영역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약 전도서만 읽고 멈추어 버린다면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그림자만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전도서를 신약 성경의 빛 아래에서 다시 조명해 볼 때 충만한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거짓 종교들과 이단들이 전도서를 이용하여 교리를 정립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전도서는 주(LORD, Jehovah)란 말이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는 성경입니다. 진정한 구도자의 자세로 진지하게 진리를 찾아 나선 전도자의 자세를 보십시오. 전도자는 자신의 마음을 쏟아서 찾아보고, 탐구하였습니다(전1:13,17, 9:1). 하나님의 계시와 조명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와 해 아래서의 탐구와 학문, 사고와 변증을 통한 그의 치밀한 자세는 오늘날 지혜자로 자부하는 자들을 압도합니다.

· I said in mine heart - 전2:1,15,3:17, 3:18

· I applied mine heart- 7:25, 8:16

· I communed in mine heart- 2:16

· I considered my heart -4:1, 4:4, 4:15, 9:1

전도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혼의 수면, 멸절, 지옥이 없다는 등의 주요 교리를 입증하는 중요한 책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2:14-16, 3:16-22, 6:1-6, 7:2-4, 9:1-4을 읽어보십시오. 솔로몬은 사후 세계를 믿었으며, 부활과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습니다. 3:17, 11:9, 12:14을 참고할 것. 죽음이 끝이라면 심판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해 아래서 인간과 동물이 같은 점이 있다면 죽고 나서 그 몸이 흙으로 변한다는 점입니다(3:19-20). 하지만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갑니다(3:21). 솔로몬은 신약 성경에 계시된 생명과 죽음, 부활과 심판에 대한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모순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계시는 점진적 계시의 발전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이 땅에 먹고 사는 삶을 전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땅에서 주님이 주신 것을 향유하라고 가르칩니다(딤전6:17). 솔로몬은 무절제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대해 감사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전도서를 공부하기에 앞서 전도서의 모든 구절들을 신약의 빛 아래에서 다시 조명하여 진리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도서는 허무를 노래하는 것 같지만 결코 허무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진리를 말해 주는 책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수고는 해 아래서의 수고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수고는 모두 보상을 받습니다(고전15:51-58).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요일2:17). 성도들의 수고는 성도들을 뒤 따릅니다(계14:13).

전도서의 전체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1:1-3은 전도서의 주제입니다. 인생의 헛됨에 대해서 말합니다. 1:4-2:26은 인생이 허무한 이유에 대한 변증입니다. 첫째, 1:4-11은 돌고 도는 인생입니다. 이는 마치 불교의 윤회론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불교 철학은 솔로몬의 전도서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과 그 이후에 계속되는 바빌론 생활을 통해 인도로 전해진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둘째, 1:12-18은 사람의 지혜로 인생을 다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식론과 생의 철학 등에서 주된 테마로 삼았던 논리입니다. 셋째, 2:1-11은 부와 쾌락이 사람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에 허무하다는 내용입니다. 넷째, 2:12-23은 죽음으로 인생이 모두 끝나기 때문에 허무하다는 내용입니다. 2:24-26은 허무한 인생을 허무하지 않게 사는 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 가능한 한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것이 최상입니다. 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쾌락주의의 효시(曉示)라 할 수 있습니다.

3-10장은 솔로몬의 좀 더 심도있는 관찰과 사유의 결과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3장에서 전도자는 해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두신 생각하는 마음,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3:11). 결론은 하나님의 축복을 즐기라는 것입니다(3:12-15,22).

4-6장은 부와 쾌락, 7-10장은 ‘하나님의 지혜가 사람의 어리석음보다 낫다’입니다. 11-12장은 결론입니다. 11:1-6절은 ‘믿음으로 살아라’, 11:7-12:7은 인생은 어느날 갑자기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12:8-14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그분만을 두려워 하라’입니다.

본문에 들어갑니다.

1:1을 보십시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전도자의 말씀들이라](1:1). 솔로몬은 이렇게 책의 저자를 밝히는 동시에 자신을 전도자(preacher)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보다 잠언과 전도서, 솔로몬의 아가를 쓴 성경 기록자요, 말씀을 가르친 전도자로서 더 위대한 인물입니다. 잠언에는 자신을 계속해서 전도자로 소개합니다(1:1,2,12, 7:27,12:8,910). 전도자로서 그의 구도적인 자세와 역할을 보십시오.

· 하나씩 하나씩 세어가며 그 근거를 알아내어...(7:27).

·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깊이 주의를 기울이고, 탐구하여...정리하였으며(12:9).

· 애를 써서 받아들일 만한 말씀들을(accptable words) 찾았나니(12:10).

저와 여러분은 모두 솔로몬과 같은 전도자들입니다. 바울은 전도자였습니다(딤전2:7, 딤후1:11). 노아는 전도자였습니다(벧후2:5). 성경은 말씀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

1:2-3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의 인생 요절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불교 철학의 핵심 화두이며, 모든 철학의 절정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던 혼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해 아래서 인생은 왜 헛된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그 점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피조물이 헛된 것에 복종하게 된 것은 자진해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소망 중에 그것을 복종하게 하신 분으로 인함이라.](롬8:20). 아담의 범죄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허무를 맛본 것입니다. 몸은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갑니다.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한 뼘만큼 되게 하셨사오니 내 시대가 주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하오며 참으로 사람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시39:5), [사람은 헛된 것과 같고 그의 날들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으니이다.](시144:4). 전도서의 전도자 못지 않게 인생의 허무를 깊이 체험하고 노래한 사람은 욥이었습니다(7:1,6,7,18, 8:9, (:2526, 13:25,14:10, 30:15). 우리는 이런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신약의 빛 아래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 주님의 은혜는 헛되지 아니하다(고전15:10). · 주의 일은 헛되지 아니하다(고전15:58). · 복음 전파는 헛되지 않다(빌2:16). · 교회를 세우는 일은 헛되지 아니하다(살전2:1).

1:4-11절은 전도자가 헛된 이유를 설명한 것입니다. 4절은 오고가는 세대, 5절은 해가 뜨고 지는 것, 6절은 바람의 순환 회로, 7절은 강과 바다의 순환을 통해 인생의 이치를 깊이 터득했습니다. 이것을 자연 계시라고 합니다. 전도자는 자연을 통해 삶의 이치를 깨닫고, 그대로 인생에 적용하였습니다. 8-11절이 자연을 통해 배운 교훈을 인생에 적용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춘다면 모두 도가의 노장 사상이나 근대의 루소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기억하지 못할지언정(11),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아니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의 행위와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지금까지 성도들을 섬기며 지금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라.](히6:10).

12-18절은 전도자로서의 솔로몬이 온 힘을 기울여 인생의 의미를 알고자 했지만 알지 못했다는 고백입니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던 솔로몬은 공자나 소크라테스, 플라토,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모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석학이었습니다. 16절에 따르면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에서 이전 사람들을 능가하는 사람이었으며, 경험이 많았습니다(16). 그런 그가 “마음을 쏟아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찾아보고 탐구하였던 결과”(13) 자신의 한계를 고백했습니다(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으며 모자라는 것도 셀 수 없도다](15).

영을 괴롭게 하는 것-1:14(보는 것), 1:17(알고자 하는 것), 2:11(행한 수고), 2:17(해아래서 이룩한 일), 2:26(악인들의 것을 선한 자에게 돌리시는 일), 전4:4(이웃에게 시기를 받는 일), 전4:16-백성들의 배척을 받는 일

2:1-11절은 부와 쾌락이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체험적 경험을 고백함으로써, 인생의 허무를 노래합니다. 솔로몬은 돈과 권력만 있고 머리가 빈 졸부가 아니었습니다(10). 그는 지혜가 있고 권세가 있고, 돈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2:11). 우리가 만약 부유하다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네가 이 세상에서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확실치 않은 재물을 신뢰하지도 말며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을 신뢰하게 하며 선을 행하게 하며 선한 일들에 부요하고 베풀기를 좋아하고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라.](딤전6:17-18). 종교 생활 역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참으로 이런 것들은 /자기/ 의지대로 경배를 드리며 /자기를/ 낮추며 몸을 경시하는 데는 지혜 있는 것같이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가치가 없느니라.](골2:23).

2:12-23절은 죽음 앞에선 인생의 허무입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가 어떻게 죽느냐? 어리석은 자와 같도다](2:16b). 사람이 죽음 앞에 있을 때 모든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 학식있는 자와 없는 자, 권세 있는 자와 없는 자 등 가리지 않고 모두 다 평준화됩니다. 24-26절에서 솔로몬은 이런 허무와 영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주님이 주신 것들을 향유하고, 누리고, 즐겨야 한다(24)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3장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시기(時期)가 있고 모든 목적한 것에는 때가 있도다](1). 솔로몬은 날 때와 죽을 때(2), 죽일 때와 고칠 때, 무너뜨릴 때와 세울 때(3), 울 때와 웃을 때, 애곡할 때와 춤출 때(4), 돌들을 버릴 때와 모을 때, 껴안을 때와 껴안는 것을 금할 때(5), 얻을 때와 잃을 때, 지킬 때와 버릴 때(6), 찢을 때와 꿰맬 때, 잠잠할 때와 말할 때(7),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할 때와 화평할 때(8)가 있다고 말합니다. 때를 분별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지혜 가운데 하나입니다. 역대기상12:32, [잇사갈 자손 중에서 때를 깨닫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의 온 형제들이 그들의 명령을 따랐더라.](대상12:32). 지금 우리는 어떤 때에 살고 있습니까?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야할 때입니다. [또한 때를 알거니와 지금이 잠에서 깨어나야 할 바로 그때이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보다 가깝기 때문이라.](롬13:11). 지금 현재 우리는 오는 때를 대비한 삶을 살아할 때입니다. [또 앞으로 오는 때를 대비하여 자기를 위해 좋은 기초를 쌓게 할지니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붙들게 하려 함이라.](딤전6:19).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이 마냥 햇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즉 그는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벧전4:2).

인생은 왜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가? 그 해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삶의 행, 불행이 교차하고, 고통이 있는 것은 인생을 단련하기 위함입니다(1:13, 3:10).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11).

11절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모든 것을 만드시되 자신의 때에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세상을 /생각하는/ 마음을 두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 자가 아무도 없도다.](11). “그분께서 모든 것을 만드시되”란 말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행과 불행, 선과 악, 빛과 어둠, 복과 저주, 전쟁과 평화, 건강과 병, 신체의 장애 등도 모두 주님이 지으신 것(사45:7)이라는 말입니다. 2-8절에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이 지으셨고, 주님의 때에 이루십니다. “또 사람들에게 세상을 /생각하는-set/ 마음을 두셨으므로”란 것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지으셨으며, 누구나 자연계시를 받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통해 세상의 이치와 법칙을 배웁니다. 세상은 창조주를 알게 됩니다. 동시에 세상을 통해 더욱더 주님의 특별 계시를 갈구하고, 부족을 채움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런 일을 행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14절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영원하리라. 그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그것에서 무엇을 뺄 수도 없나니 하나님께서 이같이 행하시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 앞에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14). 17절은 이 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모든 때의 종결은 바로 심판입니다. 인생의 종결은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8-22절은 인간과 짐승의 차이가 무엇이냐?란 유물론적 진화론자들, 무신론자들, 자연 발생설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는 전도자의 지혜입니다. 동성연애를 지지하는 인간들의 하나같은 주장은 ‘짐승들을 보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짐승입니다. 그들의 본성 역시 짐승입니다. 짐승의 세 가지 본능은 자기 보존(자기 방어-self preservation), 자기 번식(종족 보존-self propagation), 자기 만족(self gratification)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간의 본능 역시 그렇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자기 보존, 자기 방어 본능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참으로 사람이 자기의 모든 소유로 자기 생명을 바꾸리이다.](욥2:4). 다음은 생식 본능으로 오늘날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모든 무분별한 애정 행각, 간음, 음행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기 만족은 인간의 삶의 목적처럼 보입니다. 먹고 마시고, 생각하는 것보다 느끼는 대로 살고 싶어하는 이 세대는 짐승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동일한 산소로 호흡하고, 죽으면 동일한 흙으로 돌아가는 유사함을 별개로 하더라도 동일한 본능과 삶의 원칙대로 산다면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날 것이 없나니”(19)란 말 그대로입니다.

21절은 개역 성경을 비롯한 모든 현대 역본들에서 크게 변개해 놓은 구절입니다. 이들은 짐승은 영이 없다고 말하는데 성경은 분명히 짐승의 영이 존재함을 말하고 있습니다(21). 사람의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갑니다(전12:7). 짐승의 영은 몸과 함께 흙으로 돌아갑니다. 신약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영은 하나님께로 갑니다. 구원받은 혼은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고후5:8).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로 가지만, 혼은 지옥으로 갑니다.

3:22에서 솔로몬의 질문은 신약 성도라면 누구라도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를 데려다가 그의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게 할 자가 누구이랴?](22b). 우리는 모두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곧 대언(예언)의 영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증거가 대언의 영이기 때문이라, 하더라.](계19:10).

전도서 4장은 인생의 불공평성을 보고서 허무를 말합니다. 1-6은 의에 대적하는 학대, 권세자들의 학대를 보았습니다. 이런 학대를 보는 것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란 탄식을 낳습니다(3).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살아서 구주를 믿지 않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바에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다면 이 생의 어떤 어려움도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7-12절은 동역자의 중요성입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는 결혼해서 사는 것이 낫고(9-11), 둘만 사는 것보다는 자식을 낳아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12). 형제도 둘 보다는 셋이 낫고,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12). 위험의 때나 전쟁의 때에 위력을 발휘합니다.

13-16절은 왕가에 태어난 자라 해도 허무함을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왕가에 태어난 르호보암은 감옥에 들어가 죽을뻔했던 여로보암이 이집트로 도망갔다가 돌아옴으로써 이스라엘의 열지파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5장입니다. 1-7절은 종교적 의식으로도 허무를 피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희생물을 드리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열중하라고 권면합니다(1). [사악한 자의 희생물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곧바른 자의 기도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잠15:8). 주님은 형식보다 내용이며, 내적 동기를 중히 보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올 때에 누가 너희 손에 이것을 요구하였느냐? /단지/ 내 뜰을 밟을 뿐이니라.](잠1:12). 하나님 앞에서 말을 많이 하지 말고, 특히 함부로 서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 앞에서 희생물을 드리고, 자기의 결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실천되지 않을 때 죄가 더욱 커집니다(2,4,6).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7).

8-20절은 재물이 많아도 허무를 피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재물로 악을 행하는 자(8)는 자기 보다 더 높은 자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의 학대받는 것과 궁핍한 자의 탄식하는 것으로 인하여 이제 내가 일어나서 그를 향해 우쭐대는 자로부터 그를 떼 내어 안전하게 두리라, 하시는도다.](시12:5). 10절 말씀은 재물은 인간의 탐욕을 채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은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10). 재물은 단잠을 자지 못하게 합니다(12). 재물은 소유주에게 해가 됩니다(13). 재물은 악한 해산의 고통과 함께 사라집니다(14). 재물은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합니다(15). 재물이 있어도 질병과 슬픔과 진노는 해결되지 않습니다(17).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부와 재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재물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육신의 가족의 필요를 위해, 영적인 가족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돕기 위해 사용한다면 제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주님은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지 말고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인(印)치셨음이니라.](요6:27)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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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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