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구약 성경에서 6회, 신약 성경에서 13회 나옵니다. 돼지는 탐식의 대명사로 사용됩니다. 성경에서 돼지는 개와 마찬가지로 부정한 동물이며, 유대인들에게 금지된 음식이었습니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나 되새김질을 하지 아니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레11:7),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되새김질을 하지 아니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들의 고기를 먹지 말며 그것들의 죽은 사체(死體)도 만지지 말지니라.](신14:8). 돼지는 굽은 갈라져 있지만 돼새김질을 하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만 충족되어서는 안됩니다. *굽이 갈라진 발- 성도는 두 가지 성품을 지닌 분리된 자들이다. 겉사람, 속 사람. 되 새김질-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돼지는 누구인가?
첫째, 분별이 없는 여자입니다.
잠언 11:22에 [아름다운 여자가 분별이 없는 것은 돼지 코의 금장식 같으니라](잠언11:22)라고 합니다. 여자의 외적 아름다움은 금장식과 같은 것입니다. 분별력이 없을 때 그것은 마치 돼지 코에 붙은 금장식과 같게 됩니다. 성경은 지혜로운 여인과 어리석은 여인이 나옵니다. 성경이 칭찬하는 여인은 외모가 아름다운 여인이 아닙니다. 분별력이 없는 여자는 돼지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칭찬하는 여인은 첫째, 은혜로운 여인- 잠 11:16, 둘째, 덕스런 여인- 잠 12:4, 잠 31:10, 잠 31:29 셋째, 분별있는 여인- 잠11:22 넷째,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 렘6:2, 넷째, 지혜로운 여인- 삼하14:2, 20:16 다섯째, 주를 두려워 하는 여인- 잠31:30 여섯째, 거룩한 여인- 벧전3:5입니다. 모든 여자들은 외모를 가꾸고 꾸미기에 앞서 영을 단장하고 가꾸는데 힘써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성경은 “악한 여인, 게으른 여인, 수치를 끼치는 여인, 어리석은 여인, 음란한 여인, 향락 속에 사는 여인”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개같은 남자들이 돼지같은 여자를 찾는 것이 세상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어떤 형제가 섹시한 여자, 능력있는 여자, 돈 잘 버는 여자, 살림 잘하는 여자'를 찾는다면 그는 아직 영적 가치관이 없는 어리석은 형제요, 바른 것을 구하는 능력조차 결여되어 있는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옛 생활로 돌아간 성도는 돼지입니다.
[그러나, 개는 자기가(his) 토한 것으로 되돌아가고 씻겨진 돼지는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는 참된 잠언에 따라 그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도다.](벧후2:22). 성경은 이전 생활, 옛 생활로 돌아간 배교자들, 타락한 자들은 개와 돼지라고 말합니다. 거듭난 사람이 잠시 영적 생활을 하다가 롯과 같이 세상 속으로 빠져들면 그는 세상과 동화되어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씻겨진 돼지가 깨끗하여졌으나 곧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가서 뒹굴어서 더러워지는 것과 같이, 성도들이 세상과 육신, 죄악의 쾌락으로 빠져들 때 그는 어린 양이 아니라 돼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돼지는 마귀 들린 유일한 가축이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마귀들이 주님께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는 놀라운 말을 듣게 됩니다.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으므로 마귀들이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하소서, 하매 ](마8:30-31). 성경에 마귀를 예표하는 동물들이 많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마귀 들린 짐승은 돼지들이 유일할 것입니다. 당시 게르게스 지방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먹지 않고, 배척하던 돼지들을 엄청나게 사육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부근에 있는 로마의 군대에 군납품으로 팔기 위해서였습니다. 돈벌이를 위해서 기꺼이 율법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자기 배를 섬기는 이들을 우리는 개라고 했습니다. 게르게스 지방의 돼지 사육은 마치 이곳 어느 지역에 거대한 양조 제조 공장이 있고, 향락 산업이 판을 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부정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주님은 마귀들을 돼지들에게 들어가게 함으로써 심판하셨습니다.
넷째, 돼지를 먹는 이들에 대한 심판.
[자기를 거룩하게 구별하며 자기를 정결하게 하고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뒤에서 돼지고기를 먹고 가증한 것과 쥐를 먹는 자들이 함께 소멸되리라. [주]가 말하노라.](사66: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셨고, 돼지고기를 먹는 이들은 소멸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에덴의 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만큼이나 엄중합니다. 이스라엘은 타락할 때마다 이들의 식탁에서 금방 표시가 났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면 그를 교회는 다닐지 몰라도 ‘성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성도라 해도 타락했구나, 실족했구나, 맛이 갔구나! 자동적으로 이런 판단이 듭니다. 이방인들은 누가 돼지를 먹으면 그를 결코 유대인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중간 시대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Antriochus Epiphanes)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포기 및 배교의 증표로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했습니다. 돼지 고기를 먹는 순간 그는 유대교 신앙을 포기하고 굴복하였음을 의미하는 증거로 삼았던 것입니다. 돼지 고기를 먹는 일은 단지 ‘음식, 육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포기, 민족성의 포기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역사 기록을 보면 어떤 율법사의 입에 강제로 돼지 고기를 집어 넣자 그는 자기를 더럽히느니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낫다며 고기를 뱉고 태형대로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신약의 교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고기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으라.](고전10:25)고 말합니다.
다섯째, 타락한 성도의 친구 돼지.
누가복음 15:15-16, [이에 그가 가서 그 나라의 국민 중 하나에게 연합하니 그 사람이 그를 자기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니라. 그가 돼지들이 먹는 곡식 껍질로 배를 채우려 하되 아무도 그에게 주지 아니하므로](눅15:15-16). 주님은 탕자의 밑바닥 생활을 ‘돼지치기’, ‘돼지들이 먹는 곡식 껍질로 배를 채우려 할 정도’로 말씀합니다. 돼지는 인간의 타락과 가장 낮은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양치기로 고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돼지치기로 전락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모습, 즉 타락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탕자는 더 낳은 생활을 위해 떠났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그 결과는 돼지치기였습니다. 신앙의 포기는 이와 같습니다. 영적 타락이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글.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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