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기준이 분명한 사람의 기도 제목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
술을 먹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이는 기도 제목이 아니다.
술을 먹지 말게, 술자리의 기회가 적거나 없어지도록, 술친구를 만나지 않도록,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것은 기도 제목이다.
다니엘에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는 고민 거리도 아니었으며 기도 제목도 이나이었다. 다니엘에게 왕궁에서 주는 고기 음식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역시 먹을까 말까 고민하거나 걱정하거나 기도를 요청할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왜? 목적과 원칙, 기준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할 것인가? 말것인가? 란 문제는 기도 제목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물어 볼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교리적 기준이 성경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늘 그러하다.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 는 기도 제목이 아니다. 성경적 기준과 원칙이 정립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 제목이 아닌 것을 기도한다. 성도들에게 불신자와 결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 는 기도 제목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도 제목인가? 우리는 모든 문제를 기도할 수 있지만 선명한 기준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쓸데없는 기도 제목이 줄어든다. 말씀으로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갈등과 고민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은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에서부터 고민하고 기도하게 된다.
여러분이 기도 제목으로 내어 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불분명한 기준은 성경을 읽고, 설교를 통해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것은 기도해야 한다. 다만 분명한 기준에서 옳은 것, 선한 것을 추구할 때 그 힘을 얻고, 선한 길을 얻도록 구해야 하며, 마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받더라고 이겨 나가도록 구해야 한다.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성취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 가족을 이 교회로 데려 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이것은 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기도 제목이 아니다. 데려 나와야 한다. 언제 데려와야 하는가? 그것은 기도 제목이 아니다. 즉시 데려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여서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즉시 모두 데리고 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무엇이 기도 제목인지 알겠는가?
성경적 기준과 원칙이 없는 사람들의 기도 제목을 보면 허공을 헤맨다. 여러분들은 제대로 기도하고 있는가? [사람이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느니라](잠28:9). 성경을 공부하라. 제대로 된 기도는 성경을 알고 믿고 공부하면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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