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이란 말은 따로 떼어 놓다(set apart), 구분하다란 말입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와 같이 주님은 구별을 두십니다. 믿고 안 믿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평소 생활할 때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내면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내적인 것은 외적 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영적인 생각은 육신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믿음의 삶은 현실의 삶과 절대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생각이 말에 영향을 미치듯이, 믿음은 생각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함같이 그 사람도 그러하기 때문이라. ...](잠23:7a). 믿음의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입술에서는 험담이나 저주나 모욕이나 비아냥거림이나 쓴 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감사와 찬양의 희생물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주님이 사람을 보실 때 믿음 외에 다른 무엇도 보지 않으시며, 믿음 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평가하지 않으시며, 믿음 외에 다른 무엇으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믿을 때 생각/가치관/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생각/MIND)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마음이라.](빌2:5).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볼 때 그의 삶이 바뀌려면 그의 생각(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금수(禽獸)의 마음을 가진 자는 짐승같이 살고, 놀부의 심보를 가진 사람은 놀부처럼 삽니다. 요즘은 맘몬(재물의 신)이 신인 세상이다 보니 놀부 같은 마음을 경제적 MIND(마음)가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처럼(godly-경건한) 삽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술 주정뱅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그는 경건하게 삽니다. 주님을 만난 후에 그는 술에 지배를 받는 삶이 아닌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욕심에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말씀에 이끌리는 삶을 삽니다. 육신의 정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삽니다. 믿음이란 마음의 변화를 받아 영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영적인 생각이 없이 영적인 삶이 가능합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생각의 변화 없는 삶의 변화는 변화가 아니라 변장이요, 위선(僞善)입니다. 사람들은 후에 속았다고 할 것입니다.
[너희의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엡4:23).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두려움의 영이 아니요,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이기 때문이라.](딤후1:7).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보이는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12명의 정탐꾼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열 명의 생각은 모두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 했건 간에 ‘가나안 입성은 불가능하다. 정복 전쟁은 불가하다’였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켜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소유하자. 이는 우리가 능히 이길 것임이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간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이라, 하고] (민13:30~31). 이들은 격론이 붙었습니다. 민족의 운명을 건 격론이었습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문제에서 갈렙과 나머지 10명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으며 이들 앞에 말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주]를 대적하여 반역하지 말며 또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우리의 빵이기 때문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주]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민14:9).
믿음은 생각의 차이를 낳았고, 말의 차이를 낳았고, 행동의 차이를 낳았습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로 나섰지만 그는 본래 이방인이었다가 개종한 사람입니다. 갈렙이란 이름은 여호수아나 엘리야, 사무엘과 같은 좋은 이름도 아니었습니다. 갈렙은 이름은 “개”란 뜻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개똥이, 돌석이, 돌쇠란 이름보다 더 천한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신분, 출신 등은 형편없었을지라도 그의 믿음은 남달랐습니다. 주님은 갈렙을 어떻게 평했는지 보십시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14:24). 마음이 그들과 달랐다고 하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주님은 갈렙의 믿음에 온전히 보상해 주셨습니다. 갈렙은 육신적으로 비천하게 출발했지만 영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명문 가문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그의 조카이자 사위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기술이 제품의 차이를 만들듯이, 믿음은 사람의 차이를 만듭니다. 믿음이 사람을 구별 나게 합니다. [순수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순수하나 더럽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순수한 것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과 양심마저도 더럽혀져 있느니라.](딛1:15). 이것이 차이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순수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도 순수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왜곡되고, 더럽고, 비뚤어지게 보입니다. 이는 그들의 생각과 양심이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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