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시력을 받게 되었는지 다시 물으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시력을 받게 되었나이다, 하니](15). -요9:15
바리새인들은 “누가 너의 눈을 고쳤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들은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라고만 물을 뿐입니다. 이것이 이들의 한계입니다. 진리는 “누가?”라고 묻지 않는 이상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what, how의 문제가 아니라 who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누가? 라고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네가 벌거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령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창3:11). 아담에게 언제 먹었으냐? 어떻게 먹었느냐? 왜 먹었느냐? 어디서 먹었느냐? 그런 것을 묻지 않으시고,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누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욥에게 주님은 남자답게 답변해 보라고 하시면서 폭포수처럼 물으실 때 사용하신 어휘는 전부 [누가?]였습니다. [누가 그 치수들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팽팽히 쳤느냐?그 기초들을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그 모퉁이돌을 누가 놓았느냐?](욥38:5-6). 어떻게?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주로 “어떻게?”라고 묻습니다. 오늘날 기술이란 말은 "Know How"라고 합니다. '어떻게'란 방법을 아는 것을 비법,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Know Who"를 참된 지식인이라고 하십니다.
지혜란 어떻게를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아는 것입니다. 주님이 욥에게 묻는 질문들을 보십시오. [누가 넘쳐흐르는 물을 위하여 물길을 갈라놓았으며 천둥의 번개가 다닐 길을 갈라놓아](욥38:25), [비에게 아버지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나왔느냐? 하늘의 흰 서리는 누가 생기게 하였느냐?](욥38:28-29). 과학자들은 어떻게 이슬 방울이 생기는가를 연구하고 조사합니다. 얼음은 어떻게 생기는가? 언제 생기는가?를 연구하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그런 것을 아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누가? 라고 물으십니다. [누가 /사람의/ 속 /중심/부에 지혜를 넣어 주었느냐? 누가 마음에게 명철(明哲)을 주었느냐? 누가 지혜로 구름을 셀 수 있겠느냐? 누가 하늘의 주머니들을 붙들어서 흙이 굳어지고 흙덩이들이 서로 단단히 엉길 때에 가만히 있게 할 수 있겠느냐?](욥38:36-38). 주님은 자연과학적 질문들을 쏟으시며 한 번도 원리나 자연 법칙에 대한 이해를 묻지 않으십니다. 다만 “누가?”라고 물으실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어떻게? 란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면 위대한 과학자요, 현인이란 칭송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정확히 규명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놀라운 과학적 지식에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치를 규명한 후에 그것에 대한 “누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면 그의 인생은 Nothing입니다. 어떻게에 대한 대답은 못해도 누가 했는지 대답을 알면 그는 진정으로 지혜와 명철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육은 ‘어떻게’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누가?(who)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비참한 상태에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바른 질문에 올바른 답변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사망의 몸에서 어떻게 내가 건짐을 받으랴?”고 묻고 방법을 찾습니다. 그것이 기도일지, 금식일지, 성경 읽기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묻는 것은 대부분 “어떻게”입니다. 우리는 항상 “누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저는 전에 영어 교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받은 대부분의 질문은 “선생님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였습니다. 그러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듣고, 많이 말해 보아라.”가 대답입니다. 누가 그것을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묻고, 그렇게 대답합니다. 교회에서는 어떻게 믿음을 늘릴 수 있을까요?란 질문을 받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롬10:17)라고 대답해 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경을 많이 읽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시간을 내서 읽으면 되지 거기에 ‘어떻게’란 말이 있습니까? 목사님, 어떻게 하면 성장할까요?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많이 맺을까요?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 할까요? 어떻게 하면...어떻게 하면...이란 질문은 수도 없이 쏟아지고 거기에 대한 답변도 어김없이 주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저는 신도들이 “누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들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누가 나를 성장시켜 줄까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전도하러 갈까요. 내가 가야 합니다. 누가 성경을 읽어야 하나요? 저와 여러분입니다. 누가 열매를 맺게 하나요?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십니다(요15). 누가 나를 강하게 하십니까?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누가? 라고 물을 때 해답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료하며 확실합니다. “어떻게?”란 질문은 답변을 얻어도 그 실행자는 “나”입니다. 핵심과 주체는 언제나 나입니다. 그러나 누가라고 물으면 그에 대한 주체와 핵심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신앙 생활의 천양지차입니다.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까? 란 질문과 누가 나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가? 란 질문은 그 질문과 대답이 너무나 다릅니다. 어떻게 복을 받을 것인가? vs 누가 복을 주시는 분이가? 이 차이를 이 시간 반드시 숙지하시고 여러분이 매사에 “누가?”라고 질문하고 “하나님, 주님, 성령님”이란 답변을 얻고 믿음으로 고백할 때 답변을 지닌 인생을 살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질문할 때도 “누가 이렇게 복 주셨느냐?, 누가 이렇게 성공을 주셨는가? 누가 이렇게 당신을 신실하게 만들었는가?” 이렇게 질문하십시오. 여러분은 [누가?]에 대한 질문과 해답으로 인생을 꾸려 나가야 합니다.
[누가?]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라고 묻는 사람은 <내가..하리라>는 말이 숨겨져 있습니다. [내가...하리라](사14)는 루시퍼의 어법입니다.
-신약 개론, 요한복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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