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08일- 출애굽기
출애굽기(X)
말씀: 출애굽기 4:1-5
요절: 출애굽기 4:2
10.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할 사람을 찾으시고, 파라오 앞에서 증거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들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수행해 낼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종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준비된 종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종들을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해야 할 일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미 두 번이나 자신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절했습니다(3:11,13). 호렙산의 불타는 떨기 나무 가운데서 주님과 모세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모세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재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불가 이유를 대면 그에 대한 답을 주었고, 핑계를 대면 핑계에 대한 만족스런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부르심에 얼마나 신실한지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서 몇 차례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4:1을 보십시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보소서,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아니하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할 것임이니이다, 하매] 하나님께서 3:18에서 ‘그들이 네 음성에 귀를 기울이리니...’라고 말씀하셨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하는 것은 꼭 불신자들만의 소행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을 때 누구라도 주님의 말씀에 의심을 품고 반대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 앞에 여지없이 드러내었습니다. 불신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반대하고,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다른 무엇을 그 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불신을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생각이 부딪힐 때 나를 부인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굳게 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면 나의 생각이 확고하게 섭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방법은 바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단연 본을 보여 준 사람은 어부인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직업이 어부였고 갈릴리 호수는 자신의 생업터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너희 그물들을 내려 한 번 끌어당기라](눅5:4) 말씀하시자 자신의 생각을 접고 일어섰습니다. [시몬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잡은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5:5). 시몬 베드로가 하기에 가장 힘든 일은 몸을 움직여 노를 저어 다시 바다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고기를 아침에 다시 나가서 잡으라는 상식에 어긋나는 가르침,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완전히 벗어나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시몬이라고 생각이 없는 어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각을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라고 말하는 시몬의 순종이 바로 믿음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어려우면 자신의 생각을 부인하면 됩니다. 내 생각이 틀리고 주님의 말씀이 옳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모세는 반대로 자신의 생각이 옳고 주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의 예상, 생각, 상식, 지식을 넘어서거나 반대되는 그런 주님의 말씀들을 접할 때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내가 틀리고 주님이 옳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막대기이니이다, 하매](2). 주님은 모세의 주장에 대해 답변하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이 순간 모세가 여전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투철한 직업 정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손에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은 새로운 것을 주시기 전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려 하십니다. 우리는 자원하는 마음(willing mind)만 있으면 됩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대로 [먼저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가진 대로 /주께서/ 받으실 것이요, 그가 갖지 아니한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8:12)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세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늙은 노구와 손에 든 지팡이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면 족합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몸을 요구하실 수 있으시며, 요구하십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 병들고 지친 몸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몸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주님을 위해 사용될 때 바르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죄의 도구, 불의의 도구로 내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몸을 의의 도구로 주님께 내어 드리는 헌신(獻身)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섬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각양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4:7). 그래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들을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받은 은사가 없다고 주님께 불평을 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주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각 사람’(every man)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 내가 받은 것이 적다고 투덜댈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은 없는 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누가 너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느냐?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그것을 받았을진대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 아내는 주님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자식들 역시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적든 많든 여러분의 재능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지각(사고력) 역시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전3:11). 부자든 가난하든 여러분의 재물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다윗이 역대기상 29:12에서 고백하기를, [재물과 존귀가 다 주께로부터 나오며 또 주는 모든 것을 다스리사 손에 권능과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부는 다 주님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막대기이니이다, 하매](2). 여러분은 여러분의 손에 무엇을 지니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특권입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손에 쥐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여러분들은 분명 순수하고 보존된 주님의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손에 잡고 있다면 성령의 검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며, 생명의 빛을 쥐고 있는 것이며, 생명의 빵을 쥐고 있는 것이며, 하늘의 지혜를 쥐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쥐고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누군가에 전해 줄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해도 내가 구원받은 경험을 이야기 해 줄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에 여러분이 받은 구원의 체험에 대한 간증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손에 아무 것도 없는 빈 손이라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 손을 모으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손을 들어 저 하늘의 하나님을 부를 있고, 부탁할 수 있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손을 들어 하나님께 일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빈 손의 위력은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신과 회의에 찬 대답만을 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여러분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2).
주님이 물으실 때 모세는 막대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 막대기는 양들을 치는 막대기입니다. 보통 왕들은 전쟁에 내 보내는 장군에게 왕권을 상징하는 그런 ‘보검’이나 지휘봉을 줍니다. 주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로 보내기 전에 머리 위에 둥근 태양이 떠오르게 하시든지, 영광스런 신표를 주셔서 누가 보아도 그 앞에서 꼼짝 못하도록 하는 권위를 지닌 물건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모세가 쓰던 지팡이를 그대로 사용하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니 그가 땅에 던지매 그것이 뱀이 되므로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니라.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붙잡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막대기가 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3-5). 주님은 막대기를 뱀으로 변하게 하는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다윗의 손에 잡힌 돌맹이가 골리앗을 향해 던져졌을 때 그것은 마치 폭탄과도 같았습니다. 그냥 양치기용 막대기가 주님의 손에 잡힐 때 그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영적 보화들을 캘 수 있습니다.
첫째, 막대기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모세의 나이 80입니다. 지금 그는 늘 막대기를 지팡이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몸입니다. 그의 몸을 막대기에 의지해서 양들을 보기도 하고 길을 걷기도 합니다. 지팡이는 그의 몸을 받쳐 주는 지지대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으면서도 막대기를 손에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막대기가 그의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시편 23:4에 보면 목자에게 있어 이 막대기는 위기에 처할 때 방어용 수단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시23:4). 주님은 먼저 모세에게 지팡이를 땅에 던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홀로 서기입니다. 지팡이는 곧바로 뱀이 되었고 모세는 두려워 피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손에 들고 있었던 막대기가 바로 주님의 막대기요 지팡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에 의지하지 않을 때 즉시 옛 뱀인 마귀 앞에 서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손에 주신 것들은 아무리 간단하고 쓸모 없어 보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호하고, 지키시는데 충분한 것들이란 사실입니다.
둘째, 주님은 모세에게 승리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뱀을 보고 피했던 모세에게 뱀을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뱀을 이기는 길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잡는 것입니다. 뱀을 잡으려면 반드시 목 부위를 잡아야 합니다. 뱀은 몸통이나 꼬리를 잡으면 머리를 돌려서 잡은 손을 물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붙잡으라, 하시매] 하셨습니다. 이는 모세가 뱀을 잡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뱀이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를 도망갑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4:7).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모세는 두려워 피했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뱀을 잡았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복종하는 어린아이라도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도망갑니다.
셋째, 뱀을 잡았을 때 다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이 막대기는 통치권을 나타내는 막대기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진 막대기는 쇠 막대기(철장)입니다. 이 막대기로 민족들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뱀의 머리를 부수라고 하지 않으시고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는데, 이는 머리를 부수실 분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3:15에서부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밑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롬16:20).
넷째, 주님이 모세에게 준 이 표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믿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인들 앞에서 자신이 받은 말씀과 능력을 행할 때 히브리인들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사람임을 쉽게 믿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쉽게 믿었습니다(4:30). 모세가 뱀을 자신이 들고 다니는 막대기 다루듯이 다룬다는 사실은 이집트의 파라오를 겁내지 않아도 될만한 충분한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표적의 목적은 주님을 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히브리인들이 모세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믿게 하기 위해 표적을 주신 것입니다. 표적의 목적이 달리 사용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표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표적이요, 거짓 이적입니다.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이적(異蹟)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그 택하신 자들까지도 속일 것임이라.](마24:24). 누군가에 의해서 강력한 표적이 일어날 때, 우리는 그 표적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통해 진위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표적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중보자로 자신을 나타내 보였듯이,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표적과 이적과 권능을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과 세상의 중보자란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손에 잡힌 막대기가 땅에 던져지고, 다시 손에 잡힌 일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예표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막대기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쇠 용광로로 일컬어지는 이집트 땅에 던져졌습니다(신4:20, 왕상8:51,렘11:4). 이스라엘은 완전히 땅에 기는 뱀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종노릇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구원자 모세를 받아들이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대적하고, 위협하는 뱀과 같았습니다. 침례 요한과 주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여,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마23:3; 참조 마3:7,12:34,눅3:7)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를 대적하는 히브리인들 역시 뱀들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피해 미디안으로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뱀의 꼬리를 잡아 다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손에 잡힌 막대기의 역사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힌 은혜 가운데 거하다, 세상에 떨어져서 주님을 대적하는 죄의 종노릇을 하다가, 다시 주님의 손에 잡혀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모세에게 주신 첫 번째 막대기의 표적에는 이스라엘의 미래 역사를 나타내는 예표가 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나안에 입성한 순간부터 주님이 오시는 그 때까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막대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곧 이어 오순절에 성령강림과 사도들이 보여주는 표적과 능력의 말씀을 듣고도 스데반을 돌로쳐 죽임으로써 그들은 세상이란 땅에 던져졌습니다. 1945년까지 이스라엘은 마귀의 밥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다시 그들을 잡으시고 열방의 머리로 그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신28:13).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던 그들이 주님의 손에 잡혀 본래의 지위를 회복하는 미래의 역사가 모세의 손에 쥐어진 표적을 통해 보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째, 모세의 손에 잡힌 막대기는 우리 주님을 나타내는 모형이기도 합니다. 시편 110:2, [[주]께서 시온에서 주의 능력의 막대기를 보내시리니 주는 주의 원수들 한가운데서 다스리소서.](시110:2). 이 장면은 주님의 재림을 나타내는데, 주님이 막대기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초림 때에 오셨지만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주님은 원수들의 손에 넘겨지셨고,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뱀이 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막대기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던져짐으로써 뱀의 모습이 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요3:14).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장에 강력히 반대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세상 모든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셨을 때 그분의 모습은 죄요, 저주가 되셨음에 분명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자신을 광야에서 높이 달린 놋 뱀을 자신에 비유하셨습니다. 뱀은 창세기 3장에서부터 저주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육신은 모두 아담의 자손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마귀의 자녀들이었습니다(요8:44). 그래서, 율법의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막대기로서 주님은 세상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원래의 지위로 높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right hand)에 앉아 계십니다. 이제 잠시후면 모세가 이집트로 가서 이집트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들을 구출하듯이, 주님은 이 땅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모두 구출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배척하고 찌르고 못박았던 주님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손에 든 지팡이를 통해 보여준 첫 번째 표적에 담긴 교리적, 영적, 세대적, 역사적, 예언적 진리들을 다양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손에 무엇을 잡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누구를 위해 사용하십니까?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력을 가지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다 심판받았습니다. 헤롯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신의 영광으로 취했다가 그날 죽음을 당했습니다(행12:21-23).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풍성한 수확을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살기로 결단했다가 그날 밤에 죽임을 당했습니다(눅12:13-21).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바울 사도는 그 답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빌리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따라 내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높이고자 하나니](빌1:20).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몸임을 고백하고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모두 자신의 몸에 대한 소유권 이전 등기 신청을 해야하고, 완료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내 몸을 주님께로 드리지 않는 성도는 이 시간 주님께로 내 몸을 드리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이 물음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어떤 작은 것이라도 뜻대로 사용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님이란 진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이런 진리는 마가복음 6장에서 한번 더 보여 집니다. 다 같이 마가복음 6:37-44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천명의 남자들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셨습니다(막6:37). 제자들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적게 먹어도 200 데나리온의 돈은 있어야 사 먹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막6:3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그들이 알아보고 이르되,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막6:38). 주님은 오천명을 먹이시는데, 제자들이 지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충분하셨습니다. 주님은 파라오를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출하는데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충분하셨습니다. 주님은 골리앗을 죽이고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는데, 다윗이 든 돌맹이 하나로 충분하셨습니다. 다윗은 돌맹이 다섯 개를 준비했지만 네 개는 필요조차 없었습니다(삼상17:40,49).
주님은 우리 손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화답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출애굽기(X)
말씀: 출애굽기 4:1-5
요절: 출애굽기 4:2
10.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할 사람을 찾으시고, 파라오 앞에서 증거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들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수행해 낼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종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준비된 종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종들을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해야 할 일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미 두 번이나 자신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절했습니다(3:11,13). 호렙산의 불타는 떨기 나무 가운데서 주님과 모세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모세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재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불가 이유를 대면 그에 대한 답을 주었고, 핑계를 대면 핑계에 대한 만족스런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부르심에 얼마나 신실한지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서 몇 차례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4:1을 보십시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보소서,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아니하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할 것임이니이다, 하매] 하나님께서 3:18에서 ‘그들이 네 음성에 귀를 기울이리니...’라고 말씀하셨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하는 것은 꼭 불신자들만의 소행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을 때 누구라도 주님의 말씀에 의심을 품고 반대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 앞에 여지없이 드러내었습니다. 불신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반대하고,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다른 무엇을 그 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불신을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생각이 부딪힐 때 나를 부인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굳게 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면 나의 생각이 확고하게 섭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방법은 바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단연 본을 보여 준 사람은 어부인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직업이 어부였고 갈릴리 호수는 자신의 생업터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너희 그물들을 내려 한 번 끌어당기라](눅5:4) 말씀하시자 자신의 생각을 접고 일어섰습니다. [시몬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잡은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5:5). 시몬 베드로가 하기에 가장 힘든 일은 몸을 움직여 노를 저어 다시 바다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고기를 아침에 다시 나가서 잡으라는 상식에 어긋나는 가르침,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완전히 벗어나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시몬이라고 생각이 없는 어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각을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라고 말하는 시몬의 순종이 바로 믿음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어려우면 자신의 생각을 부인하면 됩니다. 내 생각이 틀리고 주님의 말씀이 옳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모세는 반대로 자신의 생각이 옳고 주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의 예상, 생각, 상식, 지식을 넘어서거나 반대되는 그런 주님의 말씀들을 접할 때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내가 틀리고 주님이 옳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막대기이니이다, 하매](2). 주님은 모세의 주장에 대해 답변하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이 순간 모세가 여전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투철한 직업 정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손에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은 새로운 것을 주시기 전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려 하십니다. 우리는 자원하는 마음(willing mind)만 있으면 됩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대로 [먼저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가진 대로 /주께서/ 받으실 것이요, 그가 갖지 아니한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8:12)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세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늙은 노구와 손에 든 지팡이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면 족합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몸을 요구하실 수 있으시며, 요구하십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 병들고 지친 몸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몸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주님을 위해 사용될 때 바르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죄의 도구, 불의의 도구로 내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몸을 의의 도구로 주님께 내어 드리는 헌신(獻身)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섬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각양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4:7). 그래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들을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받은 은사가 없다고 주님께 불평을 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주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각 사람’(every man)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 내가 받은 것이 적다고 투덜댈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은 없는 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누가 너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느냐?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그것을 받았을진대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 아내는 주님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자식들 역시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적든 많든 여러분의 재능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지각(사고력) 역시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전3:11). 부자든 가난하든 여러분의 재물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다윗이 역대기상 29:12에서 고백하기를, [재물과 존귀가 다 주께로부터 나오며 또 주는 모든 것을 다스리사 손에 권능과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부는 다 주님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막대기이니이다, 하매](2). 여러분은 여러분의 손에 무엇을 지니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특권입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손에 쥐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여러분들은 분명 순수하고 보존된 주님의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손에 잡고 있다면 성령의 검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며, 생명의 빛을 쥐고 있는 것이며, 생명의 빵을 쥐고 있는 것이며, 하늘의 지혜를 쥐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쥐고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누군가에 전해 줄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다해도 내가 구원받은 경험을 이야기 해 줄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에 여러분이 받은 구원의 체험에 대한 간증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손에 아무 것도 없는 빈 손이라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 손을 모으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손을 들어 저 하늘의 하나님을 부를 있고, 부탁할 수 있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손을 들어 하나님께 일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빈 손의 위력은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신과 회의에 찬 대답만을 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여러분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2).
주님이 물으실 때 모세는 막대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 막대기는 양들을 치는 막대기입니다. 보통 왕들은 전쟁에 내 보내는 장군에게 왕권을 상징하는 그런 ‘보검’이나 지휘봉을 줍니다. 주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로 보내기 전에 머리 위에 둥근 태양이 떠오르게 하시든지, 영광스런 신표를 주셔서 누가 보아도 그 앞에서 꼼짝 못하도록 하는 권위를 지닌 물건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모세가 쓰던 지팡이를 그대로 사용하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니 그가 땅에 던지매 그것이 뱀이 되므로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니라.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붙잡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막대기가 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3-5). 주님은 막대기를 뱀으로 변하게 하는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다윗의 손에 잡힌 돌맹이가 골리앗을 향해 던져졌을 때 그것은 마치 폭탄과도 같았습니다. 그냥 양치기용 막대기가 주님의 손에 잡힐 때 그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영적 보화들을 캘 수 있습니다.
첫째, 막대기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모세의 나이 80입니다. 지금 그는 늘 막대기를 지팡이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몸입니다. 그의 몸을 막대기에 의지해서 양들을 보기도 하고 길을 걷기도 합니다. 지팡이는 그의 몸을 받쳐 주는 지지대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으면서도 막대기를 손에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막대기가 그의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시편 23:4에 보면 목자에게 있어 이 막대기는 위기에 처할 때 방어용 수단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시23:4). 주님은 먼저 모세에게 지팡이를 땅에 던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홀로 서기입니다. 지팡이는 곧바로 뱀이 되었고 모세는 두려워 피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손에 들고 있었던 막대기가 바로 주님의 막대기요 지팡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에 의지하지 않을 때 즉시 옛 뱀인 마귀 앞에 서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손에 주신 것들은 아무리 간단하고 쓸모 없어 보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호하고, 지키시는데 충분한 것들이란 사실입니다.
둘째, 주님은 모세에게 승리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뱀을 보고 피했던 모세에게 뱀을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뱀을 이기는 길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잡는 것입니다. 뱀을 잡으려면 반드시 목 부위를 잡아야 합니다. 뱀은 몸통이나 꼬리를 잡으면 머리를 돌려서 잡은 손을 물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붙잡으라, 하시매] 하셨습니다. 이는 모세가 뱀을 잡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뱀이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를 도망갑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4:7).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모세는 두려워 피했지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뱀을 잡았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복종하는 어린아이라도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도망갑니다.
셋째, 뱀을 잡았을 때 다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이 막대기는 통치권을 나타내는 막대기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진 막대기는 쇠 막대기(철장)입니다. 이 막대기로 민족들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뱀의 머리를 부수라고 하지 않으시고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는데, 이는 머리를 부수실 분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3:15에서부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밑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롬16:20).
넷째, 주님이 모세에게 준 이 표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믿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인들 앞에서 자신이 받은 말씀과 능력을 행할 때 히브리인들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사람임을 쉽게 믿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쉽게 믿었습니다(4:30). 모세가 뱀을 자신이 들고 다니는 막대기 다루듯이 다룬다는 사실은 이집트의 파라오를 겁내지 않아도 될만한 충분한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표적의 목적은 주님을 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히브리인들이 모세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믿게 하기 위해 표적을 주신 것입니다. 표적의 목적이 달리 사용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표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표적이요, 거짓 이적입니다.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이적(異蹟)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그 택하신 자들까지도 속일 것임이라.](마24:24). 누군가에 의해서 강력한 표적이 일어날 때, 우리는 그 표적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통해 진위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표적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중보자로 자신을 나타내 보였듯이,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표적과 이적과 권능을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과 세상의 중보자란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손에 잡힌 막대기가 땅에 던져지고, 다시 손에 잡힌 일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예표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막대기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쇠 용광로로 일컬어지는 이집트 땅에 던져졌습니다(신4:20, 왕상8:51,렘11:4). 이스라엘은 완전히 땅에 기는 뱀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종노릇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구원자 모세를 받아들이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대적하고, 위협하는 뱀과 같았습니다. 침례 요한과 주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여,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마23:3; 참조 마3:7,12:34,눅3:7)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를 대적하는 히브리인들 역시 뱀들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피해 미디안으로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뱀의 꼬리를 잡아 다시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손에 잡힌 막대기의 역사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힌 은혜 가운데 거하다, 세상에 떨어져서 주님을 대적하는 죄의 종노릇을 하다가, 다시 주님의 손에 잡혀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모세에게 주신 첫 번째 막대기의 표적에는 이스라엘의 미래 역사를 나타내는 예표가 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나안에 입성한 순간부터 주님이 오시는 그 때까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막대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곧 이어 오순절에 성령강림과 사도들이 보여주는 표적과 능력의 말씀을 듣고도 스데반을 돌로쳐 죽임으로써 그들은 세상이란 땅에 던져졌습니다. 1945년까지 이스라엘은 마귀의 밥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다시 그들을 잡으시고 열방의 머리로 그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신28:13).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던 그들이 주님의 손에 잡혀 본래의 지위를 회복하는 미래의 역사가 모세의 손에 쥐어진 표적을 통해 보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째, 모세의 손에 잡힌 막대기는 우리 주님을 나타내는 모형이기도 합니다. 시편 110:2, [[주]께서 시온에서 주의 능력의 막대기를 보내시리니 주는 주의 원수들 한가운데서 다스리소서.](시110:2). 이 장면은 주님의 재림을 나타내는데, 주님이 막대기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초림 때에 오셨지만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주님은 원수들의 손에 넘겨지셨고,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뱀이 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막대기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던져짐으로써 뱀의 모습이 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요3:14).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장에 강력히 반대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세상 모든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셨을 때 그분의 모습은 죄요, 저주가 되셨음에 분명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자신을 광야에서 높이 달린 놋 뱀을 자신에 비유하셨습니다. 뱀은 창세기 3장에서부터 저주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육신은 모두 아담의 자손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마귀의 자녀들이었습니다(요8:44). 그래서, 율법의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막대기로서 주님은 세상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원래의 지위로 높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right hand)에 앉아 계십니다. 이제 잠시후면 모세가 이집트로 가서 이집트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들을 구출하듯이, 주님은 이 땅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모두 구출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배척하고 찌르고 못박았던 주님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손에 든 지팡이를 통해 보여준 첫 번째 표적에 담긴 교리적, 영적, 세대적, 역사적, 예언적 진리들을 다양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손에 무엇을 잡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누구를 위해 사용하십니까?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력을 가지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다 심판받았습니다. 헤롯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신의 영광으로 취했다가 그날 죽음을 당했습니다(행12:21-23).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풍성한 수확을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살기로 결단했다가 그날 밤에 죽임을 당했습니다(눅12:13-21).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바울 사도는 그 답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빌리보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따라 내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높이고자 하나니](빌1:20).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몸임을 고백하고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모두 자신의 몸에 대한 소유권 이전 등기 신청을 해야하고, 완료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내 몸을 주님께로 드리지 않는 성도는 이 시간 주님께로 내 몸을 드리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네 손에 무엇이 있느냐?” 이 물음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어떤 작은 것이라도 뜻대로 사용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님이란 진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이런 진리는 마가복음 6장에서 한번 더 보여 집니다. 다 같이 마가복음 6:37-44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천명의 남자들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셨습니다(막6:37). 제자들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적게 먹어도 200 데나리온의 돈은 있어야 사 먹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막6:3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그들이 알아보고 이르되,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막6:38). 주님은 오천명을 먹이시는데, 제자들이 지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충분하셨습니다. 주님은 파라오를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출하는데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충분하셨습니다. 주님은 골리앗을 죽이고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는데, 다윗이 든 돌맹이 하나로 충분하셨습니다. 다윗은 돌맹이 다섯 개를 준비했지만 네 개는 필요조차 없었습니다(삼상17:40,49).
주님은 우리 손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화답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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