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는 이름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에게 붙는 고유한 타이틀도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것은 단연 ‘하나님 아버지’ 또는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이십니다. 오늘은 성경을 통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함께 상고해 보겠습니다. 이 시대에 간절히 필요한 성경적 진리는 ‘부권 신앙’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권위가 무너지고, 아버지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시대에 살면서 교회 역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인식이 점점 약해지는 상황에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어려운 일에 처하면 아버지 되신 주님을 찾았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내게 부르짖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반석이시니이다, 하리니](시89:26). 지금 교회가 처한 많은 위기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바른 성경적 조명의 결여에서 기인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창조주와 피조물, 목자와 양, 남편과 아내, 주인과 종과 같은 관계보다 더욱 친밀한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에 대해 우리가 가장 접근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속성이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빛의 창조자이시지만 동시에 빛들의 아버지십니다. 야고보 1:17에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빛들의 아버지이시며 생명의 빛이며, 어둠을 밝히는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공적인 발광체나 태양과 별들과 같은 광체를 전혀 필요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의 광채를 발하시는데 이를 성경은 복음의 빛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자녀들이 되리라. …](요12:36a)고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빛들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엡5:8). 빛이 있으라(창1:4)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주셨고, 빛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너희는 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5).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자녀들을 낳습니다.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빛의 자녀들을 낳습니다. 영광스런 복음의 광채는 비치는 곳마다 빛으로 변하여 모두 빛의 자녀들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영광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1:17). 모든 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고로 영광은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스스로 영광을 취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나타내소서.] (시90:16). 영광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자녀들 또한 영화롭게 하시며, 영광의 빛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영광이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 없이는 아들이 있을 수 없듯이 영광의 아버지 없이는 어떤 영광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긍휼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긍휼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1:3). 이미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은 어느 날 아버지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처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 그 때부터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아버지가 되신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먼저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성품, 생명, 능력에 따라 무엇인가를 열매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긍휼이 나오며, 우리는 모두 긍휼을 입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출34:6)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시란 점은 모든 것을 낳으시고, 낳으신 것들에 생명을 부여하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단순히 창조주이시라면 우리는 긍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긍휼을 베푸십니다. 긍휼의 아버지로부터는 긍휼이 나올 수 밖에 없고, 그 긍휼의 대상을 향해 긍휼을 베푸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시103:13). 주님의 긍휼은 육신의 부모와 비길 바가 못됩니다. 육신의 부모는 위기 상황이나 어려움이 닥치면 아들을 버리기도 하고, 단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긍휼의 아버지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내 부모가 나를 버릴 때에라도 [주]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27:10), [여인이 어찌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사49:15). 아버지 하나님은 어떤 강한 부성애나 모성애보다 더 크고 강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아버지이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십니다. 이 땅에는 육신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하늘에서 우리들의 모든 영적 필요를 채우십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더욱 친밀하고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아들로서 인정 받았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으며, 아버지이기 때문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늘 하늘에 있는 천사나 스랍이나 정사들이 아니라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고(마5:9),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완전해야 하며(마548), 우리를 보상해 주시는 분 역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에게 인정 받고 보상을 받는 일보다 더 기쁜 일이 없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救濟)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보상(報償)을 받지 못하느니라.](마6:1).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계약 관계나 주종 관계가 아니라 생명의 관계요, 유기체적 관계며, 가족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실적 위주의 평가가 아니라 친함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실 때에 무리 중의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이 빤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거늘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7~28). 주님께서는 어떤 여자의 말에 “그러하다”인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육신적인 혈통과 가족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들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고 하심으로 영적 가족 관계임을 역설하셨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기 때문이라, 하시더라.](마12:50). 육신의 혈연 관계는 육신의 죽음과 함께 모두 단절되고 해체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영적인 가족 관계는 죽음 이후의 영원 세계에서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혈통, 육신의 가족을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교회는 저 멀리 밀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러분은 육신의 가족 관계보다 더 중요한 영적 가족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도 육신의 형제들이 서로 마음과 힘을 합해 아버지께 청원을 하거나 말씀을 드리면 아버지는 아들들의 소원을 들어 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영적 자녀들이 힘을 합쳐 기도하면 들어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에게 다시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 주시리라.](마18:19).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섬기는 본을 보여 주셨고, 믿음과 순종의 도(道)를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고, 아버지에게 기도하셨고, 아버지께 듣고 본 것을 말씀하셨으며, 아버지의 뜻대로 살았으며,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들로서 사시면서 순종을 배우기도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고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히5:8).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우리를 대하십니다. 때로 징계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자식을 대하시는 방식으로 하십니다.

아버지란 생물학적, 혈통적 아버지를 일컫는 말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아버지란 말은 거의 모든 분야에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바하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이는 선구자란 의미입니다. 미국에서는 죠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을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뉴튼, 독일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괴테 등 모든 분야에서는 선구자, 개척자를 일컬어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란 Originator, Founder 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용례 역시 이것을 지지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帳幕)에 거하는 자들과 가축을 치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고](창4:20)라는 말이 있습니다. 야발은 장막에 거하며 목축을 한 시조란 의미에서 목축업의 아버지였습니다. 이는 시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의 동생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하프와 오르간을 다루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 되었더라](창4:21). 유발 역시 음악의 시조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의 손에서 악기들이 나왔고, 음악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적 개념의 아버지란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로마 캐톨릭 교도들은 사제들을 일컬어 ‘신부(神父)’라고 부르는데 이는 주님께서 금하신 명칭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 일컫지 말라. 이는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마23:9)고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뒤를 이은 속 사도, 그 다음을 교부(敎父)들이라고 교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호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아버지, 지도자, 선생님(랍비) 등이라고 불리는 것이나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아버지’란 칭호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신부도, 교부도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성경의 진리 가운데 단연 두드러진 것은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 앞이나 뒤에 붙는 아버지, 아들에 관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니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란 신분의 변화나 상승을 겪으신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야 아버지가 됩니다. 그와 같은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신 약 2천 년 전 어느 날 아버지가 되셨다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언제나 아버지이십니다. 아들이 있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란 하나님의 속성이요, 하나님의 영광스런 칭호입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여 있고 그의 이름은 기묘라, 모사라, 강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는 아버지라,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임이라.] (사9:6). 주님은 ‘영존하는 아버지’이십니다. 이는 주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조이며, 선구자이며, 근원자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면에서 마귀는 거짓의 아버지입니다. 주님은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부르셨는데(요8:44) 이는 모든 불의와 거짓이 마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란 창조주와 같은 의미입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 속에 계시고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엡4:6). 하나님으로부터 빚어지고, 태어나지 않는 존재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모든 것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태어나게 하는 자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낳으셨습니다. [비에게 아버지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나왔느냐? 하늘의 흰 서리는 누가 생기게 하였느냐?](욥38:28~29). 이를 통해 우리는 비, 이슬 방울, 얼음, 하늘의 흰 서리가 하나님께서 낳았음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낳기만 하시고, 그 뒤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주를 운행하시며, 구름에게 명령하시고, 바람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자연 세계는 모두 지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민족을 낳기도 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주님의 첫 태생이라고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냐? 이러한 일들을 본 자가 누구냐? 땅이 하루에 만들어져 열매를 내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이는 시온이 진통하자마자 자기 자녀들을 낳았음이로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태어나게 한즉 어찌 낳지 못하게 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말하노니, 내가 낳게 한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사66:8~9).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스라엘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첫 태생이었습니다. [너는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은 내 아들 곧 나의 처음 난 자라, 하시느니라.](출4:22). 또 말씀하시기를, [그러할지라도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아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또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하리라.](호1:10)이라 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으며, 때로 징계하시고 무서운 벌을 주시기도 하셨지만 결코 영원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틀림없이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비록 아브라함은 우리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오 [주]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구속자시니 주의 이름이 영원부터 있나이다.](사63:16). 아버지 되심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한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오 [주]여, 그러나 이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오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64:8).

주님은 천사들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욥기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주님이 이 땅을 창조하실 때 기뻐서 노래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욥38:7).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욥38:7).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이셨으며, 그 본질상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은 창세기부터 계속 드러나는데, 사실은 창세 이전부터 아버지십니다. 주님은 모든 영들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육체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바로잡아도 우리가 그들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고 /이로써/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히12:9). 그렇다면 천사들을 비롯한 모든 영적 존재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영을 누가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낳으셨습니다. “거듭난다”란 말은 출생, 탄생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영의 출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생물학적 부모에게서 태어나지만 영은 육신의 아버지가 낳을 수 없습니다. 태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말한 것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3:6~7). 베드로는 이 진리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새 생명의 탄생, 즉 영의 탄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 문자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야고보 사도의 증언을 들어 보십시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1:18). 낳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요한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그분을 영접한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니라.](요1:12~13).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란 분명한 성경적 진리요, 선포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아버지란 사실을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의 손길과 자애로운 은혜의 역사를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피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런 아버지가 아니라 주님은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들이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들이므로 ‘자신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속에 보내셨습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 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상속자니라.] (갈4:6~7). 아들의 영이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아버지는 나를 낳아 주신 분이란 의미도 되지만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상속으로 남겨 주신다는 의미도 됩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라면 그 상속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가를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주님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상속을 주시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당할 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이는 너희가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힘입어, 아바, 아버지, 라 부르짖느니라.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 (롬8:14~17)

그럼 오늘날 흔히 인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성경적으로 옳은 것입니까? 틀린 것입니까? 이는 부분적인 진리로서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시지만 불신자들의 아버지는 아닙니다. 그들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았으며, 아들로 인침을 받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경은 불신자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이러므로 너희의 시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도 이르되, 우리 또한 그분의 자손이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일진대 하나님의 신격(神格)을 결코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 새긴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니라.](행17:28-29). 하나님의 자손(offspring)입니다. 이들에게 생명을 부여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고, 믿기만 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결코 그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 될 수 없는데,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8, [나는 내 아버지와 함께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와 함께 본 것을 행하느니라.](요8:38). 주님은 여기서 ‘너희 아비’라고 하셨는데 이는 분명 마귀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즉각 반박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는 음행을 통해 나지 아니하였고 우리에게는 한 아버지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8:41). 예수님을 불신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8:44). 이 세상에는 각 사람의 육체적 아버지가 따로 있지만 영적인 아버지는 하나님 아니면 마귀 둘 중의 하나 밖에 없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영적인 아버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마귀의 아들이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스스로의 선택이며,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아들이 아닌 자와 아들인 자 사이에 엄격한 구분을 두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아들은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시지만 아들이 아닌 자들은 “저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인도자입니다. 어느 아버지라도 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단연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네가 이제부터 내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 아버지는 내 어린 시절의 인도자시니이다, 하지 아니하겠느냐?](렘3:4). 하나님은 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진리의 한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인도하는 인도하심이야 말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훈육자입니다. 아들을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징계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기를 원하시며, 훈육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 하나님은 우리를 훈육하는 진정한 아버지이십니다. [또한 우리 육체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바로잡아도 우리가 그들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고 /이로써/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히12:9). 생각해 보십시오.. 사생아가 아니라면 징계로 훈육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은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만일 그가 불법을 범하면 내가 사람들의 막대기와 사람들의 자녀들의 채찍으로 벌을 줄 것이로되](삼하7:14)라고 합니다. 징계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정입니다.

아버지는 공급자입니다. 땅에 있는 육신의 아버지도 아들을 먹이고, 필요를 공급하는데 조금도 아까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일해서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과 기쁨을 느낍니다. 이 점에 하나님은 완전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마7:11). 주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며,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은 모든 좋은 선물들을 공급하시는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 성경을 배우는 것은 바로 나의 아버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모르는 아들만큼 어리석은 자도 없을 것입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무제한이요, 무한정입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아들아,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15:31~32). 이 말씀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불평하는 어느 큰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것은 모두 자신의 것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것이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되 아버지의 것을 전혀 받지 못한 것처럼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거룩하신 아버지. 그렇다면 자신의 아들이 불 경건하고, 더러운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말과 행실에서, 모든 면에서 아버지의 성품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되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이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요17:25). 육신의 아버지는 자신이 의롭지 않아도 아들이 의롭게 크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불의와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형제들이요, 영적으로는 한 가족입니다. [이는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되었음이라.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엡2:18~19). 주님은 우리를 아들로 대우하시며, 아들로 인정하시기에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형제들이 서로 우애 있게, 서로를 세워주며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어둠의 일들을 모두 벗어 버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계속 자라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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