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죄를 미워하시느 하나님

하나님은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과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사랑하시지만 죄인을 미워하십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 팽배해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지식은 하나님을 일방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개념하고 규정지어 버린 후 거룩하심, 공의로우심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설교자들은 죄를 미워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시며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하나님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짖지 못하는 개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훌륭한 금언처럼 들리지만 성경적으로 전적으로 틀린 말이며, 거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진리를 가장한 바보 같은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께서 사악한 것을 기뻐하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니 악이 주와 함께 거하지 못하리이다. 어리석은 자는 주의 눈앞에 서지 못하리니 주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다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하시리이다. [주]는 피 흘리는 자와 속이는 자를 몹시 싫어하시나이다.](시5:4-6). 주님은 죄를 미워하실 뿐 아니라 죄인을 미워하시며, 불법을 미워하실 뿐 아니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미워하십니다. 거짓말도 싫어하시지만 거짓말하는 자들을 더욱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본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천상에서 할렐루야 하면서 주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들이 무슨 연유로 찬양하는지 보십시오. [이 일들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많은 사람들의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존귀와 권능이 {주}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이는 그분의 심판들이 참되고 의롭기 때문이요, 또 그분께서 음행으로 땅을 부패시킨 저 큰 음녀를 심판하시고 또 자신의 종들의 피의 원수를 그녀의 손에 갚으셨기 때문이라, 하고 그들이 다시 이르되, 할렐루야, 하니 그녀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더라.] (계19:1~3). 그것은 다름 아닌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찬양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너무나 사랑이 많아서 죄인들에게 주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보고 슬퍼 우는 것이 아니라 ‘할렐루야’를 연발한다는 사실에 많은 성도들이 눈을 감고 귀를 가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를 사랑하지 않듯이 죄인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미워하십니다.

심판의 ‘할렐루야’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것을 외면하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지옥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고 멋대로 생각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인본주의, 자유주의 신봉자들은 자신들이 받을 벌이 지옥이란 사실을 직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할렐루야를 부르는 것은 그들이 심판 받아 지옥에 간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주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롭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되고 의로운 심판을 보는 성도들이 '할렐루야'하며 찬양을 안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나는 입다물고 눈물을 흘려야지 하는 분이 있겠습니까?

다윗은 시편 26:5에 이르기를, [내가 행악자들의 회중을 미워하였사오니 사악한 자와 함께 앉지 아니하리이다.](시26:5)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아내, 자신의 남편도 사랑하지 못해 이혼하는 인본주의자들이 주로 ‘죄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떠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마치 죄인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과 상상이 그려낸 조작된 하나님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하나님, 성경이 계시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어야지 사람들이 지어낸 가상의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거룩하시고 의로우셔서 악을 보지도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차마 악을 보지 못하시며 또 차마 불법을 보지 못하시거늘 …….] (합1:13a). 하나님은 심판의 왕좌에 앉으셔서 악을 흩어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심판의 왕좌에 앉은 왕은 자기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잠20:8). 이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악한 자, 폭력을 사랑하는 자를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의로운 자는 단련하시되 사악한 자와 폭력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의 혼이 미워하시는도다.](시11:5). 그렇다면 우리의 자세 역시 하나님과 같아야 합니다. 다윗은 주님 앞에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는 내가 끊을 것이요, 거만한 눈빛과 교만한 마음을 지닌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이다.](시101:5).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사랑만을 외치시지 않으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아무리 작은 죄도 미워하시며, 아무리 작은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죄 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죄를 모두 넘겨주고, 불법을 용서받은 죄인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와 저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나무에 달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맛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보리 십자가로 나오지 않는 어떤 죄인도 주님은 사랑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며, 용서하노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종들에게 하늘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보다 지옥에 대해서 훨씬 많이 설교하게 하셨고, 행복에 대해 설교하는 것보다 다가올 심판과 진노에 대해서 설교하게 하셨으며, 받을 복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그들이 받게 될 재앙에 대해서 알려 주는데 훨씬 더 큰 비중을 두셨습니다. [너는 크게 외치라. 네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소리 같이 높여서 내 백성에게 그들의 범죄를,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들을 보여 주라.](사 58:1). 이것이 주님이 말씀을 전파할 사역자들을 부르신 부르심의 목적입니다. 주님은 백성들의 범죄, 그들의 죄를 크게 외쳐서 보여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죄라고 선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죄를 지적하지 못한다면 그는 이미 삯꾼 목자입니다. 어떤 이는 주님의 종이 주님의 말씀만 전하면 되지 무엇 하러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들추어내는가? 그런 목사는 목사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사야에게 “네 목소리를 나팔소리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범죄를,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 주라”고 하십니다. 이는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세상에 말씀을 전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세상이 악하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하고, 그들이 죄인임을 외치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동일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죄짓는 자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딤전5:20). 사람들의 기분이나 맞추어 주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악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설교자들은 주님이 부르신 주의 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죄악에 대한 책망이 없고 꾸짖음이 없는 설교는 성경적인 설교가 아니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라 할 수 없습니다.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항상 예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딤후4:2). 여기서 우리는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는 말씀을 봅니다. 매일 도덕 강론 같은 윤리적인 설교나 하고, 칭찬이나 해주고, 힘과 위로를 준답시고 입술발린 이야기나 하는 것은 설교자의 직무를 무시하는 것이며,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가 되게 하여](딛1:13). 바울은 디모데에게 “엄히 꾸짖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죄를 행하는 자들, 잘못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대하라는 말은 사람들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주에게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하시고](히1:9). 우리는 어떤 사소한 불법도 주님의 뜻이 아니요, 주님의 성품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편법, 탈법, 불법을 자행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불의하게 행하는 자들을 다 가증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는 완전하고 공정한 저울추와 완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지니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게 되리니 이는 그런 일 행하는 자들 곧 불의하게 행하는 자들이 다 [주] 네 하나님께 가증한 자이기 때문이니라.] (신25:15~16). 주님은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시는지 여러분은 분명히 아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받아들임으로 불법을 생각조차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불법을 미워하시고, 죄를 미워하시는데 주의 자녀들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죄의 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니라.](요8:34). 하나님의 자녀가 죄의 종으로서 살게 됩니다. 이는 매우 슬픈 일입니다. 이는 마치 왕자가 노예가 된 것처럼 사는 것이나 사람이 짐승처럼 사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발적으로 죄에게 자신을 순종해서 종이 되겠다고 자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버리고 왜 죄의 종으로 살려고 합니까?

주님은 분명히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형제들아, 너희가 부르심을 받아 자유하게 되었으니 오직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갈5:13). 죄의 종으로 살면 성령이 소멸되며, 성령의 열매대신 육신의 열매만 맺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종으로서 삽니다. [너희에게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를 악을 가리는 도구로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로서 행하라.](벧전2:16). 한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의 자녀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의 종이 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의 종이 되는 경우 역시 허다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얻은 후에 술, 담배, 마약, 오락, 도박 등에 자신을 내어 주어서 죄의 종으로 삽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불순종함으로써 죄의 종으로 삽니다. 마치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 종살이를 하고 싶어 했듯이 구원받은 자녀들이 구원 받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순종하게 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데 죄의 종을 자원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얼마나 분노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자유를 약속하나 정작 자기 자신은 부패의 종이 되었으니 이는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라.](벧후3:19).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육신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지 못하면 성도는 자유를 빼앗기고 죄의 노예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죄의 노예가 되면 죄의 다스림을 받게 되고, 죄의 속임수에 속게 됩니다. 죄에는 쾌락이 있습니다. 물론 잠시의 쾌락입니다(히11:25). 이 쾌락으로 인해 성도들이 자신을 죄의 종으로 기꺼이 헌신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한번 사슬에 묶이고 나면 쉽게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주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부자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너희가 땅에서 쾌락 가운데 살며 방탕함에 빠져 살육하는 날에서와 같이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약5:5). 이것은 죄 가운데 사는 죄의 종된 모습인데 이 모습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리석은 성도들이 수두룩합니다. 이는 주님이 미워하시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살았으나 죽은 것입니다. [향락에 빠져 사는 여자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니라.](딤전5:6).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는 살았으나 죽은 교회가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말씀을 버린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가 아니라 죽은 교회입니다. [사데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은 자로다.](계3:1). 만약 현재 죄의 종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면 주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십시오. 주님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출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기를 결단하십시오. 주님이 미워하시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죄에 단호하게 대적하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노라.](히12:4). 죄는 회피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는 타협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는 싸워야 할 대상이지 그에게 가서 종노릇하며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죄를 대적하십시오. 마귀를 대적하듯이 죄를 대적하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 이것을 위하여 너 역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하였도다.](딤전6:12). 많은 사람들이 싸움을 포기함으로써 죄의 종이 되고 맙니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보혈을 들고 단호하게 대적하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무릇 성도라면 죄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하며, 죄를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하여금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안에서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肢體)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2~13). 주님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자신의 자녀들이 죄에게 순종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죄에게 자신의 지체(손, 발, 다리, 눈, 귀 ....신체 부분)를 내어 주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헌신이야말로 승리의 비결입니다. 영적 전쟁에는 중립지대가 없습니다. 자신을 주님께 드리지 않으면 죄에게 내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주님은 성도들이 죄를 지을 때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하시는 권면의 말씀을 너희가 잊었도다. 이르시되,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이는 {주}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라, 하셨으니 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들로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누구나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히12:5-8). 주님은 자녀들이 범죄하는 것을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징계를 통해 돌이키게 하십니다. 이 징계는 때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곧 바로 목숨을 거두어 가 버리셨으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사탄에게 내어 주었습니다(딤전1:20). 이는 육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고전5:5, 롬8:13).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가 죄의 종이 되어 여러 죄를 범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시오, 죄인을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런즉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계3:19).

이미 죄의 종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자백하고 회개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양심의 찔림을 받거나 말씀을 통해 깨우침을 받을 때 여러분은 즉시 자백하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밝히 드러나게 되나니 이는 무엇이든지 밝히 드러나게 하는 것은 다 빛이기 때문이라.](엡5:13).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주의 피는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는 피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씻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를 종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근거는 죄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제거해 버리면 마귀는 더 이상 종으로 부려먹을 수 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주의 말씀을 마음 속에 두면 범죄하지 않게 됩니다. [또 주의 종을 지키사 고의로 짓는 죄들로부터 떠나게 하시고 그 죄들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곧바르게 되어 큰 범죄들에서 벗어나 무죄하리이다.](시19:13). [내 발걸음을 명하사 주의 말씀 안에 있게 하시고 어떤 불법도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시119:133).

주의 긍휼을 간구하십시오. 주님은 동정심이 많으시며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주께서 다시 돌이키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의 불법들을 누르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리이다.](미7:19).

죄란 무엇인가? 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죄니라”고 규정한 것들을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모든 불의가 죄입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요일5:17a).

2. 둘째, 율법을 범하는 것이 죄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이는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요일3:4). 율법이 없는 곳에는 당연히 범법도 없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나니 이는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죄도 없기 때문이니라.](롬4:15).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약2:10).

3. 셋째,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죄입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를 받나니 이는 그가 믿음을 따라 먹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한 것은 죄니라.](롬14:23). 불신은 가장 큰 죄입니다. 사람이 왜 정죄를 받는가?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요3:18).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요16:9).

4. 넷째, 어리석은 생각이 죄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은 죄요, 비웃는 자는 사람들에게 가증한 자니라.] (잠24:9). 생각은 그 사람 자체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함같이 그 사람도 그러하기 때문이라.](잠23:7a)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는 그분께서 넘치도록 용서하실 것임이라.](사55:7). 우리는 건전한 생각의 영을 가져야 하며, 생각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5. 다섯째, [거만한 눈빛과 교만한 마음과 사악한 자의 쟁기질은 죄니라.] (잠21:4).

6. 여섯째,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약4:17).

7. 일곱째,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또한 나로 말하건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주]께 범죄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12:23).

미국의 위대한 전도자였던 죤 R. 라이스 목사님은 설교자들이 죄에 대해서 설교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대적하며, 하나님께서는 죄를 대적하시는 분이며, 성경은 죄를 대적하며, 교회들은 죄를 대적하며, 심지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도덕적인 양심이 죄를 대적하기 때문이다. 둘째, 설교자들이 죄에 반대하는 설교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전체 성경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데에는 반드시 죄들, 특별한 죄들을 책망하는 부분에 대한 설교와 가르침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셋째, 분명하게 죄에 반대하는 설교를 할 것을 성경이 설교자들에게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한 성경 전파자들이 죄에 대적하는 말씀을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다섯째, 죄에 반대하는 설교가 그리스도인들을 소생시키며 죄인들을 구원시키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이유로 우리는 죄를 대적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죄에 대해 대적하지 않는다면 어떤 죄인에게도 죄를 지적하는 말씀을 보여 주지 못할 것이며,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를 전해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믿음이 마음속에서 지워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죄에 대해 무감각한 것입니다. 누가 영화관을 갈 때 “그것은 취미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입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가 그 앞에서 시간을 죽일 때 여러분은 “시간을 사서 아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그것이 생활 방식이 아니라 죄라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게으름은 성격이 아니라 죄입니다. 탐욕은 성격이 아니라 죄입니다. 농담, 비속한 말, 헛된 말을 하는 것은 장난이 아니라 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열심히 죄를 지은 것입니다. 교회에 와야 할 시간에 오지 않는 것은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죄'입니다. 죄를 죄로 인식하고 주님이 그것을 미워하시며, 그것을 행하는 나는 죄의 종이 되었으며 주님의 징계가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자백하고 회개해야 할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죄에 대적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이 죄에 대적한다는 것은 불신자들도 아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영적 진리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불법에 대해, 죄에 대해 대적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곧 마귀와 죄에 대한 전쟁입니다. 주님의 거룩하심, 주님의 의로우심,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려면 여러분은 반드시 죄에 대해 대적해야 합니다. 죄를 증오하고, 죄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제대로 찬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란 죄를 제거하신 주님의 십자가와 그 피와 죽으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 역시 죄를 멸하신 주님의 십자가에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미워하지 않는 자는 결코 주님의 사랑을 찬양할 자격이 없습니다. 죄를 미워하는 그 정도에 비례해서 여러분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크기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대언자들 가운데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마, 후메내오, 알렉산더와 같이 이름을 거명하면서 죄를 책망했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개인적인 이름을 거명하며 죄를 구체적으로 책망하고 드러내었습니다. [내가 교회에게 썼으나 그들 가운데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행하는 행위들을 기억하리라. 그가 악한 말들로 우리를 헐뜯고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며 자기 자신도 형제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들도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요삼1:9~10).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하셨고, 침례인 요한이 그러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스데반 역시 죄인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목하면서 책망했습니다. 죄를 대적하며, 책망하는 것은 성도들의 기본 임무 중의 하나입니다. 죄를 모른 채 하고 묵과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침례인 요한은 당대의 왕이었던 헤롯에게 가서 그의 사적인 죄를 지적하며 설교했습니다.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녀를 취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 하였음이라.](마14:4).

죄를 대적하는 성도만이 죄를 미워하시며, 악을 흩으시고, 사악한 자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는 성경에서 제시된 하나님과 너무나 다른 하나님을 설교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는터라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이 전하는 하나님은 마치 무서운 폭군이요, 벌주시는 것을 즐기는 가학적인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온유하셨던 주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보십시오. ‘독사들, 회칠한 무덤, 위선자들이여, 눈 먼 소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죄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죄에 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죄인들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회개시켜며, 혼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은혜를 전하기 전에 먼저 저주를 선포해야 하며, 하늘을 말하기 전에 먼저 지옥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가책을 받기 전까지 결코 죄를 회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기 전에 구원의 복음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죄인들을 얼마나 가증히 여기시며, 싫어하시고, 무섭게 벌주시는 분이시며 그들을 영원한 지옥 불에 쳐 넣어 버리신다는 성경의 엄숙한 경고를 선포함으로써 성령께서는 그의 마음 가운데 말씀으로 죄를 자각시키시고, 죄인됨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로마서 3장의 죄와 죄인됨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고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죄에 대한 깨달음없이 복음을 영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사람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돌무덤이라. 그들이 자기 혀로 속임수를 쓰나니 그들의 입술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들의 입은 저주와 악독으로 가득하며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므로 파멸과 고통이 그 길에 있어 그들이 화평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3:10~18). 오늘날 성도들이 왜 이렇게 복음을 전해도 열매가 없는가? 묻는다면 그들이 복음의 반의 반쪽만 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인도 전도자를 통해 죄에 대한 책망을 통해 성령께서 듣는 이의 마음 속에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고, 그의 양심으로 죄를 자각시키실 때까지, 자신의 죄들을 회개할 수도 없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죄악을 미워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불의를 미워하지 않으면 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악한 것을 부인함이 없이는, 의에 주리고 갈급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란 악을 버리는 것이 전제됩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죄를 버리는 것은 이혼과 같이 혁명적인 것이며,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결혼과 같이 혁명적인 것이다. 회개는 사탄과 이혼하는 것을 나타내고, 믿음은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혼과 재혼은 둘 다, 우리가 자기의 죄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 향할 때, 즉시 마음에서 일어난다.’라고 했는데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누구든지 죄들을 시인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잠28:13).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은 죄를 숨기고, 시인하지 않고, 자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혼들에게 어떤 은혜도 긍휼도 베풀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주님께 죄를 시인하고 자백하고, 긍휼을 구할 때 주님은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근거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도 미워하시지만 죄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을 마련해 주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님이 마련해 두신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나아가면 모든 죄가 다 해결됩니다. [[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니 항상 징계하지 아니하시며 자신의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대우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크시기 때문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분께서 우리의 범죄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체질(體質)을 아시며 우리가 /다만/ 먼지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로다.] (시103:8~14).

하나님은 죄를 너무나 미워한 나머지 우리의 모든 죄를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위에 모두 담당시키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에 처하시고, 지옥에 가게 하심으로써 해결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지신 죄는 저와 여러분의 죄입니다. 그분의 흘린 피는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죄에 대해 심각성, 위해성, 독성,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란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어느 정도 미워하시는가?에 대한 대답은 자신의 독생자이실지라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고, 그 혼을 지옥에 보내시며, 얼굴을 가리실 정도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짓는 죄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죄이며, 그분의 몸에 채찍질 하는 죄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대가는 죽음이며, 그에 대한 형벌은 지옥입니다. 당사자가 직접 당하든 우리 주님이 대신 당하시든 그 대가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은 죄로 인해 독생자 하나님께서 홀로 고통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뿌린 죄악의 씨앗으로 여러분의 부모나 자녀가 고통을 당한다면 여러분이 그 죄악을 증오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짓는 죄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고통의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면 마땅히 죄를 미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죄를 짓는 죄인을 미워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죄에 대해 경각심이 둔한 사람일수록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베푼 십자가의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들을 미워하십시오.

이제 십자가를 통해 죄를 해결하신 주님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곧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네 범죄들을 지워 버리는 자니 네 죄들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죄들을 지워 버리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인 동시에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차마 우리의 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 해결해 버리신 것입니다. [내가 네 범죄들을 빽빽한 구름같이, 네 죄들을 구름같이 지워 버렸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이는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음이니라.](사44:22). 갈보리의 십자가는 주님의 죄에 대한 증오와 심판이 드러난 곳이며, 우리를 향한 사랑이 선포된 곳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십자가의 주님을 깊이 영접하여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고 믿음을 늘리시기를 간구 드립니다.






고 단순한 진리!
Brother. Peter Yoon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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