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새 페이지 1

하나님은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충만(充滿)이란 가득 찬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이 채우시지 않으면 사람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채웁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가 가득 차 있습니다. 성질 머리가 나빠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성격이 화통하고 직선적이어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은 모두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속이 끓어 오르고 마침내 폭발할 정도로 노기가 가득 차오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두루마리 성경을 읽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 진노가 가득하여](눅4:28).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눅6:11). 제자들이 부활을 증거 했을 때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이에 대제사장과 또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 (곧 사두개인들의 분파가) 다 분노가 가득하여 일어나서](행5:17). 죄인들의 마음은 마치 화약 저장고에 화약이 가득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촉매가 불만 일으키면 그냥 폭발하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롬13:14).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야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한 마디 말이 있습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몸 참는다’는 것입니다. 남이 잘되었다는 소식보다 남이 망했다는 소식이 더 기쁘고, 위로를 얻는 사람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도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시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들을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거슬러 말하고 반박하며 모독하거늘](행13:45). 어떤 사람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포장하고 가리고 숨기고 속일 수 있지만 입으로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이는 너희가 마치 회칠한 돌무덤 같기 때문이니 그 겉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나 그 속은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부정한 것으로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되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도다.](마23:27-28). 하나님은 자신이 채우시지 않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욕심으로 자기를 채웁니다. 어떤 사람은 근심으로 가득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에 근심이 가득 찼습니다. [도리어 내가 이 일들을 말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요16:6).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무엇으로 채웠습니까? 사탄으로 채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고 땅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

이런 모습은 우리의 옛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현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벗어 버려야 할 것들을 가득 채우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나간 때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곧/ 온갖 불의와 음행과 사악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요,](롬1:29).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의 입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의 입은 저주와 악독으로 가득하며](롬3:14). 지금 불신자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 보십시오. 음담패설, 농담,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말이 이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들의 혀로는 속임수를 베풀고, 혀 밑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말하기를,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니 이것은 다스릴 수 없는 악이요, 죽이는 독으로 가득한 것이라.](약3:8)고 했습니다. [이전의 행실에 관하여는 너희가 속이는 것으로 가득한 욕심들에 따라 부패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 사람들의 눈은 어떻습니까? [또 음욕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죄를 그칠 줄 모르며 동요하는 혼(魂)들을 속이나니 /이들은/ 곧 탐내는 습관으로 마음을 단련시킨 자들이요, 저주받은 자식들이라.](벧후2:14). 사람들의 손은 어떻습니까? [너희가 손을 내밀 때에 내가 내 눈을 돌려 너희에게 숨기겠으며 참으로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니라.](사1:15). 땅은 죄와 불법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정과 불법이 넘칩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그 땅에는 우상들이 가득했습니다. 어디 가나 우상이 눈에 보이고, 밟혔습니다. 요즘 대도시에 가보면 어디가나 호텔, 모텔, 여관들이 눈에 띕니다. 술집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마치 불이 난 집 안에 연기가 가득하듯이, 홍수 때에 물이 넘치듯이 세상은 악으로 넘쳐 나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난 모든 현상은 속에 있는 것들이 원인입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가득 차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 신문, T.V, 책, 영화, 건축물, 직업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병원에는 병자들이 가득차고, 교도소에는 죄수들이 가득차고, 술집에는 술주정뱅이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내셔서 우리 안에 다른 것들로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하심에서 받았으매 은혜 위에 은혜니](요1:16).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무한한 자원으로부터 자원을 공급받습니다. 주님 안에는 하나님의 신격의 충만함이 모두 거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기 때문이라.](골2:9).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는 그분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하는 것을 기뻐하시고](골1:19). 우리는 그리스도를 뿌리로 삼는 가지들입니다. 뿌리에 있는 것이 가지로 올라오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충만함에서 받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슬픔, 시기심, 분노, 악독, 저주, 원망, 음란, 탐욕 등 어떤 불법적이고 불의한 것도 거하지 않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선하고, 순수하고,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기쁘고, 영광스런 것들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몸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1:23). 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고, 혹사하고, 술과 담배, 마약 등에 내어 주어서 스스로 망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몸을 돌보시고, 충만하게 하십니다. 주님이 부활하사 승천하신 것은 우리를 충만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친히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엡4:10). 하나님의 소원은 이것입니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엡3:19).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우리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귀한 것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채워져야 하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거듭난 성도는 모두 성령을 받았지만 모든 성도가 성령 충만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지속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過度)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5:18). 우리 마음은 성령으로 채움 받아야만 만족이 있고, 참 능력이 있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성령은 있지만 충만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혹시 바람이 반 이상 빠진 공으로 축구나 농구나 배구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차도 나가지를 않고, 던져도 힘에 대한 반응이 없습니다. 바람을 가득 채우지 않는 자동차 타이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플랫 타이어는 있어도 달리지를 못합니다. 저희 집에는 자전거 한 대가 있는데 몇 달째 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 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무 고장 난 곳이 없습니다. 고무도, 살대도 모두 새 것입니다. 어떤 부품을 갈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돈도 들지 않는 한 가지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지 않아서 못 쓰는데 그것은 바로 공기(바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하지 못한 것은 마치 바람이 빠진 타이어와 같습니다. 에너지가 없는 밧데리와 같습니다. 열을 낼 수 없는 빛은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이 없는 신앙은 인조 신앙으로 생명이 없습니다. 요사이 사람이 기술이 발달되어 프라스틱으로 온갖 아름다운 꽃들을 다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인조 꽃입니다. 아무리 예뻐도 거기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그것에는 벌도 나비도 날아오지 않습니다. 성령이 충만이 없는 신앙은 인조 신앙입니다. 그곳에서는 하늘나라 생명이 없고 하늘나라의 향기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생명이 있는 신앙, 향기 있는 신앙, 하늘나라의 생명으로 넘치는 그러한 개인과 교회를 만들어 줍니다. 모든 성도는 예외 없이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가득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개스를 넣을 때 개스 탱크에 가득 채우듯이 성령으로 자신을 가득 채울 때 그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성령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은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주님의 일은 인간적 지혜와 학교에서 받은 교육, 지식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 충만함을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명철(明哲)과 지식과 온갖 기술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충만하게 하사](출35:31). [지혜와 명철(明哲)과 지식과 온갖 기술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충만하게 하여](출31:3). 주님은 자신의 일꾼들에게 늘 성령 충만을 주셨습니다. 모세, 여호수아를 비롯한 하나님의 대언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능력이 있었던 것은 인간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향해 파라오가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파라오가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창41:38).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될 때는 그는 이집트의 총리의 직분을 잘 수행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 인맥이나 학벌이나 뒤를 보아 줄 연줄이 있어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히 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종신 총리직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다니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제국의 모든 술사들, 지혜자들이 함께 동문수학을 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충만했습니다. 그가 왕조를 바뀌는 역사의 현장에서 늘 두각을 드러내었던 것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울 역시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 주의 성령이 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범죄함으로써 주의 영이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의 영께서 사울을 떠나고 [주]께로부터 온 악한 영이 그를 괴롭게 하므로](삼상16:14). 다윗 역시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처럼 주의 영이 떠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기도함으로써 성령을 소멸치 않았습니다. 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나를 주의 눈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우리는 범죄함으로 주님의 영을 슬프시게 하고, 근심케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능력도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불순종과 불신은 반역이요, 주님의 거룩한 영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망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반역하여 그분의 거룩한 영을 괴롭게 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돌이키사 그들의 원수가 되어 친히 그들과 싸우셨느니라. 그때에 그분께서 옛날과 모세와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여 이르시되, 자기 양떼의 목자와 함께 바다에서 그들을 이끌어 올라오게 한 자가 어디 있느냐? 그 속에 자기의 거룩한 영을 둔 자가 어디 있느냐?](사63:10-11).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영을 모세에게 두었습니다. 그리고 250명의 사람들 위에 두셨습니다. 이들이 천부장, 백부장 등의 치리자 역할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주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집사들은 교회의 행정, 즉 일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자격 요건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해야 집사를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령 충만이 없이는 주의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복음 전파 역시 성령 충만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능력 있는 표적과 이적을 통해서나 하나님의 영의 권능으로 이루신 것이니 이로써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 근방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만히 선포하였노라.](롬15:19). 성령 충만한 사람이 하는 일은 복음 전파입니다. [그들이 기도하기를 마치매 함께 모인 곳이 흔들리더니 모두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니라.](행4:31). 성령은 증거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케 될 때 우리는 모두 증인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성령으로 채움받지 않으면 기름이 없는 차와 같고, 전원이 없는 전자 제품과 같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이 없이는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이요, 아무리 교회에 왔다 갔다 해도 불꺼진 등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등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없이 육의 신자로 남아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성령이 임한 사람의 일차적인 특징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 모여 예배나 드리고 밖에 나가 전도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성령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 가운데 임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일로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나가서 뜨겁고 열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되심을 전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증거자가 되는 것은 많은 교육을 받고 고된 훈련을 받고 잦은 세미나에 참석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속에 성령의 뜨거운 열정이 임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들은 머리만 잔뜩 커졌지 말씀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전도하지 않습니다. 증거하지 않는 교회는 살아 있으나 죽은 교회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성도는 그 속에 성령이 임하여 계시지 않다는 증거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방언을 말하고, 지식이 넘치고, 병을 고치고 별의별 일을 다해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증거자로서의 열매가 반드시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성도는 성령이 같이 하지 않는 육신적인 성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채우시는 것은 우리를 지혜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일을 맡기실 때 지혜의 영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사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가 필요합니다. [너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 곧 내가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게 한 모든 자에게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론의 의복들을 만들어 그를 거룩히 구분하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리라.](출28:3). 성막을 제작하는데 주님은 지혜를 충만케 하신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일을 하는데 지혜가 없으면 힘만 들고 능률은 없습니다. 고비용 저효율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혜를 충만케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효율적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지혜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사 온갖 일을 하게 하시되 곧 조각하는 일과 정교한 일과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고운 아마 /실/로 수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어떤 일이라도 하게 하시고 또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출35:35). 주님께 지혜를 받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능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성막 제작과 성전을 짓는 일은 돈만 있다고 되지 않습니다. 일을 할 수 있는 일꾼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지혜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십니다.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明哲)의 영이요, 모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사11:2). 지혜가 무엇입니까? 악을 피하고 주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지혜란 지식을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특히 지도자는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가정이든 교회든 회사든 국가든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늘 지혜를 충만케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집사를 뽑는데 자격 요건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행6:3). 정직하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집사가 되었습니다. 집사는 교회의 행정과 사무를 맡아 일을 하는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직분을 맡은 사람은 반드시 지혜를 충만케 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영으로 말하는 것을 능히 대적하지 못하매](행6:10).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역시 지혜가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신34:9). 지혜가 없으면 백성들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며,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지혜로 충만케 될 수 있습니까?

주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는 다 큰 명철(明哲)이 있는 자니 그분을 찬양함이 영원토록 지속되리로다.](시111:10).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것들을 아는 것이 명철이니](잠9:10),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훈계이니 명예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잠15:33). 시작이 없으면 중간도 끝도 없습니다. 주를 두려워함이 없으면 지혜를 얻을 수 없고, 당연히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지혜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고전1:2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가 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聖別)과 구속(救贖)이 되셨으니](고전1:30). 내 마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을 신뢰하면 이미 지혜로운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지혜를 줍니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回心)시키고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19:7).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충만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성경을 읽지 않을 때 지혜의 충만은 없습니다.

지혜를 구할 때 주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지혜를 공급하시며, 충만케 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늘 주님께 지혜를 구하여 무슨 일에나 말에나 지혜롭게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이 충만한 것을 말합니다. [이제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음 안에서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사 성령님의 권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 형제들아, 내가 또한 너희에 대하여 확신하노니 너희 역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충만하여 능히 서로를 훈계할 수 있느니라.](롬15:13-14). 성령 충만의 증거는 내적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하며, 소망이 넘치며,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충만합니다. 일자무식한 갈릴리 어부들이 배운 학문이 없었음에도 그들은 어떤 바리새인들보다 더 똑똑했습니다. 베드로가 행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행4:12)란 짧고도 명확한 한 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그들이 본래 학문 없는 무식한 사람들인 줄로 알았으므로 이상히 여기며 또 그들이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줄도 알게 되고](행4:13). 성령 충만했던 베드로는 이미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언제나 구약을 관통하는 논리와 설득력과 확신과 담대함과 권능이 있었습니다. 술취한 사람은 횡설수설하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은 논리적입니다. 마음은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주신 기쁨, 주님이 주신 평강이 가득합니다. 때려도 기뻐합니다. 모욕을 주어도 기뻐합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인하여 수치 당하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진 것을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마음에 근심과 슬픔, 염려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더라.](행13:52). 성령과 짝을 이루는 것은 기쁨이지 슬픔이 아닙니다. 희락이지 근심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들을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있습니까? 거리끼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희락입니다. 사도 요한은 편지를 쓰면서 편지를 쓰는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1:4).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이것이 성경이 씌여진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웃는다고 기쁜 것이 아닙니다. 코메디 프로, 연속극, 영화, 게임 등을 보면서 아무리 웃어도 그것은 참된 기쁨은 아닙니다. 웃음은 단지 현상입니다. 주님은 성경에서 단 한 번도 웃으셨다는 기록이 없지만 마음은 늘 기쁨과 평안이 거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령님 역시 기쁨을 주셨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박해 속에서 성령님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따르는 자가 되었으니](살전1:6). 성령님의 기쁨으로 인해 박해 가운데서 말씀을 받아 성장한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어려움, 가난, 질병 등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그것을 이길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은 기쁨이 충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기쁨을 충만케 하십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눈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토록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주의 눈 앞에 있는 충만한 기쁨, 주의 우편에 있는 즐거움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열매입니다. 열매는 사람의 인격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 줍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품위를 지켜 줍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타이틀이나 한 재산 떼어내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말씀을 통한 기쁨 충만. 그리고 기도 응답을 통해 기쁨을 충만케 해 주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기도 응답을 통한 기쁨 충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마음 속에 강한 확신이 생깁니다. 확신에 찬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고집에 근거한 확신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주신 확신은 사람들이 결코 흔들 수 없습니다. 마귀도 이길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과학자들의 반론에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고, 많이 배운 사람들의 논리와 설득에 신앙이 무너지는 것은 그들 속에 충만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두려움이 없고, 강한 확신이 있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전쟁이 나를 대적하여 일어날지라도 내가 이것을 확신하리로다.](시27:3). 왜 그렇습니까? [이는 [주]께서 네 확신이 되시므로 네 발을 지켜 /거기/ 걸려들지 아니하게 하실 것임이라.](잠3:26). 주님이 우리의 확신이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확신이 되시며, 주의 성령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주십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것은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의 성령께서 강한 확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주님을 두려워 하면 주님이 확신을 주시고, 흔들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주]를 두려워하면 강한 확신이 있나니 그분의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리라.](잠14:26). 주를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고, 주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무엇이나 두려운 법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할 때나 묵상을 할 때 확신을 가지고 하시기 바랍니다. 확신이 없이 하는 기도는 그냥 읊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듣고 계시고, 응답하신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오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땅의 모든 끝과 멀리 바다에 있는 자들의 확신이 되시는 주께서 의로운 중에 두려운 일들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시65:5).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막연히 바라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성령은 믿음의 영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씨에 대한 약속”을 받았을 때 그는 먼 미래의 일을 현재의 것처럼 소유했습니다. 소망을 현실로 받았습니다. 미래를 현재로 받는 것 그것이 바로 소망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열심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고](히6:11). 주님의 약속은 모두 미래형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현재 소유하는 방법은 믿음입니다. 충만한 확신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현재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중간한 자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충만하게 하시고, 충만한 상태에 이르게 하십니다. 빈 통에 물을 가득 채우면 꽉 찬 물통이 됩니다. 주님은 반만 채우시지 않습니다.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종들에게 물들을 아구까지 가득 채우도록 하셨듯이 주님은 가득 채우십니다. 풍선에 공기를 가득 채우면 벌룬이 됩니다. 이 때 하늘을 날 수 있게 됩니다. 타이어에 공기를 가득 채우면 도로를 달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 속을 무엇인가로 채워 주십니다. 절대로 빈 공간으로 두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채우는가? 우리가 마음을 비우면 거기에는 마귀가 들어옵니다.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거늘 이에 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되니라. 이 사악한 세대도 참으로 그와 같이 되리라.](마12:44-45).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은 주님의 영광이 충만한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주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납니다. [그 뒤에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그 위에 있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기 때문이었으며](출40:34-35).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와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주의 영광이 충만히 드러났습니다. 이런 영광은 천년 왕국 때 온 땅에 가득찰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충만케 하십니다.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할 것임이라.](합2:14). [하나님께서 데만에서 오시며 거룩하신 이께서 바란 산에서 오셨도다. 셀라. 그분의 영광이 하늘들을 덮으며 그분의 찬양이 땅에 가득하도다.](합3:3). 재림 때 임하게 될 주의 영광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주시며,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거의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십니다(히1:3). 우리는 모두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3:2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롬5:2).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이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습니다. [이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기 때문이니라.](고후4:6).

우리는 어떻게 영광을 돌리는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 아멘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분 안에서 예가 되고 그분 안에서 아멘이 되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니라.](고후1:20).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주님 안에서 예가 되고 아멘이 되었듯이 우리 역시 주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 때에 약속은 현실이 되고, 체험이 되고, 열매가 되고, 능력이 됩니다. 둘째, 의의 열매들을 맺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11). 셋째, 모든 일에서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딤전1:11)을 헛되이 하는 성도는 결코 주님의 영광을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이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사야가 주님의 영광을 보았듯이 우리가 그렇게 주의 영광을 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주님의 말씀을 믿을 때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성령을 통해 말씀에 접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드러나는 그곳에 주의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가 말하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요11:40). 여러분이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긍휼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오 [주]여, 주의 긍휼이 땅에 충만하오니 주의 법규들을 내게 가르치소서.](시119:64). - 앞에서 다루었습니다.

재림 때에 이 땅은 주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의가 거하는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이 날을 고대 합니다. 온 땅에 주의 영광이 충만하고 공의가 충만하고 주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그 날을 사모합니다.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주]는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높은 곳에 거하시며 공의와 의로 시온을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이라.](사33:5). 그러나 여러분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말씀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주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 통달하시는 분이시요, 진리 한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시요, 말씀의 해석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를 아는 지식은 성령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이로써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長成)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엡4:13).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주를 아는 지식은 매우 뛰어납니다.

네 구절을 봅니다. 빌립보서 3:8, 골로새서 1:10, 베드로후서 1:8, 3:18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지식이요, 성령 충만한 증거입니다. [참으로 모든 것을 확실히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세상 지식을 버리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자라 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지식 안에서 자라납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 주님을 아는 지식은 믿음에서 출발하여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신성한 권능, 신성한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본성(divine nature)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이것은 목표가 아니라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하여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나니 곧 /주께서/ 이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사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느니라.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3~8). 말씀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믿음에서 사랑까지 모든 영적 성품은 다 주님의 성품이며,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충만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 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주님을 별로 알지 못합니다.’, ‘성경을 조금 밖에 몰라요’와 같은 말은 수치입니다. 주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빈약한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주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요,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간단한 예를 들겠습니다. 원리는 모두 동일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춤과 노래로 자신들의 빈 공간을 채우려 합니다. 몇 년 전 T.V를 뜨겁게 달구었던 테크노댄스는 특별한 주제 선율과 가사가 없이 단순한 리듬과 음정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테크노 댄스를 즐기고 있는 매니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테크노 댄스에 한참 심취하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져요", "복잡하고 답답했던 일상 속에서 생긴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황홀경의 현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황홀경(Trance)'을 쉽게 경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대마초, 마리화나, 필로폰 등에 손을 대기도 하고, 청소년들은 본드나 부탄가스를 흡입하기도 합니다.

술, 마약 등 기타 유해 물질들을 통해 황홀경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은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달래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법들이 자신들의 마음의 상처를 근본적으로 고쳐주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한 세상적인 방법들은 일시적으로는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으나 목마름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물질들에 의해 중독 증세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중독 증세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 가지씩 깊이 빠져드는 중독 증세를 보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도박으로, 어떤 이는 등산이나 낚시와 같은 캠핑으로, 어떤 이는 쇼핑 등으로 깊이 빠져 듭니다.

춤이나 노래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심지어는 황홀경에 도달하는 현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곁을 떠난 뒤로 자신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노력의 배후에는 반드시 사탄이 숨어 있었습니다. 마귀의 전략은 외형적으로는 변화된 듯하나 그 내용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사탄은 사람의 공허한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로 채우도록 조종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유행을 만들어 주며, 그 유행 속에 빠져 들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갈증을 해소하는 참다운 길이 이미 제시되어져 있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시려고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영이 회복되어 삶의 목마름이 이미 해결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확실한 경배의 대상이 없고 메시지(가사)가 없는 춤과 같은 세상 갈증 해소법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께 분명한 메시지를 드리는 찬양과 경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황홀경으로 맛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예배에서는 반드시 회심의 역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수 없이 반복되는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데도 전혀 심령의 변화가 없다면, 그리고 영적인 성장이 없다면, 그 사람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혹시 예배의 도구인 음악만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악적인 행위와 기능위에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 되시고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마음의 중심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음악적인 행위가 전혀 아니라도,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타는 찬미와 찬양의 고백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 중심을 보좌로 삼으시고 좌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지각으로도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노래하고 또 지각으로도 노래하리라.] (고전14:15). 사람은 매순간 우리의 창조주요 구원자 되신 하나님과 만남의 황홀경을 원동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우리 마음의 빈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워 황홀경을 경험하려 한다면 그것은 마귀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제가 간단하게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춤과 음악으로 예를 들었지만 사람들마다 각기 자신이 깊이 빠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자신을 채우지 말고, 주님이 채워 주시는 것으로 자신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는 채움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도 그것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이것을/ 원하였노니 곧 너희로 하여금 모든 지혜와 영적인 깨달음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게 하시고](골1:9). 주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좋은 것으로 채우시며, 충만케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성령 충만, 믿음 충만, 은혜 충만, 지혜 충만, 주를 아는 지식 충만, 능력 충만, 열매 충만, 영광 충만!! 주님께서 이 모든 것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주제별(글) > Know thy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판(판단)하시는 하나님(II)  (0) 2005.04.22
심판(판단)하시는 하나님  (0) 2005.04.22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  (0) 2005.04.21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0) 2005.04.21
은혜로우신 하나님(II)  (0) 200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