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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계시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심판을 집행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긍휼과 은혜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물로 세상을 심판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주님은 온 땅에 불법과 폭력이 가득 찼을 때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심판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동성연애, 음행이 온 도시에 가득 찼을 때 주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과 유황으로 그 도시를 엎어 버리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을 노아의 날, 롯의 날로 비유하셨는데 이는 곧 심판의 날이 다가왔음을 말합니다.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하여 예비해 두신 것이라.](벧후3:7).

판단과 심판이 영어로는 Judge/Judgement란 동일한 어휘를 사용합니다. 주님께서 심판자란 사실은 우리의 삶을 늘 경건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도록 하는 강력한 motivation 이 됩니다. 심판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주를 섬기게 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기분에 따라, 감정에 따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대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한 모든 일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기록된 심판을 그들에게 집행하게 하려 함이로다. 이런 영광이 그분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시149:9).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히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집행됩니다. 주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제단에서 또 다른 /소리/가 나서 이르되,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주의 심판들은 참되고 의로우니이다, 하더라.](계16:7).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는 최소한 세 가지 면이 있다면 첫째, 주님은 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란 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마음대로 행하실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주님은 구원자 하나님이시란 점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불법으로 인해 타락하고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의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구원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셋째, 주님은 심판하시는 심판자 하나님이시란 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심판이 없다면 주님은 구원하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심판이 전제되지 않는 구원은 참된 구원이 아닙니다. 심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원자가 되셔서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 구원입니다. 심판이 없는 구원은 구원이 아닙니다. 심판은 실로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므로 내 육체가 떨며 내가 주의 심판들을 무서워하나이다.](시119:120). 히브리서 기자 역시 말하기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로다.](히10:31)고 했습니다. 이런 두려움이 죄악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심판에 대한 이런 영적 지식과 조명이 내 안에 있을 때 세상의 정욕과 더러움을 피하여 살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심판자이시며, 입법자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이는 [주]가 우리의 심판자시요, [주]가 우리에게 법을 주시는 이시요, [주]가 우리의 왕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사33:22). 주님께서 법을 주신 것은 심판의 근거를 마련하시는 것입니다. 삼권분립이 되어있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는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가 있어서 입법부인 국회에서 법을 정하면 사법부에서 심판(재판)을 합니다. 그리고 사법부에서 내린 판결을 행정부인 법무부에서 그 심판을 집행합니다. 반면 왕정 국가에서는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기능이 왕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입법자가 곧 심판자요, 입법자가 곧 심판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왕국, 하늘의 왕국은 주님을 왕으로 하는 왕정 국가이며, 일인 독재 국가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법을 주신 분이시기에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국가의 기강과 질서는 심판이 얼마나 공의롭게 집행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 악을 행하는 자들이 더욱 넘치게 됩니다.

심판은 악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동시에 심판은 악을 종결짓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심판의 왕좌에 앉은 왕은 자기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잠20:8). 아무리 악인이라도 감옥에 넣어 버리고, 사형을 시켜 버리면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범법, 불법, 위법, 탈법을 할 수 없습니다.

심판은 의인들과 선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기초적인 보장책입니다. 심판이 있기 때문에 악을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악을 피할 수 있습니다. 행한 일에 대한 응분의 대가, 응분의 보상이 철저하게 보장된다면 사람들은 악을 행할 수 없을 것이며, 더욱 의(義)를 행하고 선(善)을 행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행해도 죄를 지어도 그에 대한 징벌이 없고, 심판이 없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속히 집행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이 마음 속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작정하였도다.](전8:11). 선진국과 후진국은 법치 체계와 법의 운영 및 집행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성도와 육신적인 성도의 차이는 믿음의 법이요, 의의 법이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며, 자유의 법이요, 왕가의 법이라 불리는 성경의 심판자에 대한 믿음과 인식의 차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적인 성도는 자신들이 행한 말 한마디도 모두 심판의 날에 계산된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니](마12:3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한 말 한 마디까지 다 기록하시고, 심판 때에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십니다. 이런 것을 믿고 인식하는 성도들은 더럽고, 추잡한 말, 허황되고 비속된 말, 농담을 즐기지 않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정도만큼 우리는 경건하고 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심판을 알지 못하는 성도는 바른 영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이들은 [주]의 길도 알지 못하고 자기 하나님의 심판도 알지 못하니 그런즉 참으로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라.](렘5:4). [참으로 하늘의 황새는 자기의 정한 때를 알며 산비둘기와 두루미와 제비는 자기의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주]의 심판을 알지 못하는도다.](렘8:7). 이는 오늘날 교회를 다니기만 할 뿐 주님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거의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스스로 기준이 되어 멋대로 신앙 생활을 합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너희 말로 [주]를 지치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지치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이르기를, 악을 행하는 자마다 [주]의 눈앞에서 선한 자며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다, 하거나 혹은 이르기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기 때문이니라.](말2:17).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무시는 무서운 재앙을 불러 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심판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주]께서 친히 집행하시는 심판으로 주를 알 수 있사오니 ...](시9:16a). 하나님께서 심판을 집행하실 때 누구든지 주님을 알게 됩니다. 신자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주님을 알게 되고, 죄인들은 심판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됩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믿지 않고, 주님을 무시하는 불신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심판을 통해 주님을 알았습니다. 배교한 이스라엘 역시 심판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성도들 역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깨닫고 신앙을 새롭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목적은 심판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 앞에서 기뻐하리니 이는 그분께서 오시되 땅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이로다. 그분께서 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자신의 진리로 만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시96:13). 심판은 악인들에게는 공포요, 두려움이지만 성도들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이는 마치 악독한 죄수가 검거되어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피해자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 앞에서 즐거워할지니 이는 그분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이로다. 그분께서 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공평으로 만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시98:9). 하나님께서 심판을 위해 이 땅에 오실 때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며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을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1.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은 우리를 전도자로 만들어 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선포하게 하시되 하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정하신 이가 바로 그분이심을 증거하게 하셨고 그분에 대하여 모든 대언자들도 증언하되,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사면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10:42-43).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심판자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누구든지 죄들의 사면을 받으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거짓 신앙의 소유자란 증거일 뿐입니다. 강력한 전도자가 되고 싶다면 불타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생한 믿음을 소유하면 됩니다. 심판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욱 열렬한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은 사람들에게 죄짓지 말라고 겁주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실재합니다. 실제로 고통을 느끼며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강도는 그가 죽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양심의 고통을 느끼며 불의 뜨거움을 느낍니다. 투전꾼은 그가 속여 먹은 사람을 생각하며 고통을 느낍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믿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그때에 “믿어 둘 걸”하며 후회하고 고통을 받지만 다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영원히 고통 중에 탄식하며 울부짖게 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타난 부자는 “내가 이 불꽃 가운데 고통을 당하고 있나이다” 하며 얼마나 뜨겁고 목이 타는지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다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물 한 방울이 허락되지 않자 자기 집에 형제 다섯이 있는데 그들도 나처럼 이런 지옥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우리 집 대문간에서 얻어먹던 나사로를 보내어 우리 형제들이라도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지옥에 간 부자의 고통스런 절구요, 간절한 기도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복음을 증거해 달라는 것입니다. 지옥을 믿는 성도, 심판을 믿는 성도는 전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옥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여러분의 가슴 속에 불타는 구령의 열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앞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곧 친히 나타나실 때에 자신의 왕국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 앞에서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항상 예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 (딤후4:1~2). 심판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2.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게 됩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왕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4:8). 의로우신 심판자는 주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의의 왕관을 주실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심판은 두려운 것이지만 성도들에게 심판은 보상을 받는 시간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보응하시며, 상급을 주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報償)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행위에 따라 주리라](계22:12).

3.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형제 사랑이 실천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마땅히 형제들을 사랑해야 하는데, 형제 사랑의 원천은 심판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불평하지 말지니 그리하여야 정죄를 받지 아니하리라. 보라,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시느니라.](약5:9).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10분간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복도에서 떠들고 장난을 칩니다. 어떤 아이들은 그 막간의 시간에 싸웁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복도에 나타났다는 소리에 교실은 조용해지고 싸우던 애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생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상도 주시지만 벌도 주십니다. 청소를 시킬 수도 있고, 매를 댈 수도 있고, 반성문을 쓰게 할 수도 있고, 부모를 학교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의 심판이 무섭기 때문에 아이들은 싸우다가도 멈춥니다. 흉악범들이 모인 교도소에도 교도관이 나타나면 감방은 조용해집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참이나 지휘관이 나타나면 조용해집니다. 벌을 줄 수 있는 권세를 지닌 사람, 즉 심판자가 문 앞에 있는데 싸운다는 것은 심판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그 권위를 짓밟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이 문 앞에 서 계시는데 형제들 간에 서로 다투고, 불평하고, 싸운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이는 문 앞에 서 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완전히 무시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문 앞에 서 계십니다.

4.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이 세상을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여기에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지내라.](벧전1:17). 우리의 삶은 70년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지내라’는 것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본향을 떠나 잠시 순례의 길에 나선 여행자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아들들이 여행지에서 별의별 죄를 다 짓고, 방탕하게 살다가 돌아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가문의 수치입니다. 3박 4일이나 일주일 정도의 수학 여행을 통솔하는 선생님들은 잠깐 동안의 여행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노심초사합니다. 학교에서와 달리 아이들이 사고를 칠까봐 걱정합니다. 여행지에서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불미스런 일을 할 때 학교에 돌아오는 즉시 엄중한 징계와 처벌을 하면 정해 준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잠깐의 여행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가 육신의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순례자는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이지 아무 갈 곳이 없는 방랑자가 아닙니다. 나그네는 잠시 뒤에 돌아 갈 곳이 있습니다. 나그네는 도피자가 아닙니다. 순례자와 나그네가 방랑자와 도피자처럼 사는 것은 구원자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5.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순교자의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시며](벧전2: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욕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셨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감당하신 것은 의로운 심판자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순교자적 신앙이란 심판자 하나님께 모든 처분을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원수를 갚을 필요가 없는 것은 의로운 심판자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수갚는 일은 내게 속하였으니 내가 갚아 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시고 또 다시, {주}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니](히10:30). 이 보다 더 확실한 보복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사기를 당했는데 마음 속에 얼마나 분노가 솟아 올랐던지 차를 한 대 사서 전국을 누비며 친구를 찾아 다녔습니다. ‘내 손에 잡히기만 하면 죽여 버린다!’고 외치면서 복수심에 불라 올랐습니다. 보다 못한 부인이 목사님을 불러 상담을 하게 했는데, 그 목사님이 “성질내지 마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셨는데, 그 일도 감사할 일이지 불평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라고 하자 더 성질이 났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 보니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그 친구를 찾는다고 돈이 돌아 오겠는가?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로 가자!”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새로 산 차로 차량 봉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때 그는 자신이 찾아서 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죽게 될 사람을 찾아 나섰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많은 돈을 사기를 당했지만 살아 있는데, 많은 돈을 사기 친 친구는 죽었습니다. 사기 당한 것이 사기를 친 것보다 훨씬 큰 복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마음속에 있던 모든 원망, 불평은 다 사라지고 찾아온 평안은 평생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다고 간증했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처한 모든 어려움들은 사실 다 감사의 제목입니다. 이런 모순되고 억울한 일들, 불합리한 상황에서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드림으로써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순교자의 신앙을 소유하게 됩니다. 모든 상황이 잘 돌아가는데 어떻게 주님이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으며, 믿음의 선배들이 걸었던 순교의 길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6.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건전한 가정 생활을 영위하게 해 줍니다.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히13:4). 가정의 해체는 곧 지역 교회의 약화를 가져옵니다. 마귀는 지역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각 성도들의 결혼 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며, 가정을 약화시킵니다. 건전한 가정 생활 없이 건전한 신앙을 가진 예를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25∼35세 미혼 2118명을 대상으로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미혼여성 10명 중 9명, 미혼남성 10명 중 6명 꼴로 ‘상황에 따라 이혼이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혼은 절대 안된다’는 대답은 여성 7%, 남성 26%에 그쳤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가정이란 큰 의미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은 황혼의 이혼도 많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이혼한 연령은 40세 전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황혼이혼이 작년보다 30%, 10년 전보다는 무려 10배나 늘었습니다. 이것은 사회 문제가 아니라 영적 문제입니다. 가정의 파괴는 마귀의 전술 전략입니다. 가정이 깨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음행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예화=부부 관계, 부부관계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말하기를 20대는 사랑으로 살고, 30대는 노력으로 지탱하고, 40대는 인내로 꾸려가며 50대는 체념으로 살다가 60대가 되어야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감사로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60대가 될 때까지 견디어 보십시오. 그 때에 이르면 서로 감사하고 측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봐도, 남편이 아내를 봐도 서로 불쌍하게 여기며 측은하게 생각되어 지금까지 잘 참고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됩니다. 부부란 처음 젊었을 때에는 육정으로 살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정으로 살게 되고, 노년이 되면 동정으로 살다가 감사함으로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삽니까? 인내로. 체념으로...[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녀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벧전3:7).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지켜 보시는데 마음 속에서라도 자기 아내 외에, 자기 남편 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시간 성경에 계시된 다양한 심판들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심판을 하신 것도 있고, 심판을 기다리는 것도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갈보리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저주가 되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모두 감당하셨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주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 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온전히 십자가 위에 계신 주님 위에 쏟아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진노를 담당하심으로써 우리는 합법적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더 이상 죄로 인해 받을 형벌이나 저주나 심판은 없습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대신해 심판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판단하는 심판이 있습니다(고전11:31). 우리는 날마다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 여전히 죄를 짓게 될 경우에 자신이 행한 죄를 판단하고 주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할 때 주님은 그 죄를 사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하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으면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1:31-32).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는 말이 우리 자신을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고 회개하는 혼들에게 결코 심판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심판하되 각 사람의 길대로 심판하리라.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켜서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라. 그리한즉 불법이 너희를 황폐하게 하지 아니하리라.](겔18:30). 주님은 돌이켜서 범죄에서 떠나면 내리기로 했던 심판을 돌이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일 곧 그들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3:10).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말씀의 빛에 비추어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자신을 심판하지 않으면 주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그 일이 불타고 맙니다. 죄의 자백을 통해 얼마든지 죄들은 용서받을 수 있고, 불의는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셋째, 모든 성도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야 합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습니다. 구원받는 것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께서 받으신 심판을 믿기만 하면 죄에 대한 심판은 영원히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는 심판은 구원이냐? 지옥이냐? 가 아니라 상급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날 것임이라. 이로써 각 사람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서 행한 것들을 받으리라.](고후 5:10).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이는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으로 이 기초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일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그 일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 일이 불로써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것인지 시험할 것임이라. 누구든지 그 기초 위에 일을 세웠는데 그 일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보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일이 불타면 보상을 잃게 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로써 받는 것 같으리라.](고전3:11-15). 우리는 여기서 구원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과 보상에 대해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주님은 일의 종류를 시험하십니다. 사랑으로 행한 일이 아니면 나에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한 일이 아니면 그 자체가 죄로 드러나고 맙니다. 성령을 통해서 한 일이 아니면 주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다 불타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일이 아니라 자기 유익을 위해 한 일 역시 불에 타고 말 것입니다. 심판의 불이 종류를 구분해 내는데 금은 그리스도의 왕권,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은은 그리스도의 구속, 십자가의 피를 증거한 성도들에게 주어집니다. 보석은 구령자들이 받게 될 상급입니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이는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설 것임이니](롬14:10).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must(반드시)란 조동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기 때문에 형제들을 무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큰 백보좌 심판석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달리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석입니다. 천년 왕국 이후에 구원받지 못한 모든 죄인들이 받게 될 마지막 심판입니다. 백보좌 심판석에서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한 사람들이 하늘과 땅이 사라진 우주 공간에 서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행한 죄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직접 심판을 받게 됩니다.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 자리마저 보이지 아니하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자기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고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1-15). 여기는 의로운 변호인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스스로 더러운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 변명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다섯째, 대환란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받게 되는 심판인데, 대환란 기간 동안 있게 될 전무후무한 재앙의 심판입니다. [아아, 슬프도다! 이는 그 날이 너무 커서 그와 비길 날이 없기 때문이니 그 날은 곧 야곱의 고난의 때로다.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로다.](렘 30:7). 이 심판을 통해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민족들의 심판이 있습니다(마25:31-46).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대우했느냐?에 따라 이방인들을 심판하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리니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더라.](창12:3). 하나님은 이후로부터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핍박한 민족과 선대한 민족들을 나누시는 심판으로써 모든 민족들이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받게 되는 심판입니다. [보라, 그 날들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포로들을 다시 데려올 그때에 내가 또한 모든 민족들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리고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상속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법대로/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 버리고 내 땅을 나누며 또 내 백성을 놓고 제비를 뽑으며 창녀를 얻으려고 남자아이를 내어 주고 포도주를 얻으려고 여자아이를 팔아 /그것을/ 마셨음이니라.](욜3:1-3), [이교도들은 깨어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이는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방의 모든 이교도들을 심판할 것임이라.](욜3:12). -심판의 장소를 분명히 밝혀 두셨습니다. 흔히 양과 염소를 나누는 것으로 기록된 마태복음25:31-46을 보면 심판의 근거와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이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迎顚)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찾아와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내게 왔음이니라.](마25:34-36). 우리가 유대인들을 선대하는 이유는 우리 역시 같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두었기 때문이요, 그들에게 영적인 빚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 중에 모든 거룩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으리니 그가 모든 민족들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편에 두되 염소들은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일곱째, 마귀와 그의 천사들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고전 6:3). 하나님은 이 심판을 성도들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유1:6)"이며 [범죄한 천사들](벧후2:4)입니다. 이들은 현재 지옥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벧후2:4). 이들은 현재 묶여 있습니다. [또한 자기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으며](유1:6).

이들을 향한 심판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늘 하물며 이 /세상/ 삶에 속한 일들이랴?](고전 6:3). 이들은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의 딸들을 취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는 족속을 낳았고, 노아의 홍수를 불러 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렸던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들이 심판하도록 하신 것은 주님의 절묘한 섭리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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