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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하나님은 충만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충만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가득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풍성하게 채우시며, 넘치도록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결코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없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지 않는 이상 채울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프랑스가 낳은 천재적 수학자요 철학자인 파스칼이 그의 사상을 담은 ‘팡세’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마음의 빈 공간으로 인해 사람들은 허무와 공허를 느끼고 잃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실감을 느낍니다.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나를 지으신 이께서 내 안에 자신이 거할 처소를 마련 해 두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여 모셔 들일 때까지 결코 공허를 메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I.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종교는 사람을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아무리 깊이 심취해도 그가 얻는 것은 허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로부터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늘 어찌하여 세상에 살고 있는 것같이 규례들에 복종하느냐? (곧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손을 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사용하는 대로 없어지는 것이요,) 사람들의 명령과 교리들에 따른 것이라. 참으로 이런 것들은 /자기/ 의지대로 경배를 드리며 /자기를/ 낮추며 몸을 경시하는 데는 지혜 있는 것같이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가치가 없느니라.](골2:20~23).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육체를 만족시키는데는 아무 가치가 없느니라”. 금욕주의를 기초로 하는 종교는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손을 대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물질을 많이 모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돈만 풍족하게 있으면 다 될 것 같고, 만족할 것 같은데 막상 돈을 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풍요를 사랑하는 자도 소출로 만족하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 만족이 없습니다. 마음의 빈공간은 물질로는 결코 채울 수 없습니다. 돈을 쓸 줄 몰라서가 아닙니다. 즐길 줄 알아도 빈 공간은 여전히 더욱 비었음을 확연히 드러내 줍니다. 많은 돈을 벌어서 조기에 은퇴를 하고 세계를 돌며 여행하는 사람들도 마음에 참된 기쁨과 만족이 없습니다. 어딘가 허전합니다. 이는 왜 그렇습니까? [지옥과 멸망이 결코 가득 차지 아니하는 것같이 사람의 눈도 결코 만족하지 아니하느니라.](잠27:20). [모든 것이 수고로 가득하여 사람이 그것을 이루 말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아니하고 귀는 들어도 채워지지 아니하는도다.](전1:8). 쾌락의 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채워 주시지 않는 이상 스스로 무엇으로도 자신을 채울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전도서 기자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참으로 자식도 없고 형제도 없으며 다른 이가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그의 눈은 재물로도 만족하지 아니하고 또 그가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며 내 혼에게서 좋은 것을 빼앗는 것인가? 하지도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며 참으로 쓰라린 해산의 고통이로다.](전4:8).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채우도록 자극하고, 충동질 합니다. 술과 담배, 마약 등으로 채우라고 합니다. 게임과 오락, 도박, 섹스에 탐닉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빈 공간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주님은 우리의 빈 공간에 자신이 직접 들어오시겠다고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晩餐)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3:20).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마음의 빈 공간은 충만히 채워지고, 허무와 슬픔과 같은 것들은 모두 사라집니다. 성도들 가운데 마음이 허무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문을 두드리시며, “문을 열어 다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잘지라도 내 마음은 깨어 있으니 이것은 나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 문을 두드리며 이르시되,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여, 문을 열어 다오. 이는 내 머리에 이슬이 가득하며 내 머리채에 밤의 이슬방울이 가득하기 때문이라, 하시는도다.](아5:2). 주님은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이든지 가득 채우십니다.

주님은 창조 때부터 이 땅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충만케 하시는 분이시며, 결코 모자라거나 궁핍하게 행하지 않으십니다. 무엇이나 더욱 넘치도록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창세기의 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은 생명이 있어서 움직이는 피조물(被造物)과 땅 위 하늘의 열린 궁창에 나는 날짐승을 풍성히 내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큰 고래들과 살아 움직이는 모든 피조물 곧 물들이 풍성히 낸 모든 피조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날짐승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0-21). 풍성히 내라고 하십니다. ‘적당히 내라’, ‘알맞게 내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넘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창세기 1:28에서 아담에게도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노아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로 다시 이 땅을 재건할 때에도 주님은 [너희는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에서 풍성히 내고 그 안에서 번성하라, 하시니라.](창9:7)고 하셨습니다. 풍성한 것이 주님의 성품이요, 넘치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기쁨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든 풍성하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주님은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생명을 얻은 정도가 조금, 약간이 아니라 “더욱 풍성히”입니다. 겨우 겨우 숨만 붙이고 살아가는 그런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보다 더 용솟음치는 주님의 생명력으로 넘쳐야 합니다.

주님은 무엇이나 넘치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하지만 주님은 넘치게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내 원수들의 눈앞에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주님은 적당히 행하시지 않으십니다. 넘치게 부으십니다. 말씀을 하셔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의 말씀을 적당히 주시지 않으십니다. [왕은 사람들의 자녀들보다 더욱 아름다우시니 왕의 입술에 은혜가 넘치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왕을 영원히 복되게 하셨나이다.](시45:2). 그분의 입술에는 은혜가 넘칩니다. 주님의 의도 그렇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주를 찬양함도 땅 끝까지 이르렀나니 주의 오른손에는 의가 넘치나이다.](시48:10). 주님의 성품을 보십시오. 주님의 풍성하심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화끈하다!”고 하는 표현이 주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성경적 언어로 “넘치도록 풍성하신 하나님”,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쩨쩨한 것이 하나도 없으시며, 인색한 것이 없으시고, 모자람이 없으시고,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십시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였습니다. 남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12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넘치는 은혜요, 역사하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주님은 벌을 주셔도 적당히 주시지 않습니다. 넘치도록 주십니다. [오 [주]의 모든 성도들아, 너희는 그분을 사랑하라. 이는 [주]께서 신실한 자는 보존하시되 교만히 행하는 자는 넘치도록 /벌로/ 갚아 주시기 때문이라.](시31:23).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10가지 재앙을 보낼 때 어느 것 하나 적당히 하신 것이 없습니다. 개구리를 보낼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의 땅이 개구리들을 넘치도록 내매 그들의 왕들의 방들에도 넘쳤도다.](시105:30). 개구리가 온 땅 뿐만 아니라 방에도 넘쳐났습니다.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용서를 하실 때도 넘치도록 하십니다. 죄를 돌이키고 돌아 올 때 넘치는 용서를 하십니다.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는 그분께서 넘치도록 용서하실 것임이라.](사55:7). 여러분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넘치도록 풍성하신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분노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은혜와 긍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1:14). 주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요, 넘치도록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기도 응답에도 적당히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엡3:20). 솔로몬은 백성을 바르게 재판할 지혜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구한 것만 정확히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명철(明哲)을 매우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방 나라 모든 자손의 지혜와 이집트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으니] (왕상4:29~30). 성경은 ‘매우 많이 주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성품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주님은 보너스로 다른 것을 겸하여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깨닫는 마음을 주노니 너 이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 이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재물과 명예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서 너와 같은 자가 없으리라.] (왕상3:12~13). 우리 주님은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구할 때도 적당히 구해서는 안 됩니다. 비전이 적은 사람은 적게 구합니다. 적게 구하면 적게 받을 뿐 아니라 풍성하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는 일이요, 불신의 표현임을 알아야 합니다. 원대하고 큰 비전을 가지고 주님께 큰 것을 구하십시오.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크게 기도하십시오.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우리는 주님께 적게 구했던 자의 비극을 봅니다. [또 이르되, 화살들을 취하소서, 하니 그가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니 이에 그가 세 번 치고 멈추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치셨어야만 했나이다. 그리하였더라면 왕이 시리아를 치되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러나 이제 왕이 시리아를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왕하13:18~19). 엘리사가 땅을 치라고 하자 여로보암은 세 번을 치고 멈추었습니다. 엘리사는 크게 노했습니다. 그가 세 번만 치고 멈춘 것은 적게 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것을 멸시한 것입니다. 비전이 적은 사람은 결코 큰 것을 구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으므로, 큰 일을 행할 수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큰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해도 마음을 넓게 열고, 큰 것을 기대하고, 높은 이상과 비전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졸장부로, 좀스럽게 만들지 마십시오. 주님은 넘치도록 주시는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이제 성도들은 이런 주님의 성품을 배워서 모든 일에 넘치도록 행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일을 해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수고해야 합니다. 줄 때도 적당히 주는 것은 우리 주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고 넘치게 하여 사람들이 너희 품에 안겨 주리라. 이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도로 헤아림을 받을 것임이라.](눅6:38). 고린도 교회가 육신적이고 타락한 교회였지만 이 점에서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고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하고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 이는 내가 증거하노니 그들이 힘닿는 데까지 하였을 뿐 아니라 참으로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여 하였으며](고후8:2-3). 넘치도록 했습니다.

감사를 드려도 넘치도록 드려야 합니다.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넘치도록 감사를 드리라](골2:7). 전에 어떤 분과 같이 기도하는데 옆에서 들어 보니 계속해서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뭔 기도를 저렇게 하나?”하고 판단을 했는데 후에 지나보니 참으로 이미 높은 경지의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감사할 것 투성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은 그냥 해 본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재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사람이 절망을 해서 목사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앉자마자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목사님 나는 버림받은 인생입니다. 빈털털이입니다. 내가 매일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직장을 구해서 방황을 하지만 아무도 나를 고용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에게 직장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그러므로 이제 더 살 용기와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당신 지금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십시오. “당신 아내가 있습니까?" "네. 아내가 있습니다. 돈벌이도 못하는 이 못난 남편을 버리지 않고 그래도 같이 살아주는 착하고 좋은 여자입니다." "오, 그것을 적으세요. 착하고 좋은 여자가 있다”고 적으십시오. “자식이 있습니까?" "네. 자식이 있지요, 자식이 다섯 명입니다. 공부를 잘 못시키고 잘 못 먹이지만 그래도 부모에게 반발하지 아니하고 착실히 교회도 나가고 열심히 기도도 하는 좋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자식 다섯 명이 있다고 적으십시오. 당신 밥 잘 먹습니까?" 허허 웃더니만 "없어서 못 먹지요." "아, 그래요? 있어도 못 먹는 사람 많습니다. 위장병이 걸려서 좋은 음식이 있고도 못 먹는 사람 많은데 당신 없어서 못 먹을 위를 가졌으니 감사하지요. 없어서 못 먹는다고 적으세요." 그러고 난 다음 "당신 잠 잘 자요?" 그러니깐 "잠이요? 잘 자죠. 그저 드러누우면 잡니다." "그래요? 그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잠 못 자고, 침대에서 들썩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잠 잘 잔다고 적어 놓으십시오. 그 다음 당신 친구가 있습니까?" "대개 친구들이 다 날 떠났지만 그러나 나하고 다정한 친구 몇몇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나와 친구지요.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어, 친구가 있다고 적으십시오. 그 다음 전반적으로 당신은 건강합니까?" "예, 별로 크게 아픈데는 없습니다. 건강합니다." "건강하다고 적으십시오. 당신 지금 적은 것을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겠습니까?"

"읽어보지요. 착한 아내가 있다. 좋은 어린아이들이 있다. 밥 잘 먹는다. 잠 잘 잔다. 그리고 친구도 있다. 건강하다." 목사님은 말하기를, "당신 들어올 때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많은데, 무엇이 당신이 아무 것도 없단 말이요. 이만한 것을 가졌으면 부자요, 감사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인데, 뭘 없다고 불평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머리를 긁적긁적 긁더니만 "허, 이렇게 많이 가진 줄은 전 몰랐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갖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당신 없는 것을 찾아가면서 불평하지 말고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서 감사하기 시작하십시오. 성경 말씀에 [이는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아서 더욱 풍성하게 될 것이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길 것임이라.](마13:12). 당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은 아무 것도 주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일어나서 고맙다고 절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 '나는 좋은 아내가 있다. 자식들이 있다. 나는 잘 먹는다. 나는 잘 잔다. 건강하다. 친구들이 있다. 굉장히 많다.' 고 주님께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자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감사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넘치도록 감사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뿐 아니라 믿음에 굳게 서서 넘치도록 감사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의 삶을 살 때 적당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격식만 갖추고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또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님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걸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받았은즉 넘치도록 더욱더 그와 같이 하라.](살전4:1).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걸어야 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배운대로 넘치도록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해도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힘에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니라.](고전15:58). “적당히”란 말은 없습니다. 넘치게 하라고 말합니다. 고난을 당해도 넘치도록 당하고, 매를 맞아도 넘치도록 맞고, 생명을 기꺼이 내어 놓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고후11:23). 넘치는 고난을 받을 때, 넘치는 위로가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안에 넘치는 것같이 우리의 안위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기 때문이라.](고후1:5).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할 때면 화끈하게 당하십시오. 오기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으십시오. 그때에 넘치는 기쁨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기뻐하라. 이것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너희 또한 넘치는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4:13).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성도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못 받는다 해도 자신은 이런 삶을 살 것을 결단했습니다. [너희를 더욱 넘치게 사랑할수록 내가 덜 사랑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위하여 /가진 것을/ 기꺼이 쓰고 또 나 자신까지도 쓰리라.](고후12:15). 미국의 전설적인 설교자 죠지 휫필드는 주위에서 건강을 염려할 때, “나는 녹슬어서 없어지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고 싶습니다” 라며 쉼 없이 설교했습니다. 그는 넘치도록 일했고,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쓰고 자기 자신까지도 써 버렸던 것입니다. 사람마도 자기 몸을 아끼고, 가진 것을 아끼느라 가진 것 중에 조금만 내어 놓으며 헌신한 것처럼 자랑하고 생색을 내는데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영입니다. 이것은 성령을 속이는 일입니다. 주님은 넘치게 행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 역시 넘치도록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밤낮으로 매우 넘치게 기도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의 믿음에서 부족한 것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살전3:10). 적당히 기도하는 것은 바른 기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대로 우리는 밤낮으로 매우 넘치게 기도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매우 넘치게 기도하라. 이것이 성경의 명령입니다.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 우리는 기도하는 일, 항상 기도하고 간구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할 때는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기도 중에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으라.](골4:2). 사도 바울은 이런 점에서 단연 본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넘치도록 기도한 사람입니다.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림은](골1:3), [이런 까닭에 우리도 그것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이것을/ 원하였노니 곧 너희로 하여금 모든 지혜와 영적인 깨달음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게 하시고](골1:9).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는 넘치도록 기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생활을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넘치는 기도에는 넘치는 응답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넘치도록 풍성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II.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모든 것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 진리가 풍성한 주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4:6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출34:6). 주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아무리 쏟아 부어도 부족함이 없으시며, 모자람이 없으십니다. 무한대에서는 얼마를 빼내어도 여전히 무한대입니다. 우리는 풍성하신 하나님을 두고 부족함을 느낀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오나, 오 {주}여, 주는 동정심이 많으시며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긍휼과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시86:15). 여러분들은 성경을 통해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접할 수 있습니다.

2. 주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친절 곧 긍휼이 풍성하신 주의 친절이 크시고 [주]의 진리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로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시117:2). 주님의 풍성하신 긍휼은 죄를 고백하고 주님께로 돌이키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혼들에게 ‘두고보자’고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풍성한 긍휼을 베푸셔서 징계와 진노의 채찍을 거두십니다.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풍성한 긍휼에 따라 뜻을 돌이키시며](시106:45). 어떤 크고 무서운 죄라도 상관없습니다. 주님의 긍휼은 죄를 압도합니다. 긍휼이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면제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주께 간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주의 말씀에 따라 긍휼이 풍성한 주의 친절이 나의 위로가 되게 하시며](시119:76). 죄인들은 주님께 긍휼 외에 달리 구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누구에게 긍휼을 베푸십니까? 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출20:6).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주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주] 네 하나님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신실한 하나님이시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되](신7:9). 주님의 긍휼은 세대를 초월해서 천대까지 갑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런즉 너희가 이 모든 법도에 귀를 기울여 /그것을/ 지키고 행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키시고 네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니라.](신7:12). 주님의 긍휼을 얻는 길은 회개하는 것이요, 말씀을 지키는 것이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행하시던 대로 주께서 나를 바라보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시119:132). 주님은 범죄한 자기 백성들에게 진노하실지라도 영원한 진노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비록 괴롭게 하실지라도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불쌍히 여기시리니](애3:32).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시편 기자는 날마다 기도하며 긍휼을 구했습니다. [오 {주}여, 내가 날마다 주께 부르짖사오니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시86:3). 이것은 매우 중요한 기도입니다. 성도들은 늘 주님의 크신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오 내게로 돌아오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주의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시86:16). 주님이 나를 구원해 줄 의무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긍휼에 호소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의 은총을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에 따라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시119:58). 긍휼을 구하는 처절한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오 [주]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이는 우리가 너무 많이 멸시를 받기 때문이니이다.](시123:3). 열사람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합심해서 외쳤습니다.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님이여,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거늘](눅17:13). 그 때 주님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고, 그들은 나음을 입었습니다. 소경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 때에 눈먼 두 사람이 그분을 따르며 소리를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더니](마9:27).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소리쳤을 때 주님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의 긍휼은 구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넘치도록 풍성하게 임합니다. 마귀들린 딸을 가졌던 가나안 여자는 어떻게 구했습니까? [보라, 어떤 가나안 여자가 그 지방에서 나와 그분께 소리 질러 이르되, 오 {주}여, 다윗의 자손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내 딸이 마귀에게 몹시 시달리나이다, 하되](마15:22). 그들의 기도는 단순하지만 매우 확실하고, 간절하고, 끈질깁니다.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절박한 문제 앞에서 “주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딸을 위한 기도이든, 아들을 위한 기도이든 우리는 주님의 풍성한 긍휼을 의지해서 외치면 됩니다. [{주}여, 내 아들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가 미친 증세로 심히 시달리고 자주 불 속에 쓰러지며 종종 물 속에 빠지나이다.](마17:15). 이들의 한결 같은 기도는 짧지만 매우 간절하고, 주님께 집중적으로 요구하는 그런 기도입니다. 마태복음 20:30-31을 보십시오. [그런데, 보라, 눈먼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오 {주}여,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거늘 무리가 그들을 꾸짖어 잠잠하라 하나 그들이 더욱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오 {주}여,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더라.](마20:30-31). 사람들이 제지해도 그들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를 연발했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어휘를 사용해서 화려하고 멋진 기도를 해야 능력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죄를 회개할 때도 필요를 구할 때도 우리는 주님의 풍성하신 긍휼에 의존해서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긍휼을 베푸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라.](눅18:13). 주님은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돌아갔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가장 풍성한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주신 것은 풍성한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4-5). 복음은 긍휼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구원은 긍휼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낳으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시며](벧전1:3).

3. 하나님은 화평이 풍성하신 분이시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게 화평을 강같이, 이방인들의 영광을 흐르는 시내같이 넘치게 주리니 그때에 너희가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그녀의 품에 안겨 그녀의 무릎에서 춤을 추리라.](사66:12).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화평을 얻는 길은 주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네가 내 명령들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하였더라면 네 화평이 강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사48:18).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평 헌물(화목 제물)로 삼으셔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평강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주를 신뢰하는 자에게 완전한 평강을 주십니다. [주께서는 마음으로 주를 굳게 의지하는 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사26:3).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주십니다. 말씀을 배울 때 큰 평강이 임합니다. [네 자녀들이 다 [주]께 가르침을 받으리니 네 자녀들에게는 큰 평강이 있을 것이며](사54:13). 신경 안정제를 먹고, 우황 청심원을 아무리 먹어도 소용 없습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배울 때 주님은 자신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며,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평강을 충만케 하십니다. [이제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음 안에서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사 성령님의 권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4. 우리 주님은 구속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주]께 소망을 둘지어다. 이는 [주]께 긍휼이 있으며 그분께 풍성한 구속(救贖)이 있기 때문이로다.](시130:7).

5. 우리 주님은 오래참음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6. 우리 주님은 영광이 풍성하십니다. [또한 영광에 이르도록 미리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시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롬9:23).

7. 우리 주님은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하여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의 감사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넘쳐 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4:15). [우리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하여 대속(代贖)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1:7).

8. 주님은 소출을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많은 열매,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주님의 뜻이며, 주님의 성품입니다. 풍성한 수확은 언제나 농부의 즐거움이요, 기쁨입니다. 열매가 없는 것은 재앙이요, 열매가 적은 것은 매우 기분 나쁜 일입니다. 열매는 넘쳐야 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이런 이유로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할 뿐 아니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주님은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에게 그물을 오른 쪽에 던지게 하심으로 그들에게 평균 어획량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물이 찢어지도록 주셨듯이 주님은 우리에게 소출을 주실 때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만 합니다.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 안에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요15: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15:5).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첫째 성령의 열매입니다.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둘째, 구령의 열매입니다. 혼들을 이겨 와야 합니다. 평생 동안 한 두 명 구령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백명, 천명, 만명 단위로 생각하십시오. 더 많이 구하십시오. 저는 지금까지 작고 아담한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사람들의 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도 않았고,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별로 기대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작고 아담하게 해야지! 하는 자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크게 하겠다고 욕심 부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적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더 웃기는 일입니다. 온 세상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령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후하게 씨를 뿌리라고 하십니다. 뿌리는대로 거두는 것은 종류에서나 양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후하게 심는 자는 후하게 거둡니다. 인색하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둘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물질의 씨앗이든, 기도의 씨앗이든, 말씀의 씨앗이든 후하게 심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더 많은 소출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자아가 살아 있으면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아는 십자가에 반드시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성도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자아를 온전히 자신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 내어 놓았을 때 주님은 놀랍도록 역사하셨고 열매를 맺게 하신 일은 ‘기독교 순교사화’, 교회사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기사를 보십시오. 1866년 7월 평양 대동강에 미국 국적 상선 제너랄 셔먼호가 무장한 채 버티다가 그때에 조선족 군인들의 반격을 받아 셔먼호가 불타고 거기에 탄 선장 이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탔던 영국인 목사 토마스가 우리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왔는데 그는 한국에서 한 번도 전도해 보지 못하고 바로 대동강 모래밭에 꿇어 엎드려서 참수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이 날아가기 전까지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고 전도지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동강 모래사장에 꿇어 엎드려서 목이 날라 가기 전에 전도지를 주는데 그의 전도지를 받은 12살 먹은 소년이 있었는데 그가 그 전도지를 받고 최초 예수 믿는 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토마스 선교사의 처형을 맡은 사람은 박춘권 씨인데 토마스 선교사가 죽기 전에 건 내 준 성경을 들고 와서 집에서 읽고 그도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 와서 한 번도 선교해 본 적이 없고 앉아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모래사장에서 참수 당하면서 나눠준 전도지와 그 목을 벤 장교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우리 한국에서 최초의 신자들이 되고 그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신의주와 평양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명의 성도가 자신을 죽음에 내어 놓았을 때 주님은 수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더 많은 소출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악을 피하고 말씀을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복있는 사람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뜻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강가에 심은 나무가 제 철에 열매를 맺으며 또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광야나 사막에 있는 나무들과 강가에 심겨진 나무와 비교 해 보십시오.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만 왔다갔다 몸만 바쁜 사람들과 악을 피하고, 성경을 읽으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과는 열매를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마른 광야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은 광야 같은 사막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물이 있는 옥토였습니다. 하나님은 40년 광야 생활을 통과한 후에 물이 있는 좋은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주] 네 하나님께서 좋은 땅으로 너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니 그곳은 시내가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 흘러나오는 샘과 깊은 곳이 있는 땅이요,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요, 기름과 올리브와 꿀이 나는 땅이라. 또 그곳은 네가 먹는 빵이 부족하지 않은 땅이요, 네게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은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쇠요, 산에서는 놋을 캐리라. 네가 먹어 배부르게 되고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좋은 땅을 주셨으므로 그분을 찬송하리라.](신8:7-10). 주님은 소출을 풍성하게 낼 수 있는 땅을 주셨고, 물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모두 말씀 묵상을 통해서 강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소출, 풍성한 수확, 풍성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도 풍성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이는 기복 신앙을 가지란 말이 아닙니다. 신약 성도는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딤전6:8). 우리는 생활 방식에 탐욕이 없게 해야 합니다(히13:5). 성도들이 욕심을 내지 않고, 탐욕을 부리지 않고 온전히 청지기적 신앙을 소유할 때 주님은 우리를 넘치도록 복 주셔서 그것으로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속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30배, 60배, 100배의 소출을 맺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소출도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여러분이 먹고 사는 것만 기대하고 기도하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만큼 채워주시고, 구제와 선교를 위해서, 모든 선한 일을 넘치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면 거기에 맞게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자신의 정욕과 사리사욕을 위해서, 죄를 짓는데 사용한다면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이요,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꾼 것이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형통하게 하시고 복 주시며, 풍성한 소출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풍성한 소출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풍성한 소출을 얻는 첫 번째 비결은 재물과 첫 열매로 주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네 재물과 네 모든 소출의 첫 열매로 [주]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이 새 /포도즙/으로 넘치리라.](잠3:9~10). 이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회교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정상적인 신앙인이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면 그들은 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 미국이나 한국이나 영국이나 유럽과 같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대 환란 시대에 잘 사는 사람은 모두 적그리스도의 수하들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은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진리이듯이 여전히 유효한 진리입니다.

둘째,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지킬 때 주님은 복을 주십니다.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고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민족들 위에 너를 뛰어나게 하시리라..... [주]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복을 주실 것이며] (신28:1,8). 물질적 복만 강조하면 기복 신앙입니다. 신약 성도들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곳 미국에서 여러분이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대로 산다는 이유로 박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대로 산 사람들이 복을 받는 곳이 바로 이곳 미국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적 원칙을 지켰을 때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역시 성경적 원칙을 지킬 때 풍성한 소출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먹고 살만큼 끼니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십니다. 단 맘몬(재물의 신)을 섬기거나 돈을 사랑하거나 세상과 연합할 때는 복이 아니라 재앙과 저주가 임합니다.

셋째, 헌물과 십일조 생활을 잘 할 때입니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가져다가 창고에 들여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쏟아 붓되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우리는 구약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는 율법으로서가 아닙니다. 십일조와 헌물은 주님의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이것은 곧 십일조와 헌물이니라.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나니 이는 너희 곧 이 온 민족이 내 것을 강도질하였음이라.] (말3:8~9). 구약 성도의 십일조와 헌물만 주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주님이 것이며, 우리 몸도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 위해서 십일조를 기준으로 헌금을 드립니다. 신약 성경은 구제 헌금, 십일조, 자선 등을 모두 합하여 한 단어로 부르는데 “은혜”입니다. [이뿐 아니라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이 은혜를 가지고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자니 우리가 이 은혜를 집행하는 것은 같은 {주}께 영광을 돌리며 너희의 준비된 마음을 밝히 드러내려 함이라.](고후8:19). 은혜를 가지고...은혜를 집행하는 것은...이란 말은 헌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 때 주님 역시 은혜를 넘치게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여러분이 많은 은혜를 베풀면 주님은 더욱 넘치게 베푸시는데 신, 구약의 원리가 동일합니다.

넷째, 우상을 내 던질 때 주님은 풍성한 소출을 주십니다. [너희가 너희의 새긴 형상들의 은으로 덮은 것과 너희의 부어 만든 형상들의 금으로 된 장식물을 더럽게 하여 생리대를 던지는 것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너는 여기서 나가라, 하리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 뿌릴 씨에게 그분께서 비를 주시며 땅의 소출(所出)인 빵을 주시되 그것을 기름지고 풍성하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넓은 초장에서 먹을 것이요,](사30:22-23). 마음 속에 우상을 제거할 때 주님은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주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주님이 모든 것이 될 때 소유는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반대로 탐욕을 추구할 때 주님은 징계하시며, 있던 소출도 날아가 버립니다. 일을 해도 삯을 받지 못합니다. 순서는 항상 영적인 것이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것 다음에 물질적인 것이 오고, 내적인 것이 되어야 외적인 변화가 옵니다. 결코 반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넉넉하게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에게 부족을 없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은혜면 은혜, 긍휼이면 긍휼, 진리면 진리...어느 것이나 필요를 채우시며, 넘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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