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계속해서 은혜의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은혜의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신데, 은혜란 말의 기본적 의미는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서신서 말미마다 은혜란 말을 발견합니다. 사람마다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등 누군가로부터 여러 가지 은혜를 입고 삽니다. 은혜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삽니다. 은혜란 값으로 계산할 수 없어 그냥 선물로 받는 복을 말합니다.

은혜란 노력이란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는 것입니다. 노력과 희생의 수고를 요구하지 않고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란 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란 계산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그냥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의 은혜를 돈으로 계산할 수 없고, 계산이 불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 역시 돈과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햇빛을 값 주고 누릴 수가 있을까요? 공기는 어떻습니까? 물은 어떻습니까? 그래서 누가 말하기를 모든 귀한 것, 생명에 필수적인 것은 은혜로 받은 것이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대가를 지불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상고해 보기를 원합니다. 모든 성도에게 은혜가 충만한 시간이 되시기를 빕니다. 우리 주님께서 은혜위에 은혜를 더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서 발견할 수 있으며, 어떻게 값없이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란 사실을 마음 속으로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 밥상을 준비하시는 분은 어머니이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미리 준비해 두시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낙원을 예비 해 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가나안 땅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마찬 가지로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럼 어디에서 은혜를 찾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은혜가 충만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은혜의 원천지요, 생산지요, 이곳에서 모든 은혜가 믿는 자들 안으로 공급됩니다.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하심에서 받았으매 은혜 위에 은혜니](요1:16). 자연 속에 있는 일반적인 은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공급됩니다.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기 때문이라.] (마5:45b)고 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구원과 관련된 주님의 특별한 은혜는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지 않는 이상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저수지를 두고 물 저장고를 따로 파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은혜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은혜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구원에 관련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것입니다.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이기 때문이라.](요1:17).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습니다. 이는 모세를 통해 율법의 세대가 선포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의 새로운 세대가 열렸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의 원조입니다. 은혜의 시발점입니다. 은혜의 모든 것입니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한 은혜 역시 함께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주님은 겸하여 성령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고,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고, 어떤 값을 치루어도 살 수 없는 것을 얻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 수 있습니까?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우리 안에 모든 것을 주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로 가득한 내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代贖)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롬3:24).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0-40년 수련을 해도 의인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데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공짜로 의롭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주홍같이 붉은 죄,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같이 양털같이 희고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고통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 은혜의 성령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를 질병과 죽음으로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신분상의 변화를 말합니다. 의의 옷이 입혀지고, 의의 직분이 주어지고, 의로 말미암아 상급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은혜로 받은 구원은 마음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생활 전 영역에 모두 나타납니다. 영, 혼, 육의 일대 변화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죄의 형벌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현상이고 그 뿌리는 죄입니다. 슬픔, 분냄, 다툼, 시기, 욕설, 전쟁, 정욕, 음행...각종 죄악들은 죄의 현상이요, 결과일 뿐입니다. 짜증을 내고 성질을 내는 것은 죄의 형벌이요, 저주입니다. 육신의 정욕에 이끌리는 것은 죄의 형벌이요, 저주입니다. 여러분이 악을 생각하고 입에 험담이 쏟아져 나오고, 시기하고, 성질을 내는 것은 여러분의 인격과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형벌인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 마음이 기쁩니까?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아니면 괴롭습니까? 어떤 악인도 기쁘지 않습니다. 죄의 저주요, 형벌은 죽어서 지옥이란 형 집행 외에도 현재적으로 나의 영과 혼과 육을 괴롭힙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고, 죄의 저주로부터 놓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은혜로 주신 구원은 죄의 형벌로부터,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이런 은혜가 내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임하는 은혜를 받아 죄의 형벌, 죄의 저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행할 때에 단순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진실함으로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며 또한 너희를 향하여는 더욱더 그리하였노니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요 또 우리 양심이 증거하는 바라.](고후1:12). 바울은 학문과 교양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방식은 단순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진실함이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단순함, 진실함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은혜받은 사람의 생활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복잡다단할 것이 없습니다. 단순함, 진실함이면 족합니다. 육체의 지혜로 사는 삶은 복잡합니다. 고려할 것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다”고 말합니다. 단순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진실함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말씀을 잘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에서 행할 때에 단순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진실함으로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며]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삶은 머리가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신경성 두통이 걸릴 일이 없습니다. 염려와 근심으로 시달릴 일이 없습니다. 복잡하고 힘든 일이 있습니까?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은 “내게 맡기라”고 하십니다. 자매들은 학업이나 직장 문제로 자녀들을 맡길 곳을 찾습니다. 안전하고 좋은 곳, 믿을 만한 곳에 맡기려고 합니다. 어머님이 맡아 주시면 너무 좋습니다. 맡기면 편안합니다. 자유롭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문제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럼 편안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니라.](벧전5:7). 맡기면 편안합니다. 맡기면 안전합니다. 자신이 돈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은행에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한 것처럼 여러분은 맡길 때 안전합니다. 여러분의 짐을 주께 던져 맡기십시오. [네 짐을 [주]께 던져서 맡기라. 그분께서 항상 너를 붙드시고 의로운 자의 흔들리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여러분의 일을 주께 맡기십시오. 단순함과 진실함으로 살 수 있습니다. [네 일들을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생각하는 것들이 굳게 세워지리라.](잠16:3). 그러나 사람들은 도둑놈이 자기 주머니 남에게 맡기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문제만큼은 주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고 육신의 지혜로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지혜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삶은 단순합니다.

마귀는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브의 생각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복잡하게 했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 95%를 생각하고 걱정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과 정열을 소모한다고 말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막연히 생각하고 복잡해 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함과 진실함이요,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복잡하고 머리에 두통이 나는 것은 은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뱀이 그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고후11:3).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맡기지 않았기 떄문에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이 임하는 것이요,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생명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생명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날짐승을 보라. 씨 뿌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먹이시나니 너희는 날짐승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한다고 자기 키를 일 큐빗 더 늘릴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옷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이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자기의 모든 영광을 누리던 솔로몬이 차려 입은 것도 이 꽃 하나와 같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는 더 잘 입히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지니 이는 내일이 자기 일들을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악은 그 날에 족하기 때문이니라.] (마6:25~34).

오늘날 전 세계 우울증 환자는 3억 3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정신 건강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1년간 세계에서 자살한 사람도 80만 명이나 되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우울하고 슬프고 고난 중에 있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죄는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병자로 만듭니다. 신경성 두통,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야기시킵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의 절반 정도는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곳은 병든 대륙입니다. 신체적 질병,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단순함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고, 육체의 지혜로 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중에서도 이외로 가벼운 질병이 많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무엇일까? 위궤양 치료제인 “잔탁”과 “타가메트”입니다.. 잔탁은 영국 글락소 웰컴사가, 타가메트는 미국의 스미스 클라인사가 개발하였습니다. 이 두 약품은 해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두를 다투면서 판매됩니다. “잔탁”의 경우 1986년에 시판되기 시작하여 10년 동안 2백억 파운드(약 48조원)어치나 팔렸고 1996년에는 기저귀 화장지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대 상품에 속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타가메트까지 합하면 위궤양 치료제가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글락소 웰컴사는 잔탁 한 품목의 판매만으로 국내 자동차 업계가 연간 300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순이익을 해마다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제약 회사만 덕을 봅니다. 약이 계속 팔린다는 말은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먹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의롭게 되고, 은혜로 사십시오. 단순함과 진실함!! 이것이 진정한 은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16-17절입니다.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은 줄을 여기에서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니니이까? 그리하여 나와 주의 백성이 지면(地面) 위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구별되리이다, 하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한 이 일도 내가 하리니 이는 네가 내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며 또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기 때문이니라.](출33:16-17).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동행 하셨던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외로이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멀리서 팔짱을 끼고 우리를 쳐다보시기만 하는 방관자가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셋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이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늘 함께 하셨습니다. 이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은 자신이 살던 땅에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식량이 있는 곳으로 떠나려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머무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 모든 지역을 너와 네 씨에게 줄 것임이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행할 것이요,](창26:3).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이것이 이삭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무슨 재주로 주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할 것이며 얼마를 줘야 주님이 함께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고용인이 아니시므로 고용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전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주님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있어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1:3). 이것은 이삭이 받았던 것보다 더 확실하고 풍성한 복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을 여러분이 이미 다 알고 계신다면 삶은 기쁨과 능력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삭은 주님이 거하라고 하신 땅에 거하였지만 이곳은 어려움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주의 부족들이 자꾸 못살게 굽니다. 파놓은 우물을 빼앗거나 메워버렸습니다. 시비를 겁니다. 조용하고 평안한 삶을 추구하는 이삭의 성격상 이런 곳은 참으로 살기 힘든 곳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그 밤에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내 종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씨를 번성하게 할 것임이라, 하시매](창26:24). 우물을 빼앗기고 브엘세바로 간 그날 밤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게 복을 주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동행하는 은혜입니다. 이는 야곱도 동일하게 체험했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할 때 주님은 도망자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또,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임이라, 하시니라.](창28:15).

주님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니라. 너는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기 때문이니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이것이 참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나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강들을 건널 때에 강들이 네 위로 넘쳐흐르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속을 걸어갈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해서 성도들에게 전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군사로 부름을 받아 늘 전쟁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삶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너와 싸우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주가 말하노라.](렘1:19). 이미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결과는 승리입니다. 이김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들은 은혜 받은데 대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것만 좋아 할 일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기보다 은혜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즉 이제 히스기야가 이런 식으로 너희를 속이거나 설득하지 못하게 하라. 또 그의 말을 믿지도 말라. 어떤 민족이나 어떤 왕국의 신도 능히 자기 백성을 내 손과 내 조상들의 손에서 건져 내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내겠느냐? 하였더라.](대하32:25). 히스기야 왕은 분명 은혜를 받았습니다. 생명이 15년 연장되었고, 해가 뒤로 10도나 물러나는 표적을 구했을 때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받은 은혜대로 보답하지 않았을 때 진노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어떤 이는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기도 합니다. 이들은 거짓 교사들입니다.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자들이 몇 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정죄를 받도록 주께서 미리 정하신 자들이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니 곧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色慾)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라.](유1:4).

은혜를 보답하고 헛되이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며 그분의 모든 은택(恩澤)을 잊지 말지어다](시103:2). 사람들은 너무 쉽게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주님의 말씀을 잊어 버립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고 맙니다. 말씀을 믿지 않을 때 은혜는 헛되이 흘러가고 맙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시고자 하셔도 믿지 않을 때 주님은 일을 하실 수가 없고, 복을 부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주일 집회, 기도 모임, 성경 공부 시간은 주님이 말씀을 통해 은혜를 부어 주시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모이기를 힘쓰라고 강력히 촉구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날에 일을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왜 망했습니까? 그들이 망한 것은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490년을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다가 주님께서 그 수에 맞추어 70년을 포로로 잡혀 가도록 하셨습니다. 신약 성도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대신 모임이 많습니다. 특히 주일 예배는 어떤 경우에도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은혜를 헛되이 하는 일입니다.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래 이곳 미국과 영국은 주일에는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주일 날 백화점도 개인 상점도 열면 체포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들을 복주셨습니다. 1996년 영국에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을 때 유럽이 영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 조치하였고, 영국은 거의 모든 소를 불에 태워 죽여야 했습니다. 수만 마리의 소를 도살하여 큰 경제적 손실을 입었는데 영국의 신실한 성도들은 그 원인은 1991년 12월부터 주일에서 대형 슈퍼마켓을 영업하도록 국회에서 허락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백년동안 주일날은 사업을 못하게 한 그것을 영국은 1991년 12월부터 정부에서 해지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영국은 큰 재난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큰 고난을 겪었다고 그들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주변에서 수도 없이 목격했습니다. 주일에 왜 놀러 다니고 자기 일을 합니까? 자기 유익을 추구합니까? 불신자들은 성경 지식이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사이비 신자라고 말합니다. “그 친구는 일요일에 교회도 안 가는 친구니까 신자라고 볼 수 없지!”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까? 주일에 교회도 안 나가는 친구!! 그 말은 신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불신자들도 아는 영적 지식 가운데 하나는 성도라면 주일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십일조와 헌물에 관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현대 교회의 병폐로 지적되기도 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신학적으로 구약의 진리이며, 신약에서는 필요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율법이전이나 율법 하에서나 은혜 시대에도 여전히 드림의 원칙이 성경적 원리이며,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란 점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율법 이전에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모세 이후에는 율법적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신약에서 십일조란 말은 “은혜”란 말로 바뀌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8,9장에 나오는 은혜는 모두 구제 헌금, 헌물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구절들을 접할 때 구호품, 구제 헌금을 왜 은혜라고 했을까? 매우 궁금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이 은혜를 가지고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자니 우리가 이 은혜를 집행하는 것은 같은 주께 영광을 돌리며 너희의 준비된 마음을 밝히 드러내려 함이라.](고후8:19). “이 은혜를 가지고”란 말은 “구제 헌금을 가지고”란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헌금을 하는 것은 “은혜”를 드리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것 역시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신약 성도들은 십일조란 말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성경적 용어로 은혜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영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풍성히 베푸신다는 말씀은 여러분의 물질 생활에 대한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자신을 위해서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고 족한 줄을 알아야 하며, 생활 방식에는 탐욕이 없게 해야 합니다. 이외에 넘치는 은혜는 모두 모든 선한 일에 드리도록 하기 위함임을 알고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넘치는 은혜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을 헐떡이는 것은 탐욕의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평생 동안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으리라,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지 않으리라. 은혜를 보답하기를 배우리라. 결단하시고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첫째, 곧바르게 걷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는 주 하나님께서 해와 방패가 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은혜와 영광을 주시며 곧바르게 걷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리이다](시84:11).

둘째,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참으로 그분께서는 비웃는 자들을 비웃으시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잠3:34). [그러나 그분께서 더 많은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하시느니라.](약4:6). [젊은 사람들아,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 자신을 낮추어 장로에게 순복하고 참으로 다 서로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이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니라.](벧전5:5).

셋째,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할 때 주십니다. [이는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에 거할 것임이니 네가 다시는 울지 아니하리라. 네가 부르짖는 소리에 그분께서 네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 소리를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사30:19). “주여, 은혜를 베푸소서”는 매우 짧지만 강력한 기도입니다. 이 말씀을 늘 입에 달고 다니시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매일 해도 좋은 기도입니다. “주여, 제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니 주는 아침마다 그들의 팔이 되시오며 고난의 때에 또한 우리의 구원이 되시옵소서.](사33:2). 기도하십시오. 은혜를 주십니다.

넷째, 주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기다리시리니 이것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그분께서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것은 너희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 이는 주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 그분을 기다리는 자들은 다 복이 있도다.](사30:18). 주님은 은혜를 주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여러분들은 인내로 기다릴 때 주님의 은혜를 맛볼 것입니다. 때로 어떤 것은 오래 걸리지만 기다리십시오.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께서 은혜를 베풀 시기를 기다리십니다. 나에게 은혜 주시고, 긍휼 베푸시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다섯째,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말지니 이는 그것들이 네 머리에 은혜의 장식이 되고 네 목에 사슬이 될 것임이로다.](잠1:8-9). 말씀은 머리에 왕관처럼 씌워지는 은혜의 장식입니다. 자매들은 머리에 핀이나 장식을 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공부하십시오.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머리에는 은혜의 장식이요, 목에는 훌륭한 목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씀은 은혜의 장식이요, 영광의 왕관입니다. [지혜는 으뜸이니 그러므로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으로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것을 높이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를 높이리라. 네가 그것을 품으면 그것이 너를 존귀로 인도하리라. 그것이 네 머리에 은혜의 장식을 주겠으며 영광의 왕관을 네게 건네주리라, 하셨느니라. ](잠4:7-9). 시편 기자는 기도하기를, [속이는 길을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시119:29).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아들아, 이것들이 네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건전한 지혜와 분별을 지킬지어다. 그리하면 그것들이 네 혼에 생명이 되고 네 목에 은혜가 되리니](잠3:21-22). 말씀을 지키는 것은 목에 은혜가 됩니다.

여섯째, 회개하는 혼들에게 주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너희는 말씀들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키며 주께 아뢰기를, 모든 불법을 제거하시고 은혜를 베푸사 우리를 받아 주소서. 우리도 우리 입술의 송아지로 희생물을 드리리이다.](호14:2). 회개하는 혼들에게 주님은 넘치는 은혜를 주십니다. 죄에서 회개한 후에 우리는 삶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고 공의를 세워야 합니다. 그때 주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그리하면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혹시라도 요셉의 남은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암5:15).

일곱째, 복음을 증거할 때 듣는 이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매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임하니라.](행4:33).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은혜의 복음입니다. 사도들이 부활을 증거할 때 큰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 피, 부활과 같은 기본적인 원리들을 증거하는 대신 성공, 축복, 신유, 은사, 행복 등 온통 듣기 좋은 것들만 주제로 골라서 은혜를 끼치려고 합니다. 참된 은혜는 십자가와 부활을 주축으로 하는 은혜의 복음이 선포되는 현장에서 나타납니다.

그럼 주님은 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까?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친히 우리를 받아 주시는 은혜 곧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6). 복음 선포를 위한 것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 모든 성도 가운데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富饒)함을 이방인들 가운데 선포하게 하시고 ](엡3:7-8).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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