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죄를 이기는 기도



[죄를 이기는 기도]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사람들이 듣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죄를 책망하고 대적하는 설교’를 회피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단연 성도들입니다. 덕분에 성도들은 거의 죄를 대적하는 기도를 하지 않게 되고, 죄를 미워하고 싸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주님은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죽으셨는데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죄를 즐기고 있다면 이는 얼마나 모순적인 일입니까? 술을 마시는 것은 용의 독을 마시는 것(신32:23)이란 설교를 해야 하며, 마시는 것은 고사하고 쳐다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 역시 마귀의 짓이란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요, 주님의 몸된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요, 누구든지 주의 성전을 더럽히면 주님이 그 몸을 멸하신다는 엄격한 진리를 설교해야 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행하는 모든 죄는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느니라.](고전6:18). 그래서 성도들은 이런 죄들을 대적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고, 이런 죄들을 범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이며, 영적 위기를 자초하는 일인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타락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죄를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설교 기술이나 신학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 속의 실제적인 문제들입니다. 죄와 연루된 삶에서는 어떤 영적 능력도 경건도 맛볼 수 없습니다. 죄는 성도로 하여금 성경의 말씀들과 성령의 실제적인 능력들을 삶과 철저히 분리시켜 버리며,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약을 먹거나 병원에 입원을 하면 먹어야 하는 음식과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어떤 약을 먹을 때 어떤 음식은 약효를 중화시켜 버리거나 아무 소용이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 음식은 약을 독으로 바꾸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몸은 전혀 약효를 받지 못하거나 도리어 건강에 해롭게 됩니다. 이와같이 죄는 받은 바 영적인 은혜,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내 몸에서 완전히 무용하게 중화시켜 버리거나 오히려 독소로 만들어 버립니다. 반면 기도는 내 안에 받은 바 주의 은혜, 말씀의 능력을 몸에 실제적인 힘이 되도록 해 줍니다. 기도는 시험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도록 제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기도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틈타는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특효약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그분께서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눅22:40)고 말씀하신 후에 친히 기도하셨습니다. 잠시 후에 주님은 제자들이 기도하는 대신 잠을 자는 것을 보고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눅22:46). 제자들은 기도에 실패함으로 다가오는 시험과 죄에 패배했습니다. 주님은 기도에 승리하심으로써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예방 주사를 맞힙니다. 수십 종이 넘는 예방 주사를 아이가 클 때까지 계속 맞히는 것은 병이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겨울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다가오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죄와 싸워서 이기느냐? 지느냐?는 그가 기도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는 기도함으로써 악을 세상의 정욕과 육신의 욕망과 나쁜 습관과 악한 현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살 수 있게 됩니다. 기도는 이미 범죄한 성도의 영혼과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기도는 남의 병도 치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유책이기도 합니다. 고난을 당해도, 병이 들어도, 죄를 범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입니다. [너희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시편으로 찬송할지어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약5:13-15). 우리가 이미 시험에 빠져 범죄 했을 지라도 그 해결책은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인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회개하는 기도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민수기 21:7에 백성들은 자신들이 범죄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불뱀에 물려 죽어 나가면서 모세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기도만이 이 불뱀들의 공격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이 모세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와 당신을 대적하여 말하고 범죄하였사오니 [주]께 기도하여 이 뱀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매 이에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니](민21:7).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기도는 일시적 패배를 승리로 돌이키는 역할을 합니다. 인생 역전은 로또(복권)나 경마, 슬롯머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를 찾는 기도에서 옵니다. 삼손은 천하장사로서의 타고난 힘이 있었지만 기도하지 않을 때 원수에게 패배해서 눈이 뽑히고, 소처럼 절구를 돌렸습니다. 반면 그가 쇠사슬에 묶여 놀림을 받으면서도 기도했을 때 그는 살아서 무찌른 원수들의 수보다 죽으면서 더 많은 원수들을 죽였습니다. 그는 평생 주님이 주신 힘을 자신의 정욕을 위해 채우며 살다 망했지만 기도함으로써 자신을 죽이며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이룬 믿음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타고난 선천적인 불행을 극복하는 비결 역시 기도에 있습니다. 한나는 불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기도했을 때 사무엘을 낳았고, 그 이후에는 줄줄이 낳았습니다. 그녀는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타고난 신체적인 약점을 넉넉히 이겨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조롱하는 첩 브닌나에게 한(恨)을 품는 대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기도했기 때문에 성경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영광을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타고난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나를 조롱하는 원수들 앞에서 마음은 격동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범죄한다면 그것은 더 큰 패배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면 패배자의 삶이 아닌 영광스런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한 후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패배한 인생들을 승리하게 해 주옵소서!” 사람이 비참하고 패배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나 못 배워서가 아닙니다. 특히 성도들의 패배는 주께 범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 번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원수 앞에서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다시 돌아와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집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를 드리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옵소서.](왕상8:33-34). 범죄함으로 인한 패배는 기도할 때 용서받을 수 있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수 있다면 늘 승리를 위한 비장의 한 수가 있는 것이며, 역전의 기회는 항상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죄를 짓습니다. 성경에도 이르기를, [이는 선을 행하고 범죄하지 않는 의인이 땅 위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로다.](전7:20) 했고,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8:46a)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를 향해 기도할 때 주님은 들으십니다. 기도는 용서의 조건이며, 회복의 조건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기도할 때에...기도하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열왕기상 8장을 펴 보십시오. 왕상 8:30,33,35,38,42,43,44,47, 48참조. 모든 것이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모두 뜨겁고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함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집니다. 아무리 성령 충만하고 성경 지식이 많고, 경건한 성도라 할지라도 죄의 유혹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으로 경건주의의 대표적 인물인 토마스 아켐피스는 고백하기를, “저는 너무 잘 넘어지며 정욕을 물리치기에 너무 약합니다. 그것이 종종 주님 앞에서 저를 부끄럽고 괴롭게 합니다. 언제나 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늘 저를 귀챦게 구는 정욕이 그렇게 싫고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자신과 싸우며 사는 삶이 지칠대로 지쳤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일어섰다 싶으면 무너지고, 되었다고 자신감이 드는 순간 패배하는 반복적인 경험을 해 보지 않는 성도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며, 그 피의 효력이 우리 안에 늘 머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해 우리가 취할 행동은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몇 가지 성경적 진리만 확실히 깨달으면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의 진리라든지 영에 속한 사람이 된다든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통해 자동적으로 승리 가운데 사는 삶을 염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저는 비참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늘 깨어 기도하지 않고는 어떤 원리로 자동적인 승리와 능력의 삶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8).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항상 기도하고]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마귀는 쉬지 않습니다. 죄는 졸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18,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 [항상 기도하고 기도 중에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으라.](골4:2). 항상 기도하라. 이것이 우리가 항상 승리하는 원리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는 어떤 원리가 성경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무엘과 같은 기도에 대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 [또한 나로 말하건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주]께 범죄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12:23).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주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기도만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권세는 죽음의 권세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권세보다 더 강한 권세가 죄의 권세입니다. 죄의 권세보다 더 강한 권세가 바로 기도하는 기도의 힘입니다. 죽음이 얼마나 강한 힘인지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하신 것이요”란 말씀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자 누구리이까? 그가 무덤의 손아귀에서 자기 혼을 건질 수 있으리이까? 셀라.](시89:48). 그러나 죽음의 권세보다 더 확실하고 실제적인 죄의 권세에 대해서 깊이 인식하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너무나 적습니다. 죄의 본성을 타고 태어나 죄의 종노릇하면서도 자신의 죄의 사슬 아래 완전히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해 주어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죄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은 그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보려고 한 적이 없든지, 죄를 대적해 본 적이 없는 경우입니다. 누구라도 죄의 종노릇을 거부해 본다면 그는 죄의 사슬이 결코 풀리지 않는 강력한 사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그 끈이 지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묶고 있는 죄의 사슬을 풀어놓았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결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복음은 바로 죄를 이기신 주님의 능력에 관한 증언이며,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죄를 대적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죄를 대적하는 설교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침례인 요한은 강력하게 죄에 대적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누구나 다 예외없이 죄에 대적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사도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2000년 교회사에 빛을 던져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외없이 죄를 대적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이는 죄가 성도들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이요, 적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불러오는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가장 열심히 기도해야 할 기도의 집중적인 포인트는 역시 죄에 대적하는 기도여야만 합니다. 죄에 대적하는 설교에 대한 화답은 죄에 대적하는 기도여야만 합니다. 이 때 우리는 효과적으로 마귀를 분쇄할 수 있고, 성도들은 죄에 대한 깊은 각성과 회개가 동반되며, 죄악의 생활을 벗어버린 분명한 간증을 지닌 깨끗한 삶을 살기를 열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와 싸워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죄를 피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고, 죄 문제를 담당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면 우리의 제일 관심사는 당연히 죄와 싸우는 것이어야 하며, 죄를 대적하는 기도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노라.](히12:4).

많은 성도들이 기도할 때 자신들의 안녕과 평안, 건강과 행복, 받을 복에 대해서는 부지런히 구하지만 ‘죄를 대적하는 기도’는 매우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죄악된 삶을 단절하고, 죄악된 생각과 상상을 부수고, 내 안에 있는 육신적인 성질을 처리하고, 십자가를 거스르는 모든 세상의 조류들을 이기려는 그런 기도를 거의 하지 않음으로써 정작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평안과 행복도 얻지 못합니다. 죄에 대한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승리없이는 누구도 평안과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저는 ‘마음의 변화없는 구원, 회개함이 없는 믿음, 지옥이 없는 하늘’에 대해 설교하는 교회와 전도자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회개없는 기도, 죄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기도를 참다운 기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입니다. 정욕과 쾌락이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있는 영적인 기쁨과 평안을 다 노략질 해버리는 세대입니다. 알코올과 포르노가 성경과 예배를 압도하는 시대입니다. 이 때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대적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잘 행하면 어찌 너를 받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네가 잘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니라.](창4: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있습니다. 죄는 모든 사람들의 문 앞에 있습니다. 문을 열면 언제든지 금방 들어가서 자신이 주인처럼 앉아 버립니다. 그래서 주님은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 양 옆 기둥과 인방,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게 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만이 문 앞에 웅크린 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 앞에는 누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晩餐)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3:20). 우리가 문을 열면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자리를 차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주님은 능히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문 앞에는 누가 있습니까? 심판자께서 서 계십니다. [형제들아, 서로 불평하지 말지니 그리하여야 정죄를 받지 아니하리라. 보라,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시느니라.](약5:9). 두려움과 떨림으로 주님을 섬긴다면 죄는 우리를 노략하지 못합니다.

모두 죄를 대적하는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롬6:6). 그러나 기꺼이 다시 죄의 종노릇을 하겠다고 자원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몸으로는 어느 정도 절제하지만 마음 속은 죄로 황폐화된 성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몸은 곧 그 뒤를 따르게 됩니다. 반대로 마음은 아직도 참다운 믿음과 건전한 신앙을 갈구하면서도 몸은 술과 담배와 세상의 친구들과 갖가지 죄의 쾌락들에 이끌립니다. 습관이 되어 버린 죄들도 있습니다. 죄에는 잠시의 쾌락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쾌락들을 즐기고자 자신을 죄의 종으로 내어 주는 것입니다(히11:23).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니라.](요8:34)고 하셨고,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순종하게 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롬6:16a)고 하셨습니다. 혼자 힘겹게 싸워야 승리할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죄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속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하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성도의 영적 교제와 서로를 위한 기도는 이런 죄의 속임수를 이길 수 있는 첩경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서로 날마다 권면하여 너희 중에 하나라도 죄의 속임수를 통하여 완악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 죄는 형벌이 없는 것처럼 속입니다. 죄에는 고통이 없는 것처럼 속입니다. 죄는 들키지 않으면 아무 이상이 없는 것처럼 속입니다. 죄는 뭔가 짜릿하고 흥미있는 것처럼 속입니다. 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속입니다. 죄에는 반드시 영적, 도적적, 사회적 책임과 응분의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값비싼 후불정산 방식입니다. 죄는 죄를 짓고 난 후에 나에게 백지 수표를 요구합니다. 최하 양심의 가책, 번민에서 시작하여 최고 사형까지 마귀는 마음대로 요구합니다. 죄의 속임수로 사기를 당한 성도는 비록 속임수였다 할지라도 자신이 행한 범죄에 대해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누군가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나를 대신해서 모든 죄의 삯을 지불해 주신 십자가와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후로 다시 같은 죄의 속임수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을 공부해야 하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늘 같은 죄에 빠지고, 또 회개하고, 또 죄짓고를 반복하다가 극심한 영적 침체기를 맞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같은 죄에 속지 않고 이기는 지혜와 힘을 얻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기도 중에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으라.](골4:2), [오직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4:7).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증거하면서 죄에 대한 영적 인식, 바른 지식을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죄는 단지 행위가 아닙니다. 죄는 인격체입니다. 죄는 힘이 있고, 법이 있고, 사역자가 있고, 쾌락이 있고, 속임수가 있으며, 자신이 일한 대가로 삯(wage)을 요구합니다. 죄의 삯이 바로 사망입니다.

구약 성경은 사형 즉 사망에 처해야 할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영적인 죄: 1.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레24:16) 2. 거짓 신들을 섬기는 것(신17:2-5). 3. 거짓 대언(신13:4-5, 18:20) 4. 마술(출22:18, 레20:27).

◆ 성적인 범죄: 1. 간음(레20:10-11) 2. 동성애(레20:13) 3. 수간(출22:19, 레20:15-16) 4. 강간(신22:25)

◆ 육체적인 죄들: 1. 유괴, 인신매매(출21:16, 신24:7) 2. 살해(레20:2, 24:17, 21; 민35:16-18, 30-31)

◆ 태만한 죄들: 1. 과실치사(출21:12). 2. 반복적인 과실 치사(출21:29). 3. 안식일을 더럽힘(출31:14-15, 35:2).

◆ 부모에 대한 죄들: 1. 부모를 치는 것(출21:15), 2. 부모를 저주하는 것(출21:17, 레20:9), 3. 부모에게 반역하는 것(신21:18-21).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하는 죄와 동일하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정의한 살인은 바로 행동 이전에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아무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라가라 말하는 자는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되거니와 누구든지, 너 어리석은 자여, 하고 말하는 자는 지옥 불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마5:21-22). 주님은 그런 생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간음이 성립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淫慾)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 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를 실족(失足)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이는 네 지체 중의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네게 유익하기 때문이니라.](마5:27-29). 죄의 근원은 바로 마음입니다.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는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생각, 간음, 음행, 살인, 도둑질, 탐욕, 사악함, 속임, 색욕(色慾), 악한 눈, 신성 모독, 교만, 어리석음 등이기 때문이니](마7:20-22).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의 결과 역시 사망입니다. [오직 사람마다 자기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을 때에 시험을 받나니 욕심이 잉태(孕宅)한즉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우리는 지금까지 배운대로 믿음의 기도, 회개의 기도, 순결한 기도로 죄를 대적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성도만이 죄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죄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1. 죄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이는 죄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요일3:4). 저와 여러분은 구약의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성령의 법 아래 있습니다.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을 소멸하고,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라(엡5:18). 우리는 성령 안에서 걸어야 하고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2. 죄란 모든 불의입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느니라.](요일5:17).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義)이십니다(롬10:4, 고전1:30).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의인이 됩니다. 모든 불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3. 죄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약4:17). 우리는 기회 닿는 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선한 행실을 보고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소금 언약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 안에 소금을 둠으로써 우리 역시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소금은 약효가 있습니다. 소금은 상처를 소독하고 씻는데 아직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기도 하고, 떫은 맛이나 쓴 맛을 죽이기도 합니다. 만약 소금이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맛을 잃어 버리면 내다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4.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죄입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한 것은 죄니라.](롬14:23b). 죄를 이기는 유일한 비결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을 믿는 믿음이며, 그 믿음으로 드리는 믿음의 기도란 점을 생각할 때 믿음이 없는 것은 죄일 뿐만 아니라 재앙입니다.

5.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삼상12:23). 주님은 우리가 힘이 없어서, 지혜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함으로써 얼마든지 하나님께 하시게 하지 않는 죄에 대해서는 엄히 책망하십니다. 도둑이나 강도를 못잡는 시민일지라도 신고는 할 수 있습니다. 불을 끌 수는 없지만 소방서에 연락을 할 수는 있습니다.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술은 없어도 의사를 부를 수는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가 할 수 있는 최소의 작은 일이지만 최상, 최선의 큰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요청하여 주님이 일하시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지쳐서 울고 있는 패배한 성도들에게 ‘너는 왜 구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6. 잠언 기자는 [거만한 눈빛과 교만한 마음과 사악한 자의 쟁기질은 죄니라.]고 했습니다(잠21:4). 눈빛과 마음은 일맥상통합니다. 사악한 자는 무엇을 해도 죄입니다. 이보다 더 큰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요16:9). 죄를 대적하는 가장 큰 기도는 성도가 불신자들이 구원받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령을 위한 기도는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기도이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구령의 일꾼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며, 이 땅에 더 많은 구령의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마귀를 대적하는 가장 강력한 기도입니다. [이러므로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시는 {주}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자신의 추수 밭에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 하라.](눅10:2).

이제 우리는 모두 주께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도록 합시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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