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는 뱀, 용, 리비야단 등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사자(lion)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주님의 역할은 무엇이든지 흉내를 냅니다. 이는 이미 위조자 마귀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마귀는 울부짖는 사자입니다. 사자는 그룹들의 모양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12 아들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서 유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다야, 너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네가 탈취한 것을 떠나서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린 것이 사자 같고 늙은 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건드려 화나게 하리요?](창49:9). 이는 주님이 유다 지파에서 나오심을 예언한 것입니다. [장로들 중에 한 사람이 내게 이르되, 울지 말라. 보라,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 곧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으니 그 책을 펴며 그 책의 일곱 봉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5:5). 주님은 창세기에 예언된 유다에 대한 말씀의 성취입니다. 흔히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초림에서 주님은 양이요, 목자로서 오셨지만 재림 때에 주님은 사자와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의 모습은 양의 모습이 아니라 사자의 모습입니다. 반면 유다와 전혀 다른 아들 하나가 사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단에 관하여는 그가 이르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사자 새끼로다, 하니라.](신33:22). 유다와 단은 정 반대의 길을 갑니다. 같은 사자로 보여도 전혀 다른 사자입니다.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자라면 단은 마귀를 예표하는 사자입니다.
울부짖는 사자의 모습은 진노하신 주님의 모습이기도 하고,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왕의 진노는 사자의 울부짖음 같거니와 그의 은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잠19:12). 주님의 진노하시는 모습과 주님의 은총을 잘 대비해서 말씀하십니다. 재림하시는 주님의 진노하신 모습은 영락없는 사자의 울부짖음입니다. 신자들은 지금 마귀란 사자의 울부짖음에 직면하고 있으며, 불신자들은 장차 주님이란 사자의 울부짖음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왕의 두려움은 사자의 울부짖음 같으니 누구든지 그의 분노를 일으키는 자는 자기 혼을 거슬러 죄를 짓는 자니라.] (잠20:2). 여기서 우리는 울부짖는 사자가 우리 주님이 왕으로서 재림하시는 모습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죄인들에게 만왕의 왕으로서 주님의 재림은 사자의 울부짖음과 같습니다. 주님은 죄인들에게 울부짖는 사자이시며, 마귀는 신자들에게 울부짖는 사자입니다. 사자는 용맹함과 사나움, 빠름 등으로 인해 보통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동물 사자에 대해서 살펴보고, 사자를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자는 용맹무쌍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어떤 짐승 앞에서도 물러서지 아니하는 사자와](잠30:30). 사자는 백수의 제왕으로 강한 어금니, 빠른 발, 정확한 판단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자 문양이나 사자를 깃발로 사용하는 군대가 많은데 이는 사자의 용맹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왕궁을 지으면서 자신의 왕좌 부근으로 사자 형상을 세웠습니다. [그 왕좌에는 여섯 계단이 있고 왕좌의 꼭대기는 뒤가 둥글게 되어 있으며 앉는 자리의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들 옆에는 사자 두 마리가 서 있으며 또 사자 열두 마리가 있어 그 여섯 계단의 이쪽과 저쪽에 섰으니 어떤 왕국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왕상10:19-20). 솔로몬의 재위 시절 이스라엘은 사자 왕국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영국이 사자 문양을 쓰고, 영국의 왕실이 사자를 깃발로 사용하는 나라로 되어 있지만 본래 사자를 자기 나라의 대표로 삼은 나라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의 보좌 양 옆과 계단 옆으로 쫙 세운 것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꿇어앉고 눕는 것이 사자와 같고 큰 사자와도 같으니 누가 그를 화나게 하리요?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하니라.] (민24:9).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장 왕국이요, 온 세상 나라의 머리가 되는 민족으로서 사자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국에서 왕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민족들의 머리 즉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쟁터를 누비던 사울 왕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은 그들을 애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삼하1:23b).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에 모두가 떨고 놀랍니다.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은즉 누가 대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암3:8). 사자의 용맹함, 두려움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순간에 사자와 맞닥뜨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나를 향해 울부짖는다면 아마 기겁을 하고 말 것입니다. 이 모습은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울부짖는 사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사자같이 소리를 내는 [주]를 따라 걸으리니 주가 소리를 내면 그 자손들이 떨면서 서쪽에서부터 나올 것이요,](호11:10). 우리 주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며, 자기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원수들을 물어뜯는 사자이십니다. [이는 [주]께서 이같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사자 곧 젊은 사자가 자기 먹이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릴 때에 /사람들이/ 그것을 치려고 목자의 무리를 불러왔다 할지라도 사자는 그들이 소리쳐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떠들어도 굴복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만군의 [주]가 내려와서 시온 산과 그 언덕을 위하여 싸우리라.] (사31:4). 우리 주님이 사자로 묘사된 가장 분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님도 사자요, 마귀도 사자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사자입니다. 마귀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교회를 향해 울부짖습니다. 삼키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사탄은 지금도 우리를 삼키려고 기회를 엿봅니다. 여러분들은 사자의 사냥 습성을 알 것입니다. 사자는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서 사냥감을 덮치는데, 무리지어 있는 무리들을 향해 공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성경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자기 먹이를 몹시 탐내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서 숨어 기다리는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시17:12). 사자는 강하고 용맹함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로 나타나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히 숨어 기다리면서 먹잇감을 찾습니다. [사자가 자기 굴에서 은밀히 숨어 기다리는 것같이 그가 가난한 자를 잡으려고 숨어 기다리며 자기 그물에 끌어들여 가난한 자를 잡나이다.](시10:9). 사자는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녀석을 공격합니다. 사냥감을 혼란에 빠뜨려서 그 중에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자를 잡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교회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혼자 있는 자들은 마귀의 주 공격대상입니다. 교회를 흔들 때 떨어져 나가는 자들 역시 마귀의 밥이 됩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욥기에서 사탄이 직접 증언한 것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서 오느냐? 하시니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에서 여기저기 다니고 또 그 안에서 위아래로 거닐다가 왔나이다, 하매](욥1:7). 마귀가 땅에서 여기 저기 다닌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두루 다닌 것은 삼킬 자를 찾아다닌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그들이 약탈하며 울부짖는 사자같이 나를 향해 입을 벌렸나이다.](시22:13)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삼키려는 마귀의 존재와 그들의 영적 배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메시야 예언 시편이기도 한데 우리 주님 역시 마귀가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사자같이 입을 벌리고 있음을 보셨습니다. 성도들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사탄이 하늘에서 속히 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밤하늘의 유성이 떨어지듯이, 하늘의 독수리가 먹을 것을 찾아 땅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떨어졌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 무엇 때문입니까?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서 주님을 팔 생각을 넣어 주고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눅22:31). 주님은 사탄의 활동을 정확히 보셨지만 제자들은 그런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마귀는 영이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사탄을 보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사탄의 정체와 활동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다녀 간 자리에 즉시 나타납니다. 주님이 뿌려 놓은 말씀의 씨앗을 빼앗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마음 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요,](막4:15). 사탄은 즉시 옵니다. 금은(金銀) 보화가 있는 곳에 도둑과 강도가 모여 들고, 왕의 무덤 주위에 도굴꾼이 몰려들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즉시 마귀들이 달려드는 법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마귀는 성도들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마귀는 자신의 사역자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고, 진리에서 돌아서게 합니다. [이제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셨으니](딤전4:1). “유혹하는 영들,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믿음에서 떠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사람들은 건전한 교리를 거슬러 반론을 펼치며, 세상의 영으로 충만하여 교회에 들어와 믿음을 엎어 놓습니다. 교회 내에서는 사탄에게 돌아선 자들이 많습니다. [이는 이미 사탄에게 돌아선 자들도 있기 때문이라.](딤전5:15). 마귀의 활동은 놀랍도록 정교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 책에서 읽은 이야기,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 신문에서 본 이야기,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그토록 확신있고 담대하게 말하는 성도들이 넘쳐납니다. 이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근거는 학교에서 배운 것, 신문과 T.V에서 보고 들은 것, 책에서 읽은 것, 남들에게 들은 것이 전부이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런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사탄에게 돌아선 자들인 것입니다.
영적 가치관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으로 생각하고, 성경으로 말하고, 성경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자녀 문제, 결혼 문제, 사업 문제 등 무슨 문제든지 성경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2:15). 이런 사람들이 울부짖는 사자 마귀를 대적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은 교회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사탄에게 돌아선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울부짖는 사자 마귀를 통해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범죄자들을 징계하십니다. 주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범죄한 백성들을 물어뜯게 하시고, 삼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몰아내었도다. 처음에는 아시리아 왕이 그를 삼켰고 마지막에는 이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이 그의 뼈들을 꺾었도다.](렘50:17). 앗시리아의 산헤립과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은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보낸 사자(獅子)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적그리스도의 예표적인 인물들인데 주님은 이들을 사자(獅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기 때문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없이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또 그가 큰 사자의 어금니를 가졌도다.](욜1:6). 이 역시 주님이 사자(獅子)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심을 보여 줍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보면 이라크, 리비아, 이란, 북한 등에게 미국은 완전히 사자(獅子)와 같습니다. 그들은 미국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범죄한 백성들을 향한 이 땅에서의 심판은 전쟁입니다. 강한 민족을 들어서 그들을 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범죄한 백성들을 향해서 주님은 사자들을 보내시는데 이는 사악한 치리자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백성을 다스리는 사악한 치리자는 울부짖는 사자와 돌아다니는 곰 같으니라.](잠28:15). 악한 위정자는 그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파라오는 울부짖는 사자였습니다. 자녀들을 빼앗아 갔고,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캄보디아를 보십시오. 공산주의 사상이 들어가서 공산 정권이 세워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지 Killing Field라고 불립니다.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독일의 히틀러, 북한의 김일성 등은 그 나라 백성들에게는 울부짖는 사자요, 돌아다니는 곰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범죄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은 결코 선한 지도자를 주시지 않습니다. 마귀 같은 통치자들을 세우셔서 그 백성들을 심판하십니다. 지도자 복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들의 죄악부터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기 종들이라 할지라도 말씀에 불순종할 때 사자를 보내 심판하십니다. 유다에서 벧엘로 간 대언자는 죄악을 행하는 여로보암 왕을 책망한 후에 돌아가는 길에 사자를 만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죽이매 그 사체(死體)는 길에 버려지고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사체 곁에 섰더라. 보라, 사람들이 지나다가 사체가 길에 버려진 것과 그 사체 곁에 사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그 늙은 대언자가 거하는 도시에 와서 그것을 고하므로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대언자가 듣고 이르되, 이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그런즉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께서 그를 사자에게 넘겨주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왕상13:24~26). 돌아가는 길에 상수리 나무 밑에 쉬고 있다가 늙은 대언자가 함께 물도 마시고 빵도 마시자는 초청에 그만 속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람의 말을 믿다가 그는 사자에게 물려 죽는 변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사고가 아닙니다. 주의 종들이 주님의 일을 한 후에 쉽게 빠지기 쉬운 일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와 존경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누군가 나타나서 알아주기를 원하며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 대신 사람들의 칭찬을 구합니다. 이 때 마귀의 속임수에 걸려 듭니다. [이에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대언자라. 천사가 [주]의 말씀으로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로 하여금 빵을 먹게 하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그러나 그가 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였더라.] (왕상13:18). 결국 주님의 일을 잘 수행한 후에 사자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뜻을 행한 후에 세상과 연합하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사자를 보내셔서 죽이고 맙니다.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위대한 주의 종들이라 인정받던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나 여러 가지 비참한 종말을 고한 예는 허다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그에게 사자를 보내신 결과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이 보낸 울부짖는 사자가 임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소서. 이는 주께서 내 말을 들으사 나를 유니콘들의 뿔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이다.](시22:21). 사자의 입, 유니콘들의 뿔은 모두 마귀들을 예표하는 짐승들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세상과 연합하고, 우상을 섬길 때 주님은 그곳에 울부짖는 사자를 보내십니다. 울부짖는 사자들이 어디에 출몰하는지 잘 보십시오. [그들이 거기에 처음으로 거할 때에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사자(獅子)들을 그들 가운데 보내시매 사자들이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을 죽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아시리아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데려다가 사마리아의 도시들에 두신 민족들이 그 땅의 신에 대한 관습을 알지 못하므로 그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 보내매, 보소서, 사자들이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의 신에 대한 관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이다, 하니] (왕하17:25~26). 앗시리아 왕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간 후에 그 땅에 이주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사마리아의 도시들에는 이교도들이 살게 되었고, 이교도의 종교와 풍습이 행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정복한 후에 [주]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사자(獅子)들을 보내셔서 사람들을 잡아 죽이게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교회 내에는 이교도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 내에서 이교도의 풍습을 행합니다. 이럴 때 주님은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 사람을 죽이십니다. 이런 예가 고린도 교회에 있습니다. 세상의 풍속을 교회 내에서 행했습니다. 음행, 술취함은 물론이요, 주의 만찬을 마음대로 행했습니다. 그 때 병든 자도 있고, 죽은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 내에서 주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때 주님은 울부짖는 사자를 보내셔서 그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울부짖는 사자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한 사람들은 울부짖는 사자들을 때려 잡기도 했고,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울부짖는 사자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성령이 충만했던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사자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이 자기 부모와 함께 딤낫에 내려가 딤낫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향하여 소리 지르더니 [주]의 영께서 그에게 크게 임하시매 그가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염소 새끼를 찢는 것같이 그 사자를 찢었으나 자기가 행한 일을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고하지 아니하였더라.](삿14:5-6). 삼손은 젊은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어 버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의 영께서 그에게 크게 임하사” - 이것이 전부입니다. 주의 영이 임하시면 아무리 무서운 사자가 덤벼든다 할지라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를 향해서 덤벼드는 사자는 자신의 이빨만 부러질 뿐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빨들을 부러뜨리소서. 오 [주]여, 젊은 사자들의 큰 이빨들을 부러뜨리소서.](시58:6). 성도들은 연약해 보여도 주의 영이 임할 때 사자들이 이빨들을 부러뜨리는 차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주의 명령대로 주의 영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은혜와 말씀이 내 안에 충만히 거하게 하십시오. 나를 향해 입을 벌렸던 사자들의 이빨이 부러집니다. 도리어 사자를 때려 잡을 수 있습니다. 시련과 환경을 이긴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사자들의 입에서 구조되었을 뿐 아니라 사자들을 때려 잡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사자들에게 물려 죽고, 찢기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의 영이 임한 성도들에게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용을 네 발 밑에 짓밟으리로다.](시91:13). 마귀는 육신적인 성도들을 이길 수 있어도 성령 충만한 성도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마귀를 제압할 권능을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권능을 주노니 어떤 방법으로도 너희를 해칠 것이 전혀 없으리라.](눅10:19). 사자, 용, 뱀, 전갈, 이리 등으로 예표되는 마귀들을 밟고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 우리 가정, 내 자신을 삼키려 드는 마귀들을 단호하게 대적하십시오. 우리는 능히 이길 힘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주신 권능과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란? 어떤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권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경찰은 달려오는 차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권세입니다. 법원에서 출두하라는 Letter를 받으면 우리는 가야 합니다. 그것을 권세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귀에 대해서 그런 권세를 주셨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몸이 늙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그를 해하려는 음모가 치밀하게 계획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한 죄목으로 고소를 당해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자 굴에서 전혀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가 삼손처럼 강한 힘으로 사자들을 모조리 찢어 버린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의 천사를 보내사 사자들의 입을 막아 버리셨습니다. [내 하나님께서 자신의 천사를 보내사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해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내 무죄가 그분 앞에서 드러났음이며 또 왕이여, 왕 앞에서도 내가 아무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하니라.] (단6:22). 주님은 천사들을 보내사 구원의 상속자들을 섬기고 보호하십니다. 이는 현재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순간 순간적으로 닥치는 위험에서 우리는 어떻게 보호받습니까?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靈)들로서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히1:14).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은 분명 우리를 섬기라도 보내심을 받았고, 우리를 보호하고 건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을 건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천사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지는도다.](시34:7). 울부짖는 사자 굴속에서도 안전하게 거했던 것을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사자들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기도에 전념하는 성도들은 사자들이 결코 해칠 수 없는 법입니다. 해칠려고 해도 주의 천사가 둘러 진을 치며 사자의 입을 막아 버립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사자(獅子)들을 이겨야 합니다. 특히 양들을 돌보는 목자들은 사자나 곰으로부터 양들을 건져내야 하며, 쳐 죽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어린양을 움켜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그것을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서 내게 대항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죽였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에게 도전하는 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도 그 짐승들 가운데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그가 이르되, [주]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하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삼상17:34~37). 양들을 돌보는 목자의 심정과 애정, 열정이 사자와 곰을 이기는 것입니다. 삯꾼 목자는 이리만 와도 도망가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 일이 있어도 양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자들을 이기는 담력과 용기는 영혼을 아끼는 목자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 자신이 사자처럼 담대해야 합니다. 마귀가 사자같이 울부짖으면 저와 여러분 역시 사자처럼 담대하게 맞으면 됩니다. [사악한 자는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로운 자는 사자같이 담대하니](잠28:1). 죄에 연루된 사람은 결코 담력을 얻지 못합니다. 마음에 담력은 거룩함과 경건함, 의에서 나옵니다. 성결이 없이는 능력이 없으며, 담대함이 없습니다. 범죄하는 혼들은 모두 사자에게 삼킴을 당하며 원수들을 피하여 도망가야합니다. 그러나 의로운 자는 사자같이 담대하여 원수들을 물리치며, 도망가게 만듭니다. [네 원수들이 일어나서 너를 치려 하면 [주]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신28:7).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고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사자같이 담대합니다. 이들은 주님과 주의 말씀 외에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울부짖는 사자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귀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주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두려움을 아무리 용기있는 사람이라도 사시나무 떨듯 떨게 됩니다. [너희 가운데 살아 남은 자에게는 내가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서 그들의 마음 속에 심약함을 보내리니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가 그들을 쫓을 것이요, 그들은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며 쫓는 자가 없어도 쓰러지리라.](레26:36). 사자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에도 떱니다. 어떤 사람은 전화벨 소리만 나도 떨고, 어떤 사람은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나도 떱니다. 죄는 사람을 약하게 만들며, 두려움에 떨게 만듭니다. 공갈, 협박이 왜 먹힙니까?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아무리 울부짖는 사자처럼 덤벼도 의로운 사람은 건드릴 수 없습니다. 두렵게 할 수도 없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전쟁이 나를 대적하여 일어날지라도 내가 이것을 확신하리로다.](시27:3). 어떤 환경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다의 물들이 큰 소리를 내며 뛰놀든지 그것들이 넘쳐서 산들이 흔들리든지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시46:3).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라.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은즉 육체가 내게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56:4).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그의 마음이 [주]를 신뢰하므로 확정되었도다.](시112:7).
우리 모두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것을 찾아 다니는 마귀를 거뜬히 이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