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출애굽기 20:1-3
요절: 출애굽기 20:3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란 율법을 주신
장면입니다. 십계명은 너무나 유명해서 신자, 불신자,
유대인, 이방인 구분없이 전 영역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십계명은 구약 율법의 전체적인 초석이 되는 계명이며,
히브리 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법전의 기초가 됩니다.
전 세계의 모든 근대 헌법은 십계명과 모세 오경을 기초로
만들어졌습니다. 십계명은 돌 판에 새겨져 언약궤에
넣어졌지만 히브리인들은 이 내용을 마음 가운데 새기고
평생동안 대대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었습니다. 흔히 신약 성도들은 구약의 율법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만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란 점에서
십계명이 여전히 유효한 율법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십계명은 혼의 구원과 관련된 율법이 아니라 영적인 삶의
원리로서 유효한 율법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주님을
시험하기 위해 구약의 율법을 가지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그때에
그 중의 한 율법사가 그분을 시험하려고 그분께 질문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명령이 크니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와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달려 있느니라](마22:35~40). 이 두 계명을 다시 한 계명으로
요약하셨는데, 그것을 새 명령(계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이
한 가지 명령을 반복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내 명령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요15:17).
이는 율법의 핵심, 십계명의 본질이 바로 사랑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율법과 사랑을
대비되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의 본질이 사랑입니다. 법과 사랑은
반대 개념이 아니라 비례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은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고
하셨습니다. 불법이 성행하면 질서가 무너지리라가 아니라
사랑이 식어집니다. 반대로 주님의 법이 잘 준행되면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법과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이집트
땅 곧 속박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주] 네 하나님이라.](1-2).
주님은 먼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것을 다 잊어도 이
한 가지 사실은 잊어서는 안됩니다. 400년간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했고, 거기서 나온 것은 주님의 권능과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6:12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이집트 땅
속박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를 잊지 말고](신6:12)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이 사실을 잊어버릴까
염려하셨습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주] 네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그분께서는 너를 이집트 땅
속박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신8:14). 속박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 주님을
잊어버리면 주님이 주신 계명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원인
무효가 되고 맙니다. 주님은 누구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역사적 사실을 잊게 하거나 그들의 기억 속에서 이
사실을 흐리는 자들은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는 죽일지니 그 까닭은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너희로 하여금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고 속박의 집에서 구속(救贖)하신 [주] 너희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또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걸으라 명령하신 길에서 너를 밀어내고자 하였기
때문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네 안에서 악을
제거할지니라.](신13:5). 이는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율법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 자체보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권능의 손으로 인도하여 내신 전능하신 분이시며,
인도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이곳 시내 산에서 주님은
입법자로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입법자는 곧
심판자이십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입법자로서의 주님,
심판자로서의 주님을 그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새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주가 우리의 심판자시요, 주가
우리에게 법을 주시는 이시요, 주가 우리의 왕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사33:22), [율법을
주시는 이가 하나이시니 그분께서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네가 누구이기에 남을
판단하느냐?](약4:12).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은 오늘날
각국의 법률과 달리 인간의 합의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국회나 백성들의
대표 기관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이 대신 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주권은 이스라엘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시내 산에서 그들에게 경제 정책이나
복지 정책에 대해서, 또는 누구를 왕으로 세울 것인가 정치
제도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고 먼저 법을 제정해 주신 것은
신정일치 국가로서 가장 먼저 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준비되었고, 법이 제정되고,
이제 영토만 차지하면 완전한 국가가 세워집니다.
주님은 약속의 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법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농사짓는 법,
양을 치는 법, 재테크 요령을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법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각종 절기와 제사를 지내는 법을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무엇보다 먼저 그들에게 법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설계도를
주신 대신 먼저 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뜻은
하나님의 법을 가진 자들이란 뜻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미국 시민권자들은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서 미국의 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시민권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주어지는 것이 준법 서약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며 살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법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법을 귀히 여기고, 그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신정일치 국가에 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어겨도 눈에 곧 바로 공권력으로
연행하거나 투옥하거나 재산을 몰수하거나 죽이지는
않습니다. 대신 속 사람의 영적 상태가 무너집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을 때 그는 곧바로
타락하게 됩니다.
성도가 주님이 주신
자유의 법을 육신의 정욕과 기회로 이용하며 어길 때 마음은
참된 자유가 없어지며(약2:12), 죄의 법을 섬길 때 마귀의
종이 되며, 왕가의 법을 어길 때 왕의 자녀로서의 품위와
능력을 잃게 되며(약2:8), 성령의 법을 어길 때 성령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소멸하게 되며(롬8:2), 믿음의 법을 어길 때
지독한 불신과 독한 회의 속에서 영혼을 시들어 갑니다(롬3:27).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구원자로서 우리에게 법을
수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마땅히 서로
남의 짐을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합니다(갈6:2).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왕가의 법을 성취해야
합니다(약2:12).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며, 어길 때는 그에
따른 불이익과 징계가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주의 법은 세상 법규와는
달리 지킬 때 매우 유익이 많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간직하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결코 미끄러지지
아니하리로다.](시37:31). 마음에 기쁨이 오고, 눈이
밝아집니다.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시19:8).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법을 깨뜨림으로써 눈이 밝아졌지만 선을
택하고 악을 이길 힘을 주지 않았습니다. 반면 주의 명령을
지키면 훨씬 더 눈이 밝아지며, 선을 택하고 악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매 순간, 매사에 주의 법안에서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주야로 묵상하며 그 법을
기뻐했듯이 우리 역시 주님의 법을 기뻐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법 안에서 걸으며 길에서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은 복이 있도다.](시119:1).
3절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3). 십계명 중에 제 1계명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계명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한 참
하나님이시오,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인격적 관계를 맺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 속에서도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계명은
사랑의 대상에서 하나님 보다 앞 설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이야말로 모든 신앙의
출발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분과
같은 다른 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왕상8:22,23
시89:6). 이는 능력이나 지혜나 위엄이나 권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믿는 신자들의 사랑을 받을 대상에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능히 주와 비교될 자 누구리이까?
강한 자들의 아들들 중에서 주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시89:6).
주님과 비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시73:25).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다 많은 것들을 취합니다. 돈, 명예, 권력, 자녀, 쾌락,
교육 등 갖가지 다른 신들을 취합니다. ‘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고 고백할 수 없다면
그는 첫 번째 계명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도
땅에서도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무엇이 내게
있으리요? 주님 한 분 외에 누구도, 아무 것도 사랑할 것이
없다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가진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의 조건에서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10:37), 자기
생명까지라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 앞에 다른 사랑의 대상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부모, 형제간의 혈육이든 자신의 생명이든,
자신의 소유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눅14:27,33). 아브라함이
부모를 떠나 순례의 길을 시작하고,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주님께 바침으로써 믿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는 것은 첫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3).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하는 이 말씀은 우리가 바라는 것(desire)에
대한 말씀입니다. 만약 주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소유하고
싶다면 그는 주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기 자신을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으로 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무엇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 자체가 우리의 기업이
되고, 우리의 상급이 되고, 우리의 방패가 되고, 우리의
바라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하며, 바라는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보다 더 갖고 싶은 것, 주님보다 더 간절히
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요한은 세상 사람의 모든 욕구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이것들을 사랑하면, 이것들을
추구한다면 그는 첫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이 다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났음이라.](요일2:15~16).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을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고 섬기는 대상의 수준에
따라 그 사람의 수준도 결정 납니다. 우상을 섬기면 우상과
같아지고, 맘몬을 섬기면 맘몬과 같아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과 같아집니다.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한다는 것은 곧 영적, 정신적 타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고, 놀라우신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치 있는 일도, 매력적인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인생의 깊은
시련과 좌절, 실패의 연단 속에서 주님 한 분 외에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3).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하는 이 말씀은 우리의 선택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첫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곧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결국 선택입니다(수24:15).
여호수아는 이렇게 결단을 요구했습니다. [만일 주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혹은 너희가 지금 거하는 땅의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이 날 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으로 말하건대 우리는 주를 섬기겠노라,
하니](수24:15). 주님을 선택했다면 다른 신들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택하든지 우상을
택하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우상을 택하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민족이 되고, 이스라엘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선택을 위해서는 선택할 대상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대상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마음과 자원하는 생각으로 그분을 섬길지어다. 이는
주께서 마음을 다 살피시고 생각으로 상상하는 바를 다
아시기 때문이니 네가 만일 그분을 찾으면 만날 것이로되
네가 만일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28:9).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마음,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과정에서부터 시내 산에
이르는 3개월 동안 충분히 하나님을 아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표적과 능력을 보이시고, 말씀을 주시고, 적을 물리치시고,
필요를 공급하시며, 먹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선택이 있고,
결단이 있으면 그 후에는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3).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하는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거룩한 언약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언약도 주님의 언약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어떤 법도 주님과 맺은 법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대영제국이 찬란한 영광을 누릴 때 영국군을
지휘하던 장군은 엘리자벳 여왕의 부름을 거절했습니다.
이는 왕정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유는
수요일 저녁에 선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선약은 다름 아닌 수요 기도 모임이었습니다. 여왕은 장군이
하나님과의 선약(先約)으로 인해 자신의 부름을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영국의 왕인 나와 비교할
수야 없지 않는가!’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이런 신앙을 가졌을 때 영국은 세계에서 해가 지지 않는
전성 시대를 구가했습니다. 엘리자벳 여왕은 영국의 국력
신장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데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계명을 신실하게 지킨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가필드(James
Garfield)의 일화입니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백악관 생활 첫
주에 일어난 일입니다. 각료 한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이번 일요일 아침 10시에 각료회의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꼭 참석해 주십시오." 그것은
비상사태의 위기에 처해 있는 미국을 위한 아주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각료는 깜짝
놀랐습니다. "각하! 이것은 미국의 운명이 걸려있는
중요한 회의입니다. 꼭 참석해야 합니다. 그 약속은
취소하거나 시간을 변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 선약은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각료는 하도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약속하신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렇게
중요한지 솔직히 알고 싶습니다. " 그러나 가필드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솔직히
대답하리다. 주일 아침 10시 30분은 내가 나의 사랑하는
주님을 성전에서 뵙는 시간입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하기고 벌써 오래 전에 나의 주님께 약속을 한 사람입니다."
가필드는 주님과 약속한 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당시 미국의 위기는 아무런 일 없이 잘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선택했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선택했습니다.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
편에서는 명령이지만 백성들 편에서는 주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않겠다는 거룩한 약속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약의 내용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의 법은 매우
간단하고, 일상적인 쉬운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달리
해석해 주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오해의 여지도 없었으며,
이면적인 깊은 내용도 없습니다.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계명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3).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보다 더 두려운
것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크고, 무서운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만 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어린 성도들은 직장 상사나 믿지 않는 동료나
가족들, 친구들,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는 이들이 하나님보다 더 큰 신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상들은 두려운 존재들이
아닙니다. 사람 역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 주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이르되,
오 주여, 내게서 떠나소서.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 하니](눅5:8).
베드로는 이전까지 이런 감정이나 상태를 인식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인격적으로 안 그 순간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깨닫고, 주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계명의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신4:10, 6:2,13,24,8:6,10:12; 말3:5,3:16). 신명기 4:10, [특히
네가 호렙에서 주 네 하나님 앞에 섰던 날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함께 모으라. 내가
그들로 하여금 내 말들을 듣게 하여 그들이 땅에서 사는
모든 날 동안 나 두려워하기를 배우게 하며 자기 자녀들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신4:10), [이것은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하여금 평생토록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이 모든 법규와 명령을 지키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하면 네 날들이 길게 되리라.](신6: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단3:16-18). 빌라도는 하나님보다 군중들의 봉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무죄한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해
버렸습니다. 헤롯은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침례인 요한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첫 번째
계명을 범한 것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한 분 외에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3).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하는 이 말씀은 주님보다 더 존경할
대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에 따라 존경하는 사람이 결정됩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음악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
주고, 입증해 줄 그런 인물들이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전설적인 기록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존경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존경이란
간접적으로 자신이 받고 싶은 자아의 가치, 자신의 능력을
일치시키는 대상이며, 그렇게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존경스런 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주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집회에서 크게
두려워할 분이시오며 그분 주위에 있는 모든 자가 존경할
분이시니이다](시89:7). 주님은 만인의 존경을 받아야
할 분이며, 더욱 성도들에게 존귀함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을 닮게 됩니다. 존경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닮아갑니다. 존경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점점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며, 그렇게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계명은 단순한 계명이 아니라 그 계명이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는 생명의 계명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면 정신 분열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혼란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취할 때 악한 영,
거짓말하는 영, 비뚤어진 영을 보내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면 좋고, 우상을 섬겨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사기에 보면 기드온이 죽자 말자
이스라엘은 첫째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했습니다. [기드온이 죽으매 곧바로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서 바알들을 따라 음행의 길을 가고 또 바아베릿을
자기 신으로 삼고 사방의 모든 원수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주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8:33-34).
이것이 사사기에 나오는 다섯 번째 배교입니다. 주님은 악한
영을 보내셔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사사기 9:23절, [하나님께서
아비멜레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23). 주님께서 악한
영을 보내신 것은 성도들이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무엘상 16:14, [그러나
주의 영께서 사울을 떠나고 주께로부터 온 악한 영이
그를 괴롭게 하므로], 삼상19:10 [그 다음날 하나님께로부터
온 악한 영이 사울 위에 임하매 그가 자기 집 한 가운데서
대언을 하더라.], 왕상 22:23, [그러므로 보소서, 이제 주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대언자의 입에 넣으셨고...]
하나님께 속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19:14, [주께서
이집트 한 가운데서 비뚤어진 영으로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이집트로 하여금 그 모든 일에서 잘못하게 한 것이
술 취한 자가 자기의 토한 것 가운데서 비틀거리는 것같게
하였으니](19).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취할 때, 신앙의 파탄뿐만 아니라 인격 역시 파탄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한 번에 두 가지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double
mind는 주님께 가증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길에서 안정이 없느니라.](약1:8).
만약을 대비해서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무엇도 섬기면 그는
더욱 안전한 것이 아니라 더욱 불안정하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 죄인들아,
너희 손을 정결하게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약4:8)고 합니다. 한 분 하나님을 섬기고
믿을 때 우리의 마음은 단일한 마음, 단일한 눈을 갖지만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할 때 그의 마음은 두 갈래가
됩니다. 시편12:2에 [그들이 저마다 자기 이웃에게 헛것을
말하며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나이다.](시12:2)고
했는데, 이는 첫 번째 계명을 범한 결과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제단에 희생물도 바치면서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Their heart is divided) 이제 그들이 잘못한
자로 드러나리라. 그분께서 그들의 제단들을 파괴하시고
그들의 형상들을 못쓰게 하시리니 이는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리요? 할
것임이라.](호10:2-3). 주님은 약한 마음은 은혜와 위로의
영으로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하시지만 나뉘어진 마음은
심판하십니다. 주님은 상처난 마음을 싸매시며, 기름을 부어
주시지만 갈라진 마음은 징계를 내리십니다. 악한 마음의
소유자는 약한 자들을 무너뜨립니다. 여기서 재기하는 길이
바로 주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3).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하는 이 말씀은 주님보다 더 신뢰하는
존재가 있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고 어떤 다른 것도 주님보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주님 외에
믿을만한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첫 계명을 깨뜨린
것입니다. 사람마다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고, 만약을
대비하는 분들이 있는데 세상은 그것을 지혜라 하고, 성경은
그것을 불신이라고 부릅니다. 간절히 기도하지만 만약 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무엇인가를
계획하고나 일을 꾸미는 것은 불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불안해서 도저히 그렇게는
못살겠다면 그는 이미 깊은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을
그날을 대비해서 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
버리시고, 나를 버리실 그 날을 대비해서, 하나님이 죽어
버리시거나 안 계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듯이 살면서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첫 계명을 파괴하는 큰
범죄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왜 창고를 지어서 소득을
저축했습니까? 물론 놀고 먹기 위해서겠지만 근본 원인은
내년에도, 앞으로도 주님이 이렇게 복을 주신다고 믿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나는 주님 앞에
다른 신들을 취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믿지만, 만약 주님
외에 다른 무엇을 신뢰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다른 신들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할 자리에 사람이 오지
않게 하십시오. [[주]를 신뢰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주]를 신뢰함이 통치자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시118:8-9).
그것은 저주받을 일입니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사람을 신뢰하며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고
마음이 [주]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렘17:5).
주를 신뢰할 자리에 자신의 명철이 오지 않게 하십시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잠3:5).
저는 이 시간 주를
신뢰하는 것의 유익, 복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주를 신뢰하면 주님이 나를 지켜 보존하십니다(시16:1). 주를
신뢰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시21:7). [왕이 [주]를
신뢰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이의 긍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시21:7). 주를 신뢰하면 미끄러지지
않습니다(실족, 타락하지 않는다). [오 [주]여, 내가 나의
순전함 가운데 걸었사오니 나를 판단하소서. 내가 또한 [주]를
신뢰하였사오니 그런즉 미끄러지지 아니하리이다.](시26:1).
주를 신뢰하면 긍휼이 에워쌉니다. [사악한 자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주]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긍휼이 그를
에워싸리로다.](시32:10). 주를 신뢰하면 양식을 먹습니다.
[[주]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 거하고
참으로 /양식을/ 먹으리로다.](시37:3). 주를 신뢰하면 나쁜
소식을 두려워 하지 않고, 마음이 확정됩니다. [그가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그의 마음이 [주]를
신뢰하므로 확정되었도다.](시112:7). 주를 신뢰하면 산과
같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주]를 신뢰하는 자들은 시온
산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같이 되리로다.](시125:1).
이것이 진정한 호연지기(浩然之氣)입니다. 주를 신뢰하면
행복합니다. [문제를 지혜롭게 다루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는 행복한 자니라.](잠16:20).
주를 신뢰하는 자는 기름지게 됩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거니와 [주]를 신뢰하는 자는 기름지게
되리라.](잠28:25). 주를 신뢰하면 안전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려니와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주를 신뢰하면 영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너희는 영원토록 [주]를 신뢰할지니
이는 [주] [여호와] 안에 영존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로다.](사26:4).
주를 신뢰하면 복이 있습니다. [[주]를 신뢰하며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렘17:7).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3).
이는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영광을 다른 누구에게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다른 무엇을 자랑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린다면
그는 첫째 계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자기 지혜를 자랑하고,
자기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고, 돈을 많이 벌었고, 집안이
좋고, 자식 교육을 잘 시켰고, 잘 나가는 사람인지를
자랑하는 자들은 모두 첫 번째 계명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지니라.” 현대인들은 돈,
쾌락, 교육을 섬기고, 자기 배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다른 신들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주님 앞에
드려야 할 시간과 모든 에너지, 열정을 그런데 써 버립니다.
주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들이 엉뚱한데 드려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앞서고, 더 중요하다고 몸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얼마나 한심한 노릇입니까? 저는
첫 번째 계명을 일곱 가지 각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무제한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는 주님의 이 계명의 말씀에서 솟아나는 영감과 조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계명이 그러하듯이 곧 우리의
복을 위해 주신 계명입니다. 무거운 짐으로, 억누르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며, 율법은 그렇게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이 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령하는 [주]의 명령과 그분의 법규를
지키는 것이 아니냐?](신10:13).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사랑의 대상
2. desire의 대상
3. 선택
4. 하나님보다 더 두려운
분
5. 존경의 대상
6. 신뢰의 대상
7. 영광, 자랑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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