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출애굽기 20:12
요절: 출애굽기 20:12
오늘은 십계명 중에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이 구절도 이전 계명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새기고,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요, 효지시야(孝之始也)"라고 해서
"모든 교육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여 모든
교육의 시발점을 효도(孝道)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고 가르친 교육으로서의 효도와 성경이 가르친
계명으로서의 효도(孝道)는 근본적인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 교회에서 가르치기를 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련된 계명, 즉 신적 계명이라고 부르고 제 5계명에서
10번째 계명까지를 인간에 대한 계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계명이야말로 하나님에 관한
가장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통해 인간이 모든 영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순종하는 법을 배웁니다.
부모를 두려워함으로써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조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육신의 아버지를 자주 비유
대상으로 삼으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가르치시곤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셨습니다(호1:10). [그가 내게 부르짖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반석이시니이다, 하리니](시89:26). 하나님은 모든 거듭난 성도들의 아버지십니다. 다섯 번째 계명은 땅의 육신의 부모에게 대한 계명인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계명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듯, 하나님 아버지 역시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데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너희가 악하다 할지라도 너의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들을 권면하듯이 하나님 아버지 역시 자녀들에게 권면하시며,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를 징계하듯이 하나님 아버지 역시 자녀를 징계합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하시는 권면의 말씀을 너희가 잊었도다. 이르시되,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12:5). 육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징계하시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계하십니다(히12:10).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듯이 하나님 아버지 역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돌보시듯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돌보시며, 지키십니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육신의 부모보다 더 신실하시며, 더 은혜로우십니다. 육신의 부모는 상황에 따라 자기 자녀를 버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뜨거운 부성애(父性愛)라 할지라도 자녀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만큼 뜨겁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부모가 나를 버릴 때에라도 주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라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즉 모성애(母性愛)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여인이 어찌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사49:15).
주님은 육신의 아버지를 예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예는 히브리서에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육체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바로잡아도 우리가 그들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고 /이로써/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히12:9). 하나님은 육체의 아버지가 주는 훈육과 징계를 예로 들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징계와 훈육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돌보심, 하나님의 모든 성품들을 배우고 이해하게 하셨으며,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두려워함으로써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학습 방법입니다. 만약 육신의 부모만 공경이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만군의 [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자기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말1:6a).
부모는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주십니다. 부모는 우리를 사랑하고 돌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십니다(벧전5:7). 부모는 우리를 보호합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마18:6). 부모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 줍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빌4:19). 부모는 자식을 가르칩니다. 하나님 아버지 역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요14:26). 부모는 우리를 도와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시46:1). 부모는 자녀들을 격려하고 힘을 줍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십니다. 다섯 번째 계명은 이런 부모의 속성과 가족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이 계명이 깨어지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르게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마귀는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반역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불법이 성행하므로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마24:12).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식들이 부모의 권위 아래서 탈피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무시하며 말을 듣지 않습니다. 미가서 7:6에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욕되게 하며 딸이 일어나 자기 어머니를, 며느리가 일어나 자기 시어머니를 대적하기 때문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 사람들이로다.](미7:6). 주님은 말세에 있을 표적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표적이 바로 다섯 번째 계명이 철저히 파괴되고 무시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가족 관계의 철저한 파괴가 바로 마지막 시대, 배교의 시대, 불법의 시대의 특징입니다. [이제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어 죽게 하며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대적하여 일어나 죽게 하리라.](막13:12).
다섯 번째 계명은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청사진으로서의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네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라는 말씀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출20:12). 이 계명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불립니다. 이 계명은 장수 계명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십계명 중에 계명을 지킴으로써 직접적으로 장수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법규를 잘 지키고, 말씀에 순종할 때 이 땅에서의 날들을 길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어서 건강식을 찾고, 운동을 하고, 병원을 찾지만 그런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한 장수의 비결은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데 있습니다. 신명기 4:40에, [그런 까닭에 이 날 내가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법규와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여야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자손이 잘되고 [주] 네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게 되리라.](신4:40)라고 말씀합니다. 장수의 약속에서 단연 첫 번째는 제 5계명입니다. 오래 살고 싶다면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주님은 효도하는 사람에게 장수를 약속하셨습니다. 오래 살뿐만 아니라 잘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주] 네 하나님이 네게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준 땅에서 네 날들이 길고 네가 잘되리라.](신5:16).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예절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못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며, 십계명 중에 다섯 번째 계명으로써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영적 반역의 문제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교육의 문제나 사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불신앙의 문제란 점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기자가 말하기를, [자기 아버지를 저주하며 자기 어머니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세대가 있느니라.](잠30:11)고 했는데, 오늘날이 바로 그런 세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남편을 존경하라. 아내를 사랑하라’와 같은 가정에 관련된 이런 문제는 인간 본성의 문제라 따로 주님께서 명령할 필요도 없는 계명 같지만 이런 계명이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타락한 본성과 죄의 결과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결코 부모를 제대로 공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권위를 세우시고, 질서를 잡으시고, 바른 관계성을 확립하시기 위해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에 관한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계명에 관한 한 주님은 하늘 나라에서나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아닌 현 세상에서 곧 바로 직접적인 보상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는 이 계명이 얼마나 긴박하고 중요한 계명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잠언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말지니](잠1:8),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말고](잠6:20).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며,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않는 것이 다섯 번째 계명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얻고(요1:12), 아들의 영을 받아(갈4:6),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자니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갈4:26). 이는 우리의 출생이 땅이 아닌 하늘임을 보여 줍니다. 네 어머니의 법이란 바로 하늘의 법, 하나님의 법, 성령의 법을 말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명예롭게 해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명예롭게 하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를 낳은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네 어머니가 늙을 때에 업신여기지 말라.](잠23:22). 그 입에서 나온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흔히 이전 세대보다 교육을 더 받았다는 이유로, 아니면 부모들의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현재 배우고 경험한다는 이유로 세대 차가 어쩌느니 하면서 어른들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불경입니다. 정보 혁명의 시대를 맞이해서 세대별 지식의 격차가 커지고, 공유하는 정보가 다르다고 해서 삶의 지혜가 더 많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결코 갖고 있지 못한 지혜와 연륜이 있습니다. 기계에 대해 좀 더 알고, 컴퓨터를 좀 더 알고, 외국어 한 두 가지 할 줄 아는 것이 부모님들보다 훨씬 많이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를 낳은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내 아들아, 내 말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잠4:20),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며 내 명철(明哲)에 네 귀를 기울여서](잠5:1). [그런즉, 오 자녀들아, 너희는 이제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내 입의 말들에 주의를 기울이라.](잠7:24). [그런즉, 오 자녀들아, 너희는 이제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내 길들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기 때문이니라.](잠8:32). 자녀들은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부모를 공경하게 됩니다. 삼손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그는 힘과 용기를 타고났습니다. 적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몰랐습니다(삿14:3).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먼저 네 자신이 의롭고, 지혜로운 아들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로운 자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할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인하여 기쁨을 얻으리니 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즐거워하며 너를 낳은 여인이 기뻐하리로다.](잠23:23~25). 어느 부모나 자기 자식이 돈을 많이 벌고, 좋은 학교를 나와서 높은 지위와 권세를 누리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그런 것이 부모를 명예롭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부모를 명예롭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식, 의로운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가졌지만 의롭지 못하고, 돈은 많지만 지혜롭지 못하고, 배운 것은 많은데 욕을 얻어먹는 자식을 둘 때 그 부모는 자식으로 인해 어떤 명예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의롭고 지혜로운 아들이 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첫 번째 길입니다. 어리석은 아들이 되면 부모는 수치를 느낍니다. [어리석은 아들은 자기 아버지에게 근심이 되며 그를 낳은 여인에게 고통이 되느니라.](잠17:25). 간단한 예로 gay 아들을 둔 아버지, 사기꾼 이력을 지닌 아들을 둔 아버지, 술집 기생을 딸로 둔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범죄하는 자는 누구나 다 어리석은 자요, 명철이 없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스럽게 합니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즐겁게 하거니와 어리석은 아들은 자기 어머니의 근심거리니라.](잠10:1).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지혜로운 아들, 의로운 아들이 되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롭고 지혜롭게 행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요셉은 어느 상황에서나 의롭고 지혜롭게 행동했기 때문에 훗날 아버지 야곱을 명예롭게 했습니다. 그는 집에서나 들에서나 형들에게 심부름을 가는 일에서나, 종으로서 섬기는 일을 할 때나 감옥에서 죄수 신분으로 있을 때나 총리 생활을 할 때나 늘 의롭고 지혜롭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아버지를 수치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가문의 수치요, 민족의 수치였습니다. 그들은 불법과 불의와 어리석음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엘리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더니 그들이 [주]를 알지 아니하였더라.](삼상2:12). 이들로 인해 엘리는 아직도 강단에서 어리석은 아버지, 자식 교육 헛 시킨 제사장의 표본으로 설교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전 세계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입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삼상2:22~24).
성경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거니와 방탕한 자들의 벗이 되는 자는 자기 아버지를 부끄럽게 하는 자니라.](잠28:7). 저와 여러분이 주의 법을 지키고,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지혜롭고 의로운 아들이 되어 아버지를 명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일은 먼저 우리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로서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고’에 앞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계십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님을 매우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은 주를 매우 기쁘시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우리는 매사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주님이 매우 기뻐하신 것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매우 기뻐하신 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마3:17), 변화산에서 다가올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마17:5),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는 것을 잊지 않을 때(히13:16) 등입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을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정죄하셨습니다(롬1:30). 디모데후서 3:2을 보십시오.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2). 주님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죄를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성 모독과 함께 다루시고 계십니다. 에베소서 6:1에 말하기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고 합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옳은 일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일에 철저히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했듯이 우리 역시 순종함으로써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자녀도 부모에게 먼저 드린 것이 있어서 부모가 자녀에게 보답해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먼저 무엇인가를 드려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답해 주셔야 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누가 그분께 먼저 드려서 보답을 받겠느냐?](롬11:35)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에게, 하나님 아버지에게 보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하여금 먼저 집에서 효성을 보여 자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하며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5:4). 우리는 일평생 무엇으로도 부모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며,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보답은 경제적, 정신적, 영적 문제가 다 포함됩니다. 우리는 부모에 대한 경제적 부양의 의무를 함으로서 보답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8,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부양하지 아니하면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못한 자니라](딤전5:8). 요한일서 4:20에서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직접 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요]라고 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듯이,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에게 보답하지 못하는 자들은 보지 못하는 하나님께 보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부패하였으니 그들의 반점은 그분의 자녀들의 반점이 아니요, 그들은 사악하며 비뚤어진 세대로다. 오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백성이여, 너희가 [주]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분은 너를 사신 네 아버지가 아니냐? 그분께서 너를 만드시고 세우시지 아니하였느냐?](신32:5-6). 우리는 주님께 받은대로 전부 다 보답할 수 없다 하더라도 ‘보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불신과 불순종, 배교로 보답한다면 주님의 은혜를 너무나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을 사신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과 믿음으로 보답해야 하듯 우리는 우리를 낳으신 육신의 부모와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바르게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보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에 대한 합당한 반응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보답입니다.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했던 히스기야 왕은 말년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은혜대로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자기에게 행하신 은혜대로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 위에 진노가 임하게 되었더라.](대하32:25). 그는 15년이나 수명이 연장되는 은혜를 받고 나서 마음이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기적적인 표적(태양이 10도 뒤로 물러난 일-시간이 40분 뒤로 물러남)을 보고 나서 마음이 높아지고 말았습니다(왕하20:10).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은혜대로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히스기야처럼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멸시하고, 무심하게 지나쳐 버림으로써 전혀 보답하지 못하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택(恩澤)을 내가 무엇으로 [주]께 보답하리요?](시116:12). 우리는 마땅히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값없는 은혜에 대해서 무거운 세금을 물리거나 가격을 메기셔서 자녀들을 압박하지 않습니다. 어느 부모도 자식에게 몸이나 돈으로 은혜를 갚을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른 마음, 바른 관계성, 바른 자세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무엇으로 주님께 보답했는지 보십시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의 온 백성의 눈앞에서 이제 나의 서원들을 주께 이행하리로다.](시116:13~14). 다윗은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주의 이름을 불렀고, 주님 앞에서 서원한 것들을 이행함으로써 주님께 보답했습니다.
이는 목양지간에도 성립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양들에게 영적인 아버지였습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같이 타이르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언정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4~15).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해 구원받은 양들을 양육했는데, 그들을 향해 자신이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믿음 안에서 나의 친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딤전1:2), ‘아들 디모데야...’(딤전1:18),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디모데에게...’(딤후1:2)라고 편지했습니다. 빌레몬서에는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를 향해, [결박 중에 낳은 나의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청하노라.](몬1:10)고 했습니다. 이런 바울을 향해서 영적으로 그의 자녀된 이들은 무엇인가를 보답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넓게 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내 자녀에게 하듯 말하노니) 이제 너희도 같은 것을 보답하는 뜻으로 /마음을/ 넓게 열라.](고후6:13). 바울의 자녀된 양들은 바울의 권면을 받아 주님을 잘 섬기고, 주님께 감사하며, 믿음이 강하게 자라나는 것이 다 보답하기를 제대로 배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든든하게 자라났을 때 바울 사도는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기쁨과 감격에 차서 물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다시 하나님께 보답하리요?](살전3:9).
우리는 이로써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이 일차적으로 육신의 부모, 이차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영적 교훈으로써 목양자까지를 다 내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이외에도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모든 계명과 마찬가지로 다섯 번째 계명을 썩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공생애 사역동안 주님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보시면서 통탄을 하셨고, 그들의 죄를 여러 차례 지적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여 이르시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무엇이든 내가 드려 /부모님을/ 유익하게 할 것이 예물이 되었나이다 하기만 하면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아도 /의무를/ 면제받으리라, 하여 너희 전통으로 이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가 되게 하였음이로다.](마15:4-6). 이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는데 써야 할 재산이나 돈, 보물들을 ‘예물이 되었나이다’라고만 하면 다섯 번째 계명을 안 지켜도 상관없다, ‘면제받으리라’고 해 버린 당시의 부패한 유대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성전이나 헌물, 헌금 등을 악용해서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의무를 피하는 자들을 향해 주님은 ‘너희 위선자들아!’라고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오늘날 소위 교회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짓말입니다. 다섯 번 째 계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인 동시에 그에 대한 형벌도 엄청나게 큽니다. 성경은 부모에 대해 불경하는 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성 모독과 동일한 정도로 엄격하게 처리합니다. 자기 부모를 때리는 구타 행위에 대해서는 살인이나 신성모독과 동일한 형량을 정해서 사형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21:15).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강탈하고서도, 이것은 범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곧 파멸시키는 자의 벗이니라.](잠28:24). 파멸시키는 자가 누구입니까? 출애굽기 12:23에 온 이집트의 장자들을 죽인 천사가 바로 파멸시키는 자라고 불렸습니다(히11:23). 욥기 15:21에는 마귀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시편 17:4에서도 역시 마귀를 가리킵니다. 자기 부모를 치거나 강탈하는 자는 죽음의 천사나 마귀의 벗입니다.
부모에게 물리적인 주먹질이나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입으로 저주하는 행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는 것과 동일한 형벌에 처했는데, 법정 최고형인 사형으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21:17). 부모에게 불경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신정 국가가 아니어서 아무도 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그에 상응하는 영적인 재앙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면 그 사람의 등불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꺼지리라.](잠20:20).
뿐만 아닙니다. 고집이 세고 반항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두들겨 패도 말을 듣지 않고 깽판을 부려도 그는 사형에 처하도록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고집이 세고 반항하는 아들이 있어서 자기 아버지의 음성이나 자기 어머니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붙잡아서 자기 고장의 성문에 이르러 그 도시의 장로들에게 나아가 도시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아들은 고집이 세고 반항하며 우리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요 술주정뱅이라, 하거든 그 도시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거할지니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21:18-21).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녀는 아예 사형에 처해서 영원히 이 사회에서 단절시켜 버림으로써 악을 제거했습니다. 이는 다섯 번째 계명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작은 부분까지 엄격하게 집행되었는지를 엿보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복의 근원같은 계명인 동시에 무시할 때는 재앙의 근원같은 계명입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업신여겨도 저주를 받습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16). 오늘날 반역하는 불순종의 세대들은 부모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압니다. 그것이 저주를 받을 짓이란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죄를 깊이 회개하시고 주님 앞에 남김없이 자백하시고, 이 시간 이후로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물론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패역과 불순종, 악함이 부모님이 나를 잘못 키우셔서 그렇다고 합리화되거나 죄가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우셨든 이제 교회에서 성경을 통해 말씀을 배웠다면 이 말씀에 따라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고, 보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아버지를 조롱하며 자기 어머니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들이 쪼아 내고 독수리 새끼들이 먹느니라.](잠30:17). 우리는 구약의 역사에서 이런 예를 많이 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반역했다가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것도 무려 배에 세 개나 찔렸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우습게 여겼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한 날에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부모를 공경하는가? 구체적으로 살펴 봅시다. 공손하고 예의있는 말투를 사용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반말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몸짓이나 행동에서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만났을 때 몸에 땅을 구부려 절을 했습니다(창46:29). 솔로몬은 어머니 밧세바가 들어왔을 때 보좌에서 일어나 절을 했습니다(왕상2:19). 그리고 자주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주의 깊게 말을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조언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마십시오. 야곱은 나이 40이 되었어도 자신의 배우자 선택에 대한 부모의 조언을 들었습니다(창28:1-2). 그리고 부모님의 필요들을 살펴서 채워 주십시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1. 귀를 기울이라
2. 네 자신이 의롭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
3. 순종하라. -주님을 매우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다.
4. 보답하기를 배우라.
* 약속있는 첫 계명- 땅에서의 장수와 잘 되는 것이 보장되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불순종의 형벌은 법정 최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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