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
말씀: 출애굽기 20:7
요절: 출애굽기 20:7
오늘은 십계명 중에 세 번째 계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삼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계명입니다. 서양사람들은 아이들도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동양인들의 정서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큰 실례라고 여겨서 어른들은 별호를 지어서 불렀고, 시골에서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택호’를 지어서 불렀습니다. 이름을 매우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란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나라에나 이름에 관련된 법이 있습니다. 만약 누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면 ‘명예훼손(名譽毁損) 죄’로 고발하여 벌을 주거나,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지위가 높거나 덕망이 높은 사람의 이름을 더럽혔을수록 명예훼손의 죄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커집니다. 그렇다면 온 우주에서 가장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분을 모독했다면 그 죄는 얼마나 더 크고 무거울 것인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지거나 오용되거나 욕을 먹는 것을 원하지 않듯이 하나님 역시 자신의 이름에 관해서는 너무나 철저한 분이십니다. 주님이 주신 세 번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명예훼손 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간 삼 계명을 다 같이 암송하시고, 이 말씀을 평생토록 마음속에 귀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것을 특별히 ‘신성모독’이라고 합니다. 신성 모독하는 여자는 창녀나 동급으로 처리했는데, 이런 여자는 아내로 맞이해서도 안됩니다(레 21:7.14). 구약의 위대한 왕 다윗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여 간통과 살인을 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죄로 인하여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원수들에게 모독당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제 삼계명을 범한 죄에 대해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주]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나는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니라.](삼하12:14). 우리는 어떤 죄를 범할 때 그것이 바로 신성 모독,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세 번째 계명을 깨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 이는 [주]가 자신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할 것임이라.](출20:7).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우상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보다 더 큰 신성 모독,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레위기 18:21을 보십시오. [너는 결코 네 씨 가운데 하나라도 몰렉을 위하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지 말고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주]니라.](레18:21). 이스라엘은 장자를 모두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들의 첫 소산도, 짐승의 첫 새끼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주님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자식을 몰렉에게 바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경배의 대상이 잘못되는 것이 신성 모독이요, 주님에 대한 명예 훼손입니다.
거짓 맹세 역시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고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주]니라.](레19:12).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거짓 맹세는 다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맹세하겠다고 한다든지,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를 하는 등의 행위는 세 번째 계명, 즉 신성모독과 명예훼손에 걸립니다. 성(姓)을 갈겠다느니,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느니 하는 맹세도 하지 마십시오. 구약 성경에서는 거짓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주님은 이제 어떤 맹세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5:33-36에 [또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거짓 맹세하지 말고 네가 맹세한 것을 {주}께 이행하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결코 맹세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하지 말 것은 하늘이 하나님의 왕좌이기 때문이요, 땅을 두고도 하지 말 것은 땅이 그분의 발받침이기 때문이요, 예루살렘을 두고도 하지 말 것은 예루살렘이 위대한 왕의 도시이기 때문이라.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 것은 네가 머리털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 그러나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맹세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오는 아니오라 하라.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마5:33-36). 야고보 사도 역시 [그러나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맹세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오는 아니오라 하라.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약5:12)고 말했습니다. 맹세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맹세를 하든지 자동적으로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연관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매우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름, 경배의 대상인 이름이 아무렇게나 불리고, 헛되이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느헤미야 9:5에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서서 영원무궁토록 [주] 너희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주의 영화로운 이름 곧 모든 찬송이나 찬양보다 높임을 받은 그 이름을 찬송할지어다.](느9:5b)고 했습니다. 역대기상 29:3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29:13). 이것이 바로 합당한 예배입니다. 주님께서 이집트에서 이들을 인도해 내시고, 계속해서 이들을 인도하시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짐승이 골짜기로 내려감같이 [주]의 영께서 그를 안식하게 하셨나니 이처럼 주께서 주의 백성을 인도하심은 친히 영화로운 이름이 되고자 하심이라.](사63:14). 주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시편23:3,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그런데 이 이름을 헛되이 취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다른 이방인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 주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것을 더욱 슬퍼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를 보호하는 이름입니다. [고난의 날에 [주]께서 네 말을 들으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보호하시며](시20:1).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의 깃발입니다. 우리는 이 깃발 아래 모인 군대입니다. 여러분은 세 번째 계명을 이전에 모든 말씀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깃발로 세워 두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네 구원을 기뻐하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주]께서 네 모든 청원(請願)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시20:5).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를 먹이십니다. [너희는 풍족히 먹고 만족하며 너희를 놀랍게 대접한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내 백성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욜2:26). [또 그가 [주]의 능력과 [주] 자기 하나님의 이름의 위엄으로 서서 /그들을/ 먹이리니 그들이 머물 것이라. 이는 이제 그가 크게 되어 땅 끝까지 이를 것임이라.](믹5:4). 하나님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입니다.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로운 자는 거기로 달려가 안전을 얻느니라.](잠8:10).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의 도움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의 이름에 있도다.](시124:8). 하나님의 이름은 그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원이 있을 것이며 또 [주]께서 부르실 남은 자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임이라.](욜2:32).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경배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국가라 불리는 미국은 어떤 면에서 가장 저주받은 나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God, Jesus, Christ)이 일상 생활의 대화 가운데 자연스럽게 저주나 욕설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마음으로 주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석에서 우리가 한 어떤 헛된 말(빈말)이라도 모두 해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니](마12:36).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빈말이나 농담, 욕이라면 달리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말로는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지만 내가 주님을 부를 때 믿음과 진실함이 없다면 우리는 세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오 야곱의 집이여, 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고 유다의 물들에서 나왔으며 [주]라는 이름으로 맹세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되 진실함과 의로움이 없이 그리하는도다.](사48:1).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가 심중의 신앙 고백이 되고, 말씀을 믿는 믿음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믿음의 의’가 전혀 없이 부른 입술의 기도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믿음이 없는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는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에 대하여 잘 대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자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막7:6). 주님은 이들이 모두 제 3 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음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먼 채 외적으로, 율법적으로, 몸으로 때우는 종교 행위는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고, 긍휼을 원하십니다(호6:6).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은 모독을 받습니다. 로마서 2:24,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도다, 함과 같으니라](롬2:24).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율법대로 믿고, 율법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른 것이며, 신성 모독이란 것입니다. 성경대로 살지 않는 성도보다 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성도들이 전혀 믿음없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금반지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부자들을 높여 주고, 가난한 자를 멸시하며 악한 판단을 일삼을 때, [그들은 너희를 부를 때 쓰는 그 귀한 이름을 모독하지 아니하느냐?](약2:7)며 엄히 책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부르는 그 귀한 하나님의 이름, 그분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모독을 받게 되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 고백을 배반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열매없는 삶을 살아서도 안됩니다. 디도서 1:16,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버림받은 자들이니라.](딛1:16). 말은 그럴듯하게 하고, 겉모습은 번지르르 한 성도들보다 더 꼴불견이 없습니다. 이런 행위는 주님이 밀씀하신 대로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한 결과라는 점을 명심하고 두려움과 떨림을 가져야 합니다.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일하며, 주인을 존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불신자들보다 훨씬 신실해야 하며, 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주님이 주신 세 번째 계명은 여지없이 깨지고 맙니다.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다 자기 주인들을 매우 존경할 자로 여길지니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교리가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딤전6:1). 눈가림으로 일하고, 속이고, 부정직한 것은 단지 그 죄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고, 헛되이 취해진 것까지 추가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자매들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세 번째 계명에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느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디도서 2:5에 [신중하며 정숙하고 가정을 지키며 선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2:5). 자매들이 남편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단지 부부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문제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습니다. 자매들은 어떤 경우에도 남편을 사랑하고 극진히 존경할 뿐만 아니라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계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는 놈팽이 같은 남편에게 지극 정성으로 순종함으로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일가 친척들에게까지 칭찬을 받는 자매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오늘날 현 세대는 불순종의 영이 충만한 시대입니다. 불복종, 반항을 권위주의를 탈피한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왜 순종해야 하는지 모르고, 종업원들은 주인에게 왜 순종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국민은 정부에 복종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중에 권위가 가장 빨리 해체되고 있는 곳이 바로 부부 관계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은커녕 대등한 관계, 오히려 섬김 받으려는 자세를 유지합니다. 이는 심각한 병이며, 죄악입니다. [신중하며 정숙하고 가정을 지키며 선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2:5). 이는 바로 세 번째 계명과 연관된 말씀입니다.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의 이름을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부르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그들이 당황하여 영원토록 고통을 받게 하시며 참으로 그들이 수치를 당하여 멸망하게 하사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라는 이름의 주만 홀로 온 땅을 다스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심을 알게 하소서.](시83:16-18). 주님이 누구신지를 선포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않는 가장 적극적이고 안전한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주를 모독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주님은 세 번째 계명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그에 대한 형벌은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죄를 범한 사람이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그 때 주님은 어떻게 형벌을 집행하셨는가 보십시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로서 그 아버지는 이집트 사람인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나가더니 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과 한 이스라엘 사람이 진영에서 서로 싸우다가 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주의 이름을 모독하여 저주하므로 그들이 그를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에 속한 디브리의 딸이더라.) 그들이 그를 감금하고 주의 생각을 알고자 하더라. 이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머리에 손을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는 자기 죄를 담당할 것이요, 주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반드시 돌로 그를 칠 것이라. 타국인이든지 그 땅에서 태어난 자든지 주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레24:10-16). 주님은 돌로 쳐서 죽이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정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형법으로도 이런 죄를 단죄하거나,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계명에 대한 범죄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주의 이름을 자신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마귀는 주님을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 자신들을 위장합니다(계2:9). 술을 먹으면서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먹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던지, 탐욕을 부리면서 나는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악한 자라고 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든지, 성질을 내면서 ‘화를 내되 죄를 짓지 말라’고 했다든지 등등 성경 구절들을 자기 마음대로 끌어 들여 자신을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인용하면 자동으로 그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고 맙니다. 말씀을 헛되이 취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헛되이 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을 멸시하는 자는 주의 말씀을 멸시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모든 이름보다 자신의 말씀을 더 크게 하셨습니다(시138:2). [내가 주의 거룩한 전(殿)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仁自)와 주의 진리로 인하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더욱 크게 하셨음이니이다.](시138:2). 오늘날 교회성도들이 가장 자주 범하는 세 번째 계명의 유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이 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몇 가지 예를 봅시다. 사무엘하 15:7-8, [사십 년 뒤에 압살롬이 왕께 이르되, 내가 주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로 하여금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갚게 하소서. 이는 종이 시리아의 그술에 머물렀을 때에 서원하여 말하기를, 만일 주께서 참으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주]를 섬기리이다, 하였음이니이다, 하매](삼하15:7-8). 압살롬은 반역의 무리들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떠나면서 다윗 왕을 속이기 위해 하나님을 들먹였습니다. ‘주께 서원한 것이 있다, 주를 섬기겠다’는 말은 신앙심 좋은 다윗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어두운 욕망을 성취하려는 계략이었습니다. 압살롬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헛되이 취해지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몸에 창이 세 개나 박혀 죽었습니다.
사울 역시 세 번째 계명을 범한 경우입니다. 사무엘상 15:13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주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주의 명령을 수행하였나이다, 하니](삼상15:13). 이 역시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순종과 죄를 감추기 위해서 사무엘에게 계속해서 [주의 복, 주의 명령]을 들먹였습니다. 자신은 주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했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사람들이 그것들을 아말렉 족속에게서 끌어왔는데 이는 백성이 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양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겼기 때문이오며 나머지는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매](삼상15:15). 이 얼마나 황망한 경우입니까? 주님을 위해 주님께 불순종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만물의 척도요,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자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고쳐 주겠다는 학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자기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지금 주의 이름으로 헌금을 거두고, 기독교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다 사울의 부류에 속합니다. 사울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사무엘에게 회개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논리로 맞섰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다만 백성이 마땅히 진멸시켜야 할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양과 소들을 노략하였나이다, 하매](삼상15:21). 내가 소와 양들을 멸하지 않고 전리품으로 노략한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또 한번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고 말았습니다. ‘탐이 나서 그랬습니다.’ 이 한 마디를 하기가 어려워서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했는데, 이런 자기 죄의 변명으로 인한 방어 논리는 오늘날 교계에 널리 퍼져 있는 현상입니다. 저는 자기 죄를 변명하는데 말 못하는 성도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버림받아 자신이 살려둔 아말렉 족속의 청년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삼하1:10).
이런 예 가운데 압권은 아합의 부인 이세벨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신실한 종 나봇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한 편의 완벽한 살인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나봇의 도시에 거하는 장로들과 귀족들이 동참했습니다. 열왕기상 21:8-14을 보십시오. [그녀가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의 인으로 봉인하고 나봇의 도시에서 그와 함께 거하는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내니 그녀가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뒤에 벨리알의 아들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그를 대적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모독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 돌로 쳐서 죽이라, 하였더라. 그 도시의 사람들 곧 그 도시에 사는 거주민 장로들과 귀족들이 이세벨이 자기들에게 보낸 대로 곧 그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행하여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그때에 벨리알의 자손 두 사람이 들어와 그 앞에 앉고 그 벨리알의 사람들이 백성의 눈앞에서 나봇을 대적하여 증거하며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모독하였다, 하매 사람들이 그를 도시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서 죽이고 이세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라.](왕상21:8-14). 이세벨은 이방 여인이요, 우상 숭배자라고 하더라도 그 도시의 장로들과 귀족들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리보다는 현실을, 좁은 길보다는 이세벨이 제공한 정치적 흥정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한 살인에 동참했습니다. 그 결과 훗날 이세벨은 창밖에 던져져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이런 불의한 행동은 중세 1500년 동안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질 박해와 추방, 살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요, 참으로 때가 이르면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생각하리라.](요16:2).
믿음의 조상 중 하나였던 야곱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쟁취했을 뿐 아니라 이제 아버지의 축복까지 받아내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삭이 자기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찾았느냐? 하거늘 그가 이르되, 주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그것을 내게 보내 주셨나이다, 하니](창27:20).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거짓되이 취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외삼촌 라반에게 20년간을 노예처럼 착취당했고, 약속한 라헬이 아니라 부인까지 레아로 바꿔치기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급하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내게 보내 주셨나이다.’라고 합니다. 불의한 재물을 얻어도 주님이 복을 주셨다고 간증하고, 불경건한 것들을 취해놓고도 주님께서 주셨다고 하며, 기도해서 얻었다는 식으로 자꾸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합니다.
사울이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한 후에 주님의 이름을 들먹였다면, 이세벨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주님을 이용했고, 야곱은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다 하나님의 허락하심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야곱은 ‘이득을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경 말씀대로가 아닌 자기 방식대로 주님을 섬깁니다.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으로,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헛된 경배라고 하셨습니다(마15:9). 어떤 사람들은 소원을 빌기 위해 자기 마음에 우상을 세워두고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떤 분은 은혜를 받기 위해서 예배에 나옵니다. 그러나 진리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이름을 그들 사이에서 헛되이 취해집니다. 진리와 비진리의 경계를 바로 세우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은혜가 없다, 사랑이 없다, 교조적이다, 분란만 일으킨다’며 배척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외치면서 불의와 타협하고, 세상과 친구가 되고, 성경의 원칙들을 깨뜨려 버립니다. 매우 극단적인 실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미가가 은 천백 세겔을 자기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새긴 형상과 부어 만든 형상을 만들려고 이미 내 손에서 이 은을 [주]께 온전히 드렸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하니라.](삿17:3). 새긴 형상과 부어만든 형상을 만들려고 자신의 은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이 헌신이라 할 수 있고, 예배라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 드린 것이 아니라 ‘내 아들을 위해’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종교입니다. 자기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들은 무엇이든지 바칠 수 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온전히 은을 드렸습니다. 오늘날 기복 종교로 달리고 있는 이곳 교회들이 모두 미가와 미가의 어머니와 같이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바쳤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목적과 동기로, 올바른 방법으로 주님께 드렸는가? 그것이 핵심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은을 주께 바쳤지만 동시에 1, 2, 3 계명을 모두 다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신약에도 이런 예가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 토지를 팔아서 교회에 헌금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 헌신된 믿음의 소유자란 명성을 얻고 싶어서 바쳤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숨긴 채 하나님께 다 드린 것처럼 했을 때 주님은 ‘네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성령께 거짓말했다’고 판명하시고 즉사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이름으로 구원받고(행4:1;2), 이 이름을 선포하고(고후4:5), 이 이름을 위하여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행15:26), 그분의 이름이 섬김의 동기가 되고, 기도의 힘이 되며, 말과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행위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힘입어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골3:17). 우리는 결코 예수란 이름을 헛되이 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시편 113:1-3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오 [주]의 종들아, 너희는 찬양하라.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로다.](시113:1-3). 누구를? 주를. 무엇을? 주의 이름을. 언제까지? 영원토록. 어디서?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떼까지.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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