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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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마 27:49-28:20

요절: 마 27:


오늘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사입니다. 흔히 성도의 신앙을 다섯
가지로 요약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1. 창조 신앙-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창조 신앙은 주님을
창조주로 믿기에 그분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출발입니다. 내 영혼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의 주관자로서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2. 성육신 신앙-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믿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3. 십자가 신앙- 십자가의 죽음과 피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성육신의 일차적인
목적이 바로 인간의 죄와 저주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죄와
저주가 되신 것이며, 이것이 십자가의 신앙입니다. 주님은
옛 창조, 옛 사람에게 속한 어떤 것도 그냥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육신에 속한 어떤 것도 주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오직 십자가의 피를 통해 정결케 되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만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4. 부활 신앙- 죄의 저주와 심판으로부터 해방되어 새 생명을
얻게 하셨다. 죽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는 십자가를 통한 죽음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의 현재적인 삶에 가장 강력한 능력(power)입니다.


5. 재림 신앙(종말 신앙)- 주님은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이는
우리의 유업과 미래의 영광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하루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원동력을 제공해 줍니다.


저희들은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해서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 무오한 보존된 말씀으로서 우리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 권위이다’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5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50). 여기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친 말씀은
누가복음 23:46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숨을 거두시니라.
](눅23:46).
이로써 성경에 미리 예언되고, 기록된 십자가의 죽음은
성취되었습니다. 이 죽음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의 죽음과도
전적으로 다른 죽음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죽음은 다
죄의 결과로 인한 죽음이었습니다. 초목이든 짐승이든 모든
생명체의 죽음은 죄와 저주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호흡을 주관하시는 분이신 주님께서 숨을
거두심으로 이제 죄와 저주로 인한 죽음을
종결시키셨습니다.


51-53절은 주님의 죽으심에 따른 표적들입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이 어떤 죽음인지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에,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들이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니 잠든 많은 성도(聖徒)들의 몸이 그분께서 부활하신
뒤에 일어나 무덤 밖으로 나와서 거룩한 도시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1-53). 주님이 숨을 거두시는 순간
일어난 첫 번째 이적은 성전의 휘장이 둘로 갈라진
사건입니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에 대해 갖는
효력입니다.


성전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 짓는 휘장입니다.
휘장은 주님께서 광야의 성막에서나 솔로몬의 성전에서나
그 제작 방법을 알려 다음과 같이 알려 주셨습니다. [또 그가
청색과 자주색과 진홍색 /실/과 고운 아마 /실/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수놓았고
](대하3:14,출26:31참조).
이렇게 만든 휘장은 매우 두껍고 질겨서 황소 몇 마리가
잡아 당겨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동시에 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졌습니다. 일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 외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던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성막은 지성소라 일컬음을 받나니
](히9:3).
휘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히브리서 10:20에 정확히
나옵니다.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히10:20). 주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휘장은 열렸습니다. 누구나 믿는 자는 하나님이 계신 저
하늘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곳으로
들어가나니
](히6:19).


십자가의 죽음의 실제적인 역사, 실제적인 효과가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이 바로 성전의 휘장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들이 두려움없이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이 열린 것입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숨을 거두시자마자 이 세상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6).


둘째, 이는 십자가의 죽음이 믿는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결과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숨을 거두시는 동시에
일어난 일은 땅이 갈라지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린
일입니다.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땅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입니다.
이 땅이 아벨의 피를 받은 때로부터 수많은 의인들의 피를
받았습니다. 마침내 땅을 지으신 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위로 떨어졌습니다. 이 때 첫 열매(firstfruits)라고 불리는
구약 성도들의 부활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속과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다 죽었던 구약 성도들은
주님의 죽으심으로 자신들의 죄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어
죽음에서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생명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동안 죽어 있던 믿음의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믿음의 성도들의 죽음에 대한 부활이란 직접적인
결과를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죄를 용서받았지만 결코 깨끗하게 되지
못했습니다.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이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아니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
](출34:7). 이는 그들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믿음의 영웅들이
믿음이 없었다거나, 약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들은 이들이 믿음이 있었고, 믿음으로 죽었고, 부활에
대한 소망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음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완전히 제거해 줄 피가 없었습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기 때문
이라.
](히10:4). 이것이 신약과 구약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신약 성도와 구약 성도의 믿음은 같은 종류의
믿음이지만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드리는
희생물은 약속과 소망에 근거한 것인 반면 신약 성도들의
믿음은 사실과 역사에 근거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을
보십시오. [이는 율법은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사람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리는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히10:1).
구약 성도들의 믿음은 실체가 아직 오지 않는 가운데 믿는
모형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거룩한 산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렸을 때, 구약 성도들의
죄는 완전히 제거되었고,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지하 세계에 곧 바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동안 지옥과 낙원은 지하에 깊은
구렁을 사이에 두고 같이 있었습니다(눅16). 아브라함을
비롯한 의인들의 혼은 모두 지하 낙원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숨을 거두시고 그 혼이 지옥으로 가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었음이 지하 세계에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9,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으니
](벧전3:19)란
말씀은 바로 주님께서 죄와 저주를 가지고 지옥으로
가심으로 지하 세계의 모든 자들에게 이 사실을
선포하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행2:27,31,엡4:91)). 주님은 지하
낙원을 저 하늘의 셋째 하늘로 옮기셨습니다(고후12:4, 계2: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갖는 의미와 실제적인
역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54절을 보십시오. [이때에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켜보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4).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증거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사9:6).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고백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피조물이거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분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나 여기
백부장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이사야 9:6에
근거한 것으로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여 있고
그의 이름은 기묘라, 모사라, 강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는
아버지라,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임이라.
](사9:6).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란 의미입니다.


55-61절은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주로 여인들이었습니다(55-56). 이들은
갈릴리에서부터 그분을 따라왔고, 평소에도 물질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사람들이 자기 재물로 그분을 섬기더라.
](눅8:3).
십자가 곁에는 4명의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요19),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마27:56-작은
야고보라 불리웠음/막15:40), 막달라 마리아(막15:40),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요19:25-살로메)입니다. 57절부터는
아리마대 요셉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부자였습니다. 존경받는 공회원이었습니다(막15:43).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요19:38). 정, 관계와 재계의
유명인사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영적 지각력과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을 반대했고(눅23:52, 요7:50-51-니고데모),
함께 주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요19:39-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요19:39).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용기와 담력을 가지고 빌라도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몸을 요구했습니다(58). 십자가는 마음 가운데
용기를 심어 주고,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요셉은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아마포로 싸서 돌무덤에
두었습니다.


62-66절은 또 다른 바리새인들의 행동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인 후에도 부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부활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을 두어 돌문을 지키게 한 표면적인 이유는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무덤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6절을 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에
그들이 가서 돌을 봉인(封印)하고 파수꾼을 세워 돌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66). 이는 다니엘 6:17의 사자굴에 갇힌
다니엘을 기억나게 합니다. 다니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늙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지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돌을 가져다가 어귀를 막고, 왕의 도장과
영주들의 도장으로 인을 쳐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돌을
가져다가 그 굴의 어귀를 막고 왕이 자기 자신의 도장과
자기 영주들의 도장으로 그 굴에 인을 쳤으니 이것은
다니엘에 관하여 결심한 바를 /아무도/ 바꾸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단6:17).


이들은 예수님이 살아 생전 하신 말씀인 [내가 사흘 뒤에
다시 일어나리라
]란 말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마27:63).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듣고, 기억하고, 안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이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이 말씀을 믿었더라면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결합하지 않는 지식은 어떤 영적 유익도 힘도 주지
못합니다.


28장입니다. 1-8절은 부활의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주님은
주의 첫날 부활하셨습니다(1). 부활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료를 가지고 이른 아침에 돌무덤으로 향했습니다(눅24:1).
주님은 여러 차례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
사실을 믿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조차 못했습니다. 이들은 부활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걸고 무덤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연민과 인간적인 애정이 있었지만 영적인 믿음은
없었습니다.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을 막은 돌을 굴렸고, 그
위에 앉아서 무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했습니다(2-5). 5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너희가
찾는 줄
내가 알기 때문이라.
](5). 주의 천사가 돌을 굴린
순간에 주님이 부활해서 나온 것이 아니고 주님은 이미 돌
무덤에서 나온 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공간 이동이
자유롭습니다.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굴린 것은 여자들과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보여주고, 확인하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오는 여자들은 누구를 찾습니까?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살아나신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찾습니다.
무덤에는 더 이상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마치 여인들처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만을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천사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 이는
친히 말씀하시던 대로 일어나셨음이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라.
](6). 천사에 의해 공식적으로 주님의
부활이 선포되었습니다. 이것은 환영이나 환상이나 영적인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입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24:39)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은 단지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은 구약에도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나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4:36)도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부활은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고, 주위
사람들에게 놀람과 이야기 거리가 되겠지만 나의 생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다시
살아난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죽지 않는 영광스런 몸’을
입는 부활입니다. 이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부활입니다. 주님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그들이 천사들과 동등하며 부활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라.
](눅20:36). 죽었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다시 죽었고, 천사들과 동등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모형일 뿐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낸
사건입니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권능있게 선포하셨습니다.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드러나셨느니라.
](롬1:4).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종교를 믿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부활이 없다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인지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활을 통해 주님은 자신의 모든 말과 공생애 기간동안
이루신 사역들을 확증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과 흘리신 피의 효력을 보증해
줍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거나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죄에 대한 속죄의 피가 온전한
효력이 있음을 입증하셨습니다.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될 것임이라.
](롬6:5).


7절을 보십시오. 주의 천사는 무덤을 찾아온 여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증거하도록 사명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와같이 십자가의 전달자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서둘러
돌무덤을 떠나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을 전해 주려고
달려가더라.
](8).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가장 좋은
일입니다.


주님은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말하러 갈 때 그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9-10절입니다. [여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러 갈 때에, 보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잘 있느냐
, 하시거늘 그들이 나아와 그분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그들이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9-10). 주님은 불신으로
두려움 가운데 숨어 있는 제자들을 향해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친구로 삼으셨고, 형제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맏형이 되십니다. [이는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기 때문이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히2:11). 주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책망하시거나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고향이요, 처음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듣던
갈릴리로 가게 하셔서 그곳에서 만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올리브 산이나 예루살렘의 성전이나 시내산으로 집합시킨
것이 아닙니다. 이는 믿음에서 떨어진 제자들에게 첫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한 섬세한 배려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떨어질 때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살펴보고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11-15절은 세상에 뿌려진 가라지(독보리)들입니다. 주님이
뿌리지 않는 말씀이 세상에 나돌게 되는데는 마귀의
일꾼들이 부지런히 이런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장로들과
수제사장들은 파수꾼들을 통해 주님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최고급 정보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안위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정보에 해당하지만 이들은 이
정보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오늘날 말로 하면 ‘국익을
위해’서 묻어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거짓 정보를
흘렸습니다(13). 그들은 알지 못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못들어서 믿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히 들었고,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실보다, 진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자신들에게 유익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더 중요했습니다.


16-20절은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세계 선교의
사명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17절은 주님의 열한 제자
가운데서 도마 외에도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회의, 불신은 육신의 연약한
본성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17).
성도들은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고후5:7).


1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을 내게
주셨느니라.
](18).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power)을
받으셨습니다. 모든 권능을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롬13:1-6).
이 권능은 주님에게 주어졌습니다(요5:22,26,20,23).


처음에 하나님의 권능을 받은 자는 사탄이었습니다(히2:14,눅4:6).
다음에 권능을 받은 자는 사탄의 수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입니다(엡6:12, 계13:1-7). 사탄은 이 세상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권능을 받은 자들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 치리자들입니다. 이들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주도록 임명을 받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입니다(롬13:1-6).
마지막으로 거듭난 성도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권능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받은 지극히 큰 권능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엡1:19, 고후6:7).


이제 제자들이 해야할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19-20).
사도행전 1:8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복음 전파는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복음의
내용을 가르치고, 다가올 심판을 가르치고, 복된 소망과
유업의 상급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침례를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는데, 성경의 실제적인
예를 보면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행2:38,
행8:16). 그러나 후에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식구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행10:48). 사도 바울 역시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행19:4-5).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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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엡4:9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다 하셨은즉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땅의 더 낮은 부분은
지옥을 가리킨다. 이사야 63:9, 오직 내 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들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들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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