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오늘은 형제, 자매님들과 같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인 by faith(믿음으로)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두 어구를 고르라고 한다면 in Christ, By faith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것이 이 두 어구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In Christ 는 하나님의 신격과 진리, 지혜와 힘, 영적인 보화가 가득한 창고가 있는 위치입니다. by faith는 In Christ 속에 있는 창고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그리로 맞추어서 거기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반드시 by faith(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시간 성경에서 [믿음으로 · by faith]란 말을 찾아 성경이 주는 조명을 얻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요, mind가 아니라 heart입니다. 과학과 철학, 교육의 시대에서 이성을 숭배하는 이런 시대에 성경은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하나님의 것들, 즉 진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하신 방법이 바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3,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는 장로들이 이것으로(by faith) 좋은 평판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영적인 것을 이해하는 통로요, 지각 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직관을 통해 계시의 빛을 받으며, 성경의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라고 말했지만 모든 신앙의 영역은 이해의 영역에 속합니다. 다만 무엇으로 이해하는가의 차이일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말씀으로 모든 것이 지어진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믿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clear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성경의 어떤 사실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경 신자들이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도 믿음대신 지성을 사용함으로써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성을 통해 머리로 얻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마음으로 이해하는 지식입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비롯한 감각과 지성이 자연 세계와 그와 연관된 세상에 속한 것들을 이해하는 기관이라면 믿음은 영적인 세계와 성경, 하나님을 이해하는 기관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그리스도인들조차 영적 지각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관계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막막해 합니다. [믿음으로!]를 외치긴 하는데 각론 부분에 들어가면 무엇이 믿음이고, 어디까지가 자기 생각인지 구분을 하지 못한 채 방황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 오랫동안 믿음을 배제한 채 이성과 지각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정작 믿음을 사용해야 할 때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거듭난 순간부터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걷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믿음으로 영적인 복을 누리고, 믿음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살도록 훈련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는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믿음에서 나지 않는 모든 것은 다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주님께서 [믿음으로]란 이 한 마디를 저희 마음속에 깊이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첫째, 믿음은 사악한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구도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닦기 위해 수도를 하거나 고행을 하거나, 경전을 외우거나, 갖가지 방법을 쓰지만 우리는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평생을 닦아도 결코 깨끗해 질 수 없는 마음을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버리십니다. 믿음은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는 방법이며, 살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도행전 15: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사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믿음이 없다면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성을 brain-wash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악하고, 더럽고, 추한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둘째, 믿음은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며, 상속을 받게 합니다. 사도행전 26:18,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요, 또 그들로 하여금 죄들의 용서를 받고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 가운데서 상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더라.] 이는 세계 일류 기업의 Owner가 나에게 유산을 상속해 주겠다는 말이나, 왕정 국가의 왕이 다음 후계자로 왕국과 궁궐을 나에게 주겠다는 말보다 수만배 더 영광스런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은혜 안으로 들어갑니다. 로마서 5:1,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도다.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 주님의 은혜를 얻는 방법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Action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자동차는 무엇으로 가느냐?고 물었다고 가정합시다. 어떤 이는 네 바퀴로 굴러 간다고 말할 것입니다. 바퀴가 없으면 못가니까 당연한 말입니다. 어떤 이는 개스(개솔린)로 굴러 간다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자동차라도 개스가 없으면 못 움직입니다. 어떤 이는 자동차는 엔진이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간단하고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동차 키입니다. 키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자동차 문을 여는 것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시동을 걸 수도 있고 끌 수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자동차에서 키와 같은 것입니다. 바퀴나 개스나 엔진이나 모든 부품들은 자동차의 영역이지 운전자의 영역이 아닙니다. 운전자의 영역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키(key)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라 나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것을 움직이는 수단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넷째,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속에 거하게 합니다. 에베소서 3:17, [믿음을 통하여(by faith)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속에 거하게 하옵시고 또 너희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 믿음은 주님을 나의 마음 속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마음 문을 열어 두고 나의 마음 가운데 들어오셔서 주인의 자리에 앉으시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주님은 문밖에 계실 수밖에 없으며, 내 마음 안에 들어오셨다 하더라도 자리를 내어 드리지 않는다면 손님으로 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타락하면 할수록, 시대가 암울하면 할수록 우리는 성경 속의 한 구절을 회상하며, 거기에 따른 삶의 원칙을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4번에 걸쳐 철심처럼 박혀 있는,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위대한 말씀은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입니다. 주님이 구약 성도들에게 주신 첫 번째 철심은 하바국 2:4에 박혀 있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유다의 민족적 운명이 끝장나는 시점에서 대언자 하박국은 주님께 절박하게 물었습니다. [그런즉 그들이 자기의 그물을 비우며 계속해서 이 민족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죽여야 하리이까?](합1:17). 하박국은 하나님께 부조리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아무리 이 민족이 죄를 짓고, 심판을 받는다해도, 이방 갈대아 민족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인 이스라엘을 죽이도록 하시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민족적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사는 방법을 대언자에게 일러주었습니다. 하박국 2:4b, [오직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70년의 포로 생활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사는 길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자기의 믿음으로](by his faith)였습니다. 믿음은 성도들이 어떠한 경우에서도 생명을 보존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방법이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때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분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는 그 믿음으로 건져냄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기드온, 다니엘 등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말씀에 따라 살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합2:4). 구약 성도들은 모두 하박국 2:4절 한 구절로 살았다고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라오디케아 교회 후반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이는 신약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성경에서 주신 두 번째 철심은 로마서 1:17에 박혀 있습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유대인들의 극심한 반대와 박해, 로마 당국의 박해, 어디서나 배척받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도들을 비롯해서 극심한 박해 가운데 있는 초대 교인들을 향해 주님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성도들에게 정해 주신 삶의 방식은 오직 하나, “by faith(믿음으로)”입니다. 스데반, 바울, 디모데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의 생활 방식, 그들의 삶의 기준, 원칙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by faith’입니다. 그들은 자기 지혜로나 자기 능력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권력이나 돈이나 명성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누구의 힘을 빌어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믿음으로 살리라’였습니다. 이는 신약 성도들의 삶이 이러해야 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신약 성도들은 구약 성도들과 달리 더 이상 자기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성령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구약의 율법주의로부터 우리를 건져낸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중세 1500년 동안 교회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로마 캐톨릭은 행위를 강조하고, 교회를 강조하고, 전통을 강조하고, 선행을 강조하면서, 가장 중요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사장시켜 버렸습니다. 믿음은 feeling(느낌)이 아니라 willing(의지)입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입니다. 믿음은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구절을 읽지만 믿음에 대한 정확한 조명이 없는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믿음(faith)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believe)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receive)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지를 이용해서 주님을 내 마음 가운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나에게 선물을 줄 때, 기꺼이 받는 것과 같습니다. 우편 배달부가 전해 준 등기나 소포를 전해 줄 때, 서명한 후에 받는 것과 같습니다. 초청장을 받았을 때, Yes로 응답하는 것을 성경적 용어로 영접했다고 말합니다. receive(영접하다, 받다, 수락하다.). 대문밖에 가족이 왔을 때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 주는 것이 바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행위가 바로 믿는(believe) 행위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영적이어서 그 받는 것(영접)조차 주님이 해 주셔야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로 guide(인도)하실 수는 있지만 의지적 결단을 내리게 하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 1:12, [그분을 영접한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요1:12).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았고,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은사이기도 하고,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믿음의 말씀’을 들을 때 생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로마서10:17,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에서 생성된 그 믿음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나 환경이나 주위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 마음 가운데 생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7)- 이것은 주님이 성도들에게 제시하신 유일한 삶의 방식입니다.

주님이 주신 세 번째 철심은 갈라디아서 3:11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갓 태어난 교회들이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 갈 위기에 처해졌을 때 주님은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갈3:11). 아무도 율법으로 살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인간이 의롭게 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예수!란 기본적인 진리에서 벗어나 무엇인가 인간의 행위와 종교적인 노력을 가미하려 할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갈3:11). 그리스도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나를 강하게 하고, 내 안에 주님의 소원과 주님의 사역을 하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 차게합니다. 반면 믿음은 주님의 일을 실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힘을 제공하며, action(행동)을 유발합니다.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성경대로 믿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복음의 순수성이 점점 훼손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간절하게 필요한 한 마디 말씀이 바로 오늘 이 말씀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성도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입니까? 성도가 말을 할 때, 생각할 때,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란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삶을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말하는 언어 생활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록된 말씀에서 본 것, 말씀을 통해 들은 것이 사고와 말에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안에서 있는 막연한 근심과 염려, 의심을 다 몰아 내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주님이 내게 복을 주셨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주님이 나를 자신의 상속자로 삼으셨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의심과 염려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의 나이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연고도 없는 땅,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믿음의 행로는 가히 기적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1.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2. 내가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리라. 3.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이와 같은 약속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어떤 계약서보다 더 명확하며, 확실합니다. 이는 파기될 수 없는 약속입니다. 주님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입니까? [보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은 느낌이나 기분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나의 생각이 아니며, 기독교의 철학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성경적 사실이요, 주님의 약속이기에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Vision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하면서, 세상을 살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면서, 주위의 친구나 친지로부터 갖가지 좋은 생각들, 계획들, 조언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들을 듣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 죄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성도들에게 부지런히 진리의 지식을 가르침으로써,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열매맺는 삶을 통해 선한 간증을 남기고, 좋은 평판을 듣고,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교회 성장과 영적 기쁨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날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짜고, 어떤 플랜을 만들지 않았지만 주님이 주시는 Vision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성도들이 강건해지고, 성령의 열매와 구령의 열매를 많이 맺게 해 주실 것이란 구체적인 소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네 번째 철심은 히브리서 10:38입니다.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히브리서는 교회 성도들에서 환란 성도들에게로 대상이 넘어가는 과도기적 서신입니다. 주님은 구약, 신약, 환란 시대의 구분없이 성도들에게 제시하신 삶의 방식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쉽게 빠지는 오류는 믿음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살아 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환상이든, 꿈이든, 표적이든, 계시이든, 예언이나 방언 등으로 살아 봤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건전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쉼없는 유혹 한 가지는 뜨거운 체험과 가슴에 솟아오르는 어떤 느낌으로 살아 보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체험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느낌으로 살리라 하지 않으시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이미 구속의 모든 사역을 완성하셨으며,부활을 통해 영적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단 한번에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기에 성도들은 단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믿음 외에 어떤 것도 더 필요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고 싶습니까? 믿음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승리하고 싶습니까?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거룩해지고 싶습니까? 믿음으로 거룩해 집니다. 주님의 은혜에 풍성히 거하고 싶습니까? 믿음으로 은혜 속에 들어갑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며,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듣게 하며, 믿기지 않는 것들을 믿게 하며,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도록 하는 능력의 통로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의 삶의 요절이 바로 이 말씀이 되기를 빕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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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