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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세 그루의 나무



오늘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몇 그루의 나무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로 신, 구약 전체에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이 나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풍부합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영적 특권을 상징하고, 올리브나무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특권을 상징하며,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특권을 상징합니다. 이 나무들을 통해 주님이 계시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공부해 보기 전에 성경이 사람을 어떻게 나무에 비유하는가? 살펴보겠습니다. 나무는 사람들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오래 사는 특징과 끊임없이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는 특성으로 인해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의 처음 운명을 결정한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나무의 실과를 탐내었고, 그것을 먹은 결과 인류는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 계시록에는 생명 나무가 온 민족을 치유하며, 열두 가지 과실을 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지니게 됩니다(계22:14).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따로 생명 나무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나무는 생명이나 다름없는 매우 중요한 나무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신 적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 나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잠언 3:18, [지혜는 그것을 붙잡는 자들에게 생명 나무라. 그것을 간직하는 자마다 행복하도다.] 잠언의 지혜는 의인화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자들에게 그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생명 나무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구령할 때, 구원받은 사람을 성경은 생명 나무라고 합니다. 이는 그 사람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이요, 생명 나무들입니다. 생명 나무는 문자적으로, 영적으로 골고루 사용되고 있음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창세기와 요한 계시록의 생명 나무는 문자 그대로 나무입니다.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초자연적인 열매와 효능을 내는 그런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고대 설화, 신화, 전설 속에 갖가지 다른 형태로 나오지만 본래는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이 에덴에서 보았던 이야기들이 변질되고, 와전된 것들입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그것을 에덴의 생명 나무를 천도(天桃)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황금포도 나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본래의 것이 변질되고, 왜곡된 것들입니다.

잠언이나 기타 성경에 나오는 열매는 생명을 얻은 구원받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잠언11:30,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 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맺을 수 있는 열매를 두 가지로 요약할 때, 첫째가 바로 혼을 이겨오는 구령입니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 나무니...”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맺어야 할 열매가 바로 생명 나무입니다. 구령은 내가 맺을 수는 최상의 열매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열매입니다. 다음으로 성도가 맺어야 하는 열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갈5:22). 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유실수(有實樹)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통해서 우리는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썩은 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과실, 더 많은 과실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열매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이 베드로후서 1:5-8에 나옵니다.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전1:5-8). 구령의 열매든 성령의 열매든 열매를 맺는 비결은 믿음에서 출발하여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를 거쳐 사랑을 더할 때 맺히는 것입니다.

잠언 13:12, [소망이 늦추어지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르면 그것이 생명 나무가 되느니라.]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1:27에 따르면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지체하시면 우리의 마음은 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면(the desire cometh) 그것이 바로 생명 나무입니다. 성도들을 나무에 비유한 예는 성경에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3에 복있는 사람은 [강가에 심기운 나무]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17:8, [이는 그가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아서 그 뿌리를 강가에 뻗치고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그 잎이 푸르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님에 의해 강가에, 물가에 심기운 나무라면 그에 따른 생명의 성장과 열매맺는 역사가 있어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나무들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바로 이렇게 옮겨 심겨진 나무들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연 현상을 역류하는 기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교육과 철학, 종교와 제도 속에 뿌리 내려 사는 자연인들도 갖가지 열매를 내는데 주님의 말씀, 복음에 뿌리 내린 저와 여러분이 시들시들하다면 누구나 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잎사귀가 푸른 나무같이 우리는 얼굴에 광채를 띠고, 각종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음으로써 우리를 보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무를 심으십니다. 그 묘목이 이스라엘이요, 저와 여러분입니다. 민수기 24:6, [그들이 퍼진 것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주께서 심으신 알로에 나무 같고 물가의 백향목 같도다.], 천년 왕국이 건설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을 볼 것입니다. 영적으로 신약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호의호식하지 않고, 몸의 훈련을 위해 온 신경을 쓰지 않아도 훨씬 강건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마음에는 주님의 평화와 기쁨이 넘치고, 소망과 사랑, 강한 믿음으로 인해 불가능이 없는 그런 승리의 삶이 보장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바로 구원받은 묘목인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무들입니다. 시편 104:16, [주의 나무들에는 수액이 가득하니 곧 그분께서 심으신 레바논의 백향목이로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나무들 중에서 최상의 나무요, 성전을 건축할 때 쓰임 받은 나무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상의 Class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 재계의 실력자들이나, 첨단 장비와 기계를 개발하는 과학자들이나, 군부의 실력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버드나무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온 땅을 뒤덮는 가시나무들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최고의 Class에 속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되고, 자랑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지금은 그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때, 장차 주님이 저 하늘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실 그 날에, 우리는 그 가치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의 가시덤불과 엉겅퀴처럼 보이는 저희들이 사실은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아름답고 튼튼한 나무란 사실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나타내는 세 나무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첫째, 포도나무입니다. 시편 80:8-11, [주께서 포도 나무 한 그루를 이집트에서 가져다가 이교도들을 쫓아내시고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에 빈터를 준비하시고 그 뿌리가 깊이 박히게 하시니 그것이 땅을 채웠으며 10. 산들이 그 그늘에 덮이고 그 가지들은 좋은 백향목같이 되었으며 그녀가 자기 줄기들을 바다까지 내 보내었고 자기 가지들은 좋은 백향목같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전능하신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을 취해 내셨습니다. 주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다 몰아내시고, 거기에 이스라엘이란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선한 농부”이십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미약하였으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거치면서 지중해 지역과 유프라테스 강 일대까지 그 세력을 뻗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열매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와 배교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였고, 그들의 국운은 쇠약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대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5:1-2,4, [이제 나는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되 그의 포도원에 관하여 내가 사랑하는 자에 대한 노래를 부르리라.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으니 열매를 풍성히 내는 작은 산에 있도다. 그가 울타리를 두르고 돌을 주워내고 최상품의 포도 나무를 심고 그 한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또 그 안에 포도즙 틀을 만들었도다. 포도원이 좋은 포도내기를 그가 바랐더니 들포도를 내었도다. 4절,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해 무슨 일을 더할 수 있었으랴? 그 안에서 내가 행하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포도원이 좋은 포도 내기를 내가 바랐거늘 들포도를 냄은 어찌된 일이냐?] 참으로 이스라엘 민족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민족은 지상에 없습니다. 최상품 포도가 맺기를 바라시며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맺은 들포도를 보셨을 때 얼마나 실망하셨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배교와 그들이 행한 우상 숭배에 대해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를 귀한 포도나무 곧 온전히 올바른 씨로 심었거늘 네가 내게 이방 포도나무 곧 변질된 초목이 됨은 어찌된 까닭이냐?](렘2:21). 이는 누가 생각해도 참으로 이상한 나무입니다. 올바른 씨로 심었는데 변질된 초목이 되었습니다. 중국에 이런 고사 성어가 있습니다. “귤이 강(양자강)을 넘으면 탱자가 된다.” 이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귤이라도 강북에 심으면 탱자로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기후나 지리적 풍토 때문에 포도나무가 들 포도를 맺었던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할례 받지 못한 마음과 듣기에 둔한 귀, 뻣뻣한 목으로 인해 이들은 엉뚱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신약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포도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이 왜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처리되지 않는 육신, 십자가에 자신을 넘겨 주지 않는 자아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고, 성령님이 내주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거한다해도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지지 않음으로 의의 열매는 고사하고 먹을 수 없는 온갖 육신의 열매로 가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배교했을 때, 하나님은 이 포도원에 대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이사야 5:5-6절입니다. [이제 가라. 내가 내 포도원에게 무슨 일을 행할는지 너희에게 말하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제거하여 다 먹히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리니 가지를 치거나 땅을 갈지 못하고 다만 찔레와 가시가 올라올 것이며 또 내가 구름들에게 명령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주의할 것은 포도원은 이스라엘이 사는 땅,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고, 포도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7절, [이는 만군의 주의 포도원이 이스라엘의 집이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초목이 유다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공의를 바라셨으나 도리어 학대하는 것을 보셨으며 의를 바라셨으나 도리어 부르짖는 것을 보셨도다.](7). 이스라엘은 결국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 나무에게 임하는 심판과 재앙을 그대로 당했습니다. 신약에 와서 이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이 포도원은 이방인들에게 넘어 가고 말았습니다. 2000년 동안 그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 자신들이 거해야 할 포도원에 있지 못했습니다. 포도 나무 가지는 잘리고, 불타고, 밟혔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뿌리는 아직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천년 왕국 때에 다시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게 될 것입니다. 포도 나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적 특권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둘째, 무화과나무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주님이 직접 언급하신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주님이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11:12-14,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시장하시더니 멀리 떨어진 곳에 잎사귀가 달린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으나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더라.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듣더라.]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나무는 곧 종교적 형식과 위선만 있는 이스라엘을 잘 보여 줍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때가 되지 않는 무화과나무에게서 열매를 찾으셨으며, 저주를 하신 것입니까?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잎사귀 보다 먼저 열립니다. 고로 잎사귀가 있으면 자연히 열매를 기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 가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잎이 나기 전에 그 전해에 자라난 가지에서 열리기 시작하여 6월 전에 완전히 여물게 됩니다. 반면 올해 새로 난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 것들은 8월이 넘어야 열매가 여물게 됩니다. 만약 가을까지 여물지 못한 열매들은 겨울이 지난 후 초목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다시 여물게 됩니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사는 여러분들은 이렇게 과실을 맺는 것을 자주 보았을 것입니다. 저희 마당에 있는 감귤은 일년내내 열립니다. 겨울이면 주춤하지만 이제 다시 봄이 되면서 가을에 열렸던 것들이 본격적으로 성숙하고 익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무화과로 간 시기는 4월 경입니다. 이는 그 전해의 여문 열매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는 작년에 아무 열매도 맺지 않은 나무란 뜻입니다. 그리고, 익지는 않았지만 올해 맺을 무화과는 이미 열려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없었습니다. 이는 무화과를 쳐다 보는 사람들을 모두 속이는 위선이요, 거짓인 것입니다. 누구나 잎이 무성한 무화과를 볼 때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작년, 올해 두 해에 걸쳐 열매가 하나도 없다면 이는 ‘무화과 나무 사기 사건’이라 할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6-9을 보십시오. 주님은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하나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베어 버리라는 명을 받아 포도원 밖으로 내던져졌습니다. 그러나, 뿌리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새 나무가 나올 것입니다. 그 때는 주님의 재림의 시각을 보여 주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마24:32-34). [이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들을 보거든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마24:32-34). 이제 유대인들은 본토로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돌아 오고 있습니다. 이는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증거이며,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특권을 상징합니다.

셋째, 올리브 나무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름이 올리브 나무입니다. 그러나, 이 가지들은 꺾이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 11:16-17입니다. [주가 전에 네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나무 곧 아름답고 푸른 올리브나무라 하였으나 친히 큰 소동 소리와 함께 그 위에 불을 붙이고 그 가지들을 꺾었나니 이는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바알에게 향을 드림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켜 자기 자신을 대적하고 악을 행한 것으로 인하여 너를 심은 만군의 주가 너를 치려고 재앙을 선포하였음이라.](렘11:16-17). 한 때 이스라엘은 좋은 열매 맺는 나무, 아름답고 푸른 올리브 나무라 불렸습니다. 올리브 나무는 기름을 내기 때문에 성령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신약 성경에서 유대인들을 참 올리브 나무라고 하고, 이방인들을 야생 올리브 나무라고 합니다. 주님은 돌 올리브 나무를 잘라서, 참 올리브 나무의 가지에 접붙임 함으로써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1:16-20, [이는 첫째 열매가 거룩한 즉 덩어리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들도 거룩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그 가지들 중에서 얼마가 꺽이고 야생 올리브 나무인 네가 그 가지들 가운데 접붙임을 받아 그들과 함께 올리브 나무의 뿌리와 기름짐에 참여하게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지탱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가 말하기를, 그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하여금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서 있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 하라.](롬11:16-20). 본래 접붙이기는 야생 올리브 나무에다 참 올리브 나무 가지를 갖다 붙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대로 하셨습니다. 참 올리브 나무의 가지를 꺽으시고, 거기에다 야생 올리브 나무를 접붙이셨습니다. 이는 본성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핵심은 접붙임받은 가지는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참 올리브 나무의 뿌리와 줄기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는 유대교로부터의 결별이 아니라 모든 것을 그대로 이어 받습니다. 구약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영적 교훈과 힘을 주며, 계시의 빛을 공급해 줍니다. 

올리브 나무의 비유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영적 진리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죄악이 완전히 충만해 지면, 주님은 이방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은 다시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둘째, 접붙임 받은 가지들은 다시 잘려질 것입니다. 이는 교회 역시 배교로 마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케아 교회는 주님이 입에서 토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교회들, 즉 기독교는 결코 유대교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교회는 영적인 몸인 성도들이 모두 올라간 후에 지상에서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 때 남아 있는 교회는 실제로 이름만 교회일 뿐 결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라는 이름 하에 갖가지 행해지는 모든 영적 사역은 사실 마귀의 사역에 불과하며, 주님은 그런 것들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셋째, 주님은 참 올리브 나무의 가지를 꺾었을지언정 완전히 없애 버리시거나 뿌리째 뽑아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다시 참 올리브 나무로서 완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교회의 배도를 보고 있으며, 잠시 후면 유대인들의 민족적 회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돌고 돌아 주님이 오심으로 완전해 질 것입니다. 올리브 나무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특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나무로 비유되는 동안 이방 제국들은 짐승으로 비유된다는 사실을 유념하십시오. 포도원을 헤치는 여우, 씨앗을 파먹고 열매를 따먹는 새들 등 각종 짐승으로 비유됩니다. 특히 다니엘서 7장에는 첫째 짐승부터 넷째 짐승까지 다양한 모습의 짐승들이 나옵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민족과 나라는 짐승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 역시 짐승에 불과합니다.

오늘 배운 세 그루의 나무는 서로 다른 나무이면서도 한 민족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교훈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포도나무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포도나무 가지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올리브 나무와 연관이 있습니다.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과 영적 각성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주님이 심으신 나무요, 주님의 나무란 사실을 기억하고 많은 열매를 맺도록 늘 깨어 기도하고 영적 성장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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