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구원자가 나셨으니(04)

구원자가 나셨으니(03)

말씀: 눅2:11-14
 요절: 눅2:11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것 중에 가장 귀한 선물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온 세상에 주신 크고도 큰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많고 많지만 세상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구원자를 보내셨고, 성령을 보내셨고,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이 셋은 우리의 생명이며 모든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은 단지 한 시대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전 시대에 걸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먼저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며 멸망들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시107:20). 말씀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미리 자신의 종들을 통해 말씀을 보내셔서 고치시고, 건지시고, 녹이시고, 임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은 인격적이며, 능력이 있으며, 활동적입니다. [자신의 명령을 땅 위에 보내시니 그분의 말씀이 빨리 달리는도다.](시147:15),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자신의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들이 흐르는도다.](시147:18). 자신의 말씀(word)은 자신이 말씀(Word)이심을 계시해 주기 위함입니다.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매 이 말씀이 이스라엘 위에 임하였으므로](사9:8). 말씀을 보내셨던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본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이전에 자신의 종들을 통해 말씀하시던 주님께서 친히 육신이 되셔서 말씀하십니다.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탄생하신 것은 우리의 영적 탄생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우리의 영적 출생을 위한 것입니다.

구원자가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때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많은 선물들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또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의 모든 수고로 인한 좋은 것을 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알았도다.](전3:13). 우리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인생을 즐기는데 이는 하나님이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지 않고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들이라 할지라도 각양 좋은 선물을 많이 주셨습니다. 이들은 재물을 얻을 능력도 있고,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고, 자기의 소유를 취하며, 그것을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또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부와 재물을 주사 그것을 먹고 자기의 소유를 취하며 자기의 수고한 것을 기뻐할 권능을 주셨나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로다.](전5:19). 이런 예는 끝이 없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고난 운(運)이니 재능(才能)이니 하면서 자신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선물로 주셨음을 분명히 계시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마르스 언덕에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하여 증거를 남겨 두지 아니하신 것은 아니니 곧 선한 일을 행하시고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주시며 결실의 계절을 주사 음식과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주셨느니라, 하고](행14:17).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 의인과 불의한 자에게 공평하게 해를 주셨고, 비를 주셨습니다. [...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기 때문이라.] (마5:45b). 주님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도 인자하셨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감사하지 아니하는 자와 악한 자에게 인자하시기 때문이니라.](눅6:3b). 주님이 주신 이런 놀라운 선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랑하는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자기 재물을 신뢰하고 많은 부를 자랑하는 자들 중에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형제를 대속(代贖)하거나 그를 위해 하나님께 대속물을 바칠 자가 없도다.] (시49:6~7)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선물을 자기 것인 줄로 자랑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물을 받은 것을 자기 것이라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주]가 말하노라. 지혜로운 자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사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며 부자는 자기 재물을 자랑하지 말라.](렘9:23). 우리는 받아서 누리는 삶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지만 가장 크고 놀라운 선물은 자신이 친히 이 땅에 인간이 되셔서 자기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찾으러 오셨고, 섬기러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 구원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악인들, 불의한 자들이 동일한 햇빛을 받고, 비를 받고, 재물을 누리며 인생을 향유하며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지만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지 않으시면 결코 누릴 수 없는 복들이 너무 많습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선물은 구원자 없이는 결코 받을 수도 누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특별히 주시는 선물이 따로 있습니다. 구원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구원은 보상이 아니라 선물이며, 대가가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마실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요4:10).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란 점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구하기만 하면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 있으며, 결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니라.](롬6:23).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끝이 없습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약1:17). 우리는 구원자를 통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었으면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하늘로부터 선물을 주십니다. 요한이 말한대로 [하늘에서 주지 아니하시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3:27b)고 했는데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누가 너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느냐?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그것을 받았을진대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고 했듯이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받았으며, 지금도 받아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성령은 구원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얻고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믿을 때 성령님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구분이 없습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행11:17a). 하나님은 영적 선물들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십니다. 구원자가 이 땅에 오시지 않았으면 이런 선물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선물은 누구에게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후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값없이, 조건 없이 주는 선물과 같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자를 통해 구원을 주신 것 뿐만 아니라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을 주셨음을 이미 지난 시간에 증거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구원자께서 이 땅에 오셨을 뿐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마음속에 어떻게 오시는가? 에 대해 증거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다윗의 도시에 나시고 33년 반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해 버리신 역사적 사건이 전부라면 우리는 깊은 감화와 감동을 받을 수 있고, 그 사실을 믿고 은혜를 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구원자께서 다윗의 도시에 태어나셨다고 해도 우리 마음 속에 태어나지 않으시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역사적으로 다윗의 도시에 태어나신 구원자께서 구원자를 믿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들 안에 들어와 새 생명의 탄생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지 않는 구원자는 우리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며, 활동하시고, 일하시는 주님이 참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거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6,57).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먹는다는 것은 당대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자기 살과 피를 주어서 우리에게 먹게 하겠느냐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생명의 빵이요, 참된 음료로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셨다는 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육신의 생명을 위한 빵이 아니며, 겉 사람의 영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입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는 없습니다. 이는 로마 캐톨릭이 주장하는 화체설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어느 시대에 누구에게라도 사람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제자들도 전혀 먹거나 마시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살과 피란 주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자를 믿을 때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구원자는 단지 다윗의 동네에 태어나 갈릴리, 나사렛, 가나, 가버나움, 가다라, 벳새다, 예루살렘 등에만 거니시다 가셨다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믿을 때 우리의 속 사람 안에 빵과 음료처럼 들어와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다윗의 도시에 태어나셔서 나사렛에서 거하시는 것보다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시는 것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거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우리 안에 영원토록 거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晩餐)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3:20).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주님은 저 하늘에서 나와 교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 안에 거하시며, 여러분 속에서 걸으십니다. 주님이 어디 계시는가? 물으면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늘에만 계시고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나는 버림받은 자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역사적 예수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지난 사건으로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 사건이 현재적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고후6:16).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거니십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인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고전6:19). 주님께서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이곳에 거주하십니다. 주님은 백악관이나 의사당과 같은 공공 건물이나 사람들이 지어 놓은 신전에 거하시며 거니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몸 안에서 거하시며, 거니십니다.

성도의 신앙 생활이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법규(law)들과 규칙(Rule)들을 잘 지키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은 위대한 일이요,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성경의 규칙들을 모두 따라서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을 했는가? 로 결정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통해 무슨 일을 하셨으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 로 결정 납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몸을 의의 병기로 삼으시고, 도구로 삼으셔서 어떤 일을 수행했는가? 그것이 간증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 일을 한 것은 나의 업적이요, 나의 행위요, 나의 자랑이지만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한 일은 감사요, 찬양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자신의 힘으로 주님을 위해 일합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일하도록 하십니까?

우리 안에 일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 (빌1:6). 구원자께서는 세상에서 구속 사역에 관한 자신의 모든 일을 완수하셨고 지금은 그 구원 사역을 우리 안에 지속적으로 이루시고 계십니다. 이는 구원의 점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의 구원은 누구든지 믿는 순간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삶 가운데서 드러내는 일은 평생토록 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자신이 구원자로서 이루신 일을 기초로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는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 (빌2:13).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셨고,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믿고 계십니까?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다윗의 도시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주님이 일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십시오. 그것을 산 제물이라고 하며, 헌신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헌신을 할 때 비로소 영적 능력을 얻게 됩니다.

저는 구원 받은지 10년이 넘도록 헌신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힘으로 신앙 생활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많은 은혜도 체험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수한 열정도 있었고,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모두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대충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든 전도든 성경 읽기든 교회의 행사든 무엇이든지 뒷짐 지고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신앙 선배들의 전기를 읽으며 영적인 성취를 위해 매진했으며, 그들과 같은 믿음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갈구했습니다. 저는 제대로 성경을 공부를 시작했다고 생각한지 10년이 지나면서 주님께 제 자신을 내려 놓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서 열심히 일하시는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란 신앙 방향과 목표도 훌륭했지만 그 보다는 “주를 통해서 내가”란 대 전환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하는 일은 나의 자랑거리였지만 주님이 나를 통해서 하는 일은 감사요, 찬양이었습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하는 일은 지속성이 없었습니다. 마치 정기적으로 충전기(밧데리)의 용량이 가득 찼을 때는 열을 내고, 힘을 내다가 시간이 지나서 점점 용량이 떨어지면 소리도 빛도 열도 내지 못하듯이 저의 신앙 생활은 이런 삶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순종과 헌신을 함으로써 “주님을 통해서” 일할 때는 마치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전선이 연결된 것처럼 지속적으로 힘과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힘과 능력과 지혜를 한 보따리씩 채움 받고, 떨어지면 하나님께 또 채움 받고 하는 식의 삶이 아니라 연결된 삶이어야 합니다. 뿌리에서부터 가지로, 머리에서부터 몸의 구석 구석까지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 안에 계신 주님과 나는 연결된 삶이면 됩니다. 여러분은 야외에서 전기를 돌리려면 발전기를 가져가야 합니다. 충전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어떻습니까? 전선을 전원에 연결하면 끝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과 연결된 삶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이런 삶을 살 때 사람들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삭을 대했던 이교도들은 이삭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가 이제 우리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를 맺고 우리가 너와 언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창26:28). 이삭은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풍겼습니다. 이삭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서신이었습니다. 요셉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파라오가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여 주셨으니 너와 같이 사려 깊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창41:38~39). 파라오는 요셉을 본 것이 아니라 요셉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자기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 보였고, 이교도의 왕이었던 파라오를 놀라게 했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지혜를 발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일했을 뿐입니다.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보았나니, 오 벨드사살아, 이제 너는 그 해석을 밝히 고하라. 내 왕국의 모든 지혜자들이 능히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너는 할 수 있나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속에 있기 때문이라.](단4:18). 느부갓네살은 다니엘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거룩한 신들의 영’이 다니엘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갈대아의 마법사들이 신들은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요구하시는 것은 드문 일이니이다.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여 줄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하매](단2:11). 다니엘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지혜를 받아 말했는데 이는 갈대아의 마법사들이나 왕궁의 현자들에게는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않는 신들”의 영역에 속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도들이 진정한 힘과 능력과 지혜를 발휘하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마음의 은밀한 것들이 이렇게 드러나게 되므로 그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또 전하기를 진실로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 계신다 하리라.](고전14:25). 우리는 불신자들로부터 마땅히 이런 고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믿는 자들 안에 계십니다. 주님은 갈릴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나사렛에도, 베들레헴에도, 예루살렘에도 계시지 않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서 성지 순례를 다녀와도 주님을 거기서 만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그냥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자신의 영광의 풍요로움을 이방인들 가운데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1:27). 저와 여러분은 말과 행실로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 안에 계신 말씀을 드러내는 주님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일하시는 결과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 안에 계신 분의 존재를 알리고, 그분의 성품과 인격과 능력과 지혜를 알리는 수단이요, 도구입니다. 이것을 열매맺는 삶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뿌리가 가지를 필요로 하듯이, 머리가 손 발을 필요로 하듯이 주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는 가지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들처럼 버림받아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요15:4-6).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이미 주님의 가지입니다. 뿌리는 가지를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 없이는 열매도 잎도 없습니다. 우리는 가지처럼 수액을 공급받아서 열매를 맺으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애쓰고 힘쓰는 것이 아닙니다. 비결은 행위나 애씀이나 노력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가지가 되어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열매를 맺게 하며, 믿음이 승리를 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어떤 영적 생활도 할 수 없으며, 열매 비슷한 것도 맺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땀과 피로는 성령의 열매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을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엡3:20). 우리가 주님 밖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듯이 주님 역시 우리 밖에서 일하셔서는 결코 열매를 맺으실 수 없습니다. [모든 선한 일에서 너희를 완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자신의 눈앞에서 매우 기쁜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히13:21).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의 많은 청년 기독교인들 가운데 웟치만 니, 윗트니스 리 등의 지방 교회 영향으로 수동성에 빠져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동성, 피동성에 빠져 허우적대며 영적 우울증에 빠져 있는 기형아들이 넘칩니다. 신비주의적 경험을 통해 자신 안에 일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며 속을 들여다 보고 있지만 자신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주님은 보이지 않고, 내 안에 거하는 죄만 보일 뿐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는 주님은 눈을 감과 명상을 하든 묵상을 하든 무엇을 해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고, 거니시며, 일하시는 주님을 믿어야할 뿐 느낄 수 없습니다. 만약 느낄 수 있다면 왜 주님이 우리에게 “느낄지어다”라고 하시지 “믿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믿음은 느낌으로 안 되는 것, 인식이 안 되는 것,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을 단숨에 가능하게 하는 고차원적 수단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힘쓰며 수고하노라.] (골1:29).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힘쓰며, 수고해야 합니다. 넘치도록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우리 안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따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훈련도 받아야 하며, 징계도 받아야 하고, 교육도 받아야 하고, 양육도 받아야 합니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기 때문이라.](고전3:9).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일꾼입니다. 주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하나님은 구원자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첫째,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이전에 하나님은 진노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자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 받으시며, 자녀로 삼으셨기에 우리 역시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하여금 속죄(贖罪) 받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또한 기뻐하느니라.](롬5:11).

둘째, 구원자를 통해 생명 안에서 군림합니다. 구원자 없는 사람은 통치자가 아니라 종입니다. 죄의 종이요, 사망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요, 육신의 종이요, 세상의 종입니다. 그러나 구원자를 통해 우리는 왕과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군림하였은즉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욱더 생명 안에서 군림할 것임이라.](롬5:17).

셋째, 구원자를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항상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4). 하나님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구원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넷째, 구원자를 통해 승리를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 구원자 없이는 승리란 없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었노라 선언하시고, 마귀를 이기시고, 율법을 못박아 버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다섯째, 구원자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화해하게 하는 사역을 우리에게 주셨으니](고후5:18). 구원자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섯째, 구원자를 통해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성령을 받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 위에 임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통하여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갈3:14). 구원자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을 쏟아 부어주십니다. 흔히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자식 복 등을 이야기하지만 영적인 복들이 훨씬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누구입니까? 주님께서 복의 근원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런 아브라함의 복이 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이 임했습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구원자를 통하지 않고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일곱째, 구원자를 통해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우리는 육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해 보여도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자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들이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할 때 믿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없는 일은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님을 통하여 행하기를 바랍니다.

여덟째, 구원자를 통해 우리는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벧전2:5). 영적희생물이란 무엇입니까? 감사와 찬양을 주님을 하나님이 받으실 영적 희생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심중에서 감사와 찬양을 올리고, 입술로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드릴 때 거룩한 제사장의 직무를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 나누어 주는 것 역시 주님이 받으실 영적 희생물입니다. 이런 것들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우리는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립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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