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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나셨으니(04)


구원자가 나셨으니(04)

말씀: 눅2:11-14
요절: 눅2:11


다윗의 도시에 구원자가 나셨다고 선포한 천사들은 들에 양치는 목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되리라, 하매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그 천사와 함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와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로다, 하니라.](눅2:11-14). 우리는 구주의 탄생 소식을 해마다 기리고 축하하는 수많은 종교 행사를 보고 있습니다. 12월 25일이 이교도의 축제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캐톨릭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축하하도록 만들어진 이후로 사람들은 이 날 선물을 보내고 명절로 지킵니다. 사람들은 정확하지는 않을지라도 이 땅에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났다는 소식은 다 들었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문제이지만 이 소식은 땅 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구원자의 탄생은 우리가 선물을 주고받는 명절로 기념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저주를 제거하고 사망을 폐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임하는 역사입니다. 높고 높으신 처소에서 낮은 이 땅으로 내려오신 사건이요, 이 땅에서 더 낮은 지옥으로 내려가시는 낮아짐의 역사입니다. 높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천사보다 낮은 사람이 되시고, 사람에서 죄인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낮아 지셨던지 사람에서 벌레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오니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멸시거리이니이다.](시22:6). 주님은 왕으로 태어나셨으나 종이 되셔서 섬기셨고, 의인으로 태어나셨으나 죄인으로 죽으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탄생은 끊임없이 낮아지고,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는 연속이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2:8). 주님의 탄생과 주님의 죽으심의 전 생애는 낮아지시고, 더 낮아지신 사건이며, 겸손의 본질에 해당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 본이며, 따라야 할 본질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높이고,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삽니다. 좀 더 나아지고, 좋아지고, 높아지기 위해서 공부하고, 일을 하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자기를 높이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의 본질과 역행이며, 십자가의 길과 정반대입니다.

심지어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자신들 간에 서로 비교하며 누가 더 큰가, 누가 더 높은가 등의 문제를 다투고 싸웠습니다. 이런 일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 하는 논쟁이 일어나니](눅9:46). 십자가를 눈 앞에 두고 계실 때도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고자 하며, 높은 자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또한 다툼이 있어 /주께서/ 자기들 중의 누구를 가장 큰 자로 여기실까 하매](눅22:24). 이것은 육신의 본능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서 어머니 살로메를 통해 주님께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임이니라.](눅14:11). 자기를 낮추면 높아집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낮출 때 주님은 그를 높이십니다. 겸손은 주님의 성품이며, 주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곳에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 큰 자인가?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그가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마18:4). 오늘날 이곳 미국이나 한국은 어린이들이 왕처럼 대접받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어린이들은 노동력이 없고, 약하고, 어리다는 이유로 인간 대접도 받지 못했습니다. 걸핏하면 두들겨 맞고, 욕을 먹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어른들에게 덤벼들다가는 반쯤 죽어나갑니다. 애들이라는 것은 거의 종의 수준입니다. 특히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어린이들은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이와 같이 낮추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가 가장 큰 자인가? 주님은 아예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오직 너희 중에 가장 큰 자는 너희 종이 될 것이요,](마23:11). VIP가 되고, Star가 되라는 것이 이 시대의 세상의 영이라면 주님은 우리를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섬김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가운데 가장 큰 자는 어린 자와 같고 으뜸인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22:26). 주님은 친히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오신 목적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아들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고 왔음이니라.](막10:45). 주님은 섬김을 받는대신 섬기러 오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향해 종처럼 발을 씻어 주신 장면은 섬김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습니다.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마땅하니라.](요13:14). 중동 지역에 먼지가 많아서 주인이 들어오면 종들은 손과 발을 닦을 물을 내어 옵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과 천사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원하건대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소서. 또 당신들의 발을 씻고 나무 밑에서 쉬소서.](창18:4). 아브라함은 발을 씻을 물을 내어왔지만 직접 씻겨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제자들의 발을 씻을 물을 가져오신 것만이 아니라 직접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씻기셨습니다. 완전한 종이 된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이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된 것은 이런 겸손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꼴을 겪으면서 일을 하는데...” 하는 마음을 여전히 지닌 채 일을 하기 때문에 일은 일대로 하지만 전혀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성탄의 본질, 즉 성육신의 일차적인 의미는 주님의 겸손과 낮아지심입니다.

높고 높은 곳에 영화로이 거하시던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는 자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지 자기를 높이는 자를 통해서는 어떤 영광도 받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에서 마리아에게 수태 고지를 했던 가브리엘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는 목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것임이라, 하니라.](마1:21). “죄에서 구원” -이것이 주님의 탄생 목적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주님의 탄생을 알리는 주의 천사는 주님의 탄생의 의의와 의미를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첫째, 가장 높은 곳(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둘째, 땅에서는 평화요 셋째,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로다. 이 세 가지가 구원자가 오늘 다윗의 도시에 태어난 탄생의 의의입니다. 하늘과 땅,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고, 그 바른 의미를 제공해 주는 것이 성경이며, 예수 그리스도란 점에서 우리는 주님의 탄생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 하늘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란 칭호를 반복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 하늘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땅에는 너무나 많은 신들이 있고, 주라 불리는 것들이 있지만 지극히 높은 곳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극히 높은 곳은 마귀가 올라가고 싶어 했으나 올라가지 못했던 곳입니다.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서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사14:14).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보다 더 높은 곳이 없습니다.

구주의 탄생은 가장 높은 곳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요, 존재 목적 역시 그러하지만 주님의 탄생은 피조물의 존재 목적과는 다른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계4:11). 피조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영광은 지으신 창조주의 신성과 솜씨 등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영광이라면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하나님의 영광은 독특한 것이며,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주님은 탄생 그 자체만으로 이미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낳을 때 그 자녀의 탄생 자체가 그 부모에게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듯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저 하늘에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이 되신 것 자체만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누구십니까? 주님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주님은 창조주이셨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고후4:4, 골1:15, 히1: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니라.](고후4:4b). [이 아들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形像)이시요, 모든 피조물의 처음 나신 분이시니](골1:15), [이 아들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라.](히1:3a).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싶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됩니다. 구원자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며, 하나님의 정확한 형상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無名)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빌2:6~8).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고, 하나님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하나님이신 아들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죄인의 모양이 되셨으니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그리는 신들의 모양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천사의 모습으로 오지 않으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여자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히2:16). 주님은 백마 탄 초인(超人)의 모습도 아니시고, 왕이나 권세를 지닌 영웅의 모습으로 오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는 평범하다 못해 평범한 것 이하로 태어나셨는데 태어날 때의 모습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이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 (히2:14-15). 죽음을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해 형벌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를 멸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생명의 통치자요, 생명을 주신 하나님,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가 멸해졌습니다. 마귀는 더 이상 죽음을 도구로 성도들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 둘째 사망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지닌 죽음의 권능은 육체로 오신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끝장 나 버렸습니다. 주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은 죽음의 속박에 매인 사람들을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께 죽음이란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바로 그 일을 위한 탄생이었기에 그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율법을 사람들에게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도 없었고, 생명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통해 죄가 들어오고, 죄가 살아났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었을 뿐입니다(롬4:15).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능히 해 내셨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 죄를 정죄하셨느니라.](롬8:3). 율법의 진노와 저주,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주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인간의 몸을 태어나셔서 온 몸으로 다 받아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수치와 모욕, 저주와 비방거리가 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해 형벌을 받으셨고, 지옥의 고통을 맛보셨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주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그분께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냐?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하는도다. 내가 이런 목적으로 태어났으며 이런 까닭으로 세상에 왔나니 이것은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함이로다. 진리에 속한 자마다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시매](요18:37). 주님은 왕으로 태어나셔서 종으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죄가 되시고(고후5:21), 저주가 되셨습니다(갈3:13). 이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으시고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만 계시는 한 이런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탄생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신 유일한 사람입니다. 사람 가운데 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삶의 목적을 스스로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분 주님은 자신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셨고, 삶의 목적을 가지고 인간이 되셔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주님이 태어나신 이유는 죄인들을 대속해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완전한 사람이 되심으로 죽으실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2:8). 이 일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요, 의미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진리를 주님의 오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심으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는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이 땅에서 어떤 일이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까? 하늘의 영광이 이 땅에 가득 찬 예는 몇 차례 나오지만(시내산 강림, 성전 봉헌 등...) 땅에서의 어떤 일이나 누군가로 인해 하늘에 영광이 가득차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 간 일은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이 땅은 저주를 받았고, 죄로 가득차서 더러워졌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을 경배하고 영광을 돌렸으며, 자기들끼리 서로 영광을 구하는 일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칭찬과 영광이 아니라 같은 사람들에게서 오는 칭찬과 영광을 구합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받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요5:44). 사람들은 자기기 아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런 욕구 때문에 좀 더 공부하고, 좀 더 돈을 벌고, 좀 더 출세하고 싶어 합니다. 특히 가족 관계가 강한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끼리 비교하고 서로 영광을 받는 사람들은 잘난 맛에 살지만 주님을 믿기 어렵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아니하노라.](요5:41). 우리가 만약 사람들에게 나오는 영광(honour)을 구하지 않는다면 영적 성장과 신앙의 성숙을 이루는데 한결 빠르고 편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기 위해 일했더라면 주님보다 더 인기를 끌 수 있는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설교의 능력에서 역사상 주님보다 은혜롭고, 놀랍고, 능력 있고, 권세 있게 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청중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고, 신학교를 세우고, 책을 찍어내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사람들에게 영광을 조금이라도 구했다면 주님께서 모욕과 수치를 당할 일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주님은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영광을/ 구하고 심판하시는 이가 계시느니라.](요8:50).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자 곧 그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요7:18). 성도들이나 목회자들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구하는 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고 싶고, 똑똑하다,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살 의욕조차 없고, 성취욕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마음에 있고, 그런 것이 동기가 되고, 그런 것이 마음속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과 존귀와 칭찬은 전혀 들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은 모두 사라집니다. 이런 영광을 성경은 헛된 영광, 자기 영광이라고 합니다. 남이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자랑하고 추천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추천하는 자들과 감히 한 패가 되거나 혹은 그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오직 그들은 자기들을 기준으로 자기들을 판단하며 자기들 가운데서 자기들을 비교하니 지혜가 없는 자들이로다.](고후10:12). 이 시대의 영이 그런 것입니다. 교육이 추구하는 것 중에 하나도 역시 자기 자랑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자기를 추천하는 자가 인정받지 아니하고 오직 {주}께서 추천하시는 자가 인정받기 때문이라.](고후10:18).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았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존경과 인정을 받음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를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높게 평가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기 때문이니라.](눅16:15).

우리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삶의 철학이며, 영적 가치관이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았고, 영적 유대인이라면 사람에게서 나는 칭찬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롬2:29).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경건하게 산다면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을 것이요, 모욕을 받을 것이며,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여러분의 가족 중에서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되고, 여러분의 친구들이 여러분을 만나려 하지 않고 욕을 하며, 친지들 간에 왕래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면 그것은 자연스런 것이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런 요소가 전혀 없다면 여러분의 삶에 영적 요소나 경건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복음 전도자나 말씀의 사역자들은 사람을 의식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냐,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갈1:10). 사람들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구미(口味)를 맞출 생각을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라 할 수 없습니다. 빼어난 말이나 좋은 언변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롬16:18). 듣기 좋은 말을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덕담(德談)은 하기도 쉽고, 듣기에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는 말을 거부하고 성령이 가르치시는 말을 해야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우리가 말하노니 이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2:4). 우리 주님은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셨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의 영적 생명이 태어나고, 죄인이 회개할 때 지극히 높은 저 하늘에는 기쁨이 있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 사람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더 기쁨이 있으리라.](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의 눈앞에서 기쁨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5:10).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적 출생이 아니라 영적 출생에 대해서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늘의 생명을 받아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첫째, 선한 행위를 함으로써 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주님은 매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이는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통해 사람들은 주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선을 행할 때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주목하게 되면 그것은 잘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행할 때, 교회의 이름으로 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정직한 행실,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면 하나님은 도리어 모독을 받으시게 됩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너희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방하다가도 너희의 선한 행위들을 보고 징벌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정직함, 단순함, 진실함은 우리의 생활 모토입니다.

둘째,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강해지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님을 놀라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역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이 강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롬4:20).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돌린 것은 어떤 일을 잘 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잘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야 말로 가장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많은 감사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하여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의 감사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넘쳐 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4:15). 무슨 일에서든지 감사를 하십시오. 감사는 주님께 받아들여지는 희생 제물입니다. 감사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감사를 잊고 불평을 잘합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나았지만 고침을 받고 감사를 드리기 위해 돌아온 사람은 한 명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다가 고침을 받았던 사람은 주님을 믿었지만 그 부모는 주님을 시인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안에 화(禍)가 미칠까봐 걱정했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은 아들 둘이 공산당에게 총살이 되었습니다. 그는 두 아들의 장래식에서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삼남 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든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라니요. 감사합니다. 예수 믿다가 와석종신하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든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라니요. 감사합니다.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 되어 감사합니다. 나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감사합니다. 이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신애를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 합니다." 그는 감사를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넷째, 구제 헌물과 헌금을 집행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뿐 아니라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이 은혜를 가지고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자니 우리가 이 은혜를 집행하는 것은 같은 {주}께 영광을 돌리며 너희의 준비된 마음을 밝히 드러내려 함이라.](고후8:19). [이 직무의 실행을 증거로 삼아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인하고 복종하며 또 그들과 모든 사람들을 향해 너그러이 나누어 주었음이라.](고후9:13).

다섯째,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을 주님께 영광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성도가 고난을 받는 것이 주님께는 영광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받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시고, 보상을 주십니다.

주님의 오신 탄생의 두 번째 의의는 땅에는 평화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땅에 평화가 임한 것이 아니라 헤롯으로 인해 베들레헴 근처의 아이들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주님이 오셨지만 예루살렘에 평화는 없었습니다. 여전히 로마의 정치적 식민지였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땅에 화평을 보내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보내러 왔노라.](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열이니라.](눅12:51). 그렇다면 땅에는 평화라고 선포한 천사들의 선포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 구절은 천년 왕국에서 문자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믿는 성도들에게 임하는 평화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나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주님은 믿는 자들 안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주님이 주신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도다.](롬5:1).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누리게 된 것은 오직 주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천사들이 선포한 평화는 정치적 평화가 아닙니다. 이 땅은 지난 2000 년 동안 전쟁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사람들은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물고 뜯고 싸웁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 안에 임한 평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화평을 이루사 모든 것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음이니라.](골1:20). 이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하고 유대인들과 화평의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원수 되게 하는 것 곧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 이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 화평을 이루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멸하사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 /그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에게 화평을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화평을 선포하셨으니] (엡2:15~17).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와 무할례의 구분이 없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세 번째 의의는 사람들에게는 선하신 뜻(good will)이란 점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죄인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 역시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사람들을 향해 선하신 뜻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하시고 은혜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없다면 모두 지옥의 형벌에 처해야 할 죄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특권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놀라운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각자를 향해 두신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우리의 행실로 어리석은 자들의 입을 막아 버리는 것 역시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것은 너희가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벧전2:15). 잘 행함으로 무식한 자들의 어리석은 말을 막아 버리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직접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입니다. [너희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3:17). 흔히 사람들은 나는 잘한다고 했는데 내 진심을 몰라주고,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하거나 뭔가 문제가 터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룩히 구별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음행을 멀리하고](살전4:3). 주님은 우리 각 개개인에게 두신 특별한 뜻도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우리를 향한 선한 뜻이지 악한 뜻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주님의 오심에 대한 천사들의 선포를 중심으로 세 가지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과 땅과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서는 영적인 평안, 사람들을 향해서는 선한 뜻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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