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출애굽기 22:1-19

요절: 출애굽기 22:9


하나님은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인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출20:15)란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절도에 대한 법규를 정해
주셨습니다. 1-15절은 주님이 주신 절도에 대한 법규입니다.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출20:15, 레19:11, 신5:19)는 말씀은 모세의
율법에 매번 나오는 매우 중요한 법규입니다. 도둑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탐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했기 때문에 도둑질을 할 때 십계명 중 세 개의
계명을 동시에 범하게 됩니다. 율법은 행위 이전에 정신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또는 부주의함으로 저지른 죄에 대해서도
반드시 용서를 빌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해를 끼쳤을 때 율법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배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명 도벽(盜癖)이라 일컫는 도둑질하는 버릇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는 어디에나
도둑이 넘치지만 도둑질의 근본 원인은 첫째, 탐심 둘째,
이웃 사랑의 결여, 셋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방법은 거듭나서
주의 말씀으로 훈육받는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은 거듭남이
없었기 때문에 ‘말씀을 마음 속에 감추고 경고를 받아야’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죽이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1).
주님은 절도에 대한 배상 규모를 정확히 정해 주셨습니다.
당시 농경 사회에서 소나 양은 가계에서 가장 큰
재산이었습니다. 소, 말, 낙타 등은 가장 비싼
가축이었으므로 배상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소는 다섯배,
양은 네배입니다. 이는 오늘날 미국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벌금으로 배상하게 했습니다. 만약 훔친 소나 양이 아직
죽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는 상태에서 무사히 도둑놈의
손에서 찾을 수 있게 되면 배상 규모는 줄어듭니다. [
도둑질한 것이 살아서 그 손에 있으면 소든지 나귀든지
양이든지 두 배로 갚을지니라
.](4). 도둑이 도둑질을 하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거나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를 해서 죄를 자백하고 돌려준 경우에는 배상 규모는
더욱 줄어 듭니다. 이때는 1/5만 더해서 돌려주면 됩니다.
민수기5:6-7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든
여자든 사람들이 범하는 어떤 죄를 범하고 주를 거역하여
범법하고 유죄가 되면 그 지은 죄를 고백하고 자기가 범법한
것을 그 본래의 것으로 갚되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자기가 범법한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자수하여 광명 찾는 길이 성경에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도둑이 다 훔친 것을 팔아서 다 탕진해 버리고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신용 불량자거나 파산을 불렀을 경우에는
민사상 문제가 아니라 형사상 문제로 넘어가는데, 이 때는
종으로 팔려 6년 동안 일을 해야 했습니다(3).


2-3절입니다. [도둑이 든
것을 보고 그를 쳐서 죽게 하면 그를 위해 피를 흘릴 필요가
없으나 그 도둑 위에 해가 돋았으면 그를 위해 피를 흘려야
하리니 이는 도둑이 반드시 전액 배상할 것임이요,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임이라.
](2-3). 2절은 밤손님이 들었는데 주인이 도둑을
잡느라 격투를 하거나 몽둥이를 휘둘렀을 경우, 이곳
미국에서처럼 총을 발사해서 도둑이 즉사를 했을 때 주인은
살인죄를 묻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밤에 도둑질하다 죽은
경우는 도둑의 피는 자신의 머리에 돌아가게 됩니다. “사람의
집은 성이다”란 영국 속담에 있는대로 주인은 자신의 성(집)을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 야간에 침투한 도둑과의
전쟁은 주인에게도 그만큼 위험이 따릅니다. 하지만 밤이
아닌 낮에 도둑이 들어왔을 때 주인이 도둑을 죽이거나
상하게 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저야 합니다. 물론
정당방위였을 경우라면 예외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악인에
대해서도 긍휼을 가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자신의 판단대로 임의로 원수를 갚거나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죄인들은 법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지 결코 우리가 심판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판사들은 주로 그 도시의 장로들이
맡았는데, 이들이 율법대로 판결을 내리고 집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소나 양을 훔친 죄로 인해 죽음을 당하지는 않도록
하셨습니다.


5절은 ‘불법 침해’에
관한 법입니다. [사람이 밭이나 포도원에서 먹이려고 자기
짐승을 가져다 놓았는데 다른 사람의 밭에서 먹으면 그가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5). 주인이 자신의 소나 짐승을 잘못
관리하여 남의 농작물을 먹어 치우거나 재산상의 피해를 줄
경우에는 자기 밭에서 나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하게 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런 예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소를 묶어 두었는데 줄이 풀려서 남의
밭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배추나 상치를 뜯어 먹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밭 고랑이 아닌 아무 곳으로 걸어 다녀서
농작물을 망쳐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고의는
아니었다 해도 주인은 반드시 배상해 주어야 합니다.


6절은 실수로 행해진
방화에 대한 법입니다. [불이 나서 가시나무에 옮겨 붙어
곡식 낟가리나 서 있는 곡식이나 밭을 태우면 불을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할지니라.
](6). 저는 시골에서 자라서
논둑을 태우다가 남의 산소(무덤) 잔디를 몽땅 태워 먹은
적이 있습니다. 불씨가 날아가서 옮겨 붙은 경우인데 혼도
나기도 하고, 싹싹 빌었습니다. 겨울이나 초봄에 불을
놓아서 남의 농작물을 태우지는 않았지만 요즘처럼 비닐
하우스를 많이 한다면 감히 불을 놓을 생각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번 잘못 튄 불꽃은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고의가 아닌 사고로 인한
불꽃으로 인해 생긴 피해는 불을 놓은 자가 배상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법은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법입니다.
이 법을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가 이곳 미국입니다. 바닥에
물기가 있어서 쓰러지면 주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엄청난
액수로 배상하게 판결을 내림으로써 요즘에는 어디에나
물기가 있는 곳에는 “주의” 푯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바닥의 물기에 자빠져서 다치거나 쓰러지는 일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때로 사소한 것들을 법정에 들고
가서 엄청난 배상을 받는 판결이 자주 신문에 나오는데,
그런 판결이 날 때마다 사회적으로는 동일한 실수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법을 통해
불을 놓을 때 엄청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심으로 산불이나
방화를 원천적으로 예방하신 것입니다.


7-13절까지는 배임, 신탁에
관한 법입니다. 오늘날 상법에서 흔히 쓰는 말로 trust에
관련된 법입니다. [사람이 돈이나 물건을 자기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사람의 집에서 도둑을 맞았는데 그
도둑이 발견되면 그는 두 배를 지불할 것이요, 도둑이
발견되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관 앞에 불려가서 그
이웃의 물건에 손을 댔는지 조사를 받을 것이니라.
](7-8).
남이 물건을 지키다 도둑을 맞거나 물건이 변질되거나
상하면 참으로 난처하게 됩니다. 인간적 관계성도 파괴되고,
난감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주님은 이런 경우에 대해 법을
주셨는데, 남의 물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이는 남의 것을 나의 것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나의
것을 남에게, 남의 것을 나의 것처럼 아끼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공공의 물건이나 남의 물건은 아무 주인없는 것인
줄로 여기고 마음대로 써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군대가기 전에 저의 책을 여러 사람에게 분산해서 맡겼는데
거의 찾지를 못했습니다. 반대로 누가 저에게 책을 맡겼는데
저 역시 그 책들을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돌려주지 못하고
흐지부지 하고 말았습니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아끼지
못한 경우입니다. 성경대로라면 책을 찾아서 갖다 주고 두
배로 지불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빌려 준 것인지, 내가
잃어버린 것인지 모를 때에는 재판관에게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구약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율법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불신 사회입니다. 불신 사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신뢰성을 보여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9절입니다. [온갖 범법(犯法)에
관하여는 그것이 소나 나귀나 양이나 의복에 관한 것이든지
혹은 다른 이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바 잃어버린 물건에
관한 것이든지 양쪽이 재판관 앞에서 사유를 댈 것이요,
재판관이 유죄 판결을 내리는 자가 자기 이웃에게 두 배로
갚을지니라.
](9). 우연히 잃어버린 물건을 길을 가다
발견했다던가 누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계명은
첫째가 “들키지 말지니라” 둘째가 “끝까지 우겨라”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들키면 우깁니다. 이것은 타락 인간의
본성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산수 교과서를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시골에서는 다시 교과서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에게 책 안 갖고 왔다고 맞았습니다.
몇 일 뒤에 남의 손에 있는 제 책을 발견했는데, 제 이름은
볼펜으로 지워지고 그 위에 자기 이름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재판관 대신 고학년 동네 선배들이 재판을 해서 책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서 엄청나게 큰
일까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를 훔친 여자와 친모(親母)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우는 일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영수증과 문서(계약서)
사회입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법정에 가서 찾는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10-15절은 배상에 대한 여러
가지 실제적인 예들입니다. 사회 생활은 경우의 수가 매우
다양합니다. 별의 별 일이 다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세부적인 예를 다 기록하려면 두꺼운 법전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주님은 흔히 있는 원칙적인 경우를 제시해 주시고,
재판관들이 그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재판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혹은 어떤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것이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갔어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그것을 맡은 자가 자기 이웃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주]의 맹세를 할 것이요, 그 주인은 그 맹세를
받아들일지니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그
맡은 자가 짐승을 도둑 맞았으면 그 주인에게 배상할 것이며
만일 그 짐승이 갈기갈기 찢겼으면 그것을 증거로 가져올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10-13).
맹세의 법이 나옵니다. 맡은 자가 아무런 손을 대지
않았는데 죽어 버리거나 상하거나 이리나 곰에게 물려 간
경우에는 맡은 자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단 맡은 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착취해 놓고 누가 물어 가 버렸다고 하면
안됩니다. 증인이 없는 경우에 피해자는 속수무책입니다. 이
때 주님은 맡은 자에게 맹세하게 하셨습니다. 맹세란 유대
사회에서는 모든 다툼의 종결이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큰 자를 두고 맹세하기 때문이니
확증하기 위한 맹세가 그들에게는 모든 다툼을 끝내는
것이니라.
](히6:16). 주님은 십계명을 통해 “거짓
맹세하지 말지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만약
도둑질한 후에 다시 거짓 맹세하면 그 벌은 더욱 무거워
집니다. 하나님께 맹세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
책임져야 합니다. 오늘날 같은 반성경적 무신론 사회에서
하나님께 거짓 맹세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겠지만 유대 사회에서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만약 지키다가 도둑을
맞았으면 맡긴 주인에게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삼촌의 양을 돌보면서도 한 마리 남김없이 다 배상했습니다.
야곱은 이 일에 대해서 얼마나 한(恨)이 맺혔든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승에게 물려 찢긴 것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내가 손실을 담당하였으며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께서 내 손에서
그것을 요구하셨나이다.
](창31:39). 라반은 철저하게 법을
집행했습니다. 라반은 주님의 율법을 넘어서 물려 찢긴
것까지 다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덕분에 야곱은 자기 재산을
전혀 모으지 못했다가 후에 주님이 주신 은혜로 한번에 모든
손해와 손실을 보상받았습니다. 야곱이 당시에 라반에게
섭섭한 점도 많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이를 통해 그는
흠잡힐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성이 남의 것을
속여서 훔치기를 잘하는 야곱은 라반을 통해 자신의 모난
인격과 성품이 철저히 부서지고, 갈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는데는 라반의 엄격함과 혹독함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야곱은 재판관을 찾지 않았습니다.
재판관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입니다. 그들은 늘 바르게
재판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14-15절입니다.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빌려온 것이 그 주인이 함께 하지 아니할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려니와 그 주인이 함께
하였으면 배상하지 아니할 것이며 만일 그것이 세를 주고
빌린 것이면 세를 받기 위해 온 것이니라.
](14-15).
이번에는 임대에 관한 법입니다. 만약 소를 빌리면서 소
주인이 함께 와서 일을 한 경우라면 소가 다치거나 죽으면
빌린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소 주인의 책임입니다. 만약
소만 빌려 왔다면 빌린 사람이 배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득을 위해 노동력을 판 것에 대한 경우이기 때문에 매우
당연한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돈을 받지 않고
빌려 준 경우에 사고가 난 경우라면 빌린 사람이 배상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남의 것을 자기 것처럼 빌려
쓰는 것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안전 장치를 걸어 두었습니다.
사람들은 교묘하게 남의 것을 자기 것처럼 빌려 쓰고, 계속
쓰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은혜를 악으로 갚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소를 빌려 주었는데, 짐을 너무 많이 싣고
산길을 오고 가서 소의 발목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친절로, 호의를 입어서 빌린 것들에 대해서
결코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6장에는
빌린 도끼로 나무를 베다 물에 빠뜨린 사람의 외침이
나옵니다. [한 사람이 재목을 벨 때에 도끼 머리가 물 속에
떨어졌으므로 그가 외쳐 이르되, 아아 슬프다, 선생님이여,
이것은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왕하6:5). 이것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16-17절은 십계명 중 간음에
대한 법에 해당합니다.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그녀와 함께 누우면 반드시 지참금을 주고 자기 아내로
삼을 것이요, 만일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그에게 주기를
완강히 거부하면 그는 처녀들의 지참금에 따라 돈을
지불할지니라
.](16-17). 여기서 ‘꾀어’란 말은 현대어로
말하면 “연애하여”란 말입니다. 감정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란 뜻입니다. 성경은 정혼을 곧 결혼의 개념을
봅니다. 그래서 정혼한 여자를 꾀어 함께 누우면 그것은
간통이 됩니다. 이 때는 둘 다 죽습니다.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정혼한 뒤에 어떤 남자가 도시에서 그녀를 만나서
함께 누우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그 도시의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쳐죽일지니 그 까닭은 그 처녀가 도시에
있으면서도 소리지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요, 또 그 남자가 자기
이웃의 아내를
비천하게 하였기 때문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거할지니라.
](신22:23~24).
성경은 분명히 정혼을 결혼으로 보고 있고, 처벌 역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는 또 있습니다. 요셉은
정혼한 여자 마리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천사는
마리아를 “네 아내”라고 칭했습니다.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녀 안에 수태된 이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음이니라.
](마1:20). 그러나 정혼하지 않는 상태의
여자와 누운 경우에는 지참금을 주어서 결혼하도록
했습니다. 성경적 결혼은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는
말씀대로 육체와 육체의 결합니다. 그래서 둘이 한 몸이 된
경우에는 결혼을 시키도록 하셨는데 처녀의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그 사람과 결혼시키기를 거부했을 경우에는 남자가
법에 정한대로 위자료를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혼에
대한 신성한 제도를 확립하시기 위해 성적 문란, 씨의 혼잡
등을 지극히 경계하셨습니다. 이는 부모의 동의없이
미성년자들이나 청년들의 즉흥적인 성 관계를 차단하고,
혼인의 존귀함을 보이신 것입니다.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히13:4).


18절입니다. [너는
마녀를 살려 두지 말지니라.
](18). 마녀는 하나님의 신성과
권능을 가장 많이 훼손하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귀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고, 속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파라오의 마술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마술은 마치 오락의 형태로 T.V나 각종
무대에 등장합니다. 마술은 단지 고도의 손 동작이나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마술은 악한
영들이 역사하는 활동 공간이며, 무대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시몬이란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도시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이용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홀리며 자기를 대단한 자로 내세우더니..시몬이
오랫동안 마술로 사람들을 홀렸으므로 그들이 그를 존중히
여기더라
.](행8:9,11). 그는 마술로 백성들을 현혹했고,
자신을 높였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경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악령과의 접촉, 악령들린 사람들과의 접촉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대언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외에 어떤 것도 추종하지 말고, 관심도 두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 채 먹지 말고
마술을 사용하지 말며 때를 관찰하지 말고
](레19:26), [부리는
영을 지닌 자들에게 관심을 두거나 마술사들을 추종하지
말지니 그들로 말미암아 /너희가/ 더럽혀지지 않게 하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레19:31), [부리는 영을
지닌 자나 마술사를 따라 음행의 길로 가는 자에게는 내가
내 얼굴을 들고 그 혼을 대적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레20:6), [또 남자나 여자가 부리는 영을
지녔거나 마술사이거든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들을 돌로
칠지니 그들의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리라
.](레20:27).


주님은 마법사, 마술사,
부리는 영, 강신술사들을 증오하십니다. [마법사나 부리는
영에게 묻는 자나 마술사나 강신술사가 너희 가운데 있지
못하게 할지니라
.](신18:11). 이들만큼 영적 해악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할 때는 어김없이 마술사들이
등장했습니다. 무속과 점성술, 역술인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면 그 나라는 필히 망합니다. 지금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점쟁이들이 있는지 대표적인 성장 산업이라고
합니다. 역술 학원이 생기고, 창업 센터가 생길 정도입니다.
연간 4조원의 시장 규모에 한국 역술인 협회 정식 회원만 5만명이며,
미 가입 회원 5만명, 무속인을 겸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약
3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인구 1천명 가운데 여섯명(1백60명
중 한명꼴) 정도가 '점 봐주는 사람'이라는 계산입니다.-중앙일보
2004년 1월16일자 보도.


마법사, 마술사들을
제거했을 때 하나님은 부흥을 주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
요시야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서 부리는 영과 함께 일하는
자와 마술사와 형상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찾아내어
제거하였으니 이것은 대제사장 힐기야가 [주]의 집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들을 그가 수행하고자
함이었더라.
](왕하23:24). 만약 우리 마음 가운데도 이런
우상 숭배에 대한 잔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철저히
죽음에 처해야 합니다. 일일 운세를 본다든지,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읽는다든지, 나의 띠에 관련된
별자리를 본다든지 하는 행위는 모두 가증스런 일들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누가 점을 봐주겠다고 해도, 또 가족인 친지
중에 재미로 사주팔자를 뽑아 와도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부리는 영을 지닌 자들과 슬쩍 엿보고 중얼거리는
마술사들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마땅히 자기들의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사8:19).


19절입니다. 이 말씀 역시
음행에 관련된 법입니다. [누구든지 짐승과 함께 눕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9). 이스라엘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온통 잡신들의 본향이요, 음란한 성(性) 문화로 땅이
더럽혀진 곳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에게
멸망당하고, 땅을 빼앗기는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은 부족들로 이루어진 도시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그 도시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주로 짐승과의 교접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나안에는
바알, 아세라와 같은 우상이 수천 종이나 있었습니다. 이
문화는 당연히 바벨탑에서 온 것입니다. 바알은 태양신으로
남성을 상징하고 아세라는 달의 신인 여성을 상징하는
여신이었습니다. 이 둘의 결합으로 인해 다산과 풍작,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치는 최고의 제물은 아기를 태워서 인신 공양을 드리는
것이었고, 그 후에는 신전의 여자 제사장과 성관계를 갖는
제사법이었습니다. 오늘날 각 종교마다 수녀, 비구니, 정녀
등의 처녀들로 된 여자 성직자들은 모두 바빌론과 가나안
종교의 풍습이라 할 수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광야
여행 중에 발람의 계략에 빠져 바알프올에서 음행을 하다
하룻 만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습니다(고전10:8).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무르더니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행음(行淫)하기
시작하니라
.](민25:1). 여기서 모압의 딸들이 바로
신정에서 제사를 지내던 주 대상이 신전 창녀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올림픽을 시작할 때 여신들의 흉내를 내며 춤을 추며,
봉화에 불을 붙이는 여인들이 신전 창녀들에서 기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고린도에는 이런 신전
창녀들이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에만 약 1000명 정도의
여사제들이 공식적으로 성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네팔이나 인도의 신전, 이방 종교의 신전에는 온통 포르노로
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자 마자 해야 할 일로 [그 땅의 모든 거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며 그들의 그림과 부어 만든 형상을 다 멸하고
그들의 산당을 다 허물며
](민33:52)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숭배하는 음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성 연애, 근친 상간, 수간(獸姦)은
가장 비정상적인 행위들입니다. 오늘날 이곳 미국에서
동성연애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이 나고, 얼마전
샌프란시스크노는 주법을 무시하고 시의회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증을 발급해 주었습니다. 이 현상이 바로 마귀의
문화가 이제 변방의 세력이 아니라 주류로 제도권에
진입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수간」이란 행위는 고대
바빌론과 이집트의 비밀스런 종교 의식에 의해 유래되었다.
이교도들은 범신론이었기 때문에 짐승과의 교합은 성스러운
행위로서 음행이나 패륜행위라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짐승들 안에 신들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악어, 산양, 소는 신의 화신이며, 이러한
성스러운 짐승과 교접하는 것은 신의 노여움을 풀었으며
신과 인간의 화평을 매듭짖는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그 자신과 사회가 갖고 있는 종교적 가치 이상으로
결코 더 거룩해지거나 경건해 질 수 없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지금의 회교권 문화는
수간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는데, 이는 수만명 중의 어쩌다
미친 한 두명의 사람이 아니라 문화였습니다. 이슬람의
속담에 “메카 순례는 낙타와 교접하지 않으면
달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란 말이 있습니다. 메카로 가는
기나긴 여행 중에 타고 가던 낙타를 상대로 성교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나일강 유역의 유목민들 중에는 모든 종류의
수간이 성행하고 있었으며, 손니니의 「이집트
여행기」에는 나일강에서 원주민과 암악어와의 수교를
목격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라비아의
오아시스 초원에서 젊은 양치기들이 성의 탈출구로서 어린
산양을 이용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역시 민족적
시조가 수간에 의해서 잉태된 민족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그
자녀가 바로 단군입니다. 신들과 짐승의 교접은 어느 민족의
신화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이들이 바로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가나안의 거인들이었습니다. 사람은
점점 영적 도덕성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신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으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문화는 가나안의 문화로
복귀하고 싶어합니다.


[너는 어떤 짐승과 함께
누워 그 일로 너를 더럽히지 말며 어떤 여자도 짐승 앞에
서서 그것을 향해 눕지 말라. 이것은 문란한 일이니라
.](레18:23).
저는 애완용 동물들을 사랑하는 인간들이 모두 이들의
후예들로 입후보한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짐승과 인간의
경계는 먹는 것과 자는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옷을 입히고, 화장을 시키고, 같은
침대에서 자는 이런 행동은 결코 성경적으로 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함께 눕지 말라”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함께 눕지 말아야 합니다. [남자가 짐승과
함께 누우면 반드시 그를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레20:15). [어떤 종류의 짐승이든지 /그것/과
함께 눕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21). 주님은 어떤 종류의 짐승이든지...라고
말씀하심으로 개, 고양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모든 종류의 짐승들을 다 포함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 가나안 민족의 어린애, 짐승까지 모조리 다 멸절하도록
말씀하신 것은 주님의 잔혹성이나 두려움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철저한 징벌을 나타낸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당시의 문화가 어쩌고 저쩌고...당시 사회에서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안 된다는 식으로 변명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무조건 죽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
사회와 교회를 향해 무섭게 몰아치는 음란 문화가 곧 마귀
문화임을 알고 말씀의 능력으로 단호하게 맞서 싸우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주님이 사형에 처한 죄들에 대해
문화적 특수성이니 상대성이니 관습이니 하면서 타협점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몰지각한 일부 성직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거짓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세상
언론에 장단을 맞추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분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 율법의 목적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주님이 정해
주신 다양한 법을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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