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이사야 21:1-24:23
요절: 이사야 24:15
이사야 21장은 여러 이방 민족들에 대한 경고로 되어 있습니다. 1-10절은 바빌론에 대한 경고이고, 11-12절은 두마에 대한 경고, 13절은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입니다. ‘회오리 바람’(1)은 언제나 재림에 대한 참고 어휘입니다. 스가랴 9:14절 참조, 욥기37:9, 38:1, 40:6참조. 주님은 이사야에게 ‘혹독한 환상’(2)을 보여 주셨는데, 이는 바빌론의 멸망에 관한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으로는 538 B.C에 있었던 사건으로 메데와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엘람은 페르시아를 가리키고, 메대는 말 그대로 메데입니다. 이 두 제국은 연합해서 바빌론을 공략했습니다(2). 바빌론의 멸망은 성경 전체에 매우 자주 언급되는 예언입니다. 9절은 특히 요한계시록 17,18장의 예언과 거의 같습니다(계14:8,18:2,21참조). 6-10절은 파수꾼의 임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수꾼의 임무는 첫째, 보는 것을 밝히 알리는 것입니다(6). 둘째, 많은 주의를 기울여 부지런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7). 셋째, 외쳐야 합니다(8). 그는 주인에게 ‘사자(獅子)다’ 외쳤습니다. 그는 낮은 물론이고 밤에도 떠나지 않고 파수대에 서 있었습니다. 파수꾼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들은 것을 너희에게 밝히 알렸노라”(10)고 말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의 파수꾼은 누구입니까? 다가올 심판과 저주에 대해 미리 경고해 주고 외칠 사람이 누구입니까? 파수꾼이 졸고 있거나 자리를 비우고 있거나 외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묻겠습니까? 이사야 56:10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눈먼 자들이요, 다 무지한 자들이며 다 말 못하는 개들이므로 짖지 못하는 자들이며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사56:10). 이런 파수꾼은 결코 ‘사자다’라고 외칠 수 없습니다. 사자(獅子)는 파괴자입니다. 여기서 사자는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울부짖는 사자’로서 마귀를 예표하는 동물입니다(벧전5:8). 예레미야 4:7, [사자가 자기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이방인들을 파멸시키는 자가 자기 길로 오는 중이로다. 그가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자기 거처를 떠났은즉 네 도시들이 황폐하게 되어 거주민이 없게 되리니](렘4:7).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12절에 언급된 파수꾼은 이사야 자신입니다. 주님은 파수꾼을 세워 주십니다. 이는 경고를 듣게 하기 위함입니다. 멸망에 앞서 언제나 경고가 있습니다. 대홍수가 있기 전 120년간 의의 전파자 노아가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에녹이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2000년이란 긴긴 은혜의 시간에 우리는 다가올 심판과 지옥을 함께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 민족, 국가, 언어들은 다 파괴될 것입니다. 에스겔 33:2,7에는 파수꾼의 의무가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네 백성의 자녀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2). 오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집에게 이와같이 파수꾼으로 세웠나니 그러므로 너는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내게서 나온 것으로 그들에게 경고할지니라.](겔33:2,7). 파수꾼의 의무는 경고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 파수꾼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장입니다. ‘환상 골짜기에 대한 엄중한 경고’인데 환상 골짜기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1,5절에 단 두 번만 나오기 때문에 그 위치 파악이 어렵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7절은 대환란 때 당할 예루살렘의 파멸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붕 위에 있었던 것은(1) 탄식하거나 우상을 숭배하기 위한 것이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 예레미야 48:38, [모압의 모든 지붕과 그 거리들에 늘 애통함이 있으리니 이는 내가 모압을 기뻐할 것이 없는 그릇같이 깨뜨렸음이라. 주가 말하노라.](렘48:38).
· 스바냐 1:5에 신들을 경배했을 때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지붕에서 하늘의 무리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또 주께 경배하며 주를 두고 맹세하면서 동시에 말감을 두고 맹세하는 자들과](습1:5).
· 베드로는 기도하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행10:9).
· 마태복음 10:27에는 그들은 들은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된다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소란한 도시, 즉 기뻐하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지금 파멸과 죽임 당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고자 몸부림 치지만 정작 심판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의 재건에만 관심이 있었지, 도시를 지으신 주님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11). 회개하고 울고, 금식해야 할 때 그들은 잔치를 벌였습니다(12-13). 이 말씀을 오늘날 저희들에게 적용하면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보다 교회의 건물, 교회 자체에 더 관심을 갖는 것,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보다 복 자체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성도들은 울어야 할 때 웃습니다. 금식하고 회개해야 할 때 선교 축제, 부흥 축제, 찬양 축제 등 각종 행사를 벌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만군의 주께서 내 귀에 계시하여 이르시되 참으로 너희가 죽기까지 이 불법으로부터 깨끗하게 되지 못하리라. 주 만군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하셨느니라.](14). 20-25절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미래를 예언한 성경 기술 방법입니다. 15절의 일은 열왕기하 18:18, 26, 37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집 열쇠’(22)는 요한계시록 3:7의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입니다. 23절의 못(nail)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아김은 못(nail)에 비유되었습니다. 단단한 못은 물건을 고정시키고, 안정시킵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를 단단한 곳에 박힌 못같이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자기 아버지 집의 영화로운 왕좌가 될 것이요,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의 집의 모든 영광을 그 위에 걸어 두리니 그 후손과 자손이요, 모든 작은 그릇 곧 잔으로부터 큰 병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그릇이니라.](23-24).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못입니다 에스라 9:8절에 “또 자신의 거룩한 곳에서 우리에게 못(nail)을 주셨사오니...”(8b)라고 말합니다. 못(nail)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스가랴 10:4, [모퉁이돌이 그에게서, 못이 그에게서, 전쟁의 화살이 그에게서, 학대하는 모든 자가 다 같이 그에게서 나왔느니라.](슥10:4). 우리는 부러질 수 없는 단단한 못(nail)인 예수 그리스도에 걸려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이런 단단한 못이 박혀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듣고 배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집회의 스승들이 굳게 박은 못들 같으니 이 말씀들은 한 목자께서 주신 것이니라.](전12:11). 이런 못은 뽑히거나 부러지거나 녹이 슬어 삭아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못되신 주님께서 단단히 박혀 있고, 굳게 박힌 못들같이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23장은 두로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두로는 성경에 총 37번 나오는 유명한 도시입니다. 두로는 페니키아 지역에 속해 있고, 시돈과 비견되는 상업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역사적 도시이지만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 도시로서의 기록도 있습니다. 에스겔 28장의 두로 왕은 마귀 곧 루시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겔28:2). 역사적으로 두로는 솔로몬 왕에게 백향목과 노동력을 제공하여 성전 건축을 도왔습니다(왕상9:11, 삼하5:11). 17절을 보십시오. [칠십 년이 끝난 뒤에 주께서 두로를 돌아보시려니 두로가 자기 몸값을 받는 일로 되돌아와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왕국과 음행을 벌일 것이로되](17). 이는 이스라엘의 포로기가 끝난 뒤를 말합니다. 하지만 18절은 먼 미래의 사건입니다. [그녀의 상품과 몸값은 주께 거룩한 것이 되어 그것을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녀의 상품이 주 앞에 거하는 자들의 배불리 먹을 양식이 되고 오래 입을 옷이 될 것임이라.](18). 이는 시편 45:12을 볼 때 더욱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10-23장까지 “화로다”라고 경고한 11개의 족속(도시)은 성경 지도를 통해 확인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들 의 성경적 영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① 바빌론은 거짓 종교와 우상의 도시입니다. 성경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바빌론의 특징은 거짓 종교, 음녀, 우상 숭배의 본산지로 등장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곳이 발원지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사람들이 만든 종교들의 온상입니다.
② 팔레스타인은 참된 종교를 가졌으나 배교로 끝이 났습니다.
③ 모압은 형식적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예표합니다. 이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렘48:11).
④ 다마스커스는 타협을 예표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들이 교회 연합, 교회 일치와 같은 자세는 다마스커스와 같은 모습입니다.
⑤ 이디오피아는 선교지를 예표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고, 말씀을 찾습니다.
⑥ 이집트는 세상을 예표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밖으로 나와서 이집트로 돌아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집트는 철용광로입니다. 속박의 땅입니다.
⑦ 페르시아는 부와 사치를 상징하는 나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를 동경합니까? 주님께 이것을 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⑧ 에돔은 육신을 예표하는 족속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역시 육신을 의지하는 경향이 너무 강합니다.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데, 육신을 섬깁니다. 아말렉 역시 그렇습니다.
⑨ 아라비아는 전쟁을 예표합니다.
⑩ 예루살렘에 있는 환상의 골짜기는 종교를 예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상징합니다.
⑪ 두로는 상업주의를 예표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달라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같습니다(J Vernon McGee, Isaiah Chapters 1-35, Nashiville, TN: Thomas Nelson Publishers, 1991, p165-166).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도시들의 공통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 안에 이런 모든 문제들이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으며, 오늘날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화로다”라고 엄중한 경고를 한 도시들에 대한 말씀은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이런 모습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24장은 주의 날에 있을 경고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또 땅이 자기 거주민들 밑에서 더러워지리니 이는 그들이 법들을 범하고 규례를 바꾸며 영존하는 언약을 깨뜨렸음이라.](5). 주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땅이 더러워졌습니다. 처음에 땅은 아담의 범죄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 땅은 흘린 피로 인해 더러워집니다. 민수기35:33-34절을 참조할 것. 땅은 음행과 폭력으로 더러워집니다. 창세기 6:11, 레18:24-28. 땅은 저주를 받았다 할지라도 인간의 육신의 생명과는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거룩한 땅은 더럽혀져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이 땅을 불로 정화하실 것입니다. 저주받은 땅을 고침받는 길은 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황무지에도 비가 내리고, 거름을 주고, 땅을 깊이 갈아엎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겠지만 저주받은 땅은 주님이 땅을 고쳐 주셔야 합니다. 땅을 고침 받으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역대기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대하7:14).
둘째, 그들이 법들을 범하고 규례를 바꾸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법이라고 하면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말하고 넓게는 성경 전체를 다 일컫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지 않았고, 믿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스스로 죄의 굴레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습니다. 마귀의 궤계와 올무에 빠집니다. 육신에게 정복되어 육신의 정욕대로 살게 됩니다. 규례를 바꾸었다는 말은 레위기 18:30, 22:9에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키고 너희가 있기 전에 그들이 행하던 이 가증한 풍속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행하여 너희 자신을 그 안에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레18:30). 만약 이전의 민족들이 행하던 규례들, 예를들어 농신제를 지내든가 이스터를 지내는 일들은 모두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신약 성도들에게 주어진 규례는 주의 만찬과 침례밖에 없습니다. 이것만이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교회에 주신 유일한 규례입니다.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두건이나 유아 세례같은 것은 주님의 규례가 아닙니다. [그런즉 그들이 내 규례를 지킬 것이라. 만일 그들이 이 규례를 욕되게 하면 그것으로 인해 범죄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을까 염려하노니 이는 나 주가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기 때문이니라](레22:9). 특히 규례를 바꾸었다고 하는 것은 말세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니엘 7:25을 참고할 것, [...그가 때와 법을 바꾸고자 생각할 것이며...](단7:25)
셋째, 영존하는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언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노아와 맺은 무지개의 언약(창9:16) ②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17:7,19). ③ 할례의 언약(창17:13) ④ 안식일의 언약(출31:16, 레24:8) ⑤ 다윗의 언약(삼하23:5, 사55:3). ⑥ 새 언약(렘32:40, 겔37:26). ⑦ 신약(new testament- 새 상속 언약)-히13:20. 이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뜨린 언약은 할례의 언약, 안식일의 언약이었습니다.
14-15절은 심판의 와중에서 들려오는 찬양의 음성입니다. 이들은 남은 자들입니다. 대환란을 통과한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불 속에서 주를 영화롭게 하고 바다의 섬들에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로다](15). 불 속에서 주를 영화롭게 한 대표적인 인물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었습니다(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신약 성도들 가운데서도 불 속에서 주를 영화롭게 한 순교자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화형장에서 찬양을 부르며 죽었습니다. 본 구절의 정확한 의미는 불로 드리는 희생 헌물을 말합니다(레2:11,16, 3:3,5 민15:3).
18절 후반부에는 ‘위에 있는 창문들이 열리고’라고 하는데 이 창문은 하늘의 창문들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열렸고 창7:11,8:2) 엘리사 때 대기근의 때에 하늘의 창이 열려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던 신하가 실제로 하늘의 창이 열려 기근이 해결된 것을 보고 죽었습니다(왕하7:2,19). 말라기 대언자는 십일조와 헌물을 잘 낼 때 하늘의 문을 열어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말3:10). 현대인들은 하늘에 창이 있다는 사실을 잘 믿으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9절은 천년 왕국 이후의 땅의 해체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벧후3:11,12 참조). 21절에 ‘그날에 ’라고 말한 것은 이 사건의 시점을 말해 줍니다. 주님께서 위에 있는 높은 자들의 군대를 벌하시는데 이들은 현재 높은 처소에 있는 영적 악들입니다(엡6:10-12).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악을 벌주시고, 제거하실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천년 왕국 직전에서 천년 왕국으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그 때에 달이 당황하고 해가 부끄러워할 것이요, 만군의 주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시며 자신이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시리로다.](23). 자연 현상의 변화는 에스겔 32:7, 요엘2:10, 요엘2:31, 3:15, 말라기 4:7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대환란이 끝난 후 해는 일곱 배나 더 빛나게 될 것입니다(사30:26). 주님은 천년 왕국 때에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천년 왕국의 수도가 될 것입니다. 시편 48:2, 마태복음 5:35절을 참조할 것.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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