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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구약개론, 이사야(9) - Pastor. Peter Yoon



말씀: 이사야 30:1-34:17
요절: 이사야 34:16

30-31장은 이집트와 동맹을 맺은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경우에도 그들과 동맹을 맺거나 신뢰하거나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집트를 신뢰하고자 그리로 걸어갔고, 주님께 묻지 않았습니다(2-3).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고, 지으신 창조주를 떠난 사람들은 항상 인간을 의지하고, 자기 계획을 따라 도움을 구합니다.

도움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간 그들은 어떤 결과를 맞았습니까? 수치가 되고 혼동이 되었습니다(3). 세상과 사람은 믿으면 믿을수록 그만큼 커다란 배반과 상처만을 줍니다. 그들은 도움을 얻지 못하고 부끄러움만 당했습니다(5). 이집트는 세상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사랑하거나 연합하거나 일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악합니다. 주님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요17:9). 사도 요한은 [또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는 것이며](요일5:19)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현 세상을 악한 현 세상이라고 하셨습니다(갈1:4).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4:4).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7절을 보십시오. [이는 이집트 사람들의 도움은 헛되고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임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외치기를, 그들의 힘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라, 하였느니라.](7). 주님은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십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힘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보여 주시기 위해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주님은 주님만을 신뢰하게 하시려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라도 해야 될 것 같지만 주님의 계시와 조명없이, 주님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꼬이고 헝클어지게 마련입니다. 어려울 때 말씀읽고, 기도하며 조용히 있는 것은 무능력처럼 보이고, 심지어 게으른 것 같고, 책임감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신뢰하고 조용히 있는 것은 강력한 힘입니다. 평강이 곧 힘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주}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식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요, 조용히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이것을/ 원치 아니하고](15).

사람들은 자신의 육신으로 일을 이루어야 기분이 나고, 보람이 납니다. 그러나 주님께 구하고, 부탁한 일은 주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세상의 도움과 지혜를 구해야 할 바에는 차라리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낫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얻기 위해 불법과 불의와 타협해야 할 경우라면 자기 지혜를 버리고, 차라리 포기하는게 낫습니다. 이스라엘이 도움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성도들은 세상이나 세상 사람들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홍해 앞에선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집트에 항복하고 돌아가려고 했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조용히 있을지니라, 하니라.](출14:14). 그 일은 주님께서 행하실 일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고 조용히 있는 법,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안식과 평안이 없습니다.

9-11절은 이스라엘의 상태가 너무 잘 나와 있습니다. [이는 반역하는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녀들이요, [주]의 법을 들으려 하지 아니하는 자녀들이니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보지 말라, 하고 대언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들을 대언하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들을 대언하라. 너희는 길에서 벗어나고 행로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우리 앞에서 떠나 없어지게 하라, 하는도다.](9-11). 이는 오늘날 교계의 반응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들은 바른 성경에 대한 논쟁이나 토론을 매우 싫어합니다. 성경에 관한 이슈들은 다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진실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리로 인해 생기는 분쟁보다는 거짓과 무지로 인해 유지되는 평안을 더 원합니다. 본문에는 ‘바른 것들, 부드러운 것들, 거짓된 것들’ 세 가지가 나옵니다. 이 중에서 백성들이 원한 것은 부드러운 것들과 거짓된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성도들이 원하는 설교의 성격입니다. 바른 설교 보다는 부드러운 설교, 거짓된 설교를 더 좋아합니다. 참이냐? 거짓이냐?보다는 부드럽냐? 아니냐? 듣기 좋으냐? 아니냐?가 더 중요합니다(딤후4:3). 교인들도 바르게 살아보세! 보다는 잘 살아 보세!를 더 좋아합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거짓 대언자들, 거짓 교사들이 강단을 점령하게 됩니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명설교자가 되어 버립니다.

18-27절은 회개하고 주님을 믿을 때 얻게 될 복입니다.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범한 백성들에게 벌을 주시고, 고난과 역경의 빵을 먹게 하시지만 그들이 죄를 버리고 주님께 돌아와 신뢰할 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십니다(18). 주님은 지금도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그들이 받을 복은 첫째, 기도에 대해 주님의 응답이 있습니다(19). 성도들에게 기도의 응답보다는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가르칠 교사를 옮기지 않으십니다(20).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 가운데 가장 큰 재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줄 선생을 옮겨 버리는 일입니다. 엘리야의 시절에 3년반 동안 가뭄의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은 엘리야를 아합의 땅에서 숨겨 버리신 일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은 그 땅에 하나님의 사람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에스겔 22:30-31, 예레미야 5:1참조할 것. 멸망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사를 옮기지 않으심으로써 배움을 입게 하십니다. 그들은 교사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른 길을 갑니다(21). 그들은 교사의 가르침을 받고 우상을 던져 버립니다(22). 하나님의 사람은 백성들에게 바른 길을 걷게 하고, 죄를 버리게 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임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땅에 비를 주시고 소출을 풍성하게 하십니다(23). 넷째, 가축들이 풍성하게 됩니다(24). 다섯째, 백성들이 치유함을 받습니다(26). 우리는 이 날이 바로 천년 왕국의 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26b). 흔히 사람들이 물질적인 복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는 은혜의 시대에 해당 사항이 없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께 순종할 때 물질적인 약속, 장수, 건강 등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박해를 받도록 세움을 입었습니다. [아무도 이런 박해로 인해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런 박해를 받도록 세우심을 받은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아느니라.](살전3:3).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다 핍박을 받을 터이나](딤후3:12). 여러분들이 만약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오히려 삶이 어려워 질 수 있습니다. 수입도 줄고, 직장도 위협받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속출할 것입니다.

27-33절은 주의 격노의 날, 즉 심판을 행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31장은 다시 한번 이집트에 도움을 구하러 간 이스라엘에 대해 다시 한번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니라. [주]께서 자신의 손을 내미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고 도움을 받는 자도 쓰러져서 그들이 함께 멸망하리라.](3).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아닙니다. 말들은 아무리 많아도 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사람들과 말들을 통해 전쟁에 승리하려 했지만 망했습니다. 그들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항한 것이 아니며 영적인 전투입니다(엡6:12, 고후10:5 참조). 엘리사가 시리아의 대군을 맞이했을 때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여시사 보게 하옵소서, 하니 [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보라,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7). 이스라엘이 필요한 것은 이집트 사람들과 이집트의 말들이 아니라 불말과 불병거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적인 원리로 살도록 택함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들은 세상 민족들과는 전적으로 달리 먹고 사는 방법이나 전쟁을 하는 방법이 달라야 했습니다. 외적을 방비하는데 이집트 사람들과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삼상7:10-15절 참조). 이것은 오늘날 세상을 사는 교회 역시 동일합니다.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이 사용하시는 말들을 보십시오. 요엘 2:4, [그들의 모양은 말의 모양 같고 그들의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욜2:4)라고 합니다. 요엘서 2:5-10절은 이들이 전쟁에 얼마나 능한 자들이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이 아닌 영적인 존재들임을 분명히 알게 해 줍니다(욜2:8). 이들은 주의 군대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9:11-14절에 보면 주님은 말을 타고 오시는데, 이것들은 모두 영적인 말들입니다.

32장입니다. 1절에는 한 왕이 나오는데 재림하셔서 의로 통치하시는 주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님은 이 땅을 심판하시고, 천년 왕국을 세우시는데 그 왕국에 대한 묘사가 15-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33장은 노략자 앗시리아에 대해 화를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보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환란과 심판의 때에 모두 두려워 주님을 보지 못하지만 주님을 볼 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8에 [마음이 순수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15-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의롭게 걷는 자, 올바르게 말하는 자, 학대하여 얻은 재물을 멸시하는 자, 손을 저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바위로 된 요새가 그를 보호하는 처소가 되며 그는 빵 공급을 받고 물을 확보하리라. 네 눈은 왕을 보되 아름다움 가운데 있는 왕을 볼 것이요, 그들은 매우 멀리 있는 땅을 보겠고 네 마음은 두려움을 묵상하리라. 서기관이 어디있느냐? /돈을/ 받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세던 자가 어디 있느냐?](15-18).

34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게될 파멸에 대한 묘사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 까닭은 이 날이 [주]께서 원수갚으시는 날이요, 시온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보응(報應)하시는 해(年)이기 때문이라.](8). ‘원수 갚으시는 날, 보응하시는 해’라고 말합니다. 1-3절은 소위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요한계시록 19:11-21절에 있는 전쟁입니다. 11절에 있는 짐승들은 레위기 11장에서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된 것들입니다. 이 새들은 마귀들을 예표합니다. 계시록 18장에서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살게 될 곳이 바로 에돔의 불 못입니다. [그가 우렁찬 음성으로 힘차게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저 큰 바빌론이여,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고 온갖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 되었도다.](계18:2).

우리는 여기서 재림의 행로에 대해서 잠깐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 그 길이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에 행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20:17,21:22에 보면 “왕의 대로”(king's highway)가 나옵니다. 이 길은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방인들에게 ‘왕의 대로’라고 불렸는데, 장차 왕의 왕되신 주님께서 가실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주님은 성도들과 함께 먼저 시내 산으로 와서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의 경로를 거쳐 올리브 산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사야 11:16에서는 "큰 길", 이사야 40:3에서는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을 위해 큰길을 곧게 만들라”고 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마음의 길을 만드는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주님의 대로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성도들은 침례인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을 통해, 이 길이 영적이고 마음의 길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교회는 주님의 재림의 여정(행로)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무지했습니다. 신명기 33:2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주]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오시며 바란 산에서부터 빛을 내시고 수만(數萬) 성도와 함께 오셨으니 그분의 오른손에서 그들을 위하여 불 같은 율법이 나왔도다.](신33:2). 모세는 재림의 주님이 시내에 오시고 세일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부터 빛을 내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세 곳의 지명을 언급했습니다. 하박국 3:3로 가면 [하나님께서 데만에서 오시며 거룩하신 이께서 바란 산에서 오셨도다. 셀라. 그분의 영광이 하늘들을 덮으며 그분의 찬양이 땅에 가득하도다.](합3:3). 하박국은 ‘데만에서 오시고 바란 산에서 오셨도다’라고 말합니다. 데만은 에돔의 남쪽 땅입니다. 그렇다면 재림의 여정을 그려나갈 수 있습니다. 아라비아의 데만으로 오셔서(합3:3), 에돔에서 불 못을 만들어 놓으시고(사34:9-10), 여호수아가 가나안 입성할 때 같은 루트로 요단강을 건너셔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입니다(사11:16). [에돔에서 나오는 자가 누구며 물들인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나오는 자가 누구냐? 그 의복이 영화롭고 큰 능력으로 거니는 자가 누구냐? 의롭게 말하는 나니 곧 구원하는 능력이 있는 자니라.](사63:1). ‘에돔에서 나오는 자, 보스라에서 나오는 자’란 말에 주의하십시오. 주님은 분명 그곳에서 나오십니다. 주님은 민족들을 심판하시며 행군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의 여정은 에돔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다가 모압과 암몬인들의 땅에 이르러서는 동쪽으로 돌아 사해 북쪽으로 올라가 요단을 건너는 것입니다(민21,시78). 그리고 주님께서는 2,000년 전에 자신이 침례를 받으신 요단 강을 지나서 길갈을 가로질러 아라비아를 지나 올리브 산에 서실 것입니다. 이때 올리브 산은 두 동강으로 나뉘어 지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설 것이요, 올리브 산이 그 한가운데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므로 심히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그 산의 반은 북쪽으로, 그 산의 반은 남쪽으로 이동하리라.](슥14:4). 그리고 예루살렘 동편 문을 통과해 들어가서 다윗의 보좌를 차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란 이름이 예수란 이름과 동일한 것을 봅니다. 스데반과 히브리서 기자는 여호수아를 써야 할 곳을 예수라고 표기했는데 이는 재림의 행로를 보여 주기 위한 성령의 계시입니다(행7:45, 히4:8).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참된 구원을 가져다 주는 예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다시 이사야 34장을 보십시오. 16절, [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 짐승들 가운데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내 입이 그것을 명령하였고 그분의 영께서 이 짐승들을 모으셨음이라.](16). 주님은 재림의 행로와 영원한 불 못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성도들에게 어떻게 확신을 주시는지 보십시오.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성도들에게 단 한 마디로 끝을 보셨습니다. [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 모든 예언의 말씀, 우리의 이성과 지각을 훨씬 넘는 이런 사실들을 알고, 믿는데 필요한 한 가지는 바로 주의 책을 찾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만이 믿음을 줍니다. 성경을 읽는 자만이 계시와 조명을 얻습니다. 성경을 찾아 읽는 자가 주의 은혜를 얻고, 성령의 능력을 얻습니다. 많은 일을 하면서 정작 성경을 읽는 것을 게을리 하는 성도들은 하는 일과 열정에 비해 너무나 열매없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주의 책입니다. 이는 주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신 주님의 저자이신 책이란 뜻입니다. 책을 보면 저자를 알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저자를 읽습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중요한 계약서를 어떻게 합니까? 나의 재산과 생명이 걸린 계약서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결코 잃어버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적힌 내용을 잊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계약서를 여러 개 복사해두는 것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공증해 두기도 합니다. 결코 그 계약서에 쓰여진 자구나 문구를 임의로 바꾸거나 더하거나 빼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언약이 담긴 책에 대해서는 왜 그리도 무심하고, 함부로 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율법의 책입니다. 이는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 성경을 통해 생명과 죽음의 길을 압니다.

성경은 세대들에 관한 책입니다(창5:1). 이는 우리를 다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주의 전쟁의 책입니다(민21:4). 이는 주께서 전사이시고, 전쟁은 주께 속한 것이며, 구원의 대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칼이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책이 없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를 수 있었지만 성령의 칼이 없을 때 계집 종의 말에도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대언의 책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 버리면 하나님께서 생명 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 버리시리라.](계22:19). 대언은 예언한 말입니다. 주된 의미는 예언입니다. 성경은 미리 기록된 역사입니다.

대언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불빛이 없이 어둠을 통과해야 하는 여행자와 같을 것입니다. 달도 별도 없이 아무 조명도 없는 밤길을 걸어서 70년, 80년의 긴 세월을 여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경없이 사는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경을 찾아 읽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빠짐없이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