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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구약개론, 이사야(10) -Pastor. Peter Yoon

말씀: 이사야 35:1-42:25
요절: 이사야 42:1

34장이 암흑의 장이요, 심판의 장이었다면 35장은 가장 영광스런 장입니다. 35장은 천년 왕국을 다룬 유명한 장입니다. 사막과 같이 버려진 이 땅이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 세워질 천년 왕국의 때에 완전히 옥토로 변합니다(1). 광야와 사막이 장미같이 피어납니다. 마른 땅이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물들의 샘이 됩니다. 8절에는 큰 길(high way)이 나오는데, 이것이 재림의 행로 즉 왕의 대로입니다. 이곳은 본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으나 황폐한 땅이 되었습니다. 천년 왕국 때의 땅은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쟁기질하는 자가 곡식 거두는 자의 뒤를 바싹 따라가고 포도를 밟는 자가 씨뿌리는 자의 뒤를 바싹 따라가며 산들은 단 포도즙을 흘리고 작은 산들은 다 녹으리라.](아모스 9:13). [그 날에는 산들이 새 포도즙을 떨어뜨리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리며 유다의 모든 강에 물이 흐르고 [주]의 집에서 샘이 흘러나와 시팀 골짜기에 물을 대리로다.](요엘3:18).

36장부터 39장은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히스기야 시대의 일입니다. 이곳에는 히스기야라는 이름이 무려 35회나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히스기야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왕하18:13-20:19). 36장은 열왕기하 18장과 내용이 같습니다. 주전 701년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유대를 침공했습니다. 대부분의 도시를 점령하고, 이제 예루살렘이 남았습니다(1). 산헤립은 군대 대장 랍사게를 보내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랍사게의 연설은 적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1. 이집트를 신뢰하지 말라(5). 랍사게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부러진 갈대요, 그를 짚는 자들의 손을 찌르는 지팡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2. 주 네 하나님을 신뢰하지 말라(7).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어찌 [주]의 뜻이 아니고서야 이제 이 땅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올라가서 이 땅을 치고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10). 산헤립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 땅을 치고 멸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하나님을 모독해서는 안됩니다. 앗시리아 왕은 주님의 분노의 막대기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오 내 분노의 막대기 아시리아 사람이여, 그들의 손에 있는 지팡이는 내 격노니라.](10:1).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오히려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이방 왕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역대기하 35:20-21을 보십시오.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모든 일이 있은 뒤 곧 요시야가 /성/전 정돈하기를 마친 뒤에 이집트 왕 느고가 유프라테스 옆의 갈그미스와 싸우러 올라오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대비하였으나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의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이 날 그대를 치려고 온 것이 아니요, 나와 싸우는 집을 치려고 왔노라.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명령하사 빨리 하라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방해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대를 멸할까 하노라, 하나](대하35:20-21). 요시야는 이것을 막았다가 자신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많은 어부를 데려다가 그들을 낚게 할 것이요, 그 뒤에 /사람을/ 보내어 많은 사냥꾼을 데려다가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틈에서 그들을 사냥하게 하리니](렘16:16). 많은 어부들, 많은 사냥꾼들은 당연히 인간 도살자들이요, 전쟁에 미친 자들인데 하나님은 이들을 사용하십니다. 2차 세계 대전때 히틀러, 뭇솔리니 같은 자들이 바로 어부요, 사냥꾼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자들이 그런 일을 할 때 하나님을 모독해서는 안됩니다. 앗시리아는 지금까지 모든 족속들을 차례대로 정복했으며, 그들의 신들이 그들의 민족을 구원하지 못했던 예를 들며, 이스라엘이 주 하나님 역시 구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18-20). 그는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과 이방 신들은 매 한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성경의 하나님을 다른 종교의 신들과 같은 부류의 신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판 때가 되면 그것이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37장입니다. 37장은 열왕기하 19장과 내용이 같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랍사게의 말을 듣고 무엇을 했습니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도성은 포위되었습니다. 이 때 그가 한 일은 오늘날 위기에 처한 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위기를 이기는가?를 보여 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고도 남습니다. 첫째, 그는 자기 옷을 찢고, 스스로 굵은 베를 입고 주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1). 히스기야는 먼저 주님 앞에 마음을 낮추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고난과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타개하도록 주님이 정하신 방법입니다. 둘째, 제사장들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옷을 입혀 하나님의 사람 대언자 이사야에게 보내었습니다(2). 이사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4b). 이 역시 매우 지혜로운 처사입니다. 히스기야는 스스로 전쟁을 이길 힘과 지혜는 없었지만 전쟁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을 찾을 줄 아는 지혜와 힘은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6-7절입니다. [이에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시리아 왕의 신하들이 나를 모독하는 말들을 들었으나 너는 그 말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그에게 돌풍을 보내리니 그가 풍문(風聞)을 듣고 자기 땅으로 돌아갈 것이요, 내가 그를 그의 땅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6-7). 주님은 이 전쟁을 주관해 주실 것입니다. 산헤립은 계속해서 항복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10-13절은 산헤립이 주 하나님을 자신보다 아래에 두는 신성 모독을 범하는 장면입니다. 히스기야는 즉시 주님을 모독하는 그 편지를 들고 주님 앞에 펼쳤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도록 기도했습니다(14-20). 히스기야의 기도는 바른 기도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의뢰하며, 우상들과 전적으로 다르신 살아 계신 하나님, 유일하신 주 하나님임을 온 왕국이 알게 해 달라는 그의 기도는 즉시 응답되었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이는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오며 피하는 자들이 시온 산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주]의 열심(熱心)이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32). 주님은 친히 자신이 하신 말씀을 열심히 행하실 것입니다. [이는 내가 나와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도시를 보호하고 구원할 것임이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35). 히스기야는 기도했고, 주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대부분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밤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밤에 아시리아 군대는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그 밤에 [주]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사람들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치매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보라, 그들이 다 죽어 송장이 되었더라.](36). 이 사건은 역사적 교훈 뿐만 아니라 예언적인 모형이기도 합니다. 앗시리아 사람은 적그리스도로 예표되는데, 이와 같이 어느날 갑자기 멸망당할 것입니다. 참조할 것-이사야17:14, 30:31, 31:8. 37-38절은 주님의 말씀대로 산헤립이 자기 땅 니느웨에서 암살당해 죽는 모습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다 성취됩니다.

38장입니다. 히스기야는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의 죽음을 알려 주셨습니다(1).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죽음에서 건져달라고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2-3). 주님은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보라, 내가 네 날들에 십오 년을 더하여 주며](5). 주님은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간 연장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히스기야처럼 기도 응답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이는 내가 /이/ 둘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니 내가 원하는 바는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빌1:23)라고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5:8). 히스기야는 단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구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죽고 나면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히스기야의 마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을 지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6). 후에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12세에 왕이 됩니다(왕하21:1). 그는 여생의 인생을 살면서 아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기도한 내용을 보십시오. 10-20절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 나를 회복하사 살게 하옵소서(16). 응답되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하실 일입니다. 둘째, 주를 찬양하며 주의 진리를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알게 하리이다(19). 이것은 주님이 살려 주시면 자신이 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므낫세는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아들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39장입니다. 바빌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의 쾌유를 듣고 편지와 예물을 보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시험하시기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역대기하 32:31에 이르기를, [그러나 바빌론의 통치자들이 사신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어 그 땅에서 생긴 이적(異蹟)에 관하여 묻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시고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친히 그를 시험하셨더라.](대하32:31). 왕이 죽을 병에서 나은 것과 그 표적으로 태양이 해시계에서 십도(40분) 뒤로 물러난 것으로 중동 근방에서는 일대 사건이었고, 그것이 히스기야의 병이 완쾌된 표적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온 세상에 전파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바빌론에서 자기의 병문안 온 사실에 대해서만 기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보여 주고자 자기의 보물 창고와 병기고와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결코 누구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거니와 히스기야가 자신의 손으로 이루었다고 내세워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것처럼 자랑했을 때 하나님은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6-7). 8절은 회개한 히스기야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가 자기 마음의 교만에 대하여 자기를 낮추고 또 예루살렘 거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주]의 진노가 히스기야 시대에는 그들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대하32:26).

40-66장은 위로의 책이라 불립니다. 이는 40:1에서부터 바로 ‘위로하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49:13, ..주께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51:3, [주]가 시온을 위로하되...5:12, 나 곧 내가 너희를 위로하는 자이거늘... 사52:9, 57:18, 61:2, 66:11, 66:13절 참조할 것. 1-39장까지가 구약과 일치하는 내용이라면 40-66장은 신약 성경 27권과 그 내용이 일치합니다. 40:3-4은 마태복음3:1-3의 침례인 요한 사역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도 강력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위로자이십니다. 성령 역시 위로자이십니다. 이사야의 후반부를 읽을 때 보이는 뚜렷한 구절은 “두려워하지 말라”란 말씀입니다(41:10, 13,14, 43:1,5, 44:2, 54:4). 당시 유대인들은 거대한 제국들로 인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유다는 바빌론의 종살이를 했습니다. 연이어 메대와 페르시아 제국이 역사에 등장했습니다. 그리이스 제국이 등장합니다. 다음에는 로마 제국이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은 이전과 같은 왕정의 모습을 갖추지도 못합니다. 이런 상태에 있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나라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은 포로가 되고, 핍박을 받지만 이들은 강대한 국가로 부유합니다. 주님은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참되심, 위대하심을 가르쳐 주시며, 우상들의 허망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신은 없습니다(40:18,25; 43:10-11, 44:6,8; 45:5-6,14). 또 한 가지 놀라운 기록은 고레스에 관한 기사입니다. 44:28-45:4에 주님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을 귀환하게 할 고레스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고레스가 태어나기 175년 전에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미리 기록하시는 분이십니다. 요시야 왕 역시 그가 태어나기 몇 백년 전에 이름이 불리워졌습니다(왕상13:2, 왕하23:15-18). 주님은 이런 역사를 미리 기록하시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성취하심으로써 먼 미래에 있을 메시야 구속 사건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확실하게 심어 주셨던 것입니다. 바빌론에서의 자유는 출애굽의 해방보다 더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궁극적인 해방과 자유를 조명해 주는 예표들입니다. 이사야 42:1-9절은 마태복음 12:18-20절과 비교해서 읽을 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환하게 볼 수 있습니다.

40장을 보십시오.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1)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불법은 용서받았습니다. 충분히 징계를 받았습니다(1-2). 참된 위로자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알리는 전령이 광야에서 외치며, 길을 예비합니다(3-8). 9-11절은 구원자의 모습입니다. 첫째,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9b). 이는 육신을 입고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육신 하신 주님을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둘째, 통치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다스리는 분이십니다(10). 주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셋째, 주님은 보상자이십니다(10). 주님은 각인의 행위와 수고에 따라 보상해 주시며, 우리의 믿음을 보상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넷째, 주님은 목자이십니다(11).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시며, 더 많은 생명을 주십니다. 12-26절은 위로자의 성품입니다. 12절은 위로자의 무한한 능력, 13-14절은 위로자의 무한한 지혜, 15-17절은 위로자의 비교할 수 없는 높음, 18-26절은 위로자는 영과 진리로 경배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어떤 우상과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18,25참조). 28-31은 어떻게 위로자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있는가? 가르쳐 줍니다. 첫째, 우리는 주님의 어떠하심을 기억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영존하시며, 땅 끝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기진하지 아니하시고, 피곤하지 아니하시며, 명철은 끝이 없는 분이시란 사실을 알고 듣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28). 둘째, 주님이 힘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 주님을 우러러 바라는 자들은 힘을 얻습니다(29-31).

41장입니다. 2절은 한국의 이단 교주들이 자신들의 신원 증명을 위해 자주 써 먹는 구절입니다. [누가 동쪽에서부터 의로운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으며 그 앞에 민족들을 주어 그로 하여금 왕들을 다스리게 하였느냐? 그분께서 왕들을 그의 칼에 먼지같이, 그의 활에 쫓겨가는 지푸라기같이 넘겨주시매](2). 흔히 동방의 의인이라고 알려진 이 구절은 개역 성경의 완전한 오역이 빚어낸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1) 주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바빌론을 차지하게 하시고 바빌론 포로 생활을 종결하게 하시겠다는 기사를 동방의 이단 종교 교주들이 자신들의 신원 조회를 할 때 쓰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25절에서는 ‘북쪽에서부터 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고 합니다. 이 역시 고레스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미리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전지 전능하신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20). 21-23절을 보십시오. 누가 예언의 능력이 있어 그것을 말하고,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주님은 신들이라 인정해 줄 것이며,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함께 놀라겠다고 말씀하십니다(21-23). 예언은 하나님의 고유한 능력입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계신 분이시며, 나중에도 계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4,26-27). 8-10절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씀으로 위로와 힘을 얻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영적 교훈과 적용으로, 육체적으로 유대인들은 바빌론 포로 후에 본토로 돌아온다는 역사적 적용으로, 후에 대환란 때는 회복될 것에 대한 소망의 말씀으로 받을 수있습니다. 27절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42장입니다. 1-9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2:18-20절을 참조하십시오. 주님은 이방인들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십니다(2-4). 13절은 재림 때의 주님의 모습입니다. 초림과 재림 사이에 교회가 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신 주님께서 외치시고, 크게 부르짖습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던 주님께서 자신의 원수들을 치십니다. 이는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아닙니다. 동일하신 주님께서 세대에 따라 나타난 모습입니다. [[주]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질투하사 분발하여 외치시고 참으로 크게 부르짖으시며 자신의 원수들을 쳐서 이기시리로다.](13). 우리는 초림과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의 두 모습의 선명한 대조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지내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이제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크게 외치며 단번에 파괴하고 삼키리라.](14). 벌써 2000년 이상 주님은 조용히 지내며, 잠잠하고 참았습니다. 이제 곧 다시 오실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21절은 주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계획을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구원 계획에 관심을 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22-23). 덕분에 그들은 다시 주님의 분노와 심판을 받았습니다(24-25). 이스라엘은 아직도 여전히 주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무지한 채 자신들의 의만을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께서 맹렬한 분노와 강력한 전쟁을 이스라엘 위에 쏟아 부으시매 그것이 그의 사방에서 불을 붙였으나 그가 여전히 알지 못하였으며 불이 그를 태웠으나 그가 이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도다.](25).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이 범죄한 원인은 그들의 마음의 문제였습니다(24b). 주님의 값없는 구원의 귀한 선물은 배척되고, 무서운 심판만이 남았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대환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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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한글 개역, 이사야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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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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