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이사야 49:1- 51:23
요절: 이사야 51:4
49장부터는 주로 이스라엘에 대한 내용으로 야곱과 예수 그리스도가 주로 등장합니다. 주로 이중적용이 되도록 하셨는데, ‘나’로 언급된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49장부터 53장까지는 특히 이스라엘을 부르시며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후로는 바빌론이나 이집트나 앗시리아와 같은 이방나라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1-3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을 모태에서부터 부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창세기 25:22에서 리브가의 모태에 두 민족이 있고,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는 예언의 말씀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정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이 캘빈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원 예정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예정되었습니다. 삼손의 경우와 예레미야 역시 예정된 사람이었습니다(렘1:5참조). 침례인 요한, 예수 그리스도 역시 예정된 사람이었습니다(눅2:21, 시2:7). 바울 사도 모태로부터 구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갈1:15참조). 하나님의 예정은 미리 아심에 근거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유효한 예정입니다. 미리 아심이 없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 안이 아니라면 누구도 예정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은 로마서 8:29에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음이니 이것은 그분으로 하여금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나신 분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 여기서 우리는 미리 아심에 따른 예정을 볼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 선택이 아니라 미리 아심에 따른 예정입니다.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셨으니](엡1:4,5).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무조건적 선택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있습니다. 다음에 예정은 구원받은 자들이 얻게 될 상속의 예정입니다. [또한 그분 안에서 모든 일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상속을 얻었으니](엡1:11). 이것은 구원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예정입니다. 성경의 예정을 요약하면 ‘미리 아심과 그리스도 안에’란 근거 위에 마련된 하나님의 은혜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②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셨다(벧전1:20). ③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④ 하나님은 사역자들을 택하신다(삼손, 고레스, 요시야, 예레미야, 요한, 예수, 바울...).
2절에 예리한 칼, 갈아 윤나는 화살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을 묘사합니다. 히브리서 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격성과 권능이 가장 잘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권능이 있어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骨髓)를 찔러 나누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니](히4:12). 요한계시록 1:16,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容貌)는 해가 세차게 빛나는 것 같더라.](계1:16). 주님의 말씀이 칼이란 사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6:17)이나 입의 막대기(사11:4), 호세아 6:5에는 입의 말들로 그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대언자들로 그들을 넘어뜨리고 내 입의 말들로 그들을 죽였노니 나의 심판은 빛같이 나아가느니라.](호6:5).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기도 하고(요6:63), 죽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일들은 첫째, 이스라엘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3). 둘째,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십니다(5). 셋째,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빛이 됩니다(6). 넷째, 이스라엘은 유산들을 상속받게 됩니다(8). 9-26절은 이 일들을 어떻게 이루시는가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기술을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일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6).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우리는 모두 우리의 본향인 저 하늘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이 아닌 저 하늘에 하나님이 마련해 준 집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빛의 자녀들입니다.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엡5:8).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의 상속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긴대로 유업의 상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셨고, 상속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상속의 보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이는 너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이니라.](골3:24).
50장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버린 네 어머니의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권자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 불법들로 인하여 너희 자신을 팔았고 너희 어머니는 너희 범죄들로 인하여 버림을 받았느니라.](1).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결혼한 사이였습니다. 이는 마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서 정혼한 관계와 같습니다(고후11:2). 하지만 이스라엘은 계속되는 음행과 창녀 짓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내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 버리셨지만 그녀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다리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이 이 모든 이유로 인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녀를 버리고 그녀에게 이혼증서를 주었으되 이스라엘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도 가서 창녀 짓 하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렘3:8). 본래 율법에 따르면 음행으로 인해 이혼 당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면 원래 남편에게로 돌아 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떠난 여자는 다시 결혼하지 말고 혼자 있거나 다시 남편과 화해해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별거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떠나게 되거든 결혼하지 말고 그대로 지내든지 아니면 자기 남편과 화해하라. 또한 남편도 자기 아내를 버리지 말지니라.](고전7:11). 이는 일시적인 별거와 분리가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은 실물 설교를 통해 직접 보여 주기도 하셨습니다. 이혼을 당하고, 팔린 책임(삿2:14, 3:8, 4:2)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이혼은 일시적인 별거상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렘3:14). 그래서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다시 화해하고,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내가 왔을 때에 아무도 없었느냐?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느냐? 어찌 내 손이 짧아져서 구속(救贖)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건져 낼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강들이 광야가 되어 강들의 물고기가 악취를 내나니 이는 물이 없으므로 그것이 목말라 죽기 때문이니라.](2). 주님은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전에 모세를 찾으셨듯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았지만 그 땅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불렀지만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고,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친히 한 사람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4-9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수난을 상세히 다룬 위대한 구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학식 있는 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하여금 피곤한 자에게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일깨우시되 나의 귀를 일깨우사 학식 있는 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는도다.](4). 예수님은 학식있는 자의 혀를 가지셨으므로 당시의 어떤 대적자들이 묻는 말에도 당황하거나 주저함이 없이 언제나 정확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마귀의 질문이나 사두개인들의 질문이나 바리새인들의 질문이나 제자들의 질문이나 누구의 질문에도 ‘즉문즉답’이셨습니다. 예) 아내를 버리는 것이 율법에 맞나이까?(바리새인들-마19:3). 어느 율법이 가장 크나이까?(율법사-마22:35), 부활 때 일곱 형제의 남편 된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눅20:33). 세금을 내야하는가?(막12:35).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요8:5). ...하나같이 난제(難題)들을 골라서 물었지만 주님은 어느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동일한 은혜를 주셔서 묻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게 하실 뿐만 아니라 피곤한 자들에게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알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사람은 자기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누리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잠15:23). 영적 지혜가 아닌 세상 지혜로 학식을 얻는 자들은 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알아듣는 다는 말이 단지 이해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믿고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5절부터 주님이 당한 수난과 모욕의 장면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부터 매달리신 순간까지를 상세하게 기술해 줍니다.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내어 주고 머리털을 뽑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어 주며 수치와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도다. 이는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터인즉 내가 당황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그러므로 내가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정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6-7).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대신한 것이었습니다(시129:3, 사52:14절 참조).
51장입니다. 51은 6개의 문단 구분 표시가 있습니다. 앞의 세 구분 표시(1,4,7)에는 “내게 들으라”(Hearken unto me)란 말로 시작합니다.1) 그리고 두 부분(9,17)은 “깨소서, 깨소서”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21)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hear)고 말합니다. 경청한다(hearken)는 것은 주의해서 듣는 것입니다. 깬다는 것은 잠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일에 앞서는 일입니다. 우리 역시 이 명령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롬10:17).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갈3:2,5).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듣는지 주의해야 합니다(막4:24, 눅8:18).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기도 중에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으라.](골4:2),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살전5:6).
1절을 보십시오. [의를 따르며 [주]를 찾아 구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저 반석을 보라. 너희가 거기에서 쪼개져 나왔느니라. 저 구덩이의 구멍을 보라. 너희가 거기에서 파헤쳐져 나왔느니라.](1).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시청각 교육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반석을 보면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고전10:4). 구덩이의 구멍을 보면 거기에서 빠져 나오게 하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덩이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민족을 이루었고, 국가가 되었는지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매우 적은 수였습니다. [그때에 너희 수가 적어 몇 사람 되지 아니하며 그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대상16:19).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땅의 흙을 보면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해나 달이나 별이나 나무나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무엇이나 묵상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훌륭한 소재가 됩니다. 3절은 이들이 천년 왕국에서 이루어질 일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한 법이 내게서 나갈 것임이라.](4). 하나님은 우리에게 법을 주신 분이십니다. 이미 주님은 이전에 한 법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33:2, [그가 이르되, [주]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오시며 바란 산에서부터 빛을 내시고 수만(數萬) 성도와 함께 오셨으니 그분의 오른손에서 그들을 위하여 불 같은 율법이 나왔도다.](신33:2). 이 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롬3:20),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갈3:22-24). 이것이 율법의 2대 기능입니다.
주님은 입법자이십니다. 마귀는 불법자입니다. 무법, 불법, 탈법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삶가운데서 법을 지키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은 이외로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준법 정신이 매우 약합니다. 오랫동안 법보다는 관습이나 관례에 익숙한 문화에 기인한 탓도 크지만 입법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가 건축법을 어기면서 교회 건물의 구조 변경을 시도하다가 적발되었는데, 공무원에게 뇌물을 써서 무마한 이야기나, 어떤 목사님이 불법적인 일에 로비 활동을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크리스천들로서 세상 사람들과 단연 달라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시민으로서의 준법 정신입니다. 창세기 49:10, [홀(笏)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실로가 오실 때까지 법을 주는 자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니 그에게 백성이 모이리로다.](창49:10). 여기서 법을 주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60: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가 내 것이며 또한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힘이요, 유다는 나의 법을 주는 자로다.], [이는 [주]가 우리의 심판자시요, [주]가 우리에게 법을 주시는 이시요, [주]가 우리의 왕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사33:22). 야고보 사도는 주님이 입법자이시며, 주님이 법을 집행하시는 분이시며, 주님께서 그 법으로 재판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율법을 주시는 이가 하나이시니 그분께서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네가 누구이기에 남을 판단하느냐?](약4:12).
현재 우리에게 주신 법이 무엇입니까?
· 주님께서 제정하셨다는 의미에서 이 법은 그리스도의 법이라 불립니다. 이 법의 핵심은 서로 돕고, 남을 돌아보는 사랑과 봉사가 핵심입니다. [너희는 서로 남의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 이 법은 행위로 말미암는 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끝낸다는 점에서 믿음의 법이라 불립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3:27).
· 이 법은 참된 자유를 준다는 점에서 자유의 법이라 불립니다. 자유의 법에서 핵심은 말과 행동입니다. [너희는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2:12). 우리의 말과 행동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권면하기를, [오직 너희의 이 자유가 약한 자들에게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했고, [형제들아, 너희가 부르심을 받아 자유하게 되었으니 오직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갈5:13).
· 이 법은 지켜야 할 대상에 따라 왕가의 법이라고 불립니다. 특별법은 모든 사람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대상을 상대로 제정한 법입니다. 군법은 군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며, 공정 거래법은 주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왕가의 자손들에게 준 법입니다. 우리는 모두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왕가의 법의 핵심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너희가 성경에 따라,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왕가의 법을 성취하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2:8).
· 이 법은 의문에 속한 율법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가운데 새 생명과 성령으로 임한 것이란 점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 불립니다. 이 법으로 인해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 이 법은 의를 준다는 점에서 의의 법이라 불립니다. 법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의 법에 이르렀습니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롬9:31).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법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한 권의 법전으로서 성경을 볼 수 있는 영적이고 복음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세상 법은 하나님의 법이 아니다라는 그릇된 생각으로 인해 사소한 교통 법규나 일상 생활 법규 등을 함부로 어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법을 지킬 수 없는 것은 육신의 연약함, 내 안에 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육신은 법을 지키는 것보다 어기는 것을 즐깁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육신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육신적인 생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롬8:2). 누구든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할 이유입니다.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 때문입니다. [내 지체 안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보기 때문이라.](롬7:23).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심으로써 법에 대해서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들 이후에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생각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한 백성이 될 것이라. {주}가 말하노라.](히8:10).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 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하신 뒤에](히10:16). 저와 여러분과 같은 신약 성도들 안에 주님은 우리의 마음 판에 이 법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3:3).
7절을 보십시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사람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험담을 무서워하지 말라.](7). 주님은 다시 한번 ‘마음에 내 법이 있는 백성들아’라고 부르십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두면 결코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결코 미끄러지지 아니하리로다.](시37:31). 잠언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날 자녀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들들이 법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 번에 걸쳐 이렇게 말합니다.
· 내 법을 잊지 말고 마음으로 지켜라. [내 아들아, 내 법을 잊지 말고 네 마음으로 하여금 내 명령들을 지키게 할지어다.](잠3:1).
· 내 법을 버리지 말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선한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니 너희는 내 법을 버리지 말라.](잠4:2).
·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내 명령들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7:2). 주님께서 이렇게 같은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한 이유는 삼겹줄은 쉬 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중요한 말씀들에 대해서 세 번 이상씩 같은 교훈을 점층법으로, 연쇄법으로, 반복하심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그 교훈을 깊이 새기게 하셨습니다. [누가 그를 쳐서 이기면 두 사람이 그와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주님께서 너희는 1,4,7절에 반복해서 세 번이 “너희는 이 말을 들으라” 하셨고, 21절에 다시 한번 이 말씀을 확증하심으로 총 4번 말씀하셨습니다. “깨어라, 깨어라”란 말은 같은 절에 두 번씩 말씀하심으로 4번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완전히 익히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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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는 7절에 ‘Hearken to me'란 말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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