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이사야 54:1- 57:21
요절: 이사야 55:3
54장은 회복된 이스라엘의 복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이스라엘이 회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수가 많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했던 대로 이스라엘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그 수가 많아질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 유대인은 천만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년 왕국 때 이스라엘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입니다(1). 1절은 바울 사도가 영적으로 적용했는데, 그리스도인들 역시 영적인 이스라엘이며, 아브라함의 씨란 점에서 이미 그 수가 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록된바, 수태하지 못하는 자여, 너는 기뻐할지어다. 산고를 치르지 못하는 자여, 너는 소리 지르고 외칠지어다. 이는 황폐한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자의 자녀보다 많기 때문이니라, 하였음이니](갈 4:27).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이스라엘이란 말이 문자적으로, 육신적으로 사용된 예와 영적으로 적용되는 예를 모두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이며,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씨요, 후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복을 다 승계하는 것은 아니며, 이스라엘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둘째, 영토가 넓어집니다(2-3). 하나님께서 처음 약속하신 땅은 창세기 17:8의 가나안 땅 전부였습니다. [내가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씨에게 네가 나그네로 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의 모든 땅을 주어 영존하는 소유가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8). 하지만 이들은 이땅을 다 차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천년 왕국 때에 이들은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급격한 영토 팽창을 이룰 것임을 2-3절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셋째,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4-6). 이스라엘은 많은 민족의 박해와 포로된 생활로 인해 수치를 당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들은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들이 다시는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당황하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주] 안에서 영존하는 구원으로 구원을 받으리니 너희는 세세 무궁토록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당황하지 아니하리로다.](사45:17). 넷째, 이스라엘은 위로를 받습니다(11). ①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긍휼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1:3). ② 성경은 위로의 책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곧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롬15:4). ③ 성령은 위로자이십니다(요14:6,26,15:26,16:7 참조).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④ 성도는 서로 위로하는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위로하고 서로 세워 주기를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것같이 하라](살전5:11). 다섯째, 이스라엘은 큰 평강이 있습니다(13). 여섯째, 이스라엘은 의안에 굳게 섭니다(14). 이스라엘의 의는 율법을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17c). 일곱째, 아무도 이스라엘을 치지 못합니다(15-17).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로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이스라엘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계20:9). 이 일곱 가지 복은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55장은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참으로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치르지 말고 와서 포도즙과 젖을 사라](1). 주님은 모든 자들(everyone)을 초청하셨습니다. 조건은 필요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목마른 자들--목이 마른 갈증이 없는 사람들은 나아 오지 않을 것입니다. 목마른 자들은 물이 필요하고, 포도즙이 필요하고, 젖이 필요합니다. 물은 말씀의 물 또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포도즙 역시 성령을 가리킵니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벧전2:2). 물은 생존에 필수 요건입니다. 물이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는 물을 마시지 않고는 영원히 목마른 존재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목마른 한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길러 왔습니다. 그 여인에게 주님은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리라.](요4:14).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금), 권력, 학문, 명예에 갈증을 느낍니다. 아무리 먹어도 속이 시원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실 때까지 이 갈증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포도즙은 기쁨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가 되시고, 나의 주인이 되실 때 참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우유는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음료입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음료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유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오라. 와서 사 먹으라”고 합니다.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치르지 않고 포도즙과 젖을 살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행20:28).
2-3절은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혼이 사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빵이 아닌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고, 배부르지 못할 것들을 위해 수고합니다. 이는 오늘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씀입니다. 이는 육체 노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손수 열심히 일을 해서 가족을 돌보고, 필요한 자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자들보다 악한 자라고 말씀합니다(딤전5:8).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령하기를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 하였으니](살후3:10).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되거나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혼이 기름진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혼이 살게 됩니다(2-3).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지 말고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인(印)치셨음이니라.](요6:27). 하나님은 “다윗의 확실한 긍휼”(3, 행13:34)로 영존하는 언약을 맺으실 것입니다. 이 언약은 율법을 초월한 무조건적 긍휼입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동시에 지었는데 이 두 가지는 모세의 율법대로라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이 둘은 속죄 제물이 없습니다(레20:10).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셨는데, 이 언약을 ‘다윗의 확실한 긍휼’이라고 말합니다. 4절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동시에 적용됩니다. 천년 왕국 때 주님의 보좌를 다윗의 보좌로 부르는데, 이는 왕으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최초의 인물이며, 통치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렘30:9, 겔37:24,25). 5절은 이방인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구원을 다룹니다.
6-7절입니다. [너희는 만날 만한 때에 [주]를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는 그분께서 넘치도록 용서하실 것임이라.](6-7). 하나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찾으라. 부르라. 돌아 오라. 주님은 사악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오도록 초청하십니다. 사악한 자의 생각은 주께 가증한 것이며, 사악한 자의 길 역시 주께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자의 생각들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순수한 자의 말들은 즐거운 것이니라.](잠15:26). [사악한 자의 길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분께서 사랑하시느니라.](잠15:9). 자기 생각, 자기 길...우리는 자기란 말 뒤에 무엇이 오든지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의, 자기 자랑, 자기 영광, 자기 확신, 자기 사랑, 자기 판단, 자기 소유, 자기 구역, 자기 이익, 자기 길, 자기 집, 자기 배...등 모두 자기란 말 뒤에 있지만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8-11절은 우리가 암송해 두어야 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과 자기 확신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기 때문이니라. [주]가 말하노라. 이는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기 때문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기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움이 돋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씨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고 먹는 자에게 빵을 주는 것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이루며 내가 그 말을 보내어 /이루게 하려는/ 일에서 형통할 것임이라.](8-11).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기 길을 버리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요, 신앙의 기본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하늘과 땅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자기 길을 고수하다 망한 뒤에야 주님을 찾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합니까? 자기 생각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영 안에서 새롭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각은 완전히 헛것입니다. [주께서는 사람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시94:11).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시139:2)라고 합니다. 로마서 8:5-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거니와 /성/령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 까닭은 육신적인 생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롬8:5-7). 우리는 여기서 육신적인 행동 이전에 육신적인 생각 그 자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봅니다. 성경은 ‘헛된 생각, 다른 생각, 생각의 욕망, 육신적인 생각, 더러운 생각’등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건전한 생각의 영”을 받아,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엡4:23), 영적으로 생각하며(롬8:6), 우리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빌4:7).
56장입니다. 56장은 이방인들에게 임한 복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곧 그들을 내가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니 곧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드리는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내가/ 받을 것이라. 이는 내 집이 모든 백성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7). 이 말씀은 주님께서 친히 인용하신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이 되게 하셨으며,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에게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모든 민족들에게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가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하시매](막11:17). 8절 말씀은 이방인들을 양우리로 모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인데, 이는 주님께서 [또 이 우리에 속하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그들도 내가 반드시 데려와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들을 것이요, 이로써 한 우리와 한 목자만 있으리라.](요10:16)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56:9-57:21절까지는 이스라엘 내에 있는 사악한 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파수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마치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을 보는 듯합니다. 10-12,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눈먼 자들이요, 다 무지한 자들이며 다 말 못하는 개들이므로 짖지 못하는 자들이며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참으로 그들은 탐욕이 심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개들이요, 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이라. 그들이 다 자기 길만 바라보고 저마다 자기 구역에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니 우리가 독주로 우리 몸을 가득 채우자. 내일도 이 날같이 더욱 풍성하리라, 하느니라.](10-12). 주님은 이들을 개에 비유하셨는데, 성경은 개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입니다. 우리는 개가 용맹스럽고, 냄새를 잘 맡고, 귀가 밝아 경비, 수색, 사냥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그 충직성으로 인해 매우 호감가는 동물에 속하지만 성경은 개에 대해 매우 멸시하고 있습니다. 개는 수치를 나타낼 때(삼상17:43) 쓰는 속담으로 “내가 개이기에...”란 말이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욕에는 거의 다 이 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도 개는 돼지와 더불어 불결한 짐승을 나타내었고, 자기의 토한 것을 돌아가서 배설물을 먹는(잠26:11, 벧후2:22) 짐승이요, 사람들의 피를 핥고(왕상21:19, 22:38, 시68:23) 시체를 먹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개에게 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을 정도로 개는 비천한 짐승입니다. 개로 번돈은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율법(신23:18)이 있을 정도라면 알아볼 정도입니다. 성경은 때로 사람을 개에 비유했는데, 거듭나지 않는 남자들, 이방인들(마15:21-28, 막7:24-30)을 개라고 했으며, 특히 로마의 병사들을 개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시22:126). 두 번째로 개라고 치부되는 부류는 바울 사도가 언급한 할례파 유대인들입니다(빌3:2). 이들은 구원받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세 번째 개로 일컫는 부류는 거짓 대언자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거룩한 것을 주지 말라고(마7:6) 경고하셨는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악한 종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15절에서 이들의 본질은 같은 개과에 속한 이리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7:15). 이 개들은 계시록 22:15에도 나오는데, [이는 개들과 마법사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누구든지 바깥에 있기 때문이라.](계22:15)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을 말 못하는 개, 짖지 못하는 개들, 탐욕이 심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개들(10-11)이란 혹평을 받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치욕적으로 여기고, 모독으로 여기는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자들에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을 때 얻게 될 수치가 무엇인지 경고해 주신 것입니다. 양들을 돌보는 대신 자기 구역에서 자기 길만 바라보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은 다 개와 같습니다.
57장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에 대한 기록입니다. 3-10절은 이들의 다양한 우상 숭배와 가증한 일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10-11). 그들이 한 행위는 그들에게 아무 유익도 끼치지 못했습니다(12). 그러나 주를 신뢰한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땅을 소유하게 하고, 거룩한 산을 상속받게 하십니다(13). 주님은 통회하고 겸손한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영을 소생시켜 주십니다(15-16). 14절을 보십시오. [또 말하기를, 너희는 /흙을/ 돋우고 돋우어 길을 예비하며 내 백성의 길에서 걸림돌을 치우라, 하리라.](14).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에 있는 걸림돌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상 숭배이고(겔17:19, 14:3, 습1:2,3),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고전1:23, 사8:14),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벧전2:6).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노라. [주]가 말하노니, 평강이 있을지어다. 멀리 있는 자와 가까이 있는 자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쳐 주리라, 하시기 때문이니라.](19). 주님은 우리에게 입술의 열매를 창조해 주시는데, 감사와 찬양의 희생물을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너희는 말씀들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키며 주께 아뢰기를, 모든 불법을 제거하시고 은혜를 베푸사 우리를 받아 주소서. 우리도 우리 입술의 송아지로 희생물을 드리리이다.](호14:2).
성경에서 입, 입술은 너무나 중요한 주제이므로 이 시간 간략하게 입술에 관련된 구절들을 정리하겠습니다. 욥은 [내가 그분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들을 더 귀히 여겼도다](욥23:12). 주님의 말씀을 입술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 역시 [사람들의 행위로 말하건대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으로 나를 지켜서 파멸시키는 자의 길들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시17:4). 우리의 기도를 입술의 요구라고 합니다. [주께서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시21:2). 우리의 입술이 기도와 간구, 찬송과 찬미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 우리는 그 입은 생산성이 극대화됩니다. [사람의 배는 자기 입의 열매로 만족될 것이요, 그는 자기 입술의 소산(所産)으로 충족되리라.](잠18:20). 우리 입술은 은혜로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됩니다. 누구와 가장 많은 말을 하는가?를 보십시오. 하나님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과 가장 친한 벗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순수함을 사랑하는 자는 그 입술의 은혜로 인하여 왕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잠22:11). 그래서 우리는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 [주]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이 시간은 우리 입술의 열매와 관련된 좋은 것들만 살펴 보았지만 이렇게 사용하지 않는 입술은 입술의 범죄, 입술의 해악, 입술의 올무로 인해 죽게 됩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사악한 자들은 요동하는 바다 같아서 안식하지 못하며 그들의 물은 진흙과 더러운 것을 내느니라.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악한 자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시느니라.](20-21). 사악한 자들은 당연히 이와 같지만 문제는 성도들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을 때,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계획과 자기 꾀를 추구할 때도 사악한 자와 마찬가지로 요동하는 바다처럼 안식하지 못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라. 이는 흔들리는 자가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기 때문이니](약1:6). 신자라해도 믿음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은 악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셨는데 이 둘은 항상 붙어 다닙니다. 롬1:7, 고전1:3, 고후1:2, 갈1:3, 엡1:2, 빌1:2, 골1:2, 살전1:1, 살전1:1, 살후1:2, 몬1:3, 벧전1:2, 벧후1:2, 계1:5. 성경은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끝맺습니다. 은혜를 입으면 평강은 절로 주어집니다. 사악한 자는 결코 평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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