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예레미야 1:1-52:34
요절: 예레미야 31:33,34
예레미야는 총 52장, 1364절로
되어 있으며 흔히 눈물의 대언자로 알려진 예레미야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저자에 대해서는 너무나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는 서기관 바룩에게 불러 주었고 기록은 바룩이
대신 했습니다(렘36:1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주]의
모든 말씀을 그의 입에서 받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렘36:4).
바룩은 필사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1:1, 4절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말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역시 예레미야가 저자임을 분명히 증언합니다(25:11-12,
29:10, 단9:2). 신약 성경 마태복음에도 예레미야가 저자임을
증명합니다(마2:17-18, 27:9-10). 예레미야는 대부분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왕 시대에 대언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원본이 두 번이나 소실되는 사건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의 ORIGINAL 원본에 영감이
주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본에 동일한 영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36:18-첫번째 원본, 바룩이 적음.
그러나 이것은 불에 태워지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36:32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 원본입니다. 첫 번째 소실된 원본에다 다시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주신 이 자필
원본도 다 읽은 다음 유프라테스 강에 던져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는 이 책 읽기를 마친 뒤에 책에
돌을 묶어 유프라테스 한가운데로 던지며](렘51:63).
그렇다면 우리에게 현재 남아 있는 예레미야서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사본입니다. 사본이 원본이 된
것입니다. 성경 보존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왕국의
대언자로서 이사야보다는 약 한 세대 뒤의 인물입니다.
이사야는 앗시리아가 세계 패권을 잡았을 때의 대언자였고
예레미야는 바빌론과 이집트가 서로 패권을 다투던 그런
국제 정세하에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의 승리를
예언했고, 그들이 유다를 포로로 잡아갈 것이란 하나님의
경고를 쏟아내었지만 유다는 그의 경고를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일찍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고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는 모태로부터 택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1:5). 예레미야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다’란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전 626년에 대언자로의 활동을
시작했고 주전 606년에 예루살렘의 일부가 파괴되고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전 597년에 바빌론의 2차 침공이
있었고 주전586년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불타 없어졌습니다.
당시의 국제 정세는 300년간의 열강의 위치를 차지했던
앗시리아가 바빌론에 의해 무너지고(607 B.C), 그후 2년 뒤에
이집트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칼케미쉬 전투에서 패함으로써(605
B.C) 바빌론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70년간 바빌론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남왕국 유다는
히스기야 왕 이후로 급격히 쇠락하여 영토의 대부분은
잃어버렸고, 예루살렘만 남았습니다. 당시 유다의 왕으로는
우상 숭배와 죄악으로 유다의 멸망이란 운명을 정해 버린
므낫세(696-642 B.C) 시절에 예레미야가 태어났고, 그 뒤를 아몬(642-640
B.C)은 2년 밖에 통치하지 못했습니다(왕하21:20-23). 아몬은
반역으로 인해 암살당했는데, 그의 뒤를 이어 요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요시야(640-608)는 유다 역사상 가장 개혁적이
왕이었으면 31년간 통치했습니다. 대언자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통치 13년때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위대했지만 이는 외적인 종교, 정치 개혁에 머물렀고
백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우상 숭배와 죄악을 담고
있었습니다. 요시야가 이집트의 파라오느고에게 므깃도에서
죽임을 당한 후 백성들은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기름을 붓고 왕을 삼았습니다(왕하23:30). 그는 3개월만에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 가서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집트는
그를 대신해서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시킨 후에 왕으로 앉혀 놓았습니다(왕하23:34). 여호야김(608
B.C -597 B.C)은 11년을 통치하면서 극심한 우상 숭배로
빠져들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를 박해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성경을 불태웠습니다(렘36장
참조). 여호야김은 바빌론을 대적하였다가 박살이 나고
여호야긴이 그를 대신해서 왕이 되었지만 3개월만에
바빌론으로 붙잡혀갔습니다(왕하24:12-15).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왕하24:17). 시드기야는 11년을
통치했고, 예레미야에게는 상당히 우호적이었지만 약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선조들의 악행을 따라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그는 바빌론을 향해 반역을
꾀했다가 제위 9년 째에 10월 10일에 느부갓네살의 3차 침공을
받아 2년간 포위당한 끝에 그의 눈 앞에서 아들들이 죽고, 두
눈이 뽑힌 채 놋 족쇄로 결박하여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불타고 황폐화되었습니다. 역사에서
유다란 나라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포로기 이전에
포로가 될 유다와 70년의 종살이를 마치고 귀환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당대의 대언자로는 에스겔이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기에 주로 바빌론에서 활동했고, 먼 훗날의
이스라엘이 얻게 될 영광을 주로 예언했습니다. 포로기에 또
한명의 걸출한 대언자는 다니엘입니다. 에스겔은
예레미야보다 어렸고,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갈 당시에
소년이었습니다. 하박국과 스바냐는 예루살렘에 있는
예레미야를 도왔습니다. 동시대의 대언자로서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역시 당대의 대언자였던
오바댜는 에돔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해 역사의 예언의 등불을 밝히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이 주신 성경을 통해 역사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빕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너희 마음 속에서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벧후1:19). 성경은 예언의 등불입니다.
역사의 전환기,
역동기에는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앞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당대에 유난히 많은 대언자들을 통해 말씀과 환상,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주로 전한 말씀은 시대를 관통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유다의 살 길이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대언을 요약하면 다음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유다는 바빌론에 의해서 멸망당할 것이다.
둘째, 유다가 죄로부터 돌아서고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바빌론의 손에서 유다를 건지실 것이다. 셋째, 유다가
도저히 회개할 기미가 없자 유다는 완전히 멸망당하고,
바빌론으로 70년간 종살이를 하게 된다. 넷째, 유다가
파멸되지만 70년이 차면 다시 회복될 것이다. 다섯째, 유다를
파멸시킨 바빌론은 멸망당할 것이며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예레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대언할 수 있는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는 죄악이 넘치고
주님의 심판을 앞당기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죄에 대한
회개와 죄에 대한 심판의 선포없이 평화와 사랑만을
설교하고, 외치는 자들은 분명 거짓 대언자들이며 거짓
교회들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치료책, 치료책을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구속받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선포했습니다. ①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통제하시는 분이시다는 점을
선포했습니다(10:12-16, 32:26-27). ② 죄에 대해서는 유다의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죄에
대해 인식이 없을 때 회개도 주님의 치료책도 받아들이지
않는 법입니다. 오늘날 구원에 대해 불분명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에 비례해서 죄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하며,
자신의 죄인됨과 더러움, 사악함에 대해서 흐릿합니다. 죄에
대한 심각성이 없고, 죄에 대해 하나님의 시각과 전혀 다른
자신의 시각으로 변명하고 합리화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자아가
강하고, 전도유망한 사람들, 학문적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들은 절대로 성경을 믿음으로 읽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성경을 믿음으로 공부하기 이전에 반드시 자신의
가치관부터 바뀌어져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가혹한 시련을 통해서 자신의 자녀들이 믿음을
갖도록 도우신다. 자식이나 배우자와의 사별, 불임, 외로움,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후회, 재산의 도난, 극심한 물질적인
궁핍, 신체의 질병, 죽음에 이르는 갖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을 낮추시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게 하셔서
말씀을 믿음으로 공부하도록 하신다. 이런 징계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깨뜨리시는데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징계는 교만한 목을 꺾고, 딱딱한 마음을 갈아
엎어서 성경을 믿음으로 읽도록 해 준다. 고통의 용광로에서
연단받거나, 빛이 없는 인생의 흑암에서 거닐거나, 걱정과
근심으로 뼈가 삭고, 알 수 없는 공포와 죽음의 두려움으로
혼이 떨리고, 죄의 정욕에 꽁꽁 묶여서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 본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책이요, 그 책이 바로
자신을 위한 책이라는 사실을 안다. 왜냐하면 성경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어떻게 죄를 거뜬히
극복할 수 있는지, 산 소망을 통해 영생을 갖게 해 주는지,
영원한 영광 가운데서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Believing Bible Study 중에서).
하나님이 유다를 징계하신 것이나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도
징계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서 바로 잡음이
목적입니다. ③ 죄에 대한 하나님의 치료책을
선포했습니다. 우상 숭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유대인들의 죄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책은 그들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31:31-34,
33:6-9). 죄에 대한 치료책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새롭게 하는 영을 부어 주시는 새 언약에 기반합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을지라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다시는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이나 자기 형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너는/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의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 것임이요, 또 내가
그들의 불법을 용서하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렘31:31-34). [보라,
내가 이곳에 건강과 치유를 가져오며 그들을 치유하고
평안과 진리의 풍성함을 그들에게 드러내며 또 내가 유다의
포로들과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우고 그들의 모든 불법에서 그들을 정결하게
하리니 그들이 이 불법들로 내게 범죄하였느니라. 또 내가
그들의 모든 불법들을 용서하리니 그들이 이 불법들로 내게
범죄하고 범법하였느니라. 이곳은 땅의 모든 민족들 앞에서
나를 위한 기쁜 이름이 되며 찬양과 명예가 될 것이요, 이
민족들은 내가 그들에게 베푸는 모든 복에 대하여 듣겠고
내가 이곳에 베푸는 모든 선함과 모든 형통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33:6-9). 신약 성도들은 모두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며, 새 언약의 상속자들입니다(고후3:6).
주님은 우리와 새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십자가의 피를 통한 구속 뿐입니다(마26:28, 막14:24).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십니다(히9:15, 히12:24).
④ 죄에 대한 치료책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23:5, 33:15).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요, 한 왕이 통치하고 형통하여 땅에서
공의와 정의를 집행할 것이며](렘23:5). 비록 지금은 다윗
왕조가 끊어지고, 망해 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메시야 왕국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날들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한 의의 가지가 자라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의와 의를 집행하리라.](렘33:15). ⑤
예레미야는 인류의 구속에 대해서 대언했습니다. 천년
왕국은 인류가 죄와 저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누리는
시기입니다(23:1-8, 30:9, 33:14-18).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공통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과 인류의 회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독특한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i→ 예레미야는 가장 많은 박해를 받은 대언자였지만 정작
원수들에게는 호의를 받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이때에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이 호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예레미야에 대하여
명을 주며 이르되, 그를 데려다가 잘 보살피고 조금도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였으므로](렘39:11-12). 이는 동족에게는 버림과 배척을
받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영접되는 주님의 모습을 예표합니다.
→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 과정을 목격한대로 기술한 유일한 대언자입니다(렘39).
→ 예레미야는 구약에서
유일하게 자기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7:16, 11:14).
예레미야는 성경에서 바빌론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대언 했는데 무려 164회나 언급했습니다. 이는 성경
나머지 65권에 나오는 언급을 다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사도
요한은 바빌론을 적그리스도의 도시요, 그의 이름으로
언급했습니다(계17:5). [그 여자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5).
→ 예레미야는 당대의
다른 대언자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그는 미가였습니다(26:18).
예레미야 자신도 다른 대언자에 의해서 이름이
언급되었습니다(단9:2). 동시대의 대언자가 다른 대언자의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에스겔은 동료
대언자 다니엘을 무려 세 번이나 언급했고(겔14:14,20, 28:3)
엘리야가 말라기서에 한번 언급됩니다(말4:5). 그런 점에서
예레미야는 동료 대언자를 언급하고 언급된 유일한
인물입니다.
→ 예레미야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3개의 무조건적인 언약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아담의 언약(조건적), 노아의
언약(무조건적), 아브라함의 언약(무조건적), 모세와
이스라엘의 언약(조건적), 다윗의 언약(무조건적), 교회와
맺은 새 언약(무조건적), 이스라엘과 맺을 새 언약(무조건적)이
있습니다.
● 아브라함의 언약(창12:1-3),
-렘 33:26, [내가 야곱의 씨와 내 종 다윗을 버리고 다시는
그의 씨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씨를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임이니라.](렘33:26).
● 다윗의 언약(삼하7:10-16),
-렘33:15-18
● 새 언약(31:31).
예레미야서의 핵심 어휘는
‘타락’(Backslide)입니다. 2:19, 3:6,8,11,12,14,22, 5:6, 8:5, 14:7,
31:22, 49:4 참조. 유다는 자기들의 등을 돌려 주를 떠났고
우상들을 따랐습니다. 주님은 12번이나 그들이 타락했음을
지적하셨고 이에 대한 치유책은 회개하는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은 11번이나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파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고 예레미야의 슬픔과 눈물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9:1,
13:17,14:17,15:17-18 참조). 예레미야는 이들이 회개하지 않자 25장에
이르러서야 그들이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 갈 것이며,
민족이 완전히 멸망할 것이란 사실을 경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민족의 반역자로 낙인이 찍혔고,
동족들에게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진리를 말하고,
그들의 죄에 대해 사실을 그대로 지적하고 그에 대한 심판을
전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 듣기에
좋은 덕담(德談)이나 하면 고생은 하지 않습니다. 만약
유다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켰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구출해 내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징계와 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에는 신약
성경에도 자주 인용되는 좋은 비유들이 많이 있습니다. ●
생수의 샘(2:13). ● 길르앗의 유향(8:22)-약 ● 쓸모없는 띠(13:10-11),
띠는 항상 몸에 붙어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쓸모없는 띠는
몸에 붙어 있을 수 없다. ● 질그릇(18-19). ● 멍에(27).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예레미야를 보겠습니다.
● 둘다 결혼하지 않았다(16:1-2).
● 둘다 자기 도시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을 받았다(11:21, 12:6, vs 눅 4:16-30).
● 예레미야는 바빌론
제국의 위협과 압제하에서 사역했고, 주님은 로마의 위협과
압제하에서 사역했다.
● 둘다 자기
민족으로부터 반역자, 역적으로 여겨졌다.
● 예레미야는 거짓
대언자들로부터 집요한 공격과 모함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동일한 수욕을
당하셨다.
● 둘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울었고,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예언했다.
● 예레미야에게는 소수의
제자들이 있었고, 예수님 역시 몇 명의 제자들이 있었다.
● 둘다 체포되었고,
거짓으로 고소되었으며, 박해를 받았다.
● 둘다 외적 형식, 종교적
의식이 아닌 마음의 변화가 더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를 하실 때 예레미야 7:11을 인용하시며
제사장들에게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다.
● 둘 다 새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셨다(31:31-37, 히8:7).
● 말씀을 전파할 때
비유와 강력한 대조를 사용한 설교 방식이 같았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어야 하는 민족들의 반역과 불순종, 회개하지 않는
일에 대해 마음 가운데 심한 연민과 동정, 슬픔을 지녔다.
● 둘 다 사역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사역을 영화롭게 하셨다.
예레미야 본문을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장은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2-33장은 유다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2-20장까지는
민족 전체를 향한 말씀이고 21-24장은 특별히 지도자들의
죄악을 지적했습니다. 25-29장은 포로로 사로잡힐 것에
대해서, 30-33장은 포로된 유대 민족의 회복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34-39장은 포로가 되기 전에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40-45장은 포로가 된 후에 남은 자들에 대한 고난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46-51장은 유대 민족이 아니라
이방 민족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46장은 이집트에 대해서, 47장은
블레셋(필리스틴)에 대해서, 48장은 모압에 대해서, 49:1-6은
암몬, 49:7-22은 에돔에 대해서, 49:23-39절은 시리아 · 게달·
엘람에 대해서, 50-51장은 바빌론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바빌론은 무려 164회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52장은 앞부분에 대한 반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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