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예레미야 8:1-34
요절: 예레미야 8:22
예레미야 8장은 유다의
모든 계층이 다 부패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왕, 제사장,
대언자, 통치자로부터 거주민들까지 전부입니다. 부패의
결과는 살아 생전의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죽은 후의
무덤에서조차 평안이 없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주]가
말하노라. 그때에 그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통치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대언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주민들의
뼈를 그들의 무덤에서 끌어내어 그들이 사랑하고 섬기며
뒤따르고 추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천체(天體)
앞에 펼쳐 놓으리니 그 뼈들이 거두어지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거름이 되리라.](1-2). 지상에서 가장 참혹한
형벌 가운데 하나가 죽어서도 그 시신이 거두어지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입니다. 때로 대역 죄인들의 시신을 무덤에서
도로 파내어서 거리에 흩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유다의
죄악이 바로 그런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런
일들에 대해서 미리 엄중한 경고를 주셨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경배했지만 하나님의 백성
유다는 천체를 경배해서는 안됩니다. 천체는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체(光體)들이 있어서 낮과 밤을
나누고 표적과 계절과 일자(日字)와 연한(年限)을 나타내는 /표가/
되라.](창1:14). 창조주를 아는 사람은 누구도 창조주 한 분
하나님 외에 피조물을 섬겨서는 안되며, 섬길 필요도
없습니다. 피조물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은 창조주를
부인하는 배교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곧 하늘의 모든
천체(天體)를 보고 끌려가 그것들에게 경배하며 섬길까
하나니 이것들은 [주] 네 하나님께서 온 천하 민족들을
위하여 나누어 놓으신 것이라.](신4:19). 주님은 모세를
통해 경고와 동시에 천체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경고를 무시하면 돌로
쳐서 죽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천체를 숭배하는 것과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일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경배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해나
달이나 하늘의 모든 천체(天體) 중 어느 것에게 경배하고](신17:3).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그들은 바알을 비롯한 이방신들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천체에게 경배했고, 숲을 만들었습니다. [또
그들이 [주] 자기들의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부어 만든 형상들 곧 송아지 두 마리를
만들고 또 작은 숲을 만들고 하늘의 모든 천체에게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왕하17:16).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 므낫세는 하늘의 모든 천체를 경배하고
제단들을 쌓았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아버지 히스기야가
멸한 산당들을 다시 건축하고 또 이스라엘 왕 아합이 행한
것같이 바알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으며 작은 숲을 만들고
하늘의 모든 천체에게 경배하여 그것들을 섬겼음이라(3), [주]의
집의 두 뜰에 하늘의 모든 천체를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왕하21:3,5).
반면 히스기야나 요시야 같은 왕들은 철저히 천체를
경배하는 것을 막았고, 그런 자들을 제거했습니다(왕하23:4-5).
하늘의 모든 천체는 해체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하늘들과
땅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땅은 사람들로 인해 부패했고,
하늘은 더러운 영들의 처소가 되었으며,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높은 곳에 있는 악의 권세자들이 있습니다(엡6:12).
하나님은 창조 이틀째에 하늘을 만드시고 결코 [보시기에
좋았더라]란 말을 하지 않으셨는데, 이는 이미 그 때부터
악의 권세들의 처소였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모든 천체(天體)가
해체되고 하늘들은 두루마리같이 함께 말리리니 곧
하늘들의 모든 천체가 떨어지는 것이 포도나무에서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 같고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 같으리라.](사34:4). 우리는 이 땅의 심판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 하늘들의 심판을 믿습니다. 성경은
땅과 땅의 사람들만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거기에 거하는 자들도 다 심판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두르라. 그 날에 하늘들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원소들도 뜨거운 열로 녹으려니와](벧후3:12).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하늘을 경배해서도 안되며, 하늘에 있는
어떤 것들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스데반은 천체 숭배는
하나님을 떠난 결과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어 주신
결과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돌이키시고
그들을 내어 주사 그들로 하여금 하늘의 천체들에게
경배하게 하시니 /이것은/ 대언자들의 책에 기록된바, 오
너희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죽인
짐승과 희생물을 내게 드린 적이 있었느냐?](행7:42).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때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보내고, 징계를 보내고, 바로잡음을 시도하시지만 끝까지
거부할 때 주님은 그들을 범죄가운데 내어 주십니다. 내어
주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거두셨다는
의미입니다.
① 주님은 부정함에 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대로 부정함에 내어 주사 자기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롬1:24). 주님은 이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어
주셨습니다(롬1:26).
② 주님은 버림받은
생각에 내어 주십니다.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어 주사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롬1:28).
③ 주님은 놀람과
비웃음거리에 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내어 주사 고난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셨으니 곧 너희 눈으로 보는
바와 같으니라.](대하29:8).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내어
줌을 당할 때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제사장들
곧 [주]를 섬기는 자들은 주랑(柱廊)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오 [주]여,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주의 상속 /백성/을
치욕에 내어 주사 이교도들로 하여금 그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그들이 백성들 가운데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하도록 /내버려 두겠나이까/?
할지어다.](욜2:17). 우리가 받는 심판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명예가 더렵혀 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④ 먹을 것으로 정한
양처럼 내어 주십니다. [주께서 우리를 먹을 것으로
정한 양처럼 내어 주사 이교도들 가운데 우리를
흩으셨나이다.](시44:11).
⑤ 주님은 마음의 정욕에
버려 두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에 버려 두었더니 그들이 자기 계획 안에서 걸었도다.](시81:12).
주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바로 자기 성도들로부터
돌이키시고 그들을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약 교회의
성도들 역시 이런 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범죄한 성도들 가운데 어떤 자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
육체를 멸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5:5).
이외에도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후메내오(딤후 2:17),
바울을 심하게 대적했던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딤후4:14)를
바울은 사탄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 중에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준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모독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딤전1:20).
그러나 이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런 모든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위한 제물로, 저주거리로, 수치와 모욕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심으로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이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생각해 보십시오. 범죄한 아들이나 혈육, 친구를 내어 주는
일도 쉽지 않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친구에게 자신의
신용 카드나 자동차 열쇠나 통장이나 인감을 내어 주는 일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사형수를 위해서 여러분은
자신의 신장이나 안구 하나도 내어 주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더불어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이 세상을
살리는 길은 오직 하나 이 복음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을 거부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일지라도 우리를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으십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이 주님을
버리고, 천체를 경배한 결과 자신들의 뼈가 하늘의 달과
별이 보이는 땅위에 펼쳐지고, 그대로 썩어 거름이
되었습니다. 심판의 참혹함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을
정도입니다(3).
주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외쳤습니다. ① 속임수를 굳게 붙들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는도다(5). 진리를 버린 자들의 특징은 거짓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곧 망해도 자신이 붙든 속임수를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단들이 왜 그렇게 잘
망하지 않는지 보십시오.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이 났을
때 그들은 10월 29일부터 돌아와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②
저마다 자기 길로 돌아서는도다(6). 주님의 길을 버렸기
때문에 바른 말을 할 줄도 들을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길로만 갑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자기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를 주님께 담당케 하셨습니다.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는 그분께서 넘치도록 용서하실 것임이라.](사55:7).
③ 주의 심판을 알지 못하는도다(7). 황새와 산비둘기,
두루미와 제비도 자기의 올 때를 지키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의 심판을 알지 못한 채 마음대로 행했습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의 어리석음이나 불신을 책망하실 때
짐승들을 통해 교훈을 얻게 하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염려할 때는 공중의 까마귀들을 보라고 하셨고, 입을 것이
없어 염려할 때는 들의 핀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는 소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소도 자기 주인을 알며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며 내 백성은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도다, 하셨음이로다.](사1:3). 심판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계절별로 이동하는 철새인 두루미, 제비,
황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교훈을
주기 위해 주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 말하기를, 우리는 지혜롭고 [주]의 법이 우리와 함께
있다, 하겠느냐? 보라, 그가 분명히 그것을 헛되이
만들었으니 서기관들의 펜이 헛되도다.](8). 제비나
황새만도 못한 유대인들은 나름대로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혜롭고, [주]의 법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외칩니다. 바울이 말한대로 [보라, 네가 유대인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율법에 안주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롬2:17)란
그대로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에게 성경은 더 이상
그들에게 아무런 힘도 지혜도 주지 못하며, ‘서기관들의
펜이 헛되도다’라고 합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종교적
지식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의 믿음으로 성경을 배우지 않은
이상 그들의 지식보다 그들의 짐승같은 본능의 인도를 받게
마련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은혜로운
재산의 풍요를 누리는 성경 책과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과
제사장을 갖고 있지만 모두 헛됩니다. 이런 때 거짓
대언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활개를 칩니다. 거짓 대언자는
결코 죄악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지 않으며, 심판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평화가 없는 곳에 평화가 있다”고
외칩니다(11).
9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놀라며 붙잡히는도다. 보라,
그들이 [주]의 말을 거절하였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겠느냐?](9). 주님은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에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거절하면 그는 빛이 없는 자요,
흑암 가운데 거니는 자입니다. [/그들이/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그 까닭은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니라.](사8:20).
주의 말씀을 거절하면 기도의 응답은 없습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느니라.](잠28:9). 주의 말씀을 거절하면 지혜는
고사하고, 주님께서 그들을 거절하십니다. [훈계를
거절하는 자는 자기 혼을 멸시하는 자이거니와 책망을 듣는
자는 명철을 얻느니라.](잠15:32). 주의 말씀을 거절하면
반드시 심판을 당합니다. [너희가 거절하고 거역하면 칼에
삼킴을 당하리니 이는 [주]의 입이 그것을 말씀하셨음이니라.](사1:20).
10-11절은 배교한
이스라엘이 무슨 심판을 받으며, 왜 받는지에 대해 말씀해
줍니다. 백성의 탐욕, 대언자와 제사장들의 거짓이 늘
문제의 핵심입니다. 이는 오늘날 현 교회의 문제와
동일합니다. 탐욕을 사랑하는 성도, 성공을 갈구하는
교인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목사들이 성공적인 교회를
한다고 자랑하며, 그것이 교회 성장학의 모델이 되고,
표준이 되고, 기준이 되었습니다. 탐욕은 언제나 삶을
파멸로 이끕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119:36)라고
기도했습니다.
· 탐욕은 이름조차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음행과 모든 부정한 것과
탐욕은 너희 가운데서 한 번이라도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
이것이 성도에게 합당하니라.](엡5:3). 탐욕을 성공이란
이름으로 변장시키고, 탐욕을 복(福)이라고 외치는 강단의
설교자는 이 땅에서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멸망할 것입니다.
· 탐욕은 성도들에게 유업의 상급을 다 앗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유업의 상급을 향해 주님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아무 부족한
것이 살았다고 자랑한다 해도 주님은 너는 헐벗고, 가련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유업의 상급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탐욕을 부리는 자가 곧 우상 숭배자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도 받지 못하리라.](엡5:5). 그렇다면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이런
점에서 오늘날 많은 교회는 주님을 섬기는 교회가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는 교회임에 틀림없습니다. · 성도들의 생활
방식은 탐욕이 없이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삶입니다. [너희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히13:5). 이 점에
실패한 성도들은 어떤 영적 성취도, 성장도, 부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유다의 실패가 탐욕에 기인했음을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멸망의 전조들에
대해서 더욱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곧
그들이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조금 고쳐 주고는 평안이
없는데도 말하기를,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였음이라.](11).
거짓 대언자들의 특징은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없는데도
언제나 평화를 외칩니다. 주님은 갈수록 전쟁이 많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평화를 외칩니다. 평화가 들어가는 기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은 국제 평화를
위해 일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실상 그들이 평화를 위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도들은 전쟁이 없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근과 지진과 민족과 민족들의 전쟁은
말세의 징조로서 주님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3:7-8절에 [또 너희가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들을 때에
불안해하지 말라. 이는 이런 일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며 또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과 재난이
있을 것임이라. 이것들이 고통의 시작이니라.](막13:7~8).
우리는 그런 전쟁의 소문을 들으면서도 주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 당황하지 않고 평안을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전쟁이 있을 것을 외치며, 그 가운데서도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복음을 믿는 것임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12절은 죄를 지으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백성들의 타락상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죄를 지으면서 부끄럽고, 영적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회개합니다. 그러나 죄를 즐기는 사람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습니다. 13-16절은 계속해서
심판이 선포되는 장면입니다. 16절은 전쟁의 긴박성이
느껴지는 선포입니다. 적군이 벌써 단에서부터 들려 오고
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마술로도 길들일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로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주]가 말하노라.](17).
주님은 주위 민족들을 뱀과 독사로 비유하셨는데, 이는
민수기에 나오는 불뱀의 심판을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의 유일한 치유책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에 그들을 향해 오는
뱀들을 물리치는 방법 역시 주님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주님이 뱀을 보내시는 것 역시 그들이 광야의 조상들처럼
불신의 죄악 때문이란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광야의 장면을 공부해 봅시다. 우리가 그것이
주는 교훈을 면밀히 살펴본다면, 구원받기 위해 취해야 할
단계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의 구원뿐만
아니라 재앙으로부터, 전쟁으로부터, 갖가지
시험으로부터의 구원 방법이 모두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먼저 뱀에 물린
사람들은 자신이 뱀에게 물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뱀에 물린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
생각하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제 한국
신문에는 만취한 50대가 발이 트럭에 깔린 줄도 모르고 잠을
자다 6시간 만에 행인에 의해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4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李모(53.무직)씨는
지난 7월 26일 오후 8시10분쯤 자신이 사는 광주시 두암동의
아파트 화단 앞 도로에서 술이 취한 채 잠들었다가 金모(33)씨가
후진해 주차한 1t 트럭 뒷바퀴에 양 발을 치였습니다. 하지만
李씨는 잠에서 깨지 못했고 6시간 뒤인 이튿날 오전 2시쯤
행인 朴모(29)씨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발목 분쇄 골절
등 전치 12주 진단을 받았습니다[중앙일보 천창환 기자. 2003년
9월4일]. 뱀에 물린 것을 가시에 찔렸다고 생각하거나,
식중독으로 알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뱀독의 상처를
느끼기 전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인들은 '죄의 독'이 자신의 혼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영적인 건강에 대해 어떤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뱀에 물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치료약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뱀에 물렸을 때, 그 "놋 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면 무지함으로 인해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가 그들의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구원의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치료약"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 치료약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은 모든
죄를 깨끗하게 치료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치료약도 그것을 쓰기 전에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만일
"놋 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이 그것을
바라보기를 거절하였다면, 그는 죽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죄의 상태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기를 거절한다면 그는
자신의 죄들 속에서 죽을 것입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뱀을 바라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갖가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독이 퍼졌는데 놋 뱀을 보라니, 차리리 침을
맡거나 입으로 독을 빨아 내라는 것이 낫겠다!고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망령이 났는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선행, 고행, 음악,
세속적인 오락, 그리고 종교적인 습관과 같이 양심의 고통을
순화시켜주는 인공의 치료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치료책을 찾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이 "나는
'놋 뱀'이 어떻게 치료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알기
전에는 그 '놋 뱀'과 아무런 상관도 아니할 것이오. 나는
어떻게 그것이 나를 치료하는지 그 원리를 알고 싶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뱀의 형상으로 된 놋 조각으로 물린
상처를 문지르거나, 놋 조각을 취하여 약간의 풀과 함께
달여서 먹을 수 있는 약을 만들라고 말씀하셨다면 모를까
그냥 보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라고 논쟁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사건, 대속의 원리를
이해가 되지 않아서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는데, 인류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데 까지 다 해 보고 나서도
잘 안되면 그 때 놋뱀을 쳐다 보겠다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내일은 영적인 상태가
좀더 나아지겠지'라는 바램 속에서 살고 있으며, 만일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종교에 한번 "의지"해 볼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뱀에 물린 또 다른 이스라엘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이웃과 비교해 보면서 "내 상처는 내
이웃의 것만큼 나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그가 살아있는
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적인 상태를
이웃과 비교해 보면서 "나는 그들만큼 나쁘지 않아. 만일
그들이 구원받는다면 나도 그렇게 될걸."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그
상처를 바라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치료약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치유하는 것은 "놋 뱀"이
아니라 바로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뱀에 물린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자들만이 구원을 받았고, "바라보는 것"이
그들을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의 계획에 관한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구원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단순히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우리의 이웃과
우리 자신과 교회와 장식물들과 제사장들로부터 떼어서
"갈보리의 십자가"에 고정시키고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이룩하신 일을 받아들입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놋 뱀" 이외에는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었듯이,
우리도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습니다.
그분만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치료약입니다. 어떤
다른 이 안에서도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행4:12). "놋
뱀"을 바라보기를 거절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었듯이,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기를
거절하는 모든 이들도 죽을 것입니다.” -Clarence Larkin, Rightly
Dividing the words of Truth에서 요약 발췌-
18-22절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유명한 말씀입니다.
심판을 받는 백성들을 향해 느끼는 예레미야의 심정은
낙담이었습니다(18). 영적으로 깨어 있는 대언자는 현 세상을
볼 때 낙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현 교회들을 볼 때
절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심판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마치 아무 일없는 것처럼 흥청망청 마시고 놀고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길르앗에는 유향이 전혀
없는가, 거기에는 의사가 하나도 없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내 백성의 딸의 건강은 회복되지 아니하는가?](렘8:22).
길르앗은 유향이 많이 나는 고장이었고, 디셉 사람 엘리야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의 유향은 약재로 사용되었는데,
현재 이스라엘은 약도 없고 의사도 없다는 탄식입니다.
향유는 성령을 예표합니다. 병들고 죽어가는 왕국을 치료할
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죄인이
그들의 상처로 죽는다면 자신들의 책임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길르앗에 있는 향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역시
길르앗의 향유입니다. 성령은 거기서 모든 것을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사입니다. 하지만 죄인들은 치료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지 못하고 변화되지 않은 채
죽어 지옥으로 갑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백성들을 향해 울고, 회개를 촉구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