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예레미야 23:28-40
요절: 예레미야 23:29
어둠이 깊을수록 사람들은
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계시의 보조
수단을 마치 모든 것인양 더욱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본말전도(本末顚倒)라고 합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빛 대신 꿈, 예언, 환상, 방언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계시의 보조 수단들이 기록된 말씀을
능가할 때 교회는 완전히 생명력이 사라지고, 그 사회는
멸망으로 치닫게 됩니다. 예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대신 예배의 보조 수단(찬양, 간증,
성극, etc)이 주된 수단이 될 때 교회는 타락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성경에 제시된 분명한
청사진 대신 여러 가지 보조적인 것들을 마치 본질인 것처럼
추구해 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단연 눈에 띄는 어휘들이 있습니다. 꿈(23:25,27,28,32)과 주의
말씀, 주의 엄중한 경고란 말씀입니다.
I.
꿈꾸는 자들, 하나님을 잊은 자들
2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저마다
자기 이웃들에게 자기 꿈들을 말하여 내 백성으로 하여금 내
이름을 잊게 하려고 생각하는 자들이로다.](27). 타락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대신 자기 꿈들을 말했습니다.
이들은 꿈을 통해 자신들이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대언자인 체 했지만 사실은 사기꾼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꾼 꿈을 이야기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한 줄기 신앙마저도 다
도려내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제사장들과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신 자신들이 꾼 꿈을
의지했습니다. 꿈은 계시의 보조 수단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기록된 말씀을 능가하거나 대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꿈을 주시는 이유가 첫째, 자신의 백성을 시험하기
위함이요(신13:3), 둘째, 사람들이 스스로 계획한 것에서
물러나게 하시고 교만하지 못하게 하려 함(욥33:14-17)임을
배웠습니다. 성경에 꿈이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으로 사용된
예는 많이 있습니다. 헤롯이 죽었을 때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헤롯의 죽음을 알려 주었고(마2:19),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들어갔습니다(마2:22).
본디오 빌라도의 아내는 꿈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많이
시달림을 받아서 남편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는 충고를
주기도 했습니다(마27:19). 이런 예들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들이 스스로 계획한 것에서 물러나게 하신 예입니다.
이외의 꿈들은 개꿈이라 할 수 있는데 전혀 신뢰할 것이
못됩니다. [이는 꿈이 많고 말이 많으면 헛된 것도 많게
되기 때문이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할지니라.](전5:7).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지식의
시작이며, 명철이기 때문에 꿈을 의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식과 지혜와 명철이
부족하여 꿈을 붙드는 것입니다.
신명기에는 이런 꿈꾸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대언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 표적이나 이적을 네게 보이고 그가
말한 그 표적과 이적이 이루어질 때에 네게 이르기를, 네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이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시기 때문이니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며 그분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굳게 붙들고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는 죽일지니 그
까닭은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너희로 하여금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고 속박의 집에서 구속(救贖)하신 [주]
너희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또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걸으라 명령하신 길에서 너를 밀어내고자 하였기
때문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네 안에서 악을 제거할지니라.](신13:1~5).
거짓 대언자와 꿈꾸는 자들이 표적이나 이적을 보여 주는데
이들이 말한 표적과 이적이 이루어질 때 그들이 하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표적과 이적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만
흥분해서 그들의 말을 다 믿어 버리면 안됩니다. 마귀는
거짓 이적과 표적을 보여 주면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그들의 말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을 때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님의 시험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하나님을 따라 걸으며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는 죽여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를 휩쓸고 있는 은사주의, 오순절 운동, 거짓
표적과 이적을 영적 체험이라고 주장하는 교회들에 주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방언, 예언, 환상, 입신,
투시, 영음(하나님의 음성), 직통 계시 등을 주장하면서
성경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주님이 어떤 사람에게 그들이 마음에
원하는 대로 주셨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그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시험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지키려하는지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다른 것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주] 네
하나님께서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너를 인도하신 그
모든 길을 기억할지니 이것은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또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려 하는지 그렇지 아니한지 알고자 하심이라.](신8:2).
이 시험을 통과했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얻은 의를 인침
받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주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야 할 대언자와 제사장들이
말씀대신 자기들의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님을 잊게
한다면 이보다 더 무서운 죄는 없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잊지 말도록 신명기 8장 한 곳에서만
연속 세 번에 걸쳐 경고했습니다(11,14,19). 이는 삼겹줄과
같은 말씀입니다.
▣ [너는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명령과 법도와 법규를 지키지
아니함으로써 [주] 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도록
조심할지어다.](신8:11). 주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신8:11).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듣기만
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듣기만 하면 잊기 쉽지만
듣고 나서 행해 본 사람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자주
반복해서 행하는 일은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가 거울로 자기의 본래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같기 때문이니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고 떠나가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곧
잊어버리거니와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그 일을 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일에서 복을 받으리라.](약1:22~25). 듣고 행할 때 주님을
잊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법규를 듣고 행하지 않음으로 주
하나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주] 네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그분께서는
너를 이집트 땅 속박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신8:14).
마음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교만하면 주님을
잊어버립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잊게 하는 망각수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인지라 약간만 먹고 살만하면
하나님을 잊어 버립니다. 때로 끊임없는 환란과 시험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을
잊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난해서, 배가 고파서 주님을 잊은 것이 아니라
배가 부르고, 교만해서 잊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초장이 내는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매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서 나를 잊었느니라.](호13:6).
▣ [네가 만일 [주] 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걸으며 그들에게
경배하면 내가 이 날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니라.](신8:19). 우리는 지나 간 일들을 잊어도
됩니다. 이전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면 됩니다. 그러나 결코 잊어 버려서는 안될 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과 그분이 행하신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영적, 도덕적 타락은 물론이고 경제적
사회적 빈곤과 패망이 엄습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잊혀진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말 중에 “미움받는
여자보다 더 비극적인 여자는 잊혀진 여자”란 말이
있습니다. 원수는 잊어도 친구는 잊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요, 목자요,
창조자이신데 그들에게 잊혀졌습니다. 주님은 이 사실이
얼마나 황당하셨던지 [처녀가 어찌 자기 패물을 잊겠으며
신부가 어찌 자기 의복을 잊겠느냐? 그러나 내 백성은
나를 잊어 그 날 수를 셀 수 없도다.](렘2:32)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주님을 잊어버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네 능력의 반석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초목들을 심고
낯선 가지들과 함께 그것을 세우며](사17:10). 마음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은 쉽게 잊혀집니다.
중요하지 않는 말들, 중요하지 않는 사건들, 중요하지 않는
사람들은 금방 잊어 먹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귀하게
생각하고, 두려운 존재요, 사랑의 대상으로 합당한 지위를
차지하지 않을 때 누구라도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우 역시 동일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기 때문에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에 마음속에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내 아들아, 내 법을 잊지
말고 네 마음으로 하여금 내 명령들을 지키게 할지어다.](잠3:1),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그것을 잊지 말며 내 입의
말들에서 벗어나지 말라.](잠4:5)고 간절히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 엄중한 교훈을 마음
속에 새겨 두어야 합니다.
◎ 첫째, 하나님을 잊었을
때 행복과 기쁨은 사라지고 슬픔으로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슬피 울며 간구하는 소리가
높은 곳들에서 들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길을 굽게 하며 [주]
자기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렸음이로다.](렘3:21).
◎ 둘째, 흩어지고 수치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광야의 바람에
사라지는 지푸라기같이 흩으리로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것이 네 몫이요, 내게서 받을 네 분량의 몫이니 이는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까지 들추어 올려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렘13:24-26).
◎ 셋째, 길에서 걸려
넘어지고, 닦지 아니한 길로 다니게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나를 잊어버렸으므로 헛된 것에게 분향하였으며
이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옛 길을 떠나 그들의 길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고 길들 곧 닦지 아니한 길로 다니게
하였느니라.](렘18:15).
◎ 넷째, 사회의 부정 부패,
살인, 고리대금, 탈취, 도둑질, 강탈 등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네 안에는 뇌물을 받고 피를 흘린 자가 있었으며 너는
이자와 이득을 취하고 욕심을 내며 네 이웃을 착취하여 /재물을/
얻었고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22:12).
사회악(社會惡)은 도덕의 부재와 교육의 부재 이전에
하나님을 잊어 버린 심판의 결과임을 말해 줍니다. 한국
사회가 왜 그렇게 뇌물 공화국이 되고, 사기 사건이 많은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 수준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한국의 문화가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교 문화는 예절, 에티켓, 사회 규범에 대한 도리를
가르칩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입니까? 한국 교회가 하나님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 다섯째, 음란 문화와
음행의 영이 세상을 덮습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뒤로
버렸은즉 너 또한 네 음탕함과 네 행음을 담당할지니라.](겔23:35).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얼마나 Hedonism(쾌락주의)의
물결이 넘치는지 절감할 것입니다. T.V, 영화, 잡지, 신문 등
거의 모든 매체가 성(性)을 소재로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을 잊은 결과입니다.
◎ 여섯째, 우상 숭배와
자아 숭상,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꾸미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잊은 사람들은 자기가 중심이 됩니다.
[/그녀가/ 바알들/을 섬긴/ 날수대로 내가 그녀에게
징벌하리니 그때에 그녀가 그것들에게 분향하고 귀고리와
보석으로 자기를 치장하며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을
따라가고 나를 잊었도다. [주]가 말하노라.](호2:13).
그들이 얼마나 우상을 열심히 숭배했던지 신전들을 짓고,
도시들을 늘렸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자기를 만드신
이를 잊어버리고 /신/전들을 지었음이라. 유다가 성벽을
두른 /견고한/ 도시들을 많이 늘렸으나 내가 그의 도시들에
불을 보내어 거기 있는 궁궐들을 삼키게 하리라.](호8:14).
주님을 섬길 때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실용적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해 놓은 모든 것들에
불을 보내셔서 다 삼켜 버렸습니다.
◎ 일곱째, 사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또 그것이 너를 낯선 여자에게서 곧 자기의
말들로 아첨하는 낯선 자에게서 건져 내리니 그녀는 젊은
시절의 안내자를 버리고 자기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는
자라. 이는 그녀의 집이 사망으로, 그녀의 행로들이 죽은
자들에게로 기울어졌음이니 그녀에게로 가는 자는 아무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며 그들이 생명의 행로들도 붙들지
못하느니라.](잠2:16-19).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 버리는
여자는 창녀가 됩니다. 하나님을 잊어 버린 여자들의
행로들은 죽은 자들에게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다른
남자들을 끌어 죽음으로 이끕니다.
◎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은 자기 꾀로 살며, 탐욕을 부리다 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곧 잊어버리고 그분의
계략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광야에서 크게 탐욕을 부리고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이에 그분께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으되 그들의 혼은 야위게 하셨도다.](시106:13-15).
하나님을 잊어버린 성도들이 탐욕을 부리며,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의 계략을 기다리지 않고 마음에
생각대로 구하다가 망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성도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오면 늘 주님을 시험합니다.
◎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아, 이제
너희는 이것을 깊이 생각할지어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갈기갈기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으리라.](시50:22).
하나님은 하나님을 잊은 자들에게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기갈기 찢어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경고입니까?
대언자들과 꿈꾸는 자들이
하나님을 잊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결과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꿈을 꾼 자는 꿈을 말합니다(28). 그러나 하나님의
대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꿈을 꾼 대언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신실히 내 말을 말할 것이라. 어찌 겨를
알곡과 비기겠느냐?](28). 꿈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차이는
겨와 알곡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겨는 태우지만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알곡입니다. 하나님의
말씀(words)- Every word(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다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영감이 있으며, 순수한 말씀입니다. 알곡은 새
생명을 낳을 수 있으며, 양식이 됩니다.
II.
불같은, 쇠망치 같은 하나님의 말씀
29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산산조각 부수는 쇠망치 같지 아니하냐?](29). 하나님의
말씀은 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쇠망치입니다. 주님의
율법은 불같은 율법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이르되,
주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오시며
바란 산에서부터 빛을 내시고 수만(數萬) 성도와 함께
오셨으니 그분의 오른손에서 그들을 위하여 불 같은 율법이
나왔도다.](신33:2). 주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에 불을 보내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 불은
진흙을 돌처럼 굳게 만들고, 밀납은 녹게 하며, 불순물은
태우고, 금과 은은 정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에서 심판으로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내가 내
종 대언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규가 너희 조상들을
따라 잡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서
이르기를, 만군의 주께서 우리의 길대로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고자 생각하시더니 그대로 우리를 다루셨도다,
하였느니라.](슥1:6).
마음 속에 말씀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그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노라.](렘20:9). 말씀의
불이 마음 안에 붙을 때 마음은 뜨거워지고,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미지근한
교회를 가장 싫어하십니다(계3:15,16).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24:32) 예루살렘을 향해 발 길을
돌렸습니다. 말씀은 타오르는 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위를
산산조각 부수는 쇠망치입니다. 만약 말씀의 불에 녹지 않는
단단한 금강석 같은 바위를 가진 마음이라면 그는 쇠망치에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서지던가,
녹아나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물, 못(nail), 채찍, 칼 등 다양한 도구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30-31절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그런즉, 보라, 각각 자기 이웃에게서 내
말들을 도둑질하는 대언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자기 혀를 놀려, 그분께서
말씀하시느니라, 하는 대언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30-31).
주님은 계속해서 “내가 대적하노라”를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마음 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요,](막4:14-15). 말씀을
도둑질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주의 종은 말씀을 뿌리는
자들입니다. 마귀의 종은 말씀을 도둑질해 갑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는가? 첫째, 초대 교회 시대부터 중세
때까지는 주로 성경을 빼앗고, 성경을 불태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소유한 사람들까지 불로 태워 죽였습니다.
마귀는 도둑이요, 살인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마귀는
성경에서 말씀을 임의로 더하고 빼 버렸습니다. 무려 64,000
단어가 빠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구절들이 부패되었습니다.
셋째, 마귀는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시킵니다.
강단에서 "이 부분은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또는
"이것이 더 좋은 번역입니다만..."라고 말함으로써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합니다. 완전한 성경은 없다고
말함으로 믿음을 파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고침으로써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만약 아내가 자녀들 보는 앞에서 남편의 말을
자주 고쳐 주면, 자녀들은 곧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버지의 음성을 자주 고치면, 그리스도안에서 아직
영적으로 어린 아기들은 더 이상 그분의 말씀에 두려워 떨지
않을 것입니다(사66:5). 넷째, 마귀가 앞에 세 가지
방법으로도 빼앗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유로든 매일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도둑질하는 자는
양들을 도둑질하는 자들이며, 마귀의 종들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들을 대적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주로 일어나는 말씀 도둑질은 하나님의 말씀대신
자신이 배운 신학이나 생각들을 성도들에게 주입함으로써
성도들의 마음가운데 있는 믿음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설교도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저는 자의 다리가 같지 아니한 것처럼
어리석은 자들의 입의 비유도 그러하니라.](잠26:7). 성경
저자에 대한 의심, 성경 보존에 대한 의심, 번역에 대한 의심
등 여러 가지 의심을 던짐으로써 그들은 말씀을 도둑질
합니다. 말씀은 깨닫지 못할 때 성도는 누구라도 빼앗길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왕국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저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 속에 뿌려진 것을
채어가나니 이것은 곧 길가에 씨를 받은 자라.](마13:19).
이런 이유로 우리는 주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들은 말씀, 읽은 말씀을 잘 깨닫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32절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거짓 꿈들을 대언하고 말하며 자기의
거짓말과 경솔함으로 내 백성을 잘못되게 하는 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을 끼치지 못하리라. [주]가 말하노라.](32). 거짓
대언자들의 활동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당시의 유대는
예레미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언자가 거짓
대언자들이었습니다. 거짓 대언자는 양들을 아끼지
않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시되,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둘 다 도랑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눅6:39)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
자신도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목자로서
양떼들을 잘못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잘못하지 아니하였고 아무도 부패시키지
아니하였으며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지 아니하였노라.](고후7:2).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잘못을 범하지 말라.](약1:16)고 말합니다. 무릇 성도라면
형제들을 잘못하게 하는 대신 잘못에 빠진 형제도 건져 내
주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중에 진리를 떠나
잘못하는 자가 있는데 누가 그를 돌아서게 하면 그 죄인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인즉 그로 하여금 이것을 알게
할지니라.](약5:19-20). 이것이 목자의 직분입니다. 형제의
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못하지 않고 바른 길을 걷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합니까?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보내신 종들을 통해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 주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이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사 너희에게 이르게
하시오며](살전3:11).
◎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십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인내하며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 진리의 영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III.
주의 엄중한 경고
33-40절까지는 계속해서 [주]의
엄중한 경고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엄중한 경고를 들어보십시오. 주의 엄중한 경고는
소선지서들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말씀입니다. 참고: 나훔
1:1, 하박국 1:1, 슥9:1, 12:1, 말1:1. 주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엄중한 경고의 말씀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 첫째,
내가 심지어 너희를 버리기까지 하리라. [이
백성이나 대언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주]의
엄중한 경고가 무엇이냐?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무슨 엄중한 경고를 말하느냐? 하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심지어 너희를 버리기까지 하리라, 하셨고](33).
주님은 거짓 대언자들을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믿는 자들은 하나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세상에 있을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켰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지켰고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 중의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성경 기록을 성취하려 함이니이다.](요17:12).
주님께 나아 오는 자들은 쫓아 내지 않으시며,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너희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히13:5).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둘째,
그 사람과 그의 집을 벌하기까지 하리라. [또, [주]의
엄중한 경고라, 말하는 대언자와 제사장과 백성에 관하여는
내가 심지어 그 사람과 그의 집을 벌하기까지 하리라,
하셨다, 하라.](34).
◎ 셋째,
너를 잊어버리리라. [그런즉, 보라, 나 곧 내가
너희를 완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에게 준 이
도시와 너희를 버리고](39). 하나님을 잊었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도리어 내가 너희를 완전히 잊어버리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잊혀진 백성이라면 그는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 더 심한 저주는 없습니다.
◎ 너희를
쫓아내고, 잊지 못할 영존하는 치욕과 수치를 가져 오리라.
[내 눈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며 잊지 못할 영존하는 치욕과
영원한 수치를 너희에게 가져오리라, 하셨느니라.](40).
사람들은 주의 엄중한
경고를 듣기를 싫어했고, 거부했습니다. 36,38절에 그들은 “다시는
[주]의 엄중한 경고를 언급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일찍이
이사야는 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보지 말라, 하고 대언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들을 대언하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들을 대언하라.](사30:10).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지 말라고 하거나 하려면 부드러운 것, 거짓된
것을 말하라고 합니다.
덕분에 주의 말씀을
버리고, 사람들의 듣기에 좋은 것만 말하는 사람들이 인기
좋은 설교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의 말씀을
왜곡시켰습니다. [다시는 [주]의 엄중한 경고를 언급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엄중한 경고가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곧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켰음이니라, 하라.](36).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입니다. 완전무결한 말씀이기 때문에 더하거나
뺄 수 없습니다. 왜곡시켜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때 그가 왜곡하는 말이 자기에게 엄중한 경고가
됩니다. [주의 말씀은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그것을
사랑하나이다.](시119:140),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잠30:5).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왜곡시키는 자들은 말씀을 읽고, 듣고도 믿는 그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변명과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그들이 날마다 내
말들을 왜곡시키니 나를 대적하는 그들의 생각은 다 악을
행하기 위한 것이니이다.](시56: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단지 사상으로, 유희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왜곡시키는 또 한
부류는 말씀을 변개(부패)시키는 자들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많은 사람들 같지 아니하고
오직 진실함에서 난 것같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같이
하나님의 눈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기 때문이니라.](고후2:17).
성경의 일점 일획도 의심하지 않고, 그 진실성, 역사성,
정확성, 영감성, 보존성, 예언의 정확한 성취 등에 대해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것이 말씀을 왜곡시키지 않고,
부패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철학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공격하고,
역사성과 예언을 공격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단호히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왜곡시키는
자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왜곡시키는 또 한
부류는 속임수로 다루는 자들입니다. [오히려 감추어 둔
정직하지 못한 일들을 버리고 간교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속임수로 다루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게 우리
자신을 추천하노라.](고후4:2). 이들은 말씀으로 자기
유익을 취하거나 이득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권면이 속임수나 부정함에서 난
것이 아니요, 간사함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음이라.](살전2:3)고
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오직 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받아 있는 그대로 증거하는 것이 주의 종들의 바른
자세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고전4:1-2), 자원하여(고전9:17),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벧전4:10),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딛1:7).
'Archived(완료) > 구약 개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약개론, 예레미야애가-눈물의 애가 (0) | 2005.10.08 |
---|---|
예레미야(27) (0) | 2005.10.07 |
예레미야(25) (0) | 2005.10.04 |
예레미야(24) (0) | 2005.10.01 |
예레미야(23) (0) | 2005.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