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형통한 자가 되어

말씀: 사55:10-11
요절: 사55:11


저는 여러분에게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 암송의 유익에 대한 많은 책자들이 나와 있고, 설교들도 있지만 정작 실천하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성경 암송에 대한 강한 동기(motivation)과 목적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암송해야 하는 강력한 동기와 목적에 자극을 받아 말씀 암송을 실천할 수 있기 바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암송은 단순 암기가 아닙니다. 연극 대사를 외우던가 노래 가사를 외우든지 교과서의 내용을 외우는 일과 달리 성경 암송은 암기력에 의존해서 외우는 암기가 아니라 묵상과 실천을 바탕으로 마음 속에 새기는 암송입니다. [긍휼과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들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기록하라.](잠3:3). 마음 판에 기록하라는 말씀은 암송과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평생 교회를 다녔지만 완벽히 외우는 구절이 거의 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암송하여 입에서 줄줄 나올 수 있다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학 용어조차 숙지하지 못한 의사를 돌팔이 의사라고 부르고, 법률 용어나 법전 내용조차 모르고 헤매는 변호사를 사이비라고 부르듯이 성경 몇 구절도 못 외우는 신자를 가짜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요즘 성경을 베껴 쓰는 필사 운동이 몇 몇 교회 내에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좋은 일입니다. 잠언 기자가 [그것들을 네 손가락에 묶으며 네 마음 판에 기록하라.](잠7:3)는 말씀대로 이들은 말씀을 손가락에 묶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마음 판에 기록해야 합니다. 눈으로 읽든, 귀로 듣든 입으로 말하든, 손으로 쓰든 간에 결국은 모두 마음 판에 기록하는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암송에 대한 4 가지 단계를 말해 줍니다. 말씀을 귀로 듣고, 경청하여 마음에 붙잡고, 그것을 가르쳐 말하고, 지켜 행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암송입니다. 이렇게 할 때 주님은 그를 형통한 자로 만드시고, 모든 일과 모든 길에서 형통함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이곳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마음의 단련과 영적 성장보다 외적 형통함에 더욱 관심이 많습니다. 자식들이 좋은 학교 가는 것, 자신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사업에 성공하는 것 등이 영적인 문제나 말씀 보다는 압도적으로 우선적인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다 알듯이 현상을 추구하는 자들은 기회주의적인 삶을 살 뿐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형통함을 원한다면 하나님이 형통함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것을 따르면 간단합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기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움이 돋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씨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고 먹는 자에게 빵을 주는 것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이루며 내가 그 말(words)을 보내어 /이루게 하려는/ 일에서 형통할 것임이라.] (사55:10~11).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그 일을 이루시고 형통케 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말씀을 보내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심으로 형통함을 주시는데 말씀을 받지 않게 되면 주님께서 일하실 수 없게 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간직하고, 지킬 때 주님은 보내신 말을 통해 일을 이루시고 형통케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 없는 형통함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암송하는 일은 주님께서 말씀을 보내어 이루시는 일들에 대한 형통함을 얻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무엇이든 풍성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은혜도 풍성하시고, 긍휼도 풍성하시고, 진리도 풍성하십니다. 주님은 무엇이나 넘치도록 풍성하게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풍성히 거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사무엘, 엘리사, 바울 안에 있었던 성령과 동일한 성령이 저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조금 주셨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찔끔 주시거나 약간 맛배기만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자처하는 성도들은 무엇이나 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풍성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이는 모순입니다. 풍성한 은혜의 하나님을 믿으면 그 자녀들 역시 은혜가 풍성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풍성한 생명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가 풍성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b). 주님은 성도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풍성함, 넘침, 풍부히 거하게 하시는 것이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를 보면 풍성함 대신 빈약함, 모자람, 없음 등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만약 자체 감사를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항목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Yes, No로 대답을 해 보십시오. 사랑은 풍성한가? 은혜는 풍성한가? 생명의 꼴은 풍성한가? 긍휼은 풍성한가? 진리는 풍성한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은 있는가? 말씀의 물은 넘쳐흐르는가? 섬김은 풍성한가? 위로는 넘치는가? 영적 교제는 풍성한가? 성령의 열매는 풍성한가? 은사들은 풍성한가? 감사는 풍성한가? 모두 Yes라면 너무나 정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신 풍성함이 있을 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1:5~8).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성도들 안에 풍성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성한 권능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 것은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한 자가 되게 한 것 역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한하시고,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풍성히 누리도록 하셨고, 풍성하게 공급하시며, 풍성함 속에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삶을 사는 것은 크게 잘못된 삶입니다. 성도들이 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마음속에 풍부히 거하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거하고 있지 않을 때 성령을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 주어도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거하는 말씀이 없으면 믿음의 삶이 불가능하며, 성령의 조명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암송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골3:16a). 말씀을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면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로 잡으시는 것입니다. 말씀들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이며, 부흥입니다. [너희는 말씀들을 가지고 [주]께로 돌이키며 주께 아뢰기를, 모든 불법을 제거하시고 은혜를 베푸사 우리를 받아 주소서. 우리도 우리 입술의 송아지로 희생물을 드리리이다.](호14:2). 말씀이 없는 부흥은 부흥(Revival)이 아니라 유행이거나 운동(movement)입니다. 여러분이 심령에 부흥을 경험하고 싶다면 성경을 읽고, 그것을 암송하고, 묵상하십시오. 차근차근 마음의 창고에 말씀을 쌓아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자신의 풍성함을 드러내 보이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알게 하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1:27). 그렇다면 우리는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풍성한 삶에 대한 영적 조명을 얻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영적 빈혈을 느끼는 것은 말씀을 섭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 소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영적 기근의 시대입니다. 서점이 성경에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복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설교자가 없습니까? 교회가 적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회를 통해 마땅히 보아야 할 풍성하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돈도 많고, 성도도 많은데 영적 부흥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깨끗함이나 순결함, 경건함이나 거룩함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히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한 가지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말씀을 숨기는 일, 간직하는 일, 지키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말씀을 간직하라! 이 한 가지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성도들이 능력도, 지혜도, 은혜도, 생명도 부족한 것뿐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보십시오. [이는 너희가 모든 일 곧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부하게 되었음이요,](고전1:5). 그들은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현대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일이나 말이나 지식이나 교인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쳐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마음속에 말씀을 담아 두는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듣고 맙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을 굳게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설교를 듣고서 그것을 한 참 기억하다가 나중에 기억이 나지 않으면 매우 답답합니다. 제대로 적어 두었어야 했는데 아쉽기만 합니다. 굳게 붙들지 못하고 놓쳐 버린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이 없습니까? 흐릿한 잉크가 선명한 기억보다 오래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듣고, 그것을 적어 두고, 눈과 입으로 반복해서 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대언자들에게 말씀을 주셔서 선포하게 하신 후에 그것을 적어서 성경으로 주신 것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를 통해 말씀을 주셔서 듣게 하신 후에 그것을 적어서 읽고 외우게 하셨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그 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첫째, 말씀을 듣는다. 듣지 않는 사람은 말할 수 없습니다. 듣지 않고서 기억할 수 없습니다. 들은 말씀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이 주의 깊게, 감동 깊게, 은혜롭게 들은 설교 말씀은 그렇지 않는 말씀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듣는 것이 말씀 암송의 첫 걸음입니다. 매주 설교에서 은혜를 받으면, 여러분의 성경 암송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합니다. [그분께서 네게 교훈을 주시려고 너로 하여금 하늘에서 오는 자신의 음성을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자신의 큰 불을 네게 보여 주시매 네가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분의 말씀들을 들었느니라.](신4:36). 하나님의 말씀은 일단 들어야 합니다. 잘 들어야 하며,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떻게 듣는가에 주의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주의하라. 이는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있는 줄로 여기는 그것까지도 빼앗길 것임이라, 하시니라.](눅8:18).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첫 단계는 듣기입니다. 엘리후는 말했습니다. [그분의 요란한 음성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라.](욥37:2). 듣지 않고 말만 하는 사람들은 정말 골치 아픕니다. 성경은 들으라! 는 명령이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아, 너희는 다 와서 들으라. 그분께서 내 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밝히 보이리로다.](시66:16). 여러분들은 와서 들어야 합니다. [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오 이스라엘이여,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면 /얼마나 좋을까/.](시81:8). 잠언서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오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들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삶의 햇수가 많게 되리라.](잠4:10). [/너희는/ 들으라. 이는 내가 매우 뛰어난 것들을 말할 것임이니 내 입술을 열면 올바른 것들이 /나오리라/.](잠8:6). 잘 들으십시오.

주님은 자기 자녀들이 잘 듣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하는데 잘 안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지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잘 안 듣는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마음 속에 말씀을 가장 잘 기억하고, 지키고, 간직하고, 쌓아두는 사람은 가장 잘 들은 사람입니다. 이사야서에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 하늘들이여, 들으라. 오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들을 먹이고 키웠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1:2). 거역이 큰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잘 안 듣는 것이 거역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계속해서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귀를 기울이고 내 말을 들으라.](사28:23).

둘째, 마음 속에 두라. [이 날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말씀들을 너는 마음 속에 두고](신6:6). 들은 말씀을 듣고 흘려 보내면 안 됩니다. 들은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들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지금까지 들은 것들에 더 열심히 주의를 기울여 언제라도 그것들을 흘려보내지 말아야 하리라.](히2:1). 사람의 기억력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깊은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고 해도 그 감동의 실체는 점점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붙잡아야 합니다. 때로 메모도 하고, 노트에 기록도 해 두어야 합니다. 기록해 둔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반복해서 읊조려 보면 머리 속에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할 때 말씀들은 마음 속에 있게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잘 듣고, 은혜 받았다고, 감동 받았다, 말씀이 좋았다고 하면서도 영적 성장과 열매가 없는 것은 들은 마음 속에 붙들어 두지 못하고 말씀을 흘려보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은 흔적만 남을 뿐 막상 사용하려고 할 때는 전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습니까?

셋째, 가르치고 말하라.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걸어갈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들을 말할 것이며](신6:7). 들은 말씀을 외워서 누군가에게 가르쳐 보고, 말해 줄 때에 성경은 쉽게 암송됩니다. 저는 학원 강사를 오래 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같은 내용을 첫 시간, 둘째 시간 반복하다 보면 3번째 시간에는 거의 외워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교제를 보지 않아도 외워서 자연스럽게 강의합니다. 부흥회 강사를 하시는 목사님들을 보면 거의 메시지를 다 외워서 설교합니다. 어떤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들은 말씀을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불신자들에게 가르치고 말해 주어야 하며 같은 믿음의 형제들과 영적 교제를 통해 서로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 때 말씀이 더욱 깊이 내 안에 자리 잡고 뿌리내리며 암송됩니다. 성경 암송을 강제로, 억지로 하려면 그보다 더 큰 고역이 없습니다. 의미 없는 문장은 좀처럼 외워지지 않으며, 외워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듣고, 마음속에 두고, 가르치고 말해 본 것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잘 외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설교에서 들은 구절들을 암송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제가 성경 공부 시간이나 설교에 인용하고, 선포하는 구절들을 꾸준히 듣고 암송한다면 여러분은 성경 암송의 대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도 가르치고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배우는 내용은 어떤 신학교나 신학 대학원 과정에서 배우는 것보다 충실하고 강력합니다.

넷째, 지키고 행하라.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들을 지키고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형통하리라.](신29:9). 지키고 행하는 것은 암송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것은 대못을 깊이 박아서 누구도 뽑지 못하도록 그 못 대가리까지 때려 넣어 꾸부려 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들을 지키고 행할 때 말씀은 이제 내 안에 있게 될 뿐 아니라 내가 말씀 속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내가 말씀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붙잡습니다. 말씀을 지키고 행할 때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하게 된다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복을 빌고, 형통하기를 원하지만 정작 형통의 길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형통할까? 형통할만한 직종 선택을 위해 카운슬링도 받고, 금식을 하고, 기도를 하고, 기도 부탁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지만 언약의 말씀들을 지키면 직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말씀들을 지키고 행하면 곰탕집을 차리든 설렁탕집을 차리든 주님께서 형통하게 하십니다. 호경기든 불경기든 상관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한 가지는 주님의 복을 구하면서도 자신이 복된 사람이 되기를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주 앞에서 복있는 사람이 되면 하는 일과 사업은 자연히 복이 임합니다. 일을 형통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기 전에 자신이 형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일보다 중요하며, 우선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이 먼저입니다. 복있는 사람, 의로운 사람, 경건한 사람, 거룩한 사람, 믿음의 사람....핵심은 사람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복을 주시고, 형통함을 주시기를 구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 자신이 복된 사람, 형통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구하십시오.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형통함같이 네가 형통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노라.](요삼1:2).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의 일이나 사업이나 교회나 가정의 형통함을 빌기 전에 ‘네 혼이 형통함같이 네가 형통하고’라고 빌었습니다. 주님이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형통함을 주시면 그의 일은 절로 형통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사람을 받으시고, 그 사람이 바치는 예물을 받으시듯이 기도하는 사람을 보시고, 그 기도를 받으십니다. 이는 무엇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적인 예를 보겠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직종과 장소에 상관없이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형통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 있더니 그의 주인이 [주]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주]께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그의 손에서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39:2-3).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면 요셉이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먼저 자신이 형통한 자가 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사업, 학업, 가정만 형통하기를 바라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복된 사람이 되면 그가 하는 일마다 복이 되고, 영적인 사람이 되면 그가 하는 일은 영적인 일이 됩니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입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일은 일을 형통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내가 형통한 자가 되기 위한 일입니다. 그럼 요셉은 저절로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까? 아니면 어릴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형통한 것입니까?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련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임하기까지 /그러하였도다/. [주]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105:19). 말씀을 통해 단련되었을 때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함으로 마음은 정금같이 단련되고, 믿음 역시 단련됩니다.

여러분이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형통한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형통한 사람이 되면 어디에 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합니다. 히스기야가 말씀을 붙잡고, 지켰을 때 그는 형통했습니다. [[주]께서 그와 함께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왕하18:7a). 형통케 되기 원하시면 말씀을 지키고 행하십시오. 금고 열쇠를 지키는 것보다 더 열심히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지켜 행하라. 이것은 성경 암송의 완성입니다. 만약 앞의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려 한다면 여러분은 슈퍼맨이 되거나 초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성경 말씀을 다 지켜 행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누가 감히? 이런 의문 밖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 듣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단계에 왔다면 이 일은 어려운 일도 무거운 일도 아닙니다(마11:28, 요일5:3). 한국 사람들에게 젓가락질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 어려서부터 배우고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사용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형통의 비결은 마음속에 있는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것들을 지켜 행하라. 그 까닭은 그것이 민족들의 눈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명철(明哲)이기 때문이라. 그 민족들이 이 모든 법규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민족은 참으로 지혜와 명철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4:6).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지혜요, 명철이라고 말합니다. 민족들의 눈앞에서 지혜와 명철이라는 것은 모든 민족들이 그들의 지혜와 명철에 놀라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누구나 유대인들을 머리 좋은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왜 대단합니까? 어릴 때부터 토라(율법-모세 오경)을 읽고 외우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남의 나라에서 정재계는 물론이요, 언론, 은행, 변호사 시장을 휘잡는 것은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남다른 민족이라고 감탄을 하지만 그 비결이 성경 암송에 있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중동 지역에 있는 다른 민족들을 향해 머리 좋다, 대단하다,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민족 차별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암송하고 지켜 행한다면 사람들 역시 교인들을 유대인들 보는 것보다 더 경이롭게 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인들은 성경을 암송하지 않음으로, 지켜 행하지 않음으로 빛과 소금은 고사하고 욕을 먹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형통하게 하고 싶으면 성경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고, 가르치며 말하고, 지켜 행하게 하십시오. 성경을 읽고, 암송하게 하십시오. 이것보다 더 확실한 투자는 없습니다. 먼저 여러분 자신이 행해 보십시오. 요즘처럼 불경기에,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경기를 타지 않느냐고 기이하게 쳐다 볼 것입니다. 지혜와 명철이 있는 사람이란 소리를 듣는 것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얼마나 많이 배웠고, 경험이 있는가? 등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 있음을 아십시오.

형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마음에 간직하고 암송하고 지켜 행합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매우 담대히 하여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모든 율법대로 지켜 행하고 그것을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수1:7).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것이 형통함의 조건이요, 유일한 비결입니다. 어떤 사이비 부흥사는 성도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형통하다고 떠듭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떠듭니다. 어떤 이는 주일 성소를 잘 하고 헌금을 많이 해야 형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기적으로 금식 기도도 하고, 철야 기도도 하고, 산 기도도 올라가고, 특별 집회에도 참석해야 형통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별별 소리를 다 들어 보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말은 거부하고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보십시오. 성경은 “말씀을 지켜 행하면 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죽기 전에 아들 솔로몬에게 한 유언을 보십시오. 그는 아들의 형통함을 빌 때 제왕학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주] 네 하나님의 책무를 지켜 그분의 길로 걸으며 그분의 법규와 명령과 법도와 증거를 지키되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왕상2:3). 본질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일에 성공하면 모든 일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실패하면 모든 일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성공합니까? 어디로 가야 형통합니까?” 이렇게 방법을 찾고, 묻지만 하나님은 거기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본질적인 답변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역시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해야 합니다. 성경 암송은 형통함의 본질입니다. 형통함은 마음속에 말씀을 듣고, 암송하고, 지켜 행한 결과요, 현상이요, 열매요, 보상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형통함의 본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성경 암송은 형통함의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일을 이루십니다. 말씀을 통해 힘을 주시고, 위로를 주시고, 말씀을 보내셔서 고치시고, 말씀으로 단련하시고, 말씀으로 복을 주시고, 열매를 주십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기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움이 돋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씨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고 먹는 자에게 빵을 주는 것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이루며 내가 그 말을 보내어 /이루게 하려는/ 일에서 형통할 것임이라.] (사55:10~11).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그리고 지켜 행하십시오.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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