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고 소중한 것
말씀: 시119:127
요절: 시119:127
어떤 사람의 가치관은 그가 무엇을 가장 귀히 여기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본능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이든, 건강이든, 돈이든, 가정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조건 오래 오래 지키고자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죽을 때는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에게 남겨 주어 계속 지키게 합니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기 이전에 본능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가장 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르다가 잃어버린 후에 가치를 알아보고 후회합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그 가치를 잘 모릅니다. 음식은 주릴 때까지 그 가치를 모르며, 돈은 무일푼이 되고 파산해 볼 때까지 그 가치를 잘 모릅니다. 가정은 깨어지기 전에 그 참된 가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믿음의 가치를 잘 모르고, 교회의 가치를 잘 모르고, 성경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본질적인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게 되면 그것을 소중히 하고 지키려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수십 년 동안 물감 그릇으로 쓰던 그릇이 있었는데 그것이 중국 명조(明朝) 시대의 귀한 자기였음이 밝혀지고 그 가격이 무려 500만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 그릇을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 날부터 팔리는 날까지 은행 금고에 보관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분실, 도난, 훼손 등의 사고를 대비해 보험을 들었으며,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소중하고 귀한 것을 잃을 때 그 상실감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빼앗기거나 도둑맞았을 때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미칠 지경입니다. 그러나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알지 못할 때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와서 사기치고, 날로 먹으려고 합니다. 예전에 골동품의 가치를 잘 모르던 시절에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싼 값에 문화재들을 수집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몇 푼 집어 주고 귀한 것들을 가져갔지만 촌부들은 ‘저런 것을 왜 돈 주고 사는가?’ 하며 도리어 의아해 했습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성도들이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을 때 그냥 빼앗아 갑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깊이 뿌려져 있는 씨앗이 아니라면 마귀는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립니다.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마음 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요,](막4:15).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지 않는다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며, 마귀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긴 후에도 빼앗긴 줄도 모릅니다. 지금 여러분의 지갑 속에는, 아니면 장롱 속에는 늘 가지고 있는 것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잃어버리고도 잃은 줄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자동차 등록증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버린 것 같습니다. 막상 필요할 때에 찾아보니까 잃어버린 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빼앗겨 본 적이 있습니까? 구약의 에서를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삭의 장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장자권을 소홀히 여김으로 야곱에게 빼앗겼습니다. 후에 그는 자신이 받을 복 조차도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삭이 이르되, 네 동생이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아 갔도다.](창27:35). 에서는 빼앗긴 후에 분노했습니다. 마귀는 야곱보다 100배 1000배 더 간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복들을 간교하게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굳게 지켜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마음속에 숨겨야 하며, 말씀을 반복적으로 읽고 암송해야 합니다. [훈계는 네 생명인즉 그것을 굳게 붙잡으며 그것을 놓치지 말고 지키라.](잠4:13). 말씀은 생명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신분증이나 계약서나 자신의 사인(인감) 등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동차 열쇠 하나, 핑크 슬립 하나도 귀하게 생각하며, 굳게 붙잡고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집문서를 굳게 붙잡고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나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재산, 권리를 넘어서서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신분증보다 출생증명서보다 은행 통장이나 현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므로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지키는 것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별 가치도 없는 것을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며 지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평생토록 천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뒤늦게 발견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면 필생의 힘을 다하여 지키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말을 간직하고,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대하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아끼고 내게 소중한 것은 마음에 간직하고 지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 암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능 지수,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이는 명예를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 그것을 잃었을 때 생명을 잃은 것보다 더 슬퍼하며, 죽음을 택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권력입니다. 손아귀에 잡은 권세를 놓지 않으려고 남을 죽이고 자신을 죽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식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부모들이 수두룩합니다. 어떤 이는 재산입니다. 어떤 이는 몸입니다. 얼마나 몸을 아끼는지 손이나 발을 하나 절단하게 되면 차라리 죽이라고 소리칩니다. 우리 역시 동일한 성정(性情)을 가진 사람들이요, 동일한 몸을 입고 있는 사람들로서 이런 것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누구든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가장 아끼는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나 부모나 친구를 위해서 내어 주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사람은 더욱 위대한 사랑입니다. 아끼는 것을 누구에게 내어 드리는가? 누구에게 아낌없이 주는가? 를 통해 애정의 대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며 아끼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그 때 주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두려워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합니다. [그가 이르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이는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이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이제야 비로소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알기 때문이니라.](창22:12).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과 순종에 보상을 주셨습니다.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는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음이라.](창22:16).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언약을 기억하시며, 넘치는 보상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아끼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아끼는 것을 주님을 위해 내어 드렸다면 하나님이 아끼는 것을 간직하고 지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약속을 마음에 지키고 있었음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철저하게, 완전히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하와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지 못해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은 여러분의 자식이나 아내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이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아들만 주신 것이 아니라 성령도 주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셨다는 것은 저와 여러분을 향한 완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완전한 사랑!!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옛 세상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번째 사람 노아만 구원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2:5).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의 혼을 아끼시고 귀히 여기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지으신 온 천하, 온 세상 만물보다 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본래의 가지들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음이니 그런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실까 조심하라.](롬11:21). 그러나 주님은 교회를 귀히 여기시고 아끼시며 돌보십니다. 여러분은 선민 이스라엘이란 한 민족보다 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벧후2:4).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범할지라도 내어 쫓지 않으시며 끝까지 지키시고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천사들보다 귀한 존재들입니다. 죄를 범한 천사는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죄를 범한 인간을 위해서는 구주의 십자가의 피와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자신이 지으신 온 세상, 자신이 택하신 이스라엘, 하늘의 천사들보다 더욱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 달라고 하십니다. 죄인을 친구라 부르시고 자기 생명을 버리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13). 주님이 보여 준 사랑은 가장 큰 사랑이며, 완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 역시 그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실천할 동기를 얻게 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 놓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예수님이 행한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물을 포도즙으로 바꾼 표적이나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능력, 위대하심, 경이로움 등을 느끼지만 사랑을 깨닫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과 흘리신 피를 통해서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사랑 안에 거합니다. 피를 흘리고, 생명을 내어 놓고, 죽음을 통한 사랑만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보다 더 크고 위대한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이 사랑을 보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속에 지켜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 대한 기준을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얼마나 많은 헌금을 드렸는가? 얼마나 교회를 많이 세웠는가? 기도를 몇 시간했고, 금식을 몇 번이나 했는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 등이 주님을 사랑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 - 이것이 하나님이 평가 기준으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들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우리의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 (요14:23).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명령들을 지키라.](요14:15). 말씀을 지키는 것이 사랑의 증거요, 기준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합니다. 성령을 마음 속에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암송해야 합니다. 애양원 교회는 한센병(문둥병, 나병)으로 인하여 시각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성경 암송관이란 건물이 있습니다. 문둥병으로 사람들과 격리되어 이곳에 살던 환자들이 이방 저방 다니면서 무료하게 놀던 중 몇 사람이 모여서 성경을 외워보자고 한 것이 성경 암송반이 탄생하게 된 시초였습니다. 이 때가 1946년 경이었습니다. 1954년부터 몇 사람들이 성경을 본격적으로 외우기 시작했는데, 로마서를 외우고 옥중 서신을 외우고 신약을 다 외우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한 주간에 15절에서 20절을 외웠습니다. 이 분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성경을 외우고 자체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서로 교제하고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재단에서 1986년에 24평의 성경 암송관을 신축해 주어서 25명의 식구들이 모여 성경을 외우고 예배를 드리며 기도 모임을 갖고 있으며, 애양원을 찾아오는 분들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지금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한 주간에 5절에서 6절씩을 외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백하기를, 한센병에 걸려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고 눈이 안 보이므로 성경을 외워 신약을 다 외웠다고 말입니다. 말씀을 외우는 것과 기도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영광을 받았다고 간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보여 주고, 실천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어떤 것을 간직하고 지키는가를 보면 여러분의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중함과 가치를 제대로 안다면 말씀을 읽고 암송하는 일은 힘겹고 무거운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하지 못할까봐 두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정금보다 소중합니다. [참으로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또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10), [그러므로 내가 주의 명령들을 금보다 더 사랑하오며 참으로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시119:127). 자본주의 시대, 맘몬을 섬기는 이 시대에서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싶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교회도 다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없습니까? 돈이 있어야 선교도 하고, 교회 건물도 사고, 목사 월급도 주고, 교회 운영도 할 것이 아니냐고 반문(反問)하는 썩어 빠진 마음과 비뚤어진 입을 가진 자들이 수두룩한 시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정금보다 더 소중하고, 사모할 것이며,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정금을 얻는 일 때문에 예배를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돈벌이 때문에 말씀을 소홀히 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위선자들이 정금을 위해 주님을 섬기고, 정금을 벌 기회가 오면 기꺼이 말씀을 팽개쳐 버립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이는 지혜를 사고 파는 것이/재화가-merchandise/ 은을 사고 파는 것/재화-merchandise/보다 나으며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기 때문이니라.](잠3:14)고 했지만 이와는 반대로 경제 활동에 전념하느라고 말씀이 주는 재화(merchandise)들을 다 놓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생명의 말씀을 거하게 하여 그것이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다면 그 가치는 일년 연봉 아니 십년 연봉의 가치와 비교하겠습니까? [내 열매는 금보다 나으니 참으로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최상의 은보다 낫도다.](잠8:19). 왜 이토록 이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이 엉망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맘몬에 짝을 맺고, 말로는 믿음과 말씀을 외치면서 금은(金銀)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보여 지는 행동이 그렇습니다. 저의 눈이 틀렸습니까? 내일의 평안한 돈벌이를 위해, 내일의 비즈니스를 위해 좀 더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 하는 사람들, 오늘 예배에 나오지 못한 분들을 믿음 없는 인간들이라고 목사가 강단에서 성도들 욕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들립니까? 냉철하게 말씀의 거울을 가지고 자신을 판단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연약함을 충분히 이해하며, 동정합니다. 육신의 피곤함, 귀찮음도 충분히 압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말씀과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을 잘했다,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말로는 무엇이라고 하던 간에 그 행동은 금은을 말씀보다 더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금보다 귀하고 소중하게 여긴다면 정금을 버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는 것보다 말씀을 더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고 암송할 것이며, 마음 가운데 지킬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필요한 음식보다 귀합니다. [내가 그분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들을 더 귀히 여겼도다.](욥23:12). 배가 그들의 하나님인 사람들에게 이 말은 얼토당토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욥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일 먹는 일용할 양식보다 귀했습니다. 밥과 빵, 버터, 우유, 치즈, 고기보다 말씀을 더욱 귀히 여긴다면 여러분은 말씀을 암송하는 일은 아주 쉽고 가벼운 일이며, 즐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밥 먹는 일이 힘들다면 그의 육신은 깊이 병든 사람이거나 죽기 직전의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양식인 말씀을 먹는 일이 힘들다면 그의 영혼은 깊이 병든 중환자의 신세이거나 사경을 헤매는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여러분은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더 먹어야 산다는 신념으로 먹을 것입니다. 먹어야 산다! 이것은 인간사에서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육신의 양식을 먹고, 그 양식을 확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합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굶겨 죽입니까? 밥벌이 하는 것에 머리 쓰고, 힘쓰고, 신경 쓰는 것보다 말씀을 읽고 암송하는데 신경을 덜 쓰는 분들은 모두 육신적인 성도들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이 진리를 배우지 못한 성도들이라면 여러분은 이 진리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때로 주리고, 낮아지고, 곤란을 겪는 일은 사업 수행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며, 경제 상황이나 경기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갑자기 써비스가 엉망이 되었거나 경쟁업체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일용할 양식보다 귀하게 여긴다면 정작 먹고 살 양식은 저절로 해결되는 법입니다. 주님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걱정을 말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노략물보다 귀합니다. [많은 노략물을 얻은 사람같이 나는 주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나이다.](시119:162). 사람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성취를 볼 때 기쁩니다. 직장인은 한 달 중에 월급을 받는 날이 가장 기쁩니다. 선거를 치른 사람은 당선이 확정될 때가 제일 기쁘고, 시험을 본 사람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는 그 순간이 제일 기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노략물이란 바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댓가를 말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이 취한 전리품을 노략물이라고 합니다. 공부한 학생에게는 상장과 상품, 합격증이 노략물입니다. 직장인은 연봉과 승진이란 노략물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말씀입니다. 사업자가 이익을 남기는 기쁨이나 농부가 수확을 하는 기쁨이나 산모가 아이를 얻은 기쁨이나 장군이 승리한 기쁨보다 주의 말씀으로 인한 기쁨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기쁨의 근원입니다. 그는 노략물을 얻는 기쁨보다 말씀을 듣고 배우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말씀을 통한 기쁨을 맛본 사람이라면 최소한 노략물을 얻으려고 애쓰는 자보다 더 말씀을 읽고 암송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가치 있게 봅니다. [내가 주의 명령들을 사모하므로 내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119:131).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보지 않는다면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주님이 귀한 것을 맡겨 주시지 않습니다. 지키라고 한 것을 내동이치고, 업신여기는 자들을 신실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맡기신 것도 빼앗아 버리십니다. 마귀도 빼앗아 버립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언약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암송하는 대신 언약궤만 가지고 있었을 때 그들은 가진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언약궤가 성령의 검이 아닙니다. 언약궤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입니다. 언약궤에 있는 말씀을 내 마음으로 믿고, 붙들고 나갈 때 승리하는 것이지 마음은 텅 비워 두고 손에만 언약궤를 잡고 나가봐야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들은 블레셋과 싸우다가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습니다. 언약궤를 앞세워 전쟁에 나갔지만 그들은 승리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서 그것을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가져가니라.](삼상5:1). 이들은 말씀을 믿은 것이 아니라 궤에 능력이 있을 줄로 믿었습니다. 이들은 언약궤를 마술 봉처럼 여겼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비한 효능이나 신력(神力)이 쏟아져 나올 줄로 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우상처럼 믿었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해 먹으려고 했습니다. 덕분에 그들은 언약궤를 빼앗기고 원수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들은 십자가에 힘이 있는 줄 알고 목걸이로 만들고, 교회 앞에 세우고, 집에 벽에도 조그마하게 하나 걸어두지만 그것은 성물(聖物)이 아니라 자기감정을 이입한 우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말씀을 마음 속에 담아 두지 않으면 여러분은 성경을 원수들에게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인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언약궤를 빼앗깁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장식물로 생각하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 이용해 보려고 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이, 성경에 대한 확신 없이 여러분이 원수를 만날 때 그들은 학교와 세상에서 배운 고고학, 철학, 과학, 역사학, 문학, 진화론, 물리학 등의 갖가지 이론으로 무장하여 여러분을 노략할 것이며, 여러분의 손에서 성경을 완전히 빼앗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마음에서 지키지 못하면 손에서도 빼앗깁니다.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주신 하나님과 언약궤에 담긴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가 결국 언약궤를 빼앗겼듯이 성도들 역시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경을 지키지 않을 때 언제든지 세상에게 성경을 빼앗기고 맙니다. 성경을 손에서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지켜야 합니다. 성경 암송보다 말씀을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말씀을 지키지 않을 때 주님은 자신이 주신 것을 빼앗아 버리십니다.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경고를 보십시오. [[주]께서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러한 일을 행하였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내 법규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왕국을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왕상11:11). 말씀을 지키지 않을 때 왕국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왕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거듭날 때 들어가는 하나님의 왕국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희락과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을 때 여러분은 이 왕국을 잃어버리고 마음속은 황폐해지고 맙니다. 의(義)대신 불의가 들어옵니다. 희락대신 슬픔과 분노와 염려가 들어옵니다. 평강대신 걱정이 찾아옵니다. 왕국을 빼앗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솔로몬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집트와 정상 외교를 하고, 우호 조약을 맺고, 이웃 나라들과 노련한 외교를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를 늘리고 기병대를 조직하고 성을 쌓는 것이 왕국을 든든히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부(副)를 축적하고, 경제에 올인(all in)하는 것이나 교육에 힘쓰고 인재를 양성하는 등의 일이 나라를 반석 위에 굳게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수출 증대에 힘쓰고, 사회 기강을 세우는 일 따위도 부차적인 일입니다. 왕국을 든든하게 하고 원수들에게 빼앗기지 않는 일은 말씀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는 히스기야가 쓰러져 가는 조국을 일으키는 민족 중흥의 비결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주]께 굳게 붙어 그분을 따르는 일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명령들을 지켰음이더라.](왕하18:6). 말씀을 굳게 지키는 일이 왕국을 영속하는 비결임을 아셨다면 말씀을 읽고 암송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왕가의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함 받은 세대(世代)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벧전2:9a). 여러분이 마음 속에 임한 하나님의 왕국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지 못한다면 문자적으로 임할 하늘의 왕국 역시 통치할 권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미래에 문자 그대로 이 땅에서 통치할 왕들이 될 사람들입니다(계1:6,5:10). 성경은 분명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6).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음이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로다, 하더라.](계5:10). 솔로몬이 말씀을 지키지 않음으로 왕국을 빼앗겼듯이 여러분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왕국을 통치할 권리인 왕관을 빼앗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왕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마음속에 말씀을 지키는 일이 왕관을 빼앗기지 않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은행 통장 비밀 번호를 찾느라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굳게 잡고 있다는 것은 완전히 외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암송되어 있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느슨합니다. 머리로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기억해야 하고, 몸이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이 입에 붙어 있으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입이 말한다고 할 정도로 줄줄 나옵니다. 손에 익어 있으면 손이 알아서 쓴다고 할 정도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굳게 붙잡으라는 말은 이런 정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을 굳게 붙잡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일은 기쁨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굳게 지켜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구약 성도들에게는 안식일을 지키라, 유월절을 지키라와 같이 규례가 많았지만 신약 성도들은 그런 것은 없습니다. 반면 신, 구약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의 성도들에게 굳게 지키라고 하신 것은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신4:2).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믿음의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 우리는 즉시 믿음의 뿌리가 되고, 출처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 곳에 여러분의 믿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고, 그것이 매 순간 기억나서 그대로 행하게 된다면 그것이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같은 일을 똑같이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그것을 의지함으로 할 때 주님은 믿음을 칭찬하시고, 복주시고, 좋은 평판(good report)을 주시고, 증거해 주시고, 기뻐하시며, 보상을 주십니다. [그런 까닭에 이 날 내가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법규와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여야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자손이 잘되고 [주] 네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게 되리라.](신4:40). 우리는 얼마나 주님이 자주 반복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암송하는 일은 주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날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가서 소유할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소유할 것이며](신11:8). 마음속에 말씀을 지키면 말씀의 인도를 받게 되며, 말씀의 조명을 받게 되고, 말씀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되며, 말씀이 나를 강건하게 해 줄 것입니다(행20:32). 사도 바울은 제자들에게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을 주리라.](행20:32)고 선포했습니다. 말씀이 세워주고, 거룩히 구별해 줍니다. 말씀이 죄로부터 우리를 씻어 줍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씀이 복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암송해야 합니다. 읽지 않고 외울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히 반복적으로 읽고, 듣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몸에 자연스럽게 배이게 되고, 마음에 새겨지게 되도록 그렇게 암송하십시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백성들을 향해 수십 차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 암송에 관한 것입니다. [너는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듣고 지키라. [주] 네 하나님의 눈앞에서 네가 선하고 올바른 것을 행하면 너와 네 자손이 영원토록 잘되리라.](신12:28). 여러분이 말씀을 듣지만 마음에 지키지 않을 때 마귀는 즉시 빼앗아 갑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게 이렇게 배웠습니다. [아버지도 나를 가르쳐 내게 이르기를, 내 말들을 네 마음에 간직하라. 내 명령들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잠4:4). 복된 삶, 승리하는 삶, 열매맺는 삶, 성공적인 삶의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내 말들(words)"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키면 됩니다. [내 명령들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7:2). 말씀을 지키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고, 주님이 주시는 왕국을 얻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들을 얻기 위해서 말씀을 암송합니다. 교회에서 성경 읽기와 묵상과 암송을 강조하지 않는 채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일, 시키는 일이나 잘 하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잣대로 설정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섬김과 봉사는 은혜요, 은사입니다. 그러나 말씀 사역을 팽개쳐 둔 채 식탁을 돌보는 일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 두고 상 시중 드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6:2b). 이는 옳은 말입니다. 때로 사람들과 형제들로부터 ‘매일 앉아서 성경이나 붙들고 있지 하는 일은 없는 사람’이란 비난과 욕을 먹더라도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섬기는 일로 분주한 마르다보다 앉아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마르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곳 교회 성도들은 어쩐 일인지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찮은 문제로 핑계거리를 만들어 예배를 빠지고, 기도 모임을 빠집니다. 사람이 하는 부탁이나 일거리는 시간을 내고,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는 소홀하다는 것이 정상입니까? 이는 완전히 마귀 들린 짓입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일, 말씀을 소홀히 하게 하는 일이라면 눈에 수입이 보여도 포기하는 것이 영적 상식입니다. 하물며 수입도 되지 않는 일을 하느라 빠진다는 것은 마귀 들린 사람의 정신 상태이지 건전한 생각의 영을 지닌 성도의 정신이 아닙니다. 즉시 모두 마귀의 올무에서 깨어나도록 기도하십시오. 오늘 말씀의 권면을 들으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복 주시는 것은 마음이 직장과 가정과 세상일에 빼앗길 때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지킬 때입니다. [이것은 곧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모든 길로 걸으며 그분의 명령과 법규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살고 번성(蕃盛)할 것이요, 또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가서 소유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니라.](신30:16). 하나님이 복 주시면 살고 번성하며, 복을 받습니다. 복 받게 해 달라고 금식, 철야 기도하지 않아도 주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문서로 여러분에게 주셨고, 성령께서 도장을 꽉 찍어 주셨습니다. 이 교회에 몇 년 다닌 분들은 이제 약간의 성경 지식이 생겼을 것입니다. 마음이 조금씩 교만해지고, 거만해질 때입니다. 성숙과 성장을 이루는 대신 약간씩, 조금씩 서서히 겉멋이 들고 있습니다. 이는 성장의 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조금 가진 것을 많이 가진 줄 알고 우쭐대거나 자족하고 있다가는 있는 줄 아는 것까지 빼앗길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있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19:26). 이제 이곳에서 가장 많이 배우신 분이 약 3년 정도 되었는데 갓 걸음마를 떼고 옹알이를 하다가 몇 마디 말문이 트인 시점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말을 배우는 시기요, 정상적인 대화를 배우는 그런 정도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듣기만 했다면 이제는 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암송함으로 마음 속에 가지고 있게 되면 “있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란 말씀대로 계속 말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고 자만하고 이제 말도 할 줄 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처럼 될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을 섬기며 가르치는 목자로서, 교사로서, 아비로서 드리는 엄중한 주의 사항입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원리는 세상에서만 통용되는 진리가 아니라 영적 진리이기도 합니다. [이는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아서 더욱 풍성하게 될 것이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길 것임이라.](마13:12). 이것은 므나와 달란트 비유입니다. 주님은 이와 동일하게 말씀에 대한 비유에도 그대로 적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주의하라. 이는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있는 줄로 여기는 그것까지도 빼앗길 것임이라, 하시니라.] (눅8:18). 여러분이 지금 자신이 어느 정도 알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속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적은 말씀과 믿음은 금방 바닥을 드러낼 것이며,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처음에는 쌓이지 않습니다. 땅에 다 녹아 버립니다. 그러나 땅이 얼어 있는 곳은 적은 양이라도 쌓입니다. 비가 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땅에 스며들어 버리고, 고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고이기 시작하면 물은 차올라 발이 젖고, 넘쳐흐르기 시작합니다. 말씀 암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안에 그릇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읽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외워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말씀은 여러분 안에 자유로운 행로를 얻어서 활동할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을 위로하고, 단련하며, 인내와 소망을 주며, 깨끗하게 할 것이며, 빛을 줄 것입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서처럼 자유로운 행로를 가져 영광스럽게 되고](살후3:1).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고, 외우라는 것입니다. 성경 암송함으로 마음속에 말씀을 간직합시다. 이미 시작하신 분들은 말씀을 암송할 이유와 동기를 새롭게 하시고 더욱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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