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을 위하여
말씀: 행1:14
부흥을 위한 기도 다섯째 날입니다.
부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교회의 부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분쟁과 분열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 일치, 종교 통합 등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보니 ‘분리’를 매우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적 분리 즉 성별’은 분명히 성경적인 진리이지만 다툼과 분열은 육신의 행위요, 죄악입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분리와 분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흑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나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입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어찌/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는 것이 아니리요?](고전3:3). 거듭나긴 했지만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모습을 벗어 버리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뿐 아니라 비약적인 도약을 꿈꾸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굼벵이는 아무리 굴러도 멀리 가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인가 나비가 되는 순간적인, 비약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육신적인 우리 교회를 영적인 교회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설 수 없으며, 끝이 나고 맙니다. 이것은 가정, 세상, 마귀의 왕국, 교회 등 어디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또 만일 어떤 왕국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왕국은 서지 못하고 만일 어떤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은 서지 못하며 만일 사탄이 스스로를 대적하여 일어나 분쟁하면 서지 못하고 끝이 나고 마느니라.](막3:24-26).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면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도 주님이 함께 계시며, 은혜를 주시며, 강력하게 역사하시지만 분열이 있고, 다툼이 있고, 하나 되지 못할 때에는 만 명이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능력은 수의 많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돋보기의 원리를 잘 알 것입니다. 광선을 한 곳에 모으면 열이 되고, 불이 됩니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는 세상에서나 영적으로나 정확한 진리입니다. 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머리 수(數)에 의지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를 보십시오. 32,000명이 모였지만 모두 돌려보내고 300명으로 승리를 주셨습니다. 아사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아사가 [주] 자기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많은 사람들로 돕든지 능력이 없는 자들로 돕든지 주께는 문제가 되지 아니하나이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는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으로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음이니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14:11). 사람들은 수가 많아야 부흥했다고 생각하지만 부흥은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하나가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 명이 있어도 흩어져 있는 것보다 두셋일지라도 하나 된 것이 더 크고 강합니다. 기도를 하든, 전도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 함께 동역하고, 합심할 때 능력이 있고 그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부흥은 마음이 하나 되는데서 시작됩니다. 삼겹줄은 강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자기의 수고로 인하여 좋은 보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한 사람이 자기 동료를 일으켜 세우려니와 홀로 있는 자는 넘어질 때에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를 도와서 일으킬 자가 없기 때문이로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게 되거니와 홀로 있으면 어찌 따뜻하랴? 누가 그를 쳐서 이기면 두 사람이 그와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4:9~12).
우리는 타협과 통합을 거부하지만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사랑 안에서는 하나가 되기를 사모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합의하지 아니하고서야 어찌 함께 걷겠느냐?](암3:3). 부부라 할지라도, 부자지간이라 할지라도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 사람아, 그분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네게 보이셨나니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6:8). 주님과 마음이 하나 되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강력했습니다. 주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의 능력은 상상을 불허합니다. 다윗이 주님과 마음이 합해지고, 하나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성령과 하나가 되며,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동행할 때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부흥을 위한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성도의 하나 됨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했으며, 부흥했던 초대 교회의 특징을 들라면 ‘한 마음’입니다.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임하기 전에 기도할 때 하나가 되어 기도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과 함께 한 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행1:14). 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이들의 습관은 아름다운 전통이었으며, 능력으로 역사하는 비결이었습니다. 모임 역시 한 마음이 되어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매 그들이 다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니](행2:1). 각자 딴 생각을 하면서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경배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영적 희생물을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한 마음이 되어 모여야 합니다. 기도의 희생물, 찬양의 희생물, 구제의 희생물, 감사의 희생물, 기쁨의 희생물을 들고 나와 주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나오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박해를 받을 때도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듣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주}여,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요,](행4:24).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4:31을 보십시오. 한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기도한 결과는 성령 충만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기를 마치매 함께 모인 곳이 흔들리더니 모두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니라.] (행4:31). 합심하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크고 능력 있는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에서 교훈과 훈계를 받고, 본을 삼아 실천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은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도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했고, 성령을 받은 후에도 그러했고, 박해를 받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교제 역시 한 마음이 되어 교제했습니다. [또 날마다 한 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나누면서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으며](행2:46). 한 마음이 되는 것이 부흥의 시작입니다. 모든 성도가 다 같은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빌립이 행한 기적들을 사람들이 듣고 보며 한 마음으로 빌립이 말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더니](행8:6). 사람마다 다르게 듣지 않았습니다. 모두 한 마음으로 빌립이 전한 것을 들었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소원, 기도 제목을 보십시오. 주님이 간절히 기도한 기도는 제자들의 하나됨이었습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요17:11,21,22)는 우리 주님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주님은 계속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하나가 될 때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교회가 분열되고, 성도들이 서로 싸우고 다툴 때 예수 그리스도는 증거 되지 못합니다. 주님이 성령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2).
로마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를 보십시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서로 같은 마음을 갖게 하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15:5~6).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같은 마음을 갖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간청 역시 성도의 하나 됨입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판단으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고전1:10). 고린도 교회를 향한 마지막 권면을 보십시오. [끝으로 형제들아, 잘 있으라. 완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한 마음이 되며 평안히 지낼지어다. 그리하면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후13:11). 분열된 마음, 분열된 교회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성장을 위해서도 하나 됨이 필요합니다. 믿음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長成)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엡4:13). 서로 다른 믿음, 다른 지식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과 지식의 격차가 커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는 동일한 믿음, 동일한 지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체들입니다. 손발은 커지는데 다른 부분은 커지지 않고, 신체의 특정부분만 지나치게 발달하고, 어떤 부분은 전혀 발달하지 못하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머리로부터 몸의 모든 지체는 함께 영양을 받고,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자매 둘이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순두게와 유오디아란 여인이 마음이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빌4:2). 사도 바울은 이 둘의 이름을 거명하며 하나가 될 것을 명했습니다.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할지니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너희에게 가서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이 복음의 믿음을 위하여 한 마음으로 함께 힘쓰며](빌1:27). 한 마음으로 함께 힘쓰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행실이란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일치하여 내 기쁨을 성취하라.](빌2:2).
사도 베드로의 권면 역시 동일합니다. 교회를 향한 그의 마지막 권면을 들어 보십시오. [끝으로 너희는 다 한 마음이 되어 서로를 동정하며 형제로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예의바르게 행하라.](벧전3:8). 이 말씀의 전후 문맥은 그리스도인의 부부 관계,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대한 권면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면 주님께서는 다른 마음으로 모두 하나 되게 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종교 통합, 정치 통합, 경제, 문화 통합 등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마음이 되게 하시고 그들의 왕국을 그 짐승에게 내어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들이 이루어지기까지 하셨음이라.](계17: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던가,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가 되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던가? 성령을 배제한 채 하나가 되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든가 진리를 배제한 채 하나가 되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 둘에 중립 지대는 없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 암송 구절-
요17:11,21,22; 롬15:5,6, 벧전3:8
◈ 생각해 볼 점-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는가?(요17).
하나 됨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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