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잠 4:7
잠언 4:7 "지혜는 으뜸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으로 명철을 얻을지니라."
성경을 암송할 때 누리는 복 가운데 하나는 지혜와 지식을 얻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어떤 물질적인 다른 보화나 재능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말씀 암송을 통해서 생겨납니다. [의로운 자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의 혀는 판단의 공의를 이야기하며](시37:30)라고 말합니다.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한다는 점에서 볼 때 지혜를 말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지혜의 말씀이 가득하고, 지혜의 영이 가득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내 입이 지혜를 말하리니 내 마음의 묵상은 깨달음에서 나리로다.](시49:3). 입이 지혜를 말한다는 것은 말씀을 읽고, 암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입은 지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 암송을 제쳐두고 지혜를 논한다는 것은 마치 연료 없이 불길이 타오르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씨를 뿌리지 않는데서 거두려는 것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지혜는 최상의 보화입니다. [지혜는 으뜸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으로 명철을 얻을지니라.](잠4:7)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돈을 벌지니라, 명성을 얻을지니라, 인기를 얻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최상이라고 말합니다. 건강을 최상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최상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돈이 최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들을 최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사랑을 최상의 은사로 규정합니다. 구약에서는 지혜를 으뜸이라고 말합니다. 지혜가 으뜸입니다.
지혜는 세상의 꾀나 모략과는 다릅니다. 지혜는 지능 지수와 연관된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수직적이란 것입니다. 밑에서부터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임하는 것입니다.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혜를 구하지만 지혜는 다른 모든 영적인 선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욥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명철(明哲)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사람이 그것의 값을 알지 못하며 산 자들의 땅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도다. 깊음이 이르되, 그것이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도 이르되, 그것이 내게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그것은 금으로도 얻지 못하며 은을 달아서도 그것의 값을 치르지 못하리로다. 오빌의 금이나 귀한 줄마노나 사파이어로도 그것의 값을 매기지 못하겠고 황금과 수정이라도 그것과 견주지 못하며 정금 보물로도 그것을 바꾸지 못하고 산호나 진주는 말할 필요도 없나니 지혜는 루비보다 더 값지도다. 에티오피아의 황옥이라도 그것과 견주지 못하며 순금으로도 그것의 값을 매기지 못하리로다. 이러하거늘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욥28:12-20). 두 번에 걸쳐 그는 지혜는 어디서 찾는가? 지혜는 과연 어디서 오는가? 라며 탄식을 합니다. 이것은 구도자의 자세입니다. 욥은 진정한 지혜를 얻고, 찾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 자신이 아는 어떤 보석들보다 귀하고, 견줄 수 없는 그런 지혜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서 오는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해답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욥 역시 해답을 얻었습니다.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곧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니라.](욥28:28). 지혜는 사람과 사물의 문제가 아니란 것입니다. 지혜는 사람과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비롯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혜는 주님께서 우리 속 중심부에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속 중심부에 지혜를 넣어 주었느냐? 혹은 누가 마음에게 명철(明哲)을 주었느냐?](욥38:36).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악을 피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지혜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지혜는 마음의 속 중심부에 진실함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보소서, 주께서는 속 부분에 있는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나로 하여금 은밀한 부분에 있는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시51:6).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이는 {주}께서 지혜를 주시며 그분의 입에서 지식과 명철이 나오기 때문이니라. 그분께서는 의로운 자들을 위하여 건전한 지혜를 모아 두시며 곧바르게 걷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고](잠2:6-7). 지혜는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분의 호흡이 담긴 말씀이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입에서 나온 지혜란 우리가 들고 있는 이 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건전한 지혜를 모아 두셨다고 하는 것은 66권이나 되는 성경을 단권으로 묶어 주셨음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언자들의 말을 당대에만 울려 퍼지게 하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 두셨습니다. 지혜는 성경으로부터 옵니다. 성경은 건전한 지혜를 모아둔 말씀입니다.
지혜의 시작은 주를 두려워함에서 비롯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모든 자에게는 좋은 명철(明哲)이 있나니 그분을 찬양함은 영원토록 지속되는도다.](시111:10). 마음속에 주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람은 아직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보란 뜻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까불어 대도 바보입니다. 이것은 저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때로 성경으로 어떤 일을 판단하면 ‘판단하지 말라.’고 불쾌해 하는 성도들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나는 바보입니다.’라고 광고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앞에서는 누구라도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가 비록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인용해서 말할 때는 그것은 그 아이의 말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엎드려야 합니다.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죄악된 변명 가운데 하나는 ‘성경대로 사는 사람이 누가 있어!’란 말입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수직적 관계의 틀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 관계로 틀어 버리는 바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에 두려워 떨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마음속에 성경을 암송하고 간직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의 원천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사람의 입의 말들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원천은 흐르는 시내와 같으니라.](잠18:4). 이는 우리 안에 있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우물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은 우리 안에 우물을 주십니다. 우리 배에는 생수의 강이 흐르도록 하십니다(요7:38). 이것이 지혜의 원천입니다. 성도들 안에는 주님이 계시고, 주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가득합니다.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3).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가 되십니다(고전1:30). 이것을 길어 올리는 자들이 명철한 자요, 지혜 있는 자입니다(잠20:5).
잠언 기자는 [지혜는 으뜸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으로 명철을 얻을지니라.](잠4:7)라고 했습니다. 왜 지혜를 으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혜는 영적인 삶의 원리요, 원칙과 같은 것입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하다고 말한 바울의 고백처럼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진리의 지식을 활용하는 지식의 길잡이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지식을 활용할 줄 아는 힘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재화(merchandise)가 은의 재화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지혜를 거래하는 것이 은을 거래하는 것보다 나으며 그것의 이익이 정금보다 나으니라. 지혜는 루비보다 귀하니 네가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이 그것과 비교될 수 없도다.](잠3:14-15). 은으로 남길 수 있는 이익, 은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지혜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고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유산을 금은으로 백만 달러, 천만 달러를 남기는 것이 유익합니까? 자녀에게 백만 달러, 천만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남기는 것이 낫습니까? 교육학 개론서에 ‘원리 이해, 원리 학습’이란 말이 있습니다. 답을 가르쳐 주지 말고 답을 얻는 과정, 풀이 과정을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공식을 외우게 하는 것보다 공식을 이해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 중에 하나가 ‘고기를 몇 마리 잡아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지혜란 바로 ‘원리에 대한 이해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선물로 주실 수 있습니다. 손에 안겨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혜를 주심으로 그것을 자연스럽게 얻게 하십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끈기 있게 배우게 하십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를 얻을 때 천금을 소유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지혜를 으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를 하는 것은 단기간에 무엇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 삶의 원리요, 승리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척척 안겨 주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빈민들에게 쌀을 원조해주는 것보다 농사를 가르쳐 주는 것이 낫고, 몇 푼의 생활비를 주는 것보다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주는 것이 나은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넙죽넙죽 베풀어 주시는 것보다 인내와 믿음과 기도로 연단과 시련을 통과하게 하심으로써 영적 원리를 습득하게 하시며, 배우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성경을 암송하게 되면 이런 지혜를 얻게 됩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가! 명철을 얻는 것이 오히려 은을 택하는 것보다 더 낫도다!](잠16:16). 이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러나 가치관이 전도(顚倒)된 사람들은 돈으로 지혜를 사려고 합니다. 변호사를 고용하고, 회계사를 고용하고, 전문가들을 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만 있으면 공부 잘 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비서나 참모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금을 얻는 것이 지혜를 얻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돈을 가진 사람들의 돈을 사용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얼마든지 펼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사람들의 것을 하나도 써먹지 않고도 하늘의 창고 열쇠를 맡은 선한 청지지로서 모든 일을 해 낼 줄 압니다.
지혜가 으뜸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지혜는 사람을 보호합니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를 보존하리라. 그것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를 보호하리라.](잠4:6). 사람을 지켜 주는 것은 권력이 아닙니다. 군대가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친구가 아닙니다. 나를 보존해 주는 것,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은 지혜입니다. 왕조 국가의 절대 권력을 지닌 왕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최후는 비참합니다. 지혜를 지닌 왕들은 번성했지만 지혜 없는 절대 권력, 부(富)는 자신과 가족들을 파멸로 몰아갔습니다. 아합 왕조나 헤롯을 보십시오. 그들의 권세가 자신들을 지켜 주었습니까? 파라오가 자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까? 신하들에게 죽고 적들에게 죽고, 심지어 자식들에게 죽은 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암송은 나를 지켜 주는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일개 히브리 노예였던 요셉을 보존하고 보호했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였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유대 청년들이 왕궁에서 죽임을 당할 위기에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보호했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다니엘의 지혜였습니다. 반대로 지혜가 없어서 멀쩡한 생명과 재산을 다 날려 버린 나발이나(삼상25), 왕위 계승자였던 압살롬은 반역자가 되어 청년의 나이에 몸에 단창이 세 개나 관통당하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경 암송이 어떻게 사람에게 지혜를 줍니까? 이는 말씀이 지혜와 지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지혜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回心)시키고 {주}의 증언은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19:7). 때려도 안 되고, 가르쳐도 안 되는 바보를 지혜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 암송입니다. 성경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가면 그는 지혜롭게 됩니다. 꾸준히 성경을 암송하면 그는 놀랍게 지혜를 소유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시119:98).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것이 마음속에 암송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성경을 암송하고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속 중심부에 지혜와 명철을 부어 주실 준비가 완료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는 방법은 말씀을 암송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지혜를 얻는 방법은 주님께 구하면 됩니다(약1:5).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를 얻는 방법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잠8:13). 이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이루어 주는 일이 바로 성경 암송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말씀이 있으면 악을 피하게 되고, 불법을 미워하게 되며, 청년의 정욕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속에 말씀이 거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마음속에 말씀이 거하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모든 일이 성경 암송이란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풍성하다는 것은 곧 영적 부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 교회가 말씀이 흥왕하고 자라나 강력하게 성장했음을 봅니다. 은혜의 말씀은 사람을 든든하게 세워주며, 유업의 상속을 얻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합니다(행20:32).
성경 암송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되면,
첫째, 자기 집을 세우게 됩니다. [지혜가 자기 집을 짓고 자기의 일곱 기둥을 깎아 만들며](잠9:1).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을 일으키는 비결은 성경 암송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버지가 되고, 지혜로운 아내가 되고, 지혜로운 아들이 있으면 그 집이 바로 영적으로 명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지혜가 있었다면 그의 가문이 그토록 빨리 멸문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지혜가 있었다면 그들은 그렇게 빨리 완전히 망하는 화는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대로 한 사람의 지혜로운 사람으로 집이 굳건해 집니다.
요즘 각처에서 가정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남편 기 살리기 운동’, ‘아버지 힘내세요!’ 이런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영육 간에 다 중요합니다. 그 핵심은 지혜입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굳게 세워지며](잠24:3). 남편이 어리석으면 그 집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무슨 시도를 하고 무슨 묘안을 짜내어도 시행착오의 연속이며, 악화일로를 치닫습니다. 악순환의 반복만 기다립니다. 형제들은 영적 제사장으로서 가정에서 영적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은 모두 믿음의 가장들이었습니다. 특히 요셉은 지혜에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덕분에 히브리 민족이 그로 인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자매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형제가 믿음이 훌륭해도 여자 잘못 만나 패가망신(敗家亡身)한 이야기는 세상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내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는 이 교회를 보면서 ‘정상적인 영적인 가정’이 없이는 정상적인 지역 교회를 세우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지난 4년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지혜로운 여자는 다 자기 집을 세우되 어리석은 여자는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무느니라.](잠14:1). 나발에게는 아비가일이란 지혜로운 자매가 있어서 멸문을 피했지만 아나니야에게는 삽비라라는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자매가 있어 함께 망했습니다. 욥은 어리석은 아내의 말을 책망했지만 아담에서부터 시작되는 아내 된 자매들로부터 비롯된 재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한나, 엘리사벳, 룻, 에스더와 같은 믿음의 자매들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지혜를 얻어 자기 집을 세우는 자매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행복을 얻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는 일은 고된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입니다. 매일 그 짓을 어떻게 하는가? 란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골수에 양약이 되고, 혼에 달고 단 벌집이 됩니다. 참된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혜를 찾는 자와 명철을 얻는 자는 행복하나니](잠3:13). [지혜는 그것을 붙잡는 자들에게 생명나무니 그것을 간직하는 자는 다 행복하도다.](잠3:18). 여러분은 어디서 행복을 맛봅니까? 자라나는 아이들, 불어나는 재산 증식, 보람된 직장 생활.... 그런 것입니까? 물론 그런 것들에서 어느 정도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거의 알지 못합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욥기에는 하나님이 바로 잡아 주시는 자를 행복한 자라고 합니다. [보라,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자는 행복한 자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하나님의 말씀은 교리와 책망과 바로 잡음이 목적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자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죄를 짓되 가난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는 행복하니라.](잠14:21). 긍휼을 베푸는 자입니다. 또 있습니다. 주를 신뢰하는 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문제를 지혜롭게 다루는 자는 좋은 것을 얻으리니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는 행복하니라.](잠16:20).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지혜를 찾는 자, 지혜를 간직하는 자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자요, 행복을 체험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혼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혼을 사랑하나니 명철을 지키는 자는 좋은 것을 얻으리라.](잠19:8). 말씀을 암송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입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함으로써 명철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나를 대적하여 죄를 짓는 자는 자기 혼을 해치나니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8:36)라고 했습니다. 혼이 가장 갈급해 하는 것은 육신을 만족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은 말씀의 양식, 성령의 생수를 갈급해 합니다. 혼은 지혜를 구합니다. 지혜를 얻을 때 혼은 만족하게 됩니다.
넷째, 지혜를 얻는 것은 보상을 얻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너는 꿀을 먹으라. 그것이 좋으니라. 벌집을 먹으라. 그것이 네 입맛에 다니라. 지혜를 아는 것이 네 혼에게 이와 같으리라. 네가 그것을 얻으면 보상이 있겠고 너의 기대하는 바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4:13-14). 말씀 암송을 통해 지혜를 얻으면 그에 따른 보상은 말로 다할 수 없게 됩니다. 말씀 암송은 확실한 기도 응답을 보장합니다. [너의 기대하는 바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암송이야말로 바른 마음으로 바른 기도를 하는 것을 돕습니다. 지혜롭고 깨닫는 마음을 받았던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가 누렸던 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이 구하는 복은 물질적인 부(富)나 권세나 명예가 아니라 영적인 복, 믿음의 보상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은 ‘자랑의 관(冠)’입니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우니라.](잠11:30). 혼들을 얻는 것이 보상입니다. 여기에는 주님 오실 때 주어지는 관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관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 있을 바로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우리가 구원한 혼들을 저 하늘에서 만나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는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궁창의 광채같이 빛납니다. 그것도 영원토록 빛납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궁창의 광채같이 빛나고 많은 사람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12:3). 이것이 지혜를 알면 기쁘고, 지혜를 얻으면 이와 같이 보상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모두 지혜로운 자요, 보상이 있습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여러분은 모두 혼을 이겨 오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있는 말씀들을 내 입술을 통해 증언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직무요, 이런 사람이 지혜를 얻은 사람입니다. 전도자에게는 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 죄인을 그의 잘못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을 그가 알게 할지니라.](약5:20). 복음을 듣고도 구령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무슨 논리를 펴든 그는 배교한 사람이요, 타락한 사람입니다. 그는 지혜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다섯째,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아버지를 기쁘게 합니다. [누구든지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 아버지를 기쁘게 하나](잠29:3a).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지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 자녀들의 지혜, 육신의 지혜, 마귀에게 속한 지혜, 땅에서 나는 지혜는 정욕적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 종류의 지혜가 나옵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요, 땅에 속한 것으로 관능(官能)적이며 마귀에게 속한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거기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느니라.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순수하고 다음으로 화평하며 부드럽고 간청을 잘 들어주며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하고 차별이 없고 위선이 없나니](약3:15-17). 세상 사람들이 빛의 자녀들보다 지혜롭다고 말할 때 지혜는 땅에 속한 것, 관능적인 것, 마귀에게 속한 것을 말합니다. 반면 말씀을 암송할 때 얻는 지혜는 위로부터 난 지혜를 말합니다.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지혜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사랑의 대상은 내 마음에 간직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암송하는 일은 성경을 사랑할 때 가장 쉽고도 효과적이 됩니다.
여섯째, 지혜는 상속과 더불어 좋은 것입니다. [지혜는 상속재산과 더불어 좋은 것이니 해를 쳐다보는 자들에게는 지혜를 통하여 유익이 있도다.](전7:11). 지혜는 좋은 것입니다. 지혜를 통해 유익이 있습니다. 말씀 암송은 단지 성경 지식을 기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때로 성경을 많이 공부했다,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이 거만하고 교만한 영을 지닌 채 갖은 악을 다 행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마치 심판석에 앉은 사람처럼 형제들을 판단합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지혜입니다. 영적인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유업의 상속을 받게 합니다.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 유업을 주리라.](행20:32).
하나님이 주시는 상속은 지혜와 더불어 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상속을 얻습니다. 지혜로운 아들, 지혜로운 아버지, 지혜로운 아내가 되어 집을 세우고, 보상을 얻고 상속을 얻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빕니다.
일곱째, 지혜는 지도하는 일에 유익합니다. [쇠(연장)가 무디어졌는데도 사람이 날을 갈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더 많은 힘을 들여야 하거니와 지혜는 지도하는 일에 유익하니라.](전10:10). 무슨 일이든지 준비가 중요하고, 연장이 중요하듯이 영적인 일에도 이런 준비와 날이 잘 선 연장이 필요합니다. 날을 갈지 않는 톱이나 도끼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날을 갈고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말씀 암송을 통해 꾸준히 말씀의 날을 갈아야 합니다. 성령의 검이 이빨 빠진 칼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혜는 바로 연장과 같습니다. 지혜는 일을 하는데 도구요 길잡이입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루 한 구절이라도 꾸준히 암송하면 그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자기 서재에 있는 만권의 책을 숙독한 열정적인 독서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쓴 ‘목회자 후보생들에게’란 책에는 ‘한 권의 책을 마스터하라. 한 권의 책에 정통한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지혜의 보고입니다.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지혜를 얻기를 구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암송하십시오. 그 말씀들의 인도함을 받고, 조명을 받기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일을 하기 전에 일꾼들을 준비시키고, 일꾼들에게는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는 모든 일에 다 필요합니다. 성막을 만드는 일에도 지혜가 필요하고 교회의 집사 일을 하는데도 지혜가 필요하고 목회자의 일을 하는 데나 가사를 돌보는 일이나 학업을 하는 일이나 직장 일이나 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란 주님이 지혜의 영으로 충만케 한 사람입니다. [너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 곧 내가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게 한 모든 자에게 말하여](출28:3a).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그는 지혜의 영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신34:9). 그런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의 영을 받았으니 이제는 막힐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도다! 하며 노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의 영을 받은 뒤에 여호수아가 맡은 책무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거기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공의 보장을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수1:8). 여호수아는 성경을 읽어야했고, 그 책에 있는 내용을 묵상하고 지켜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 성령의 기름부음과 권능을 받았으면 “이제 됐다! 기도만 하자. 은사를 발휘하자!”가 아닙니다. 그때부터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암송해야 합니다. 성령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만 일하시고 조명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지혜를 갖추면 우리는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 지식을 갖추고 지혜로운 자가 누구냐? 그는 지혜의 온유함으로 선한 생활에서 나오는 자신의 행위를 보일지니라.](약3:13). 선한 생활에서 나오는 행위가 없는 그는 지혜로운 자가 아닙니다. 지혜는 행위의 열매들로 나오며, 그 자녀들로 인해 의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들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느니라, 하시니라.](눅7:35). 지혜의 열매가 바로 지혜의 자녀들입니다. 교리적으로는 주님께서 자신을 일컬어 지혜를 의인화(擬人化)하신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적용할 때 지혜는 반드시 자녀를 낳듯이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의 지혜는 말로서 판정 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로 판정 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지혜가 어디서 오는가? 지혜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성경 암송을 통해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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