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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부흥 90 - 34. 돌이키소서!
말씀: 렘 31:18



부흥을 위한 기도회 삼십 사 일째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복을 주소서. 은혜를 베푸소서. 긍휼을 허락해주소서, 도와주십시오! 등의 기도를 많이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기도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란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돌이켜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들도 있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돌이켜 주셔야 할 것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에 처하면 좋았던 시절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 번도 좋은 시절이 없었다는 사람도 어떤 이상을 꿈꾸며 그런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죄인들도 “나도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후회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멀어질 때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타락하고 방황할 때 그들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을 골몰합니다. 선생들은 타락하는 아이들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고민합니다. 알아서 돌이키고, 회개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당사자는 당사자대로 고생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속이 타 들어갑니다. 구약의 대언자들은 범죄하고도 회개치 않는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를 주께서 돌이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빨리 마음과 뜻을 돌이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잘되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탄식하셨습니다. [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오 이스라엘이여,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면 /얼마나 좋을까/.](시81:8). 누구라도 주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는 치유함을 받습니다. 회복됩니다. 사랑을 받습니다. 새롭게 됩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분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사람들은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쉽게 회개하고 돌아설 것이라면 죄가 그리 무서운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권세는 사망의 권세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마귀의 올무는 그리 헐렁하지 않습니다. 설득을 해도 안 되고, 설명을 해도 안 되고, 얼레고 달래도 안 되고, 매를 들어도 잘 안 되는 것이 죄 문제입니다. 회개를 명할 때 모두 회개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호세아의 권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옳다. 네 말대로 우리 모두 주께 돌아가자!”하며 결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돌아오기는 고사하고 주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여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자기 얼굴에게 증거하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주] 자기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그분을 찾지도 아니하는도다.](호7:10). 아무리 순한 아이도 죄에 물들면 완악하게 됩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해도 말로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주님은 환난을 보내시고, 징계를 보내십니다. 그런 때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오래 참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잘못을 돌이킬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참다운 회개 뒤에는 주님이 부어 주시는 은혜와 회복, 새롭게 됨, 부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겪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님께 ‘돌이켜 주소서’란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잘 다니고, 남들이 하는 정도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은 뒷전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 자기 가족들이나 아는 몇 사람들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끼리 비교하거나 자기 스스로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성장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잘못을 깨닫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멋모르고 살아갑니다. 성경적 가치관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에도 기준이 자기중심이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너무 깊이 죄에 연루되어 있을 때에도 죄인들은 절망하고 낙심할 뿐 회개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켜 주시기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에브라임은 자신들이 절망적인 상태에 있을 때 신음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에브라임의 탄식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에브라임이 스스로 이같이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나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계하시매 내가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수소같이 징계를 받았나이다. 주는 [주]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를 돌이키소서. 그리하면 내가 돌아가리이다.] (렘31:18). 주님은 이들의 탄식함을 분명히 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주님의 징계를 받는 가운데서 주님께 돌아가기 위해서 신음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알아서 회개하고 알아서 주님께로 돌아가지 못할 때 ‘나를 돌이켜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인 생활을 하고 싶고, 믿음이 강해지고 싶고, 전도를 잘하고 싶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싶고, 경건의 능력을 갖고 싶고,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고 싶지만 도무지 잘 안 되는 사람들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를 돌이키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름대로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도무지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사람들은 모두 “주여 저를 돌이켜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인생의 항로를 돌이켜 주실 수 있습니다. 앞을 막으셔서 길을 돌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돌이켜 주소서’ 기도해야 하고, 형제들을 위해서도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돌이켜 주소서!! 이것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 제목입니다. 주님께 돌이켜 주시기를 구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는 회개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보여 주시고, 그리로 돌이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보는 것과 주님이 보여 주시는 것은 그 차이가 큽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께 우리를 돌이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우리를 다시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80:3). 주님은 우리가 범죄 했을 때 재앙을 내리실 수 있고, 징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냥 내 버려두실 수도 있습니다. 멸망시켜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참고 긍휼을 베푸셔서 회개하게 하시는 일은 더욱 많습니다. 돌아오라 명하시기도 하지만 우리를 돌이켜 주시기도 하십니다. 이는 누군가의 중보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내 말을 들으소서.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과 또 주께서 이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신 것을 알게 하소서, 하매] (왕상18:37). 우상 숭배에 빠진 이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날 이렇게 외쳤습니다.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엎드려 이르되, [주] 그분은 하나님이시로다. [주] 그분은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왕상18:39). 이것은 역사에 기록될만한 민족적 부흥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엘리야의 명에 따라 바알의 제사장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만 내리신 것이 아니라 이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신 까닭입니다. 우리 역시 형제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양육해야만 합니다. 양육을 하지 않으면 가슴에 붙었던 열정과 불은 금방 식어져 내리고 맙니다. 갈멜산에서 내려온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고, 헌신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를 성경에서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엘리야는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여전히 우상 숭배는 성행했습니다. 엘리야의 사역은 일시적으로 성공해 보였지만 곧 실패로 드러난 것 같습니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엘리야는 위대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을 완전히 변화시키려면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나 바위를 쪼개는 지진이나 강한 바람이 아니라 이들의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바람 같은 고요하고도 세미한 음성입니다. 기적과 이적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앞으로 나아가 [주]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보라, [주]께서 지나가시는데 [주] 앞에서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주]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주]께서 계시지 아니하고 또 지진이 있은 뒤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주]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왕상19:11-12a). 그럼 주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 뒤에 고요한 작은 소리 즉 말씀 속에 거하셨습니다. [불이 있은 뒤에 고요한 작은 소리가 있으므로] (왕상19:12). 우리는 흔히 부흥, 변화, 성장을 논할 때면 어김없이 불, 강한 바람, 지진을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우리 가운데 임할 때 우리는 변화되고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한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완전히 새로워지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조금 지나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모두 돌아 가 버립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람, 지진, 불이 아니라 세미한 음성으로 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스며드는 주님의 고요한 작은 소리가 단단한 못처럼 박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알아서 회개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주]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날 같게 하옵소서.](애5:21). 이런 중보기도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고 우리 가족과 교회에 적용해야 할 진리이며, 실천해야 할 진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기도합시다. [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다시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80:7). 영적 능력도 없고, 열매도 없고, 간증도 없고, 빛도 없고 소금의 맛도 잃어버린 성도들, 그리스도의 향기 대신 육신의 악취만을 풍기는 성도들을 향해 세상이 비웃습니다.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모두 비웃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그 모양이지, 교회 다닌다고 별 수 있나?” 비웃을 때 우리는 모두 우리를 다시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잠자던 혼이 깨어나고, 일어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의 탄식적인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오 [주]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다시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80:19). 무려 세 차례에 걸친 이 기도는 영적 권능과 간증을 잃어버린 비참한 백성들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저희 교회의 기도 제목입니다.

나도 나를 어쩔 수 없는 상태, 나도 가족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는 누구에게나 한 두 번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진정으로 지혜가 필요하고, 권능이 필요한 때에 주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우리를 돌이켜 주소서’입니다. [오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를 향한 주의 진노를 그치소서.](시85: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주시고, 주님이 정하신 길로 돌이켜 주시길 빕니다. 우리 인생 항로를 바르게 잡아 주시기를 빕니다. 조금이라도 엇나가지 않고 바른 길로 믿음의 경주를 경주할 수 있도록 돌이켜 주시기를 빕니다. 틀릴 때마다, 잘못될 때마다 우리를 돌이켜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소원합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할 것들도 많습니다. 우리의 눈을 돌이켜 주셔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虛誕)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며 주의 길에서 나를 살리소서.](시119:37). 내 발을 돌이켜 악한 곳을 지나가지 말고 더러운 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을 피하고 그 곁으로 지나가지 말며 거기서 돌이켜 떠나갈지어다.](잠4:15). 주님께서 우리 발을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돌이켜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내가 나의 길들을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시119:59). 주님은 우리를 돌이키시고, 자신을 돌이키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다시 돌이키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의 불법들을 누르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리이다.](미7:19). 오늘 우리는 모두 ‘우리를 주께로 돌이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암송할 말씀: 렘31:18, 시80:7

◇ 생각해 볼 문제:

- 회개를 위한 회개의 기도는 [주여, 우리를 주께로 ___________________!]이다.
 -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주께로 돌이키지 못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 강한 바람과 지진, 불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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