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막7:14
부흥을 위한 기도회 삼십육 일째입니다. 깨달음이란 말은 영적 이해력, 명철을 말합니다. 주님은 [듣고 깨달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말은 진리와 생명의 말씀일지라도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한 말로 기도하고, 전도하고,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울리는 징과 꽹과리와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잘 깨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보기만 해도 깨닫고, 한 번만 들어도 깨닫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몇 번이나 말해 주고, 보여 주고, 가르쳐 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유전의 문제입니까? 지능 지수의 문제입니까? 교육의 문제입니까? 이런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입니까? 주님은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성 중의 짐승 같은 자들아, 너희는 깨달으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운 자가 되려느냐?](시94:8). 부모들은 자식들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 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역시 자기 백성들을 향해, 제자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오 단순한 자들아, 너희는 지혜를 깨달으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한 마음을 가질지어다.](잠8:5). 주님은 말씀을 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께서 무리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마15:10).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시기를 구해야만 합니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지만 깨달음을 주지 못합니다. 삶의 경험은 많은 눈물과 슬픔과 절망을 주지만 진정한 깨달음은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풍부한 경험, 경륜을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욥기에 이르기를, [위대한 자라고 늘 지혜롭거나 나이 든 자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욥32:9)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지만 그들은 실상 자기 길도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도 인생을 계획대로, 뜻대로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잠언에 이르기를, [사람이 가는 것은 [주]께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 길을 깨달을 수 있으리요?](잠20:24)라고 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은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오 단순한 자들아, 너희는 지혜를 깨달으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한 마음을 가질지어다.](잠8:5).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지식을 알 수는 없습니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책망해서라도 깨닫게 하라고 하십니다. [비웃는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단순한 자도 주의하리라. 명철이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깨달으리라.](잠19:25). 깨닫는 데는 둔해서 안 됩니다. [형제들아, 깨닫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깨닫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고전14:20).
우리는 인생을 달관하며 사는 초인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생을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걷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구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성령을 통해 말씀의 깨달음을 얻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구도자들은 도(道)를 깨닫고자 합니다. 달관(達觀)의 경지 즉 해탈(解脫)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의 몸을 벗어 버리고, 옛 사람을 죽음에 처하고 새 사람을 입기를 원합니다.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진리도 진리지만 먼저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잘못들과 허물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잘못들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주여, 은밀한 허물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시19:12). 우리는 먼저 자신의 죄인 됨, 죄성, 허물, 더러움 등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깨닫고 두려움에 떨지만 그보다 자신의 더러움과 죄인 됨을 더욱 깊이 깨닫습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보게 됩니다. 비참한 죄인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산다 할지라도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귀족이다, 왕족이다, 백만장자다, 유명한 학자다, 남이 없는 기술을 가졌다는 등의 말을 할 수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짐승에 불과합니다. [존귀함 중에 거하는 사람이라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시49:20). [짐승 같은 자는 알지 못하며 어리석은 자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나이다.](시92:6). 어리석은 자들은 이런 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심판이 있다는 사실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달으려 하지도 아니하여 어둠 속에 다니니 땅의 모든 기초가 궤도를 벗어났도다.](시82:5). 우리는 깨닫기를 구해야 하며,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악인의 종말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시편 73편을 쓴 아삽은 자신이 한 때 악인들의 종말을 깨닫지 못해 그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이는 내가 사악한 자의 번영을 보고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하였음이로다.](시73:3). 이런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판도 없어 보이고, 악인들은 잘 살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을 깨닫게 된다면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너는 마음에서 죄인들을 부러워하지 말며 종일토록 [주]를 두려워할지니](잠23:17). [너는 악한 자들을 향하여 부러워하지 말며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라지도 말지니](잠24:1). [너는 악한 자들로 인하여 초조해하지 말며 사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지니](잠24:19). 악인들의 종말을 깨달은 성도들은 악인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깁니다.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73:17).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깨닫는 마음을 주노니 너 이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 이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리라.](왕상3:12). 금은과 보물을 얻는 것보다 지혜롭고 깨닫는 마음을 얻는 것이 낫습니다. 이는 생선 한두 마리를 얻는 것보다 생선 낚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나은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것, 신앙을 배우는 것은 원리와 원칙을 얻고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어떻게 지혜를 얻었습니까? 주님께 바른 마음으로 바른 것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바른 마음으로 바른 것을 구하면 주님은 ‘지혜롭고 깨닫는 마음’을 주십니다(약1:5). 다니엘은 기도할 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가 내게 알리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오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능숙함과 깨달음을 주려고 나아왔느니라, 하니라.](단9:22). 깨달음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다니엘, 솔로몬과는 반대로 삼손은 자신 안에 있던 성령이 떠났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는 영적 둔감함의 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에서 깨며 말하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내 몸을 흔들리라, 하였으나 그는 [주]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16:20). 이 모습은 오늘날 범죄한 그리스도인, 타락한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자신들 안에 계신 성령이 소멸하든지, 슬퍼하든지, 억눌림을 당하는지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깨달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는 “때를 깨닫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들은 ‘때’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언제가 적기인가? 이는 농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시기(時期)가 있고 모든 목적한 것에는 때가 있도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무너뜨릴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애곡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들을 버릴 때가 있고 돌들을 함께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금할 때가 있으며 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화평할 때가 있도다.](전3:1-8). 말을 해도 때에 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때에 맞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때를 깨닫는 자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심판의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내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한 것과 모든 일에 때가 있기 때문이라, 하였도다.](전3:17). 성경에는 때를 깨닫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바로 잇사갈 자손 중의 우두머리들입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때를 깨닫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의 온 형제들이 그들의 명령을 따랐더라.](대상12:32).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
- 목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에스라는 백성들로 하여금 성경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책을 명료하게 낭독하고 그 의미를 알려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니라.](느8:8).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해 말씀을 보내시고, 가르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스승이 되시지만 그 도구로 쓰임받는 사람들은 목자요, 교사입니다. [빌립이 내시에게로 달려가서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내시가 이르되,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에게 청하여 올라와 같이 앉으라 하니라.](행8:30-31). 이디오피아 내시는 성경을 통독하고 있었지만 성령께서는 빌립을 통해서 그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 훈계들을 지킬 때 잘 깨닫습니다.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잘 깨닫나이다.](시119:100). 법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훈계들은 참고 사항이나 견해가 아닙니다. 권면이 아닙니다. 생명의 법이요, 성령의 법입니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법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 말씀을 부지런히 찾을 때 깨닫습니다.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고 감추어진 보배들을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그때에 [주] 두려워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아는 것을 발견하리니](잠2:4,5). 말씀을 대하는 열정적인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것이 진리 탐구를 위한 성도들의 바른 모델입니다.
- 주를 찾는 자들은 깨닫습니다. [악한 자들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주]를 찾는 자들은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잠28:5).
- 주를 두려워할 때 속히 깨닫습니다. [그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속히 깨닫게 하시리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며](사11:3). 두려움은 지혜와 지식의 첫 걸음입니다. 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도 성경도 알지 못합니다.
- 말씀을 읽을 때 깨닫습니다. [그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너희가 깨닫게 되리라.)](엡3:4). 성경을 매일 꾸준히 읽으십시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해 주십니다.
- 기도할 때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잘 깨닫도록 기도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도 그것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이것을/ 원하였노니 곧 너희로 하여금 모든 지혜와 영적인 깨달음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게 하시고](골1:9). 알지 못하는 것은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약1:5).
- 믿음으로 깨닫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 영적인 일은 믿음을 통해 깨닫지 관찰이나 탐구나 실험이나 사유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오감(五感)으로는 더욱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을 통해-Through faith]입니다.
- 말씀을 깊이 생각할 때 깨닫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라. {주}께서 모든 일에 네게 깨달음을 주시기 원하노라.](딤후2:7). 묵상은 깨달음에 이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영적 이해의 증가를 위한 사고력 증진은 말씀 묵상에서 비롯됩니다. 꾸준히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그 말씀을 자신의 내면과 삶의 사건들에 적용할 때 주님은 모든 일에서 깨달음을 주십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성도는 깨달음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계십니다. 죄로 인해 영적 지각이 어두워지고, 마귀의 유혹과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사 우리로 하여금 진실하신 분을 알게 하신 것과 또 우리가 진실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라.](요일5:20).
우리는 모두 [듣고 깨달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 암송할 말씀: 막7:14, 잠2:5
☜ 생각해 볼 문제:
-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적어 보시오.
-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각자 겪은 경험과
은혜를 나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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