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잠8:30
사람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매우 기뻐합니다. 그 존재가 탄생하는 자체가 기쁩니다. 아이는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할 수도 없지만 부모들은 생명의 탄생, 존재 그 자체에 기쁨을 누립니다. 임신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아버지들을 봅니다. 이는 우리의 존재 목적과 존재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약1:19). 성령을 통해 낳으셨습니다. 낳으신 분은 낳은바 된 자녀란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고 기뻐합니다. 우리의 존재 의미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 잠시 기뻐하고 마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는 날마다 주님의 기쁨이 됩니다. [내가 그분 곁에 있되 그분과 함께 양육을 받은 자로 있어 날마다 그분의 기쁨이 되었으며 항상 그분 앞에서 기뻐하였고](잠8:30).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고, 그분의 기쁨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실존주의 철학이 세상을 풍미할 때 많은 청년들이 허무주의에 빠졌습니다. 실존주의만큼 인간의 실존 의미를 몰랐던 철학도 드물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의미를 부여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서구 청년 사회에는 마약을 비롯한 약물 복용이 성행했고 히피, 집시들만 양산되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버림으로써 자신들마저 잃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이요- [곧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자라. 이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음이라.](사43:7). 그에 못지 않는 또 하나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 (계4:11). 우리는 여기서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피조물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단연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존재 의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계4:11b)라는 성경의 선포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생의 허무 가운데 헤매다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 마음속에 스며든 감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는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의 대상이며, 사랑과 기쁨의 관계입니다. 탄생 자체는 세상에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며, 잃어버린 존재도 아닙니다. 부모의 실수로 태어났건, 계획하지 않는 가운데 태어났건 생명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부하는 자들이 낙태를 지지합니다. 그들은 유아 살해, 영아 살해를 행하면서 자신들의 선택을 존중해 달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그 누구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존재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분의 기쁨을 위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생명의 존엄과 경외감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주님의 크게 기뻐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임을 선포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셨으니] (엡1:4~5).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무한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놀라시고 경이로워 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시며, 만물이 주님의 뜻대로 계획대로 예정대로 움직일 뿐이라면 주님께서는 권태롭지 않으실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분명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날마다 기뻐하시며, 크게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습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 예정론을 지지하는 구절로 흔히 인용되지만 본문이 말하는 것은 ‘예정론’이 아니라 지극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스바냐 대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한가운데 계시는 [주] 네 하나님은 능하신 이시니 그분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너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친히 사랑하시는 중에 안식하시며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우리는 주님의 기쁨을 위한 존재란 사실을 믿으십시오. 이보다 우리의 삶에 기쁨을 주는 일이 없습니다.
- 주님은 자기 백성을 즐거워하십니다. [이는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즐거워하시기 때문이니 그분께서 온유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리로다.](시149:4). 자기 백성이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입니다. 신약에서는 거듭난 크리스천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주님은 즐거워하십니다. 이런 가운데 특별히 주님이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쁨이라면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감사로 그분을 크게 높이리니 이것이 또한 수소나 뿔과 굽이 있는 황소보다 [주]를 더 기쁘시게 하리라.] (시69:30~31).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때 기뻐하십니다. 감사할 때 기뻐하십니다.
-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기쁨으로 맞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죄인의 회개는 하늘에서 기쁨의 잔치를 열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 사람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더 기쁨이 있으리라.](눅15:7).
-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히11:6).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사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마8:10). 백부장은 믿음으로 주님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건이 주님을 놀라게 하며, 어떤 사람이 주님을 놀랍게 만들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11:6)란 말씀은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 주님은 올바른 것을 기뻐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시험하시고 올바른 것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또 아나이다. 나로 말하건대 내가 올바른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자원하여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니 심히 기쁘나이다.](대상29:17). 올바른 예배, 올바른 기도, 올바른 섬김, 올바른 마음, 올바른 헌물 등 무엇이든지 올바른 것을 기뻐하십니다.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자들은 [주]께 가증한 자들이나 자기 길에서 곧바른 자들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이니라.](잠11:20).
- 주님은 분리를 기뻐하십니다. 죄악을 단호하게 버리고, 끊어 버리는 자들은 주님의 긍휼을 얻습니다.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누구든지 죄들을 시인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잠28:13). 죄를 인정하고 시인하면서 하던 짓을 계속하는 것은 주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분리할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여 이 땅 백성과 이방 아내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분리할지니라, 하니](스10:11). 순결을 위한 투쟁은 악을 버리고 죄와의 단절에서 시작되며 이런 결단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 주님을 두려워하고 긍휼에 소망을 두는 자들을 즐거워하십니다. [주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자신의 긍휼에 소망을 두는 자들을 즐거워하시는도다.](시147:11). 하나님은 사악한 자를 향해서는 날마다 분노하시지만 주를 두려워하고, 주님의 긍휼에 소망을 두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 주님은 우리의 형통함을 기뻐하십니다. [나의 의로운 사정에 호의를 보이는 자들이 기뻐 외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참으로 그들이 계속해서 이르기를, 자기 종의 형통함을 기뻐하시는 [주]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35:27). 하나님은 우리의 형통함을 기뻐하시며, 잘되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 주님은 꼭 맞는 추를 기뻐하십니다. [거짓된 저울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꼭 맞는 추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잠11:1). 저울, 추, 잣대는 성경적 기준을 말합니다. 원칙을 말합니다. 틀린 잣대, 틀린 원칙, 틀린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제대로 살아도 틀린 인생입니다.
- 진실하게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거짓말하는 입술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진실하게 행하는 자들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이니라.](잠12:22). 마음의 진실함, 정직한 영으로 걷는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으면 모든 일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골1:10a).
- 곧바른 자의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악한 자의 희생물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곧바른 자의 기도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잠15:8). 바른 마음으로 드려지는 올바른 기도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반면 율법에서 귀를 돌이키는 자는 그의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됩니다(잠28:9).
-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은 {주}를 매우 기쁘시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이 점을 자녀들에게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본을 보이고, 교육시켜야 합니다.
- 복음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우리가 말하노니 이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2:4).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알고 행하도록 합시다.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고 날마다 기뻐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우리 역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는 것은 확실한 기도 응답의 비결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앞에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요일3:22). 위에 언급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란 증거를 얻는다면 그보다 더 복된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
☜ 암송할 말씀 : 잠8:30, 요4:11
☜ 생각해 볼 문제 :
-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위의 글을 참고하여
쓰시오.
- 주님의 우리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을 기뻐하신다.
-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________________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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