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43:21
우리는 모두 주님을 찬양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호흡이 있는 것마다 [주]를 찬양할지어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시150:6)고 말씀합니다. 주를 찬양하는 것은 호흡을 지닌 자들이 누리는 특권이며, 영광스런 의무입니다. 찬양하다(praise)란 말은 그 의미가 “put the price on/가치를 부여하다, 가격을 매기다”란 뜻입니다. 주님의 영광은 돈이나 무엇으로도 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값을 매기고 가치를 부여합니까? 그것은 바로 찬양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금은보화로도 매길 수 없는 주님의 은혜와 긍휼, 지혜와 영광을 마음으로 입술로는 간단히 매길 수 있습니다. 그 값을 인정해 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마음 속으로는 가치를 알고 부여할 수 있으며, 입술로는 값을 매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값비싼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선물이기 때문에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받은 선물에 대한 가치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거나 매길 수 있습니다. ‘와, 엄청나네!, 대단하네, 놀랍구나’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찬양]이란 성경적 정의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구속의 피 값은 가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너무 비싸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priceless/precious). 주의 성령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어떤 것도 값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값없이, 돈 없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선포합니다(고후11:7). 우리는 값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롬3:24). 주님은 무엇이든지 가장 귀한 것들을 우리에게 값없이 모두 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값없이 받은 것들에 대한 정당한 가치와 값을 마음으로 인정해 드리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이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주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가치를 마음으로 아는 만큼 찬양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은혜를 알면 알수록 그 찬양의 풍성함이 달라집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우리가 값없이 받은 것들에 대해 조금만 눈을 더 뜬다면 우리는 그 은혜의 풍성함과 베푸신 친절과 선하심에 대해 압도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측량할 수 없는 그 가치와 가격으로 인해 ‘감사’를 연발하고 그런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적 선물을 주실 때 [무엇을 사라, 하라, 되갚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닙니다. 주님은 믿으라, 받으라, 오라, 취하라고만 하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21:6). 생명수의 가격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되갚을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에게 값없이 취하라고 하십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계22:17). 값없이 받은 선물에 대해 마음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입술로 고백하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찬양입니다.
[찬양하라]는 것은 주님 자신과 주님이 값없이 주신 것들에 대한 지식이요, 깨달음에 대한 반응입니다. 찬양하라는 것은 성령을 통해, 말씀을 통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 마음의 고백입니다. 찬양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이 주신 것들을 받은 후에는 그 값이 무(無)로 돌려 버리는 것이요, 무가치하다고 선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매우 귀한 것을 선물했는데 받은 사람이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면 분노가 일지 않겠습니까? 나를 무시하고 멸시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좋은 것들, 귀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거기에 대해 합당한 반응을 찬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를 노래로 부르면 찬송이 됩니다. 시를 쓰면 곡조가 되고, 말로하면 감사의 기도가 됩니다. [주님은 위대하시도다!] 외칠 수도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를 연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단발성 한 마디도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훌륭한 찬양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각양 좋은 것들을 값없이 선물로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지난 이틀간 다루었지만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둘째,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시며 셋째, 찬양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시며, 무엇이든지 인색하게 주시지 않습니다. 충만하고 풍성하게 넘치게 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주님께 찬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삼하22:4, 시18:3)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을 드립니다.
주께 찬양을 드릴 때 우리는 진정한 존재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은바 된 피조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도 특권도 없다면 그의 존재는 무의미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지음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아무 의무도 특권도 주시지 않고 버려두셨다면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존재케 하신 목적은 우리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기쁨을 누리시며, 우리에게 그런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지으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그들이 내 찬양을 보이리로다.] (사43:21). 주님을 위해 지음 받은 이스라엘은 주님의 찬양을 보이는 것이 그들의 사명입니다. 교회 역시 동일합니다. 우리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신 목적 역시 주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친히 우리를 받아 주시는 은혜 곧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6). 주님의 목적대로 예정되어 상속을 얻게 된 것도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12). 찬양을 보이고, 찬양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받은바 은혜의 선물에 대해 바르게 알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으며, 풍성한 긍휼을 허락하셨는지 제대로 정확히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 간에도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계속 넘치는 은혜를 받습니다. 자신이 받은 호의와 친절에 대해 제대로 감사를 표현하고, 은혜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주는 사람도 기뻐하며 줍니다. 반면 받은 것들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는 배신감을 느끼고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은혜를 베풀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타락한 천사들 즉 마귀와 타락한 죄인들만 하나님께 합당한 찬양을 돌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주님을 기뻐하지도 않으며 주님을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큰 죄입니다. 죄인들은 주님께 감사하지 않고 영광 돌리지 않듯이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곧바른 자들에게 찬양은 의무입니다. [오 의로운 자들아, 너희는 [주]를 기뻐하라. 찬양은 곧바른 자들이 마땅히 행할 바로다.](시33:1). 주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찬양을 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 역시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는데 있습니다. [이 영께서는 우리의 상속의 보증이 되사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대속을 받기까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엡1:14).
주님께서 죄인들을 불러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너희는 택함 받은 세대(世代)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보여 주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주님에 대한 찬양을 우리에게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하지 않는 자는 배교한 자요, 타락한 자요, 은혜를 잊어버린 자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님에 대한 찬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찬양을 드리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를 신뢰하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또 그분께서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드릴 찬양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이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주]를 신뢰하리로다.](시40:3). 늘 입술에 찬양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사람들은 의아하게 쳐다봅니다. 왜 저들은 노래가 끊이지 않는가? 왜 즐거워하는가? 어떻게 늘 감사하는가? 하며 놀라게 됩니다. 모두 힘들고 괴롭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홀로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찬양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단지 찬송가를 몇 곡 부르고 기도한 것으로 주님을 찬양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찬양은 마음으로 주님과 주님이 행하신 일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을 말로 글로 행동으로 표현할 때, 열매로 맺힐 때 더욱 훌륭한 찬양이 됩니다. 주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있는 사람은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찬양 역시 언제나 늘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주]를 찬송하리니 그분을 찬양함이 항상 내 입에 있으리로다.](시34:1). 찬양은 계속해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찬양은 영적 희생물이요, 우리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입은 마음에 있는 것이 나옵니다. 마음에 감사함이 있고, 은혜를 아는 마음이 있으면 찬양은 자연스런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도 찬양하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시며 건져내시고 바꾸어 주시는 것은 찬양을 드리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나의 애곡(哀哭)을 바꾸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굵은 베옷을 벗기시고 즐거움으로 띠를 두르셨나니 이것은 내 영광이 잠잠하지 아니하고 주께 찬양을 드리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토록 감사하리이다.](시30:11~12).
찬양이 이루어내는 결과는 엄청납니다. 흔히 찬양 사역이라고 해서 악기 하나 가지고 복음송가나 찬송가를 들고 노래를 인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은 단지 노래만이 아닙니다. 찬양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감정을 고양시키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반응입니다.
- 찬양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가 됩니다. [찬양을 드리는 자는 다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로다.](시50:23). 주님은 우리의 찬양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찬양 속에는 주님의 위엄과 영광과 높으심, 위대하심, 거룩하심, 지혜, 능력, 인자하심, 긍휼, 성실하심, 구원을 베푸심 등에 대한 모든 것이 다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찬양 가운데는 주님이 거하십니다. [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주여, 오직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22:3).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찬양 속에 거하십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어떠하심을 믿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그런 일련의 영적 반응 속에 주님은 그대로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찬양은 백성들의 뿔입니다. 뿔은 권능과 권세를 말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찬양을 높이심으로 우리의 영적 권능과 권세를 높여 주십니다. [그분께서 또한 자신의 백성의 뿔 곧 자신의 모든 성도들이 드리는 찬양을 높이시리니 곧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찬양을 높이시리로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시148:14).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주님을 찬양했을 때 죄수들이 다 들었습니다. 주님은 지진을 일으켜서 바울을 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찬양이 주는 권세입니다.
- 찬양은 간증이요, 증거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밝히 보이고 교회 가운데서 주께 찬양을 드리리이다, 하셨으며](히2:12). 찬양은 형제들 가운데서 주님을 밝히 보이는 간증입니다.
- 찬양은 말씀을 배움으로 나옵니다. [주께서 주의 법규들을 내게 가르치셨사오니 내 입술이 찬양을 내리이다.](시119:171). 찬양은 내가 마음대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주님의 성품과 능력과 주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 때 나오는 반응입니다. 말씀을 배우지 않고는 찬양을 드릴 수 없습니다.
- 의의 열매로 가득할 때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11).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 자체가 주님께 찬양이 됩니다. 우리 속에 주님의 생명이 거하시고 활동하신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입술을 열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의 찬양을 보이리이다.](시51:15). 입을 열어 전도를 하고, 입을 열어 감사를 하고, 입을 열어 찬양을 하는 일이 우리 입술이 맺을 열매요, 영적 희생물이며 ‘주님의 찬양’을 보이는 것입니다.
☜ 암송할 말씀: 사43:21, 벧전2:9
☜ 생각해 볼 문제:
-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오.
- 찬양의 성경적 의미를 정의해 보시오.
- 찬양을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 보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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