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부흥 90 - 41. 모이기를 힘쓰라

말씀: 히10:25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이 명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단지 견해나 권면이나 참고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이요, 명령이요, 원칙입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흘려듣는 사람들은 주님 역시 그 사람을 가볍게 여기시며, 그 사람의 간청이나 기도를 흘려들으실 것입니다. 말씀에서 귀를 돌이키면 주님은 그의 울부짖음에 귀를 돌이키시며,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주님 역시 그들을 거부하십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 그대로 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친히 보시는 대로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아 주셨도다.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는 주께서 주의 긍휼을 보이시고 곧바른 자에게는 주의 곧바르심을 보이시며 순수한 자에게는 주의 순수하심을 보이시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주의 적대(敵對)하심을 보이시리니] (시18:24~26). 주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을 주님은 결코 존중하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고,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가 풍성하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이 나의 죄를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고 변명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은혜와 오래 참으심, 풍성한 긍휼이 크신 만큼 회개치 않는 그 혼에게는 그만큼 더 진노가 쌓여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징계와 심판이 속히 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고 육신의 상태, 죄악 된 상태에 머물면서 변명과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속히 집행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이 마음 속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작정하였도다.](전8:11). 이런 자들은 주님의 오래 참으심, 주님의 선하심을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 벧후3:9, 15절 참조

성경을 좀 알고, 좀 배운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근본적 진리를 외면한 채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일삼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먹는 그런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 같은 경우에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주일 성수는 율법 조항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주일에 함께 모이기를 힘쓰지 않습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고 율법 조항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거나 율법적, 형식적, 의무적으로 날을 지키는 자들이 아닙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혼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지만 성경은 모이기를 힘쓰고, 모여서 함께 하라고 하십니다. 혼자서 아니면 가족끼리 할 일이라면 왜 주님이 교회를 세우셨겠습니까? ‘가족이 곧 교회니라’하고 말면 그만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정한 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모이기로 한 날’에 모이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로 교회가 지정한 날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주의 첫 날은 모이기에 가장 좋은 날이며,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요, 새 날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모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간혹 이단들이 주일에 모이는 것을 욕하고 비난하고, 율법주의니 형식주의니 말할 때 온유하게 답변해 주고, 책망하며, 바로 잡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정한 어떤 날의 기도 모임이나 성경 공부 모임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 안 나오느냐고 물으면 ‘안식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거나 ‘형식주의가 싫어서’ 등입니다. 평소에도 쉬지 못하는데 주일에는 몸이 좀 쉬어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에, 평일에 보지 못한 볼 일들을 주일에 보아야 하기 때문에 등등입니다. 이들은 함께 모이는 일이 성경적 진리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억지로 멸망 받을 교리들을 붙들며 주님의 말씀을 폐합니다. 이들은 형식주의와 형식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마치 권위주의와 권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율법주의와 율법(롬7:12)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물어 봅시다. “율법이 나쁜 것입니까?” 율법을 나쁜 것으로 알고 있거나 그렇게 가르치거나 배웠다면 그는 성경을 한 참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율법도 거룩하고 명령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도다.] (롬7:12),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가 아노라.](딤전1:8). 그러나 율법주의는 단호하게 배격합니다. 그럼 다시 하나 묻습니다. 형식이 나쁜 것입니까? Yes, No로 대답해 보십시오. 형식주의는 외식과 위선으로 흐르기 때문에 경계하고 타파해야 하지만 형식(form- 틀)은 매우 중요합니다. [참고할 것, 롬2:20- 지식과 진리의 틀; 롬6:17- 교리의 틀; 딤후 1:13- 건전한 말씀의 틀/ 이런 틀은 굳게 붙잡아야 한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외식을 책망하셨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마23:3). 정신과 육체가 둘 다 중요한 것같이 본질과 형식은 둘 다 중요합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이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음이라.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저것도 행하지 않은 채 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마23:23).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이지 경건의 모습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일, 주일 모임/예배 등을 지독하게 공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약간의 논리적 기반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廢)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은 서로 권면하며 더욱 힘써야 할 일입니다. 만나면 ‘모입시다. 이번에는 꼭 나오십시오.’ 이렇게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이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니라.](마18:20). 이 말씀은 개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합심 기도, 모여서 하는 기도에 대해 주님이 주신 말씀이지만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배로 모이고, 집회로 모이고, 성경 공부로 모이고, 전도로 모이고, 교제하기 위해 모이고 무엇으로 모이든 간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님은 그들 한 가운데 계십니다. 은밀한 골방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모여서 하는 기도는 더욱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있을 때 교회는 모여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가 마가 요한의 집으로 갔을 때 그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이 일을 깊이 생각한 뒤에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가니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행12:12). 거기에는 한 둘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는 것은 초대 교회 이후로 교회의 전통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전통이나 장로들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적 전통입니다(살후2:15, 3:6). 성경적 전통은 비판하거나 자기주장을 개진할 것이 아니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서신으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들을 붙들라.](살후2:15). 이런 전통을 폐기하는 자들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제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너희에게 명령하노니 너희는 질서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들에게서 떠나라.](살후3:6).

[함께 모이라]는 것은 기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란 뜻 자체가 “불러냄은 받은 자들의 모임”(called out assembly)입니다. 모이기를 거부하는 자는 교회를 거부하는 것이요, 모이기를 싫어하는 자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여서 찬송하고 교제하고 빵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모이지는 못할지라도 일주일에 교회가 정해 놓은 하루, 이틀을 못 모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는 단체나 조직은 개인이 아무리 많아도 전혀 힘이 없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을 흩어 놓으려 합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개인을 공격하는 일은 매우 쉽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영적 생활은 교회에 함께 모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모이는 일은 가장 초신자 때부터 철저히 몸에 익혀야 할 성경적 진리입니다. 모이지 않으면 성도는 주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이지 않으면 교회는 아무 일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교회로 인도할 때도 모임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모임은 개인 한 사람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주의 만찬을 행하려면 성도들은 함께 모여야 합니다. [주(週)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나누려고 함께 나오니 ...](행20:7a). 안 모이고 혼자 집에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만찬을 합니까? 몸이 아파 병원에 있던가, 감옥에 갇혀 있든가 등등의 일이 아니라면 성도는 무조건 모이기로 정한 날에 모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수요일, 일요일입니다.

주의 연보를 하는 일도 주의 첫날에 모여서 했습니다. [주(週)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16:2). 이들은 부지런히 모였고 특별히 주의 첫날에 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날 헌금 한다고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성경은 주의 첫날에 모여서 하라고 합니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도 모여야 합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을 드나들며](행9:28).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후로 혼자 다닌 것이 아닙니다. 모였습니다. 함께 다녔습니다.

교제를 위해서는 모여야 합니다. [그들이 도착하여 교회를 함께 모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또 그분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되풀이하여 말하고 거기서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머무니라.](행14:27, 28). 바울이 안디옥에 도착해서 한 일은 교회를 모은 것입니다.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혼자 머문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이는 날마다 모였음을 말합니다. 성경을 배우기 위해서도 우리는 모여야 합니다. 한 사람이 1:1로 몇 명이나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없을 때는 한두 명이 할 수 있지만 결국은 모여서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투를 위해서 우리는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군대는 모여야 군대이지 혼자는 군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부르셨고,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군대의 힘은 조직력에서 나옵니다. 대장을 믿고 절대 복종하는데서 승리가 나옵니다. 불신과 불순종은 군대를 와해시켜 버립니다. 전우들의 깊은 우애, 충성심, 군기, 사기와 더불어 확실한 보상이 주어질 때 강한 군대가 됩니다. 전쟁이 났는데 나타나지 않고, 숨어 버리고, 잠깐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면 그 군대는 군대라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되고, 사랑으로 하나 되고, 진리 안에서 하나 되고 화평의 매는 띠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여야 합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사랑이나 진리는 함께 모일수록 크고 강해집니다. 더욱 불어납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은 나무면 배가 된다는 말은 영적 진리입니다.

모이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입니다. [나와 함께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널리 헤치는 자니라.](마12:30). 주님은 모으기에 힘쓰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자기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함께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13:34). 이런 예는 또 있습니다. 주님은 잔치를 벌여 놓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모이게 했습니다. 잔치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좋은 것이 잔치입니다. 주님은 왕국의 혼인 잔치에 많은 사람들을 모으십니다. [이에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성대한 만찬(晩餐)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더니 식사시간에 그 초대받은 자들에게 자기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들 하나같이 사양하기 시작하여 첫째 사람은 이르되, 나는 땅을 사서 반드시 나가 보아야 하니 원하건대 나를 양해하라, 하고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러 가니 원하건대 나를 양해하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므로] (눅14:16~20). 주님은 모이라고 하십니다. 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연도 제 각각입니다. 주님은 모이기를 거부한 자들에게 노하십니다.

성도들이 잘 모이는 교회가 강성한 교회요, 제대로 된 교회입니다. 모임이 잘 안 되는 교회는 정통이든 이단이든 볼 품 없으며,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공동체 신앙입니다. 이는 신약이든 구약이든 구분이 없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을 모았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리라, 하매](삼상7:5). 미스바의 영적 대각성은 사무엘이 모이라는 명에 따라 모인 자들에게 임했습니다. 바쁘다, 일있다, 나는 혼자 기도하겠다는 사람들을 주님이 복을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에스라를 보십시오.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새롭게 성경을 가르치고 영적 각성을 도모하기 위해 모조리 모이게 했습니다. [그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모든 자손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두루 선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함께 모이라.](스10:7). 모여야 합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모여서 찬양하고, 모여서 빵을 떼고, 모여서 교제합니다. 모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백성들은 몇 일간 계속되는 집회에 모두 모였습니다. 모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주님을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모이지 않는데 어떻게 한 마음이 되고, 합심이 됩니까? 모여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모이지 않는데 어떻게 서로 권면하고, 위로하고, 가르치고, 훈계하며, 섬길 수 있습니까? 모이는 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많아져야 합니다.

☜ 암송할 말씀: 히10:25, 마12:30

☜ 생각해 볼 문제:

-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더욱 힘써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교회의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 성경적 이유를 제시하시오.
- 함께 모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