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시95:6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은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영적 부흥은 언제나 경배의 회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어떻게 경배를 드리는가?에 따라서 그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들에게 받으시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분명한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고, 둘째는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지으셨고, 셋째는 찬양을 보여 주시려는 목적에서 지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경배입니다. 경배는 영광, 기쁨, 찬양을 모두 주님께로 드리는 것입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진정한 목적이요, 삶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주님은 경배자를 찾으시며, 경배를 받으십니다.
경배는 피조물이 지으신 창조주께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경배하고 절하며 우리를 만드신 이 곧 [주]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만 경배란 말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경배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경배는 전인격적인 것입니다. 의지와 지성과 감성과 힘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무릇 모든 피조물들은 지으신 창조주를 경배할 때만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주를 경배하는 일은 피조물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는 홀로 [주]시니 주께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그 모든 군대와 땅과 그 안의 모든 것과 바다들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다 보존하시오매 하늘의 군대가 주께 경배하나이다.](느9:6). 창조주는 경배를 받으셔야 합니다. 창조주란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신 분이십니다.
경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행위요, 나는 하나님께 지음 받았음을 시인하는 행위입니다. [오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들이 주 앞에 와서 경배하고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리이다.](시86:9). 우리를 짓지 않은 누구도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경배의 기본 관계성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경배를 드릴 대상을 자신들이 임의로 정하거나 그 대상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창조주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주님대신 눈에 보이는 다른 것들에게 경배합니다. 하늘의 천체들이나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신들이나 같은 사람들을 경배하거나 짐승들을 만들어서 경배합니다. 경배해야 할 대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창조주가 아니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합니다. 그는 경배 받고자 합니다. 사람들에게 경배를 요구합니다. 사람들 역시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누군가로부터 존경과 찬양과 영광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데 이는 경배 받고자 하는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배의 대상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들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라, 하더라.](계14:7). 이 역시 경배를 받으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조주가 아니시라면 경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경배를 받을 근거도 권위도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것에게 경배를 하면 그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을 자신의 창조주로 인정하고 섬기는 것이 됩니다. 경배를 하는 순간 그는 경배 받는 자를 자신의 창조주요,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예(禮)를 갖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런 행위를 가증스럽게 여기시며, 분노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경배할 때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마음이 타락한 사람들은 지으신 하나님보다 지음 받은 피조물들을 더 경배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경배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해와 달 및 천체를 경배하고(시17:3),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신들을 경배하며(신30:17), 짐승의 형상과 같은 것들을 만들어 경배합니다(롬1:25). 이것이야 말로 죄악 중에 가장 큰 죄악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음이라.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롬1:25). 하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구에게도 경배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 외에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가 없으며, 하나님 한 분 외에 경배를 받을 자격이나 권위를 갖춘 합당한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배를 받을 자격을 갖춘 분은 한 분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누구도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늘들을 창조하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고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거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 하나님 외에 구원자가 없습니다. [나 곧 나는 [주]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주] 곧 이스라엘의 구속자(救贖者)인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습니다. [나는 [주]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으며 나 외에는 하나님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내가 네게 띠를 띠어 주었으니](사45:5). 하나님만이 창조주시이며, 구원자이시며, 참 신이시며, 참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배를 받으실 분도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진리에 따라 경배를 받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들이 정한대로 경배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경배를 통해서 경배 받으시는 주님을 의식하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렇게 경배를 드린다는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합니다. 이는 찬양을 하는 사람이 찬양받으시는 하나님 대신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렇게 찬양을 멋지게, 감동력 있게, 좋은 목소리로, 웅장하게 드린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하며, 구제를 하면서 구제를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제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등은 우리 인간들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사람은 무엇이나 자신이 하는 행위가 중심이요, 기준입니다. 찬양과 경배, 기도와 구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인이 그러했습니다. 사울이 그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예배를 주님은 헛된 경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막과 성전을 세우시고, 레위 지파를 통해 바른 예배를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이 멋대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예배를 통해 인간이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인간 중심의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오늘날 각 교회에서 열린 예배, 구도자 예배, 찬양 예배, 무슨 무슨 예배라며 이름붙인 그런 모든 예배들은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 이 점을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기서 물러가라. 이는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음이니라, 하시더라.](마4:10). 경배는 피조물이 창조주께 드리는 영광과 존귀, 찬양입니다. 경배와 병행하여 쓰이는 한 단어는 ‘섬기다’입니다. 섬김이란 단어는 늘 경배란 말과 동행합니다. 경배는 섬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독해 나가다 보면 경배란 말 앞뒤에는 거의 섬김이란 말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배는 섬김과 동반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했습니다. 섬김이란 말과 예배는 거의 동의어로 쓰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섬기고 경배해야 합니다. 주를 공경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 찬양하는 마음이 내 안에 차고 넘칠 때 그것으로 주님을 섬기면 진정한 경배가 됩니다. 섬김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섬김은 종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섬기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섬기려면 영적 희생물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경배하는 것과 섬기는 일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이 둘은 철저히 붙어 다닙니다.
오늘날 성도나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세계 선교, 제자 양육, 구제 등 다양한 답변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역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성경 공부 모임이나 제자 양육이나 그 어떤 다른 것보다 우선하며 그런 사역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바른 경배에서 출발하지 않는 어떤 사역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참된 경배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요4:23-44). 주님은 구도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경배자를 찾으십니다.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주님은 예배를 가장 중요한 일로 규정하셨습니다. 성막과 성전을 세우신 것은 예배를 위한 것입니다. 레위 지파를 두신 것도 예배를 전담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경배를 드려야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 어떻게 주님 앞에 나와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참된 경배가 있고, 헛된 경배가 있습니다. 아벨이 드린 경배는 참된 경배였습니다. 가인이 드린 경배는 헛된 경배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이 열납 하시는 경배가 있고, 그렇지 않는 경배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면 아무리 제물이 잘 갖추어지고, 형식에 어긋남이 없어도 그것은 헛된 경배입니다. [이 백성이 자기 입으로는 내게 가까이 오며 자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거니와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8-9).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로서 형식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멀었습니다. 이는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란 것입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한 영이심을 알고 상한 영, 통회하는 영, 겸손한 영, 정직한 영, 새롭게 된 영, 주를 두려워하는 영으로 주님께 경배를 드려야 함을 말합니다.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란 말씀은 진리의 결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종교적 전통, 조상들의 전통, 인간적 전통 등으로 드려지는 경배는 주님이 받으시는 경배가 아닙니다.
영과 진리로 주님을 경배한다면 주님은 그 경배를 통해 무딘 양심과 영혼을 치유하시며, 헛된 상상이 정화되며, 성령이 강하게 임재하시며 깊은 사랑의 친교를 맺으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가 드려질 때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강건하게 하며, 새롭게 하며, 부흥을 줄 것입니다. 그 예배를 통해 진리에 대한 조명과 말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영적 사실입니다.
영적 감격이 있고, 주님의 두려우심을 인식하며,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그런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영적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 희생물들을 들고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주님 앞에 자신을 헌신할 때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경배를 받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영광의 구름과 불로 응답하신 주님께서 성령의 전이 된 성도들의 몸에 충만히 임하심으로 응답하십니다. 주님을 경배할 때 주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그 예배는 살아있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광과 권능을 증거하는 신성한 증거자가 됩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는 주님의 존재와 우리를 위해 당하신 희생과 다시 오심을 세상에 증거합니다. 불신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그들이 주일에 어디를 가느냐? 모여서 무엇을 하느냐? 입니다. 교인이 주일에 정한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것을 통해 그들은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 행위로 인해 증거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일에 시간을 내서 교회로 가는 일 자체가 이미 전도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예배 참석 자체가 세상을 향해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요, 같은 형제들에게는 믿음과 사랑과 위로를 주는 행위입니다. 모임을 없신여기는 사람은 형제들의 힘을 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서로 해야 할 일들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서로 ...하라]하신 일들은 예배를 통해서 주님께 받은 것들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이 맺어짐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은혜로 충만하고 지혜로 충만하고, 믿음으로 충만해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하라고 명하신 일들은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며, 행하고자 하는 소원이 넘치게 되고, 자원해서 행함으로 예배의 영광이 생활 가운데서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삶의 열매들, 행위들은 곧 세상에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 암송할 말씀: 시95:6, 시86:9
☜ 생각해 볼 문제:
- 경배의 성경적 정의를 말해 보시오. - 경배를 드림은 누구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가? - 하나님이 받으시는 경배는 무엇이며 경배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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